야안 319화
28. 용아병
야안은 둘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한 힘에 지치지 않는 체력을 지닌 존재라면 끝없이 몰려오는 몬스터들에게 악몽 같은 존재였을 것이 분명했으니.
그렇게 골똘히 생각에 잠기려는데 한쪽에서 벌레를 쫓으며 피어오르던 연기가 크게 일렁거린다.
“용아병이라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군?”
유피테르가 흥미로운 듯한 표정을 보이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유피테르의 등장에 둘은 마시던 술을 손에 놓고는 서둘러 예를 표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의 인사에 유피테르는 주억거리듯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야안에게 고개를 돌려 말한다.
“기억이 흐릿하여 잘 생각이 안 나지만, 본래 용아병은 정도보다는 사도에 가까운 존재일세. 악마 중 하나가 가지고 있던 권능으로 그것을 라블랑카스가 빼앗아 이를 드래곤에게 내주었지.
그것은 정말 큰 힘이 되었네. 악마들이 드래곤을 죽이면 그 사체에서 용아병들이 수도 없이 뿜어져 나왔지. 정이면서 사이기도 한 그 존재에게 소멸은 또 소멸이 아니었기에 악마들은 물론 아군에게도 공포를 주는 존재들이었네.”
골똘히 생각에 잠기던 그는 더 이상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고개를 저어댔다.
“어쨌든 야안 그대는 각오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야. 다른 드래곤도 아닌 하나의 몸에서 나온 용아병들이라면 자네라고 해도 제법 곤란한 상황이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말일세.”
그러며 짓궂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터라 야안은 그런 그의 모습에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곤란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유피테르 님과 함께하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흔들림 없는 그의 태도에 흥이 깨졌다는 듯 유피테르는 고개를 내저었다.
“어쨌든 방심은 하지 말게.”
그러며 자신을 공손한 태도로 바라보는 둘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둘은 이렇게 유피테르와 마주한 것에 그저 감흥이 남달랐던지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야안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꺼질 듯 꺼지지 않는 별의 향락 속에 사막의 밤은 그렇게 깊어져만 갔다.
* * *
사방이 온통 모래로만 쌓여 있는 사막은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과도 같아 제대로 된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천문학에 능한 자나 오랜 경험을 지닌 이가 있지 않고서는 쉽사리 길을 찾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런 점에서 둘의 안내는 명확했다. 마치 하나의 길만이 있다는 듯 흔들림이 없이 야안을 안내했고, 그렇게 그는 찾기 어렵다는 오아시스를 벌써 세 번째 맞이하게 되었다.
공간의 주머니나 인벤토리에 충분한 물이 있기는 하지만 섭취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지, 몸을 씻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그간 사막을 건너며 알게 모르게 들어선 모래들을 털어내며 몸을 씻던 야안은 그늘에서 짧게 휴식을 취했다.
주술로 물기를 대충 털어내며 석양이 져가는 사막의 풍경에 잠시 젖어들었다.
그렇게 2타의 휴식을 지난 뒤 석양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야안은 다시 길을 떠나기 위해 풀어둔 짐을 챙겼다.
짙은 어둠에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간단한 마법과 주술을 섞어 만들어진 거대한 반딧불 형태의 물체가 땅에서 솟아나며 주위를 환하게 비추었다.
그렇게 야안이 떠나기 위해 준비를 마치기 무섭게 그간 친분이 생긴 둘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가세나. 서두르면 내일 해가 뜨기 전에는 도착할 것이네.”
“네. 그럼 부탁드립니다.”
야안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둘은 앞으로 쭉 나아갔고, 야안 또한 몸을 날려 그의 뒤를 따랐다.
드래곤이 거주하는 곳에 다가갈수록 나타난 괴물들의 위험도도 높아져 갔다.
초인의 경지에 오른 자라고 해도 탄탄한 준비가 아니라면 곤란한 일을 몇 번이나 겪었을 만큼 기상천외한 능력과 모습을 지닌 괴물들이 등장한 것이다.
‘화르르륵-’
용처럼 꿈틀거리며 일대를 휩쓸어가는 거대한 불기둥의 등장에 사방의 시야를 어지럽히던 괴물들이 그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용암이 흘러내린 것 같이 돌이나 모래 따위도 녹아댄 그 모습은 마치 지옥을 보는 듯하다.
아직도 남아 있는 후끈한 열기가 그 불기둥이 얼마나 매서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헐헐. 화끈하게 끝내버리는군.”
저 하늘 위에서 한가롭게 담배를 피워대며 느긋하게 관전하려던 둘은 생각보다 빠르게 전투가 끝이 나자 헛웃음을 흘리며 땅으로 내려섰다.
“그런 힘을 홀로 이루었다니. 정말이지 볼 때마다 놀랍기 그지없네.”
“후~모두가 아리스 님의 보살핌 덕분이지요.”
무시무시한 힘을 보여주었음에도 짧은 한숨으로 여파를 날린 야안은 그리 말하며 둘에게 다가갔다. 둘은 그런 야안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곰방대를 내려놓았다.
“그래, 이제 문을 열겠네.”
엉망이 되어버린 풀 한 포기 없는 돌산에서 둘의 그 같은 말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의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이기라도 하는 듯 돌산의 어딘가를 툭툭 발로 짓이며 큰 원을 그리는 둘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생겨났다.
‘구우웅-’
기묘한 울음과 함께 그가 짓이던 발밑이 뭉그러져 버린 것인데, 그것은 돌산의 일부가 파괴된 것이 아닌 말 그대로 공간 자체가 변이되어 버린 것이었다.
“가겠네. 아직 할 일이 많다네.”
그 말과 함께 공간이 일어서는 듯 주위를 장악했고 그것은 야안과 둘을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그 놀라운 현상은 그 둘을 삼키기 무섭게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그렇게 엉망이 되어버린 요란한 광경만이 스산하게 남게 되었다.
‘쿠우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먼지 구름이 뭉개 피어올랐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산사태에 떨어진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 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야안이었다. 회색빛 일렁이는 거대한 공간의 어느 한 허공에 나타나 떨어진 것으로 그 높이는 삼십여 미르에 달했다.
물론 야안과 같은 초인 앞에 겨우 그 같은 높이 따위는 별다른 영향을 주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나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은 다름이 아닌 이곳 공간만의 비정상적인 면 때문이다.
바로 이곳의 중력이 열 배에 달하는 것이다. 만약 그 대상자가 야안이 아니었다면 초인이라 해도 적지 않을 내상을 입었을 것이 분명했다.
“위험했군.”
건곤대나이의 묘용으로 밑에서 끌어당기는 힘을 주위로 순간적으로 흩어버리지 않았다면 그 충격이 작지 않았을 것으로 야안은 생각했다.
바람의 술로 아직도 눈앞을 어지럽히고 있는 먼지바람을 잠재우던 야안은 그제야 둘이 없어졌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 대신이라 할까? 웬만한 강자라 해도 숨쉬기 어려울 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그는 인식했다.
아니, 그의 유별나게 뛰어난 무의식의 능력이 그 존재를 인식한 것으로 야안은 그 존재의 본질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이것이 에이션트 드래곤.”
현시대에 존재하는 드래곤 중 가장 오랜 세월을 산 존재이자 하나라는 이름을 가진 자다운 존재감이었다.
그 살 떨리고 경악 어린 힘과 권능을 지닌 불사의 군주마저 이러지 못했다.
‘상식을 가볍게 넘겨버리는군.’
나름 스스로 실력에 자부심이 있었건만 그의 존재감 하나만으로 그의 자부심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하기야 가장 앞에서 죽음의 지배자를 견제하여야 할 역할을 지닌 분이시니.’
시간을 역행하여 자신을 천 년 전으로 보내 버린 드래곤도 놀라웠지만 하나는 그 차원이 다르다고 야안은 생각했다.
그러나 곧 평정을 회복한 야안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고민했다.
막연하게 드래곤의 존재감을 따라가야 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드는데, 그때 그가 끼고 있던 전설의 반지에서 빛이 영롱하게 일어나더니 하나의 선을 그리며 어디론가 뻗어 나갔다.
“길을 안내해주는 것인가?”
마치 존재의 마지막 불꽃을 터뜨리는 듯 화려한 광경에 고개를 끄덕인 야안은 무겁게 끌어당기는 중력을 파헤치며 저 빛 너머로 신형을 날렸다.
한참을 빛을 따라나아가던 야안은 곧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을 느끼게 되었다.
‘카가가강-’
시선을 느끼기 무섭게 거대한 대검이 태산 같은 기세로 야안을 향해 내리쳐졌는데, 야안 또한 그에 맞서 검을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야안의 검에 일어난 기운은 능히 도칸 급의 괴물에게 치명타를 줄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야안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는 결과를 보였고, 그 대검은 다시 거대한 거압과 함께 야안을 눌렀다.
순간 그 터무니없는 항마력에 야안은 놀랐으나 이내 마음을 잡고 몸을 뒤로 튕겨 날리며 그 대검의 영역에서 피해냈다.
그러나 어느새 나타났는지? 뒤에서 그를 향해 거대한 기세에 야안은 다시금 몸을 회피해야 했는데, 과연 빛살과도 같은 일격이 그의 등 뒤를 노리고 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사방에서 그를 향해 폭풍처럼 몰아붙였는데 그 숫자가 모두 다섯이었다.
저마다 괴기한 모습을 한 회색빛의 괴물체들이 창, 검, 도끼 등 가지각색의 무기들을 들고 자신을 노리기 시작하자 야안이라 해도 쉽사리 그 족쇄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러한 배경의 이유에는 바로 이들의 터무니없는 항마력 때문으로 검강이라해도 제대로 된 피해를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열 배나 되는 중력에 야안의 몸놀림이 사고의 속도보다 미세하게 느려져 그 핀이 쉽사리 제대로 맞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주술과 마법 중 하나를 더 운용한다면 상대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러기에는 끓어오르는 호승심이 문제였다.
‘카가가가가강-’
곧 이들의 항마력의 수준을 짐작하게 된 야안은 곧 그에 걸맞은 기운을 검에 부여하여 건곤대나이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용아병들의 수난이 시작되었다.
야안을 노리며 나아가던 그들의 공격은 조금씩 어긋나더니 이내 서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들이 야안을 공격하는 것인지 아니면 서로 공격하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서로가 같은 급의 강도와 항마력을 지닌 터라 부딪히기 무섭게 터져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다섯 호흡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쯤 남은 용아병은 단 하나뿐이었다.
‘사아악-’
압도적인 기운이 깃든 야안의 검이 이제 팔 하나밖에 없는 용아병의 몸을 반으로 갈라버리자 거짓말처럼 무너졌는데, 다른 용아병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용바병 또한 무너지기 무섭게 어디론가 흩어져 버렸다.
“후~ 놀랍군.”
검을 집어넣던 야안은 감탄사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자만이 아니라 스스로 그간 억은 것이 적은 것이 아니라 생각했건만 아직도 손끝에 남은 반발력의 여운은 쉽사리 가시질 않는다.
어떻게 보면 불사 군단의 그 수뇌들보다 더 상대하기 어려웠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사실 전력 면에서만 본다면 비슷하다 할 수 있지만, 그의 기운의 원천이 사와 마를 멸하는 데 특출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가 이처럼 까다로워 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