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20화
29. 하나
어떻게 보면 리트담이 공을 들여 만들어내는 그 무시무시한 괴물만큼이나 까다롭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유피테르가 그리 말했을 리 없을 텐데.’
야안정도의 강자가 아닌 능히 초인의 경지에 오른 자라면 이 정도는 어렵기는 하나 헤쳐나갈 수 있는 정도이다.
다만 의문인 것은 이만한 강자를 물리쳤음에도 레벨 시스템에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마치 이것은 쳐주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 영문을 그는 알 방도가 없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야안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 고민 따위를 할 때가 아니지.”
야안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상대하기가 까다롭다는 것일 뿐 이를 헤쳐나갈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과분하나 그는 미숙한 전설의 현자의 칭호를 받은 이가 아니던가?
더구나 검외에도 주술은 위대한 주술사의 경지까지 올랐으며 마법은 고위 현자 익스퍼트에 올라선 세 분야의 초인이었다.
이 중 두 가지 이상을 조합하여 펼치면 그 힘과 효율은 배 이상이 되었으며, 거기에 정령의 왕이기도 한 유피테르가 있었다.
그런 강자가 주춤할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드래곤을 깨워야 할 의무가 있지 않던가?
그런 야안이었고, 실제로 그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점차 용아병은 그 숫자가 늘어났으며 그 공격들도 다양해졌다. 처음 보는 마법들을 구사하는 용아병들이 나타났을 때는 상당히 위압적이기는 했지만 야안의 앞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법과 함께 펼쳐지는 주술은 아무리 항마력이 뛰어난 용아병이라 해도 버텨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절묘한 조합으로 밀어붙이는 만큼 그 숫자가 열이 넘어가자 야안은 마치 최소 능숙한 경지에 오른 초인 세 명 이상을 동시에 상대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야 했다.
그렇게 연달아 다섯 번의 전투가 끝났다. 마지막 열다섯에 달하는 용아병과의 전투가 끝이 나자 야안의 숨소리는 제법 거칠게 변해 있었다.
“리젠.”
항마력이 뛰어난 탓에 그 충격이 중첩되자 야안으로서도 쉽사리 버텨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신성 마법 리젠은 그런 반발도 아무렇지 않게 사그라지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렇게 거침없이 앞을 나아갈 것 같은 야안도 그 마지막에 나타난 단 한 기의 용아병을 앞두고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거였구나.’
어쩐지 유피테르가 어려울 것이라 하더니 이것을 말하는 것이구나? 라 생각이 절로 나는 야안이었다.
그 존재감도 앞서 만난 용아병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초감각은 그 용아병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적어도 리트담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일 것으로 이야기했다.
실제 그 모습부터가 대단했다. 그 길이가 10미르에 달하는 드래곤과 유사한 모습이 그러했는데, 만약 모르고 보았다면 또 다른 드래곤이 아니냐는 착각을 할 수 있을 듯 보였다.
‘이 같은 존재를 고작 가디언으로 두다니.’
다시 한번 에이션트 드래곤의 위대함을 느끼던 야안은 곧 자신을 향해 피어를 흘리며 다가오는 용아병에 상념을 털어냈다.
‘콰가가강-’
무려 10미르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임에도 기본적인 물리적 법칙은 무시하는 듯하다. 눈으로는 결코 따를 수 없는 속도로 꼬리를 휘두르는데, 초감각이 아니라면 인지할 수 없는 정도의 속도였다.
건곤대나이로 흘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검과 함께 뭉개져 버릴 정도로 그 힘에는 엄청난 거력이 자리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고서는 자칫 끝까지 밀릴 수 있는 터라 시작부터 뇌전검법을 펼쳐든 야안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변초의 극에 달하는 1초식 희(喜)로 시작되었다.
팽이를 돌리는 아이처럼 쉴 새 없이 용아병의 공격을 받아치는데, 자신의 공격이 번번이 무효로 돌아가자 보기 드문 수준의 마법들이 용아병에게서 터져 나왔다.
압박당하는 10배의 중력은 20배가 되었으며, 물과 불, 바람 이 세 가지 타입의 마법이 하나로 뭉쳐 야안을 노렸다.
그에 맞서 야안 또한 주술과 마법을 합한 합마법으로 이에 대응하였으나, 용아병의 마법을 완전히 맞서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꼬리를 비롯해 앞발과 그를 씹어먹을 듯한 용아병의 육체와 싸우는 뇌전검법을 극한으로 뽑아내어 초식들을 조합해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의 념이 담긴 강기를 이용해 그에 부족한 부분들을 간신히 채울 수 있었다.
‘지난 드래곤과의 전투가 나에게 도움이 되었구나?’
그랬다.
비록 마에 물들어 허약해진 육체를 지녔다 했으나 그는 예전 자이한과 함께 맞서던 당시를 상기하던 야안은 그때의 경험을 살려 용아병의 공격을 예측해 나갈 수 있었다.
물론 용아병 따위를 드래곤과 비교한다는 것은 달과 촛불을 비교하는 것이나 다름없겠지만, 대신 이 용아병은 고위 현자 마스터 급의 마법을 다루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야말로 용아병과 야안의 전투는 박빙이었다.
물론 시간은 야안보다는 이 용아병의 것으로 갈수록 불리할 수밖에 없을 테지만.
‘유피테르!’
그런 곤란한 상황을 알았던지 야안이 부르기 무섭게 유피테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파지지직-’
요란하기까지 한 뇌전의 일격은 아주 시기적절하여 용아병이 펼치던 마법 하나가 중간에 취소가 되어버렸다.
그때를 노리고, 힘을 짜내어 뻗은 일격에는 어느새 유피테르의 뇌전 또한 가하게 되어 그 지독했던 용아병의 항마력은 크게 감세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우우웅-’
덕분에 자신을 노리던 용아병의 옆구리를 부수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이를 기점으로 야안과 유피테르의 합공 아닌 합공이 시작되었다.
마치 일부러 짜기라도 한 것처럼 마법과 주술이 합친 합마법은 다시 유피테르를 거쳐 뇌전까지 감미되어 나아갔는데 그 힘과 위력은 능히 밀리던 마법의 대결에서 평수를 두기에 충분했다.
‘카가강. 쿠궁.’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를 그토록 괴롭혔던 꼬리가 잘려져 나갔다. 얼마나 무거운 재질이었던지 그 단단한 대지가 움푹 파였다.
“이제 끝을 내지.”
이 초식인 노여움이 깃든 강기는 그 특유의 강력한 파괴력을 요란스럽게 발휘하며 용아병을 세로로 갈라 버리는데 그 순간 그토록 오르지 않던 레벨의 경험치들이 둑이 터지듯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려 서른두 개나 오른 것인데, 그 상대가 상대였던 만큼 어쩌면 당연하다 할만한 경험치였다.
[레벨 : 2,600
직업 : 미숙한 전설의 현자.
칭호 : 최초의 이방인, 용사, 제왕지기, 영혼의 악사(위대한 대장인 : 미착용)
생명력 : 18,120
마나량 : 74,400
명성 : 10,000
힘 : 930(+40)
민첩 : 902(+40)
행운 : 1,402(+40)
지혜 : 780(+40)
신력 : 60 (+40)
마나 : 3,680(+40)
정령력 : 1,390 (+40)
각성의 스탯 : 0
분배되지 않은 스탯 : 1,326]
이로써 벌써 레벨이 2,600이나 된 것인데, 웬만한 전력의 몬스터를 상대하지 않으면 쉽사리 레벨이 안 올라진 지금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잠시 오른 레벨에 기뻐하던 야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피테르는 앞서의 용아병과 달리 먼지로 사라지지 않은 채 사체 덩어리가 된 용아병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하하. 내 말하지 않았던가? 곤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실히 그대의 말대로 정말 어려운 상대였습니다. 당신이 아니셨다면 그 전투는 지독하게도 길고 긴 고행의 연속을 띄웠을 것 같군요.”
야안의 그 대답이 마음에 들기라도 하는 듯 유피테르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에이션트 드래곤의 용아병을 상대하는 것이 까다롭다는 것은 저 같은 말도 안 되는 용아병이 튀어나온다는 점 때문이지.
그나마 자네는 운이 좋은 것이네. 만약 죽은 에이션트 드래곤에서 나오는 저 같은 본 드래곤 형태의 용아병은 능히 애송이 드래곤들과 비교해도 부족 하지 않는 전력감이니 말일세.”
그 믿겨 지지 않는 이야기에 야안은 한동안 터져 나오는 감탄사를 멈추지 못하다, 곧 용아병의 사체를 두고 중얼거렸다.
“이것을 가져가도 될지 모르겠군요.”
위대한 대장인의 경지에 오른 야안이었기에 용아병 사체의 가치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를 무기로 만든다면 아마 엄청난 전력의 상승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앞서 용아병들이 가루로 변하여 어디로 사라지는가 했더니 이 용아병을 탄생하기 위해서였구나. 이러한 성질을 이용할 수 있다면 전투에 필요한 색다른 무기를 만들 수 있을지도.’
칭호를 위대한 대장인으로 바꿔 본격적으로 생각하는 가운데 누군가 불쑥 그 모습을 드러내며 그의 상념을 방해했다.
“그렇게 하시게. 하나께서도 그 정도는 허락하실걸세.”
그렇게 나타난 자는 둘이었다. 둘은 유피테르에게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보이더니 이내 야안에게 크게 감탄을 하는 태도를 보였다.
“정말 놀라웠네. 하기야 그 정도는 되었으니 불사의 군주를 막는데 큰 일조를 한 것이겠지.”
혼자 말을 하는 둘의 말 속에 걸리는 것이 있어 야안이 의아한 표정을 보이다 이내 전설의 반지가 뿜어내는 빛은 물론 그 반지마저 사라졌음을 뒤늦게 인지했다.
“혹시 드래곤께서 깨어나신 겁니까?”
그의 말에 둘은 눈치가 빨라 참으로 좋군. 이라 다시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네. 물론 완전히는 아니긴 하지만 자네와의 의사 정도는 지금이라도 가능하시네.”
고룡 중에서도 가장 오랜 세월을 산 하나를 드디어 만나게 된다는 것에 야안의 심장은 작게 고동을 치기 시작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둘이 나타난 것이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서임을 알았던 야안에 둘은 다시금 이번 대의 현자는 눈치가 빠르다고 고개를 주억거려댔다.
곧 야안이 용아병의 사체를 인베토리에 수습하자 둘은 다시 그를 흔들리는 공간 너머로 안내하였다.
* * *
본래 나는 백스물다섯이었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흘러 백아홉이 되던 해. 나는 강렬한 악의를 느낄 수 있었다.
그자가 나타난 것이다.
관조자인 우리가 일어나야 할 때였고, 그자를 막기 위해 비축한 힘을 풀어내야 할 때였다.
당시의 동료들은 이 일을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알리고 또한 그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를 명했다.
이후 그들과 동료들은 차근차근 선대가 남긴 유물들을 수습하며 이번 대의 전쟁을 준비해나갔다.
하지만 당시 하나께서 나에게는 다른 명령을 내리셨다.
‘죽음의 지배자. 그를 상대할 현자를 찾아 그를 일깨우라.’
그 명령의 중요성을 아는 나로서는 나는 반드시 해내겠노라 맹세하며 세상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현자는 없었다.
대륙과 대륙 사이를 오갔으나 무슨 이유인지 나에게는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