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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321화 (321/385)

야안 321화

“이럴 수 없을 것이건만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가? 현자는 죽음의 지배자가 모습을 보일 때 나타나야 하건만.”

아리스 님의 축복에 따라 현자는 죽음의 지배자와 함께 나타나며 오직 드래곤만이 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약속은 초대 라블랑카스 이후 2대 째인 로블랑이 무사히 현자가 되면서 그 안배가 맞아떨어졌고, 무사히 죽음의 지배자를 다시 잠재울 수 있었다.

한데 3대째는 도무지 찾을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하나에게 돌아가 이에 대해 알아보아야 하나 했으나, 이미 하나와 동료들은 악마들과 전쟁 중이었고 자신은 도무지 방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 뒤늦게야 자신이 현자를 찾을 수 없었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의 지배자가 만들어 낸 새로운 악마 혼란의 군주 베알이 자신을 따라다니며 방해를 했기 때문이다.

놈의 정체를 뒤늦게 깨달은 나는 분노와 수치에 몸을 떨어대며 놈과의 일전을 벌였고, 그야말로 가까스로 승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온전한 승리가 아닌 놈을 봉인한 것에 불과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이제 현자를 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렇게 찾은 현자는 어느 이름 모를 작은 부족을 이끄는 자로 대부족의 족장들 사이에서도 현인이라 불리는 자였다.

아리스의 축복에 따라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헛되이 쓰지 않고 갈고 닦은 것이리라.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하는가?”

나는 현인의 앞에 스스로 정체를 밝혔다. 그리고 현인의 본래 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동료는 물론 가족과 모든 기반을 버리고 자신을 따라 현자의 길을 걸으라는 그 지독한 나의 말에도 그는 스스럼없이 받아들였다.

이후 준비된 안배에 따라 그는 빠르게 마법과 검, 그리고 로블랑이 만들어낸 주술 세 가지를 습득하기 시작했다.

그는 실로 현자라 불리기 전에 자신을 감명케 한 자였다. 자신의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실로 놀라운 속도로 완성해나간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에 우리는 수세에 밀리고 또 밀렸음에도 희망을 품었다.

그렇게 이번 대의 현자 또한 탄생되었다. 그 기반인 마법을 마스터하였으며, 정령의 왕과 계약을 맺었고, 검의 끝을 보았다.

그러나 로블랑이 만든 미완성 된 주술이 발목을 잡았다.

그것은 인간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로블랑의 실수 아닌 실수라고 해도 무방했다.

주술. 그 괴기함을 반기는 이들은 없었다.

사이하다 멸시했고 악이라 하며 멀리했다. 그야말로 마지막 로블랑이 만들어낸 축복은 허무하게 그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사그라져버린 것이다.

그런 주술의 미완성은 역시나 그가 죽음의 지배자와 대적했을 때도 발목을 잡았다.

자이웅은 주술에 그 답이 있다 하여 이에 대해 깊이 파고들었으나 기반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길을 한순간에 쌓아 올리기란 아무리 그가 현자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전쟁의 양상은 패배와 도피의 연속이었고, 그렇게 절망의 한 가운데서 그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금지나 다름없는 법칙에 손을 댄 것인데, 그 대가를 아는 우리로서는 말리려 했으나 막상 현실 앞에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것마저 실패한다면 세상은 끝이겠군. 백아홉 그간 고마웠네.”

마지막 죽음의 지배자를 맞이하러 가며 나에게 남기는 현자의 인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뜻한 바를 이루기를 바라오.”

나의 말에 현자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보였고, 그렇게 우리들의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치열하고 치열한 혈전 속에서 숱한 동료들과 용사들이 사그라져갔다.

악마들과 그들이 부리는 군단은 여전히 득세를 보이며 세상을 어지럽혔고, 현자는 가냘픈 갈대처럼 죽음의 지배자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턱까지 차오르는 절망에 허덕일 때쯤.

금지의 비법이 펼쳐졌고, 그것은 죽음의 지배자를 집어삼켰다.

다시 봉인이 되는 죽음의 지배자에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으나 그것은 너무나 이른 환호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반만 성공된 것이었고, 또한 그에 대한 반발을 우리가 안아야 할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또한 그 봉인도 반만 성공한 것이었으며 그의 저주가 현자를 강타했다.

자이웅 그는 위대한 자였다. 죽음의 지배자의 저주에도 굴복하지 않은 채 그는 마지막 남은 생을 주술의 완성에 모든 걸 바쳤다.

그 기반마저 만들어 버린 것인데, 거기까지가 나의 활동 시기였다.

이제 오십 여섯이 된 나는 죽음의 지배자의 저주와 금지 비법의 반발에 길고 긴 잠에 빠져야 했다.

‘슬프구나. 이것이 끝인가?’

변수가 없기 전까지는 나의 잠은 나의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며, 현자는 다시 세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죽음의 지배자 손에 들어설 것이며, 그것은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일까?

자신은 깨어났다. 절망에서 눈을 감았을 때와 달리 기묘한 세상의 변화는 그 연유를 알기 어렵게 만든다.

‘깨어나셨습니까?’

‘어찌 된 일인가?’

‘정말이지 너무도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보십시오. 현자의 후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 말하던 이제 하나라는 이름이 된 페어리는 자신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알 수 있었다.

‘아리스 님께서 끝내 우리를 놓지 않으셨구나.’

최초의 현자 라블랑카스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던 것만큼이나 큰 축복이었다.

어서 그를 만나보고 싶고 이끌고 싶었으나, 참아야 했다.

‘귀중한 기회. 설마 죽음의 지배자가 이런 성급함을 보일 줄은 몰랐군. 이대로 깨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다가는 이 유리해진 상황을 져버리게 될 것이다. 마침 곁에는 둘이 있었고, 그는 둘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했다.

‘다른 이도 아닌 특히 이런 쪽의 마법에 능통한 둘의 페어리라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야안이 둘을 따라 결계의 저편을 넘은 순간 그는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죽음도 삶도 아닌 기묘한 세계에 자신이 발을 디디게 된 것을 안 것인데, 그런 야안의 반응에 둘은 미소를 보인다.

“걱정하지 마시게. 하나께서 이것이 최선이라 생각하시기에 하는 일이라네.”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 기묘한 감각이 놀라울 뿐.”

그러고 보니 언제 돌아갔는지 유피테르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야안은 참으로 기묘하다고 생각을 하던 중 어느 순간부터는 그를 안내하던 하나가 사라지자 잠시 놀라다 곧 누군가의 등장에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서야 했다.

나타난 자는 온통 금빛으로 이루어진 인간이었는데, 단순히 그것이라면 야안도 놀랄 것이 없지만 그의 초감각이 그에게 경고했다.

천외천의 존재가 눈앞에 있다는 것을.

“무례한 초대에 응해 주어 고맙군. 덕분에 의식을 찾을 수 있었다네.”

난데없는 일이었지만 야안은 앞의 존재가 누구인지를 단번에 깨우칠 수 있었다.

“하나이십니까?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난 죽음의 지도자와의 전쟁에서 세상을 지킨 주된 존재 중 하나임을 잘 아는 야안의 태도는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하나 또한 그런 야안의 태도를 기꺼워하였다. 그것만으로 야안의 성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다시 현자를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군.”

드래곤이 말하는 현자의 의미가 인간들이 말하는 현자와는 그 개념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잘 아는 야안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현자라니요. 그런 과분한 칭호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는 그런 야안에 미소를 보이며 더 이상 이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의 말에 동의한다기보다는 오랜만에 만나게 된 현자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잠시 하나의 미소를 바라보던 야안이 물었다.

“도대체 이곳은 어디인지요?”

창조를 하는 세상에도 그렇게 창조가 된 세상에도 가 보았지만 이렇게 별난 느낌을 주는 곳은 처음이라 야안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그리고 그런 야안의 물음에 하나는 놀라운 답변을 주었다.

“이곳은 나의 심상의 세계이네. 자네는 하나의 안내를 통해 이곳에 온 것이지.”

“!”

너무도 놀라운 사실에 야안은 잠시 말문을 잃어버렸다. 설마 앞서의 경우와 비슷하게 어딘가 만들어진 세계라 생각했지 이런 답변을 예상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미묘한 야안의 변화를 알아차린 하나가 말했다.

“재미있군. 자네는 이미 다른 세상들을 구경한 것인가?”

하나의 말에 야안은 그렇다 하자 웃음을 지어 보이던 하나가 물었다.

“괜찮다면 자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겠는가? 살아온 인생이나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들 말일세. 자네에게 듣고 싶군.”

“제 입으로 말하기는 너무도 보잘것없는 것들뿐이라 부끄럽군요.”

그리 말하던 야안은 말없이 자신을 주시하는 하나에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심상의 세계라 그런 것일까?

이곳은 시간의 관념조차 다른 것 같다고 야안은 생각했다.

한참을 이야기했음에도 목은 아프지 않았고, 긴 시간을 보낸 것 같음에도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꿈속에 있는 것 같아 정말이지 심상의 세계에 온 것에 대해 기묘한 현실감마저 생길 정도였다.

그의 모든 이야기를 들은 하나는 절로 나오는 감탄을 참지 못했다.

비록 아리스 님의 축복을 받았다고는 하나 가장 미천한 자리에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올라섰다는 것이 여간 대견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놀랍군. 자네의 이야기만으로도 자네가 현자의 후예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생각이 드네.”

그런 극찬에 야안은 허둥지둥한 모습을 보이는데 하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제 자네는 이곳에서 저 세상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나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네.”

생각지 못한 하나의 말에 야안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야안으로서도 지혜의 종족이기도 한 골드 드래곤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꿈에도 그리워할 일이지만 문제는 자신이 벌인 일들이 많다는 것에 있다.

그러나 이미 그런 상황을 잘 아는 드래곤이었고, 그는 그의 생각을 아는 바 걱정말라는 듯 손을 저었다.

“자네가 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마무리 지을 것이네. 지금의 자네가 해야 할 것은 과연 시간 안에 나의 가르침을 얼마큼 따를 수 있는가이네?

본래라면 현자를 이끌 운명을 지닌 드래곤에게 가르침을 받아야겠지만, 아마 그럴 수는 없을 터. 아쉬우나마 아직 그 운명의 끈이 지워지지 않은 나에게 그 가르침을 받아야 하겠지.”

그렇게까지 말하는 드래곤에 야안 또한 그 뜻에 동조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인연을 맺었던 이들에게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하고 그 마지막을 보내게 되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었으나 사적인 일로 인류 존망에 관한 일을 져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려는데 갑자기 눈앞에 흐릿한 어떤 것들이 시야를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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