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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335화 (335/385)

야안 335화

‘제국의 습격인가?’

나는 마법으로 술기운을 지워내며 일어났다. 동시에 매번 위험에서 지켜 주었던 흑기사들이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는 작정한 모양이오.”

나의 말에 흑기사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검을 꺼내 들었다.

‘끼이이익-’

요란한 비음 소리와 함께 방 중앙에 자리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벌써? 그들을 제압했다고.’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들을 죽이고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그가 초인이라는 증거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한 제 생각과 다르지 않았던 듯 흑기사들 또한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 검기를 뿌리기 시작했고, 나 또한 그들을 보조할 마법들을 영창했다.

총 네 가지의 보조 마법들을 펼쳐 흑기사들을 돋구었고, 당연히도 그로 인해 흑기사들의 움직임은 기존보다 배는 더 빠르고 유연해졌다.

그렇게 문이 열려 지며 한 인영이 나타나기 무섭게 흑기사들은 몸을 날렸다.

사방에서 그 인영을 향해 검을 날리는 데, 그 타이밍이 너무도 잘 맞은 터라 설사 초인이라고 해도 적잖은 피해를 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기대한 일을 벌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불쑥 그 나타난 자에게서 일어난 검이 슬쩍 흑기사들의 검들과 부딪힌 순간 경이로운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마치 거암의 그것과도 같은 검의 기운이 맥없이 사라져 버린 것인데, 그뿐만 아니라 흑기사들은 자신들의 몸을 순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처음 몸을 날리기 전의 곳으로 되돌아온 상태였다.

당한 그 자신들도 도대체 어떻게 된 형상인지 이해하지 못했던지 돌거인 같던 흑기사들 사이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만큼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인데, 차라리 강기를 일으켜 힘으로 눌러버렸다면 그처럼 당황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서둘러 불의 정화 두 개를 일으켜 날리던 나였지만, 이번에도 어떻게 한 것인지 앞으로 손을 내미는 동작만으로 무시무시한 힘이 깃든 불의 정화는 사그라지고 말았다.

이미 고위 현자라는 경지에 올라선 나였기에 그것이 얼마나 믿기지 않은 현상인지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저자는 악마인가?’

절로 그 생각이 드는 가운데 악마라고 생각이 드는 존재가 얼굴을 가리던 후드를 거두더니 미소를 보였다.

“많이 성장하였구나. 엘룬.”

다정한 어투로 말을 건네는 그의 태도는 마치 어린아이에게 칭찬을 하는 듯했는데 나는 그 목소리와 그 얼굴에 정신이 멍해지고 말았다.

멍한 나의 태도에 흑기사들은 내가 어떤 기묘한 술수에 당했다고 판단했던지 다시 몸을 날렸다. 이번에는 적지 않은 각오를 했던 것인지 좀 전의 검보다는 그 검 끝은 배는 더 무시무시했다.

그러한 검이 네 개였으니, 실로 검강이라 해도 막기 어려울 가운데 이번에도 장난처럼 검을 크게 위아래로 휘젓자 그들의 검의 기세는 다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저것은 그래. 야안 님의 검이다.’

자이한님에게 들었던 야안 님의 검이 그러했다. 어떤 공격도 무의미하게 되돌리거나 흩어지는 특성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저 검이 있었기에 드래곤과 싸울 수 있었다고 하기까지 했으니 저들 흑기사들의 검을 저처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였다.

“그, 그만.”

나는 겨우 목소리를 끄집어내 다시 검을 드는 흑기사들을 향해 소리쳤고, 그들은 나의 말에 잠시 멈칫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검을 접었다.

잠시 나는 고개를 숙이다 밀려오는 격정을 견디기 어려워 몸을 떨어대며 고개를 올렸다.

다시 보아도 어릴 때 보았던 그분이 맞았다. 그때 그 헌앙했던 모습과 겹쳐져만 갔다.

“정, 정말 야안 님이십니까?”

세월 따위는 비켜 흘려 버린 듯한 그분의 모습에서 나는 익숙함과 기묘한 어색함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40년이다.

아무리 초인의 길에 올라섰다고 하지만 변화가 있을 법도 한데, 저분의 외모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 괴기하기만 하다.

그러한 나의 생각을 알았던지 그분께서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셨다.

“너의 고민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이것이면 답이 될지 모르겠구나.”

그러며 그분께서는 한 손을 들어 올렸고, 곧 그 손에서 하얀빛이 일렁이더니 이내 나와 흑기사들을 집어 삼키듯 휘감았다.

‘우우웅-’

방 안을 가득 채운 기묘한 울림이 끝날 때쯤. 우리는 그 스스로 모르게 쌓인 피로감이 지워진 상태였다.

전신에 힘이 가득했으며, 고민으로 지끈거렸던 날카로운 신경성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마법으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이적이었고, 이러한 힘의 정체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신성력…….”

물론 내가 봤던 신성 마법의 형태와는 크게 차이가 났지만 어쨌든 이 힘은 아리스 님의 종만이 발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초인이며 또한 신성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한 분뿐이었으니 말이다.

“저, 정말 야안 님이셨군요.”

확신에 찬 나의 말에 흑기사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것을 느꼈지만 그들의 심정을 나는 신경 쓸 수 없었다.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분이 다가와 나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안으셨다.

“정말 장하다. 그리고 미안하구나.”

그분의 그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정말이지 어린아이처럼 울어대기 시작했다.

벌써 오십을 넘어버린 지 오래였지만 그런 관념 따위는 지금 소용이 없었다.

스스로 부정하며 지워냈던 존재였건만 막상 눈앞에 나타나니 그동안 쌓아 올렸던 담은 거짓말처럼 무너져 감정의 물결은 홍수처럼 터져 나왔다.

징그럽게 나이가 들어버린 사손이 꺼려질 법도 하건만 그분께서는 어린 시절 그때의 나를 대하듯 품속에 나를 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시간이 지나 엘룬은 겨우 감정의 혼돈에서 벗어났다.

이렇게 울음을 흘린 것은 십대의 그 치기 어렸던 시절 이후 처음이라 엘룬은 머쓱하면서도 또한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을 느꼈다.

인벤토리에서 그간 아껴두었던 마크 영지 시절의 포도주를 꺼내 든 야안은 엘룬과 더불어 흑기사들에게도 잔을 권유했다.

흑기사들은 그 전설처럼 회자 되던 야안을 실제로 눈앞에 나타나자 쉽사리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평소의 냉정한 모습을 찾기 어려울 지경인데, 이들은 얼떨떨한 태도를 보이며 그 잔을 귀히 받아들였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게 그때 당시의 포도주란다. 그 해는 제법 좋은 포도주가 생산되었지.”

어쩐지 그 맛이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그립다고 하더니 그때 맛보았던 포도주였나 싶어 엘룬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자신을 감회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야안에게 조심히 물었다.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어쩌면 제 생각 이상으로 큰일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묻는 그에 야안이 어렵지 않다는 듯 말을 꺼냈다.

“자이한 그 친구가 제국에 있다는 말을 들었네. 그의 말대로 나에게 크로노스라는 마법을 드래곤께서 펼치셨지.”

야안의 그 말에 엘룬은 고개를 저어대며 궁금증을 보이며 묻는다.

“크로노스 마법? 저희는 자이한 그분께 그러한 마법에 대해 듣지 못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야안 님과 함께 드래곤과 싸웠고, 이후 그분께서는 정신을 잃었다고 하셨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몸은 치료되었고 베론 장원에 있었다고 하셨지요.”

엘룬의 그 말에 야안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가 다른 생각이 있어 말을 바꾼 것이 아니면 역시나 역사가 아주 조금씩이나마 뒤틀어진 것 같구나.’

어쩌면 제 생각이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낮은 한숨을 흘리던 야안은 왜 자신이 자이한을 만나게 되었으며 드래곤을 찾아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까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도 엘룬은 물론 흑기사들 또한 거짓말보다 더 거짓말 같은 야안의 이야기에 말문을 잃고 말았다.

그것을 어찌 믿을 수 있을까?

고대 시대로 시간을 역행하는 마법과 그것이 가능한 이방인의 운명 그리고 그 시대에서 있었던 놀랍고 경이적이 이야기들을 말이다.

그곳에서 사라진 이종족들과 교류를 나누었으며 하나의 왕국을 만들고자 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것이 대현자 테무드가 탄생했던 스웬이라는 왕국인가 싶어 엘룬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야안에게 주술의 길을 걷게 했던 리트담의 저서의 저자 리트담을 만났으며 그와 함께 불사왕 케르몬이라는 악마와 싸웠다는 이야기에서 그의 그 감정은 절정에 다 달았다.

흑기사들 또한 엘룬과 다른 심정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후 고대 제국의 일을 함께했으며, 다시금 하나라 불리는 드래곤과 마주한 뒤 마침내 대현자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마지막 대현자에 올랐다는 그 이야기에서 흑기사들은 쉽사리 감을 잡지 못했지만, 엘룬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무엇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마법으로 정점을 찍었다는 것인데, 이는 인간의 경계를 반쯤 넘어섰다고 해도 다름이 아니었다.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엘룬은 마지막으로 왜 40년이 넘도록 야안이 모습을 보이지 못했는지에 대한 진실을 듣게 되었다.

“역사가 뒤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시군요.”

엘룬의 말에 야안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나께서 하나의 선물을 준비하셨다고 말씀 하셨지. 어쩌면 그것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엘룬은 드래곤의 선물이라는 말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도 잠시 야안이 그에게 선물이라며 꺼낸 이야기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바다의 종족? 피오 그러한 종족이 있었습니까?”

엘룬의 놀람을 예상하기라도 하였다는 듯 야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악마의 바다라 불렸던 곳에는 악마가 모종의 일을 꾸미고 있었네. 그곳에서 악마를 잡게 되면서 우연히 깨우게 된 신화시대의 종족이네. 피오의 왕 파란 님께서 나를 도와준다고 하셨네.”

바다의 지배자라 불렸던 피오 종족이니만큼 그들이 야안 제국을 돕는다면 더 이상 해양에서 제국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야안이 말하고자 한 바를 알았던 엘룬의 얼굴에서 환한 빛이 일러졌고, 흑기사들 또한 뒤늦게 알고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로써 카이엘 제국의 위험에서 한 층 더 벗어나게 된 것이다.

다음 날이 되어 야안은 엘룬을 비롯해 흑기사들과 함께 야안 제국의 중심지인 황성에서 모습을 보였다.

태초의 공간도 경이로운 일이었으나 그 짧은 시간에 공간을 가르고 대륙을 가르고 나타난 것에 대해 그들은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확실히 대현자이시구나.’

엘룬도 놀랐으나 그보다는 그들을 발견한 기사들의 심정은 그보다 작지 않았다.

바다에 있어야 할 엘룬이 소식도 없이 황성에서 모습을 보이니 이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흑기사들이 나서서 그 소란을 잠재우고 안내를 부탁했고, 곧 기사들을 비롯해 황성의 시종들이 서둘러 움직이며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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