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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341화 (341/385)

야안 341화

현자의 탑에서 배운 것으로 ‘정화의 불비’라는 마법인데 부정한 존재들에게 큰 타격을 준다.

엄청난 힘을 보이는 오크 전사들이라 할지라도 오감의 감각을 뒤엉켜버리게 하고 닿기 무섭게 피부를 녹여버리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러한 뛰어난 면목에도 이 마법은 고대에서도 많이 펼쳐진 바가 없다.

이 마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성수가 필요하기 때문으로, 그 성수의 양에 따라 마법이 펼쳐지는 범위가 달라지기도 했다.

이 마법은 초대 전설의 현자 라블랑카스가 악마에게 치명적인 신성 공격 마법 바란탄을 본떠 만든 마법이었다.

대현자인 라블랑카스가 만든 마법답게 이 ‘정화의 불비’는 그 위력이 대단했으나, 효율 면에서 크게 뛰어나다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상대가 군대를 이룬 오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농도를 낮추어 대단위로 펼쳐진 정화의 불비는 오크 군대에 치명적인 효과를 줄 것이었다.

‘콰르르륵-’

곧 제로스 현자의 손짓에 성수를 섞은 정화된 스물 동의 물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 검은 구름을 동반하며 거대한 불비가 오크의 진형에 내려졌다.

‘화르르륵-’

수십 만발의 불화살이 일시에 쏟아내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하늘은 불에 의해 집어 삼켜져 있었고, 그 엄청난 불비를 바라보며 오크들은 본능적으로 겁을 먹었다.

그것이 정말 인간들이 쏘아 올린 불화살이라면 오크들은 잠시 곤란할지언정 별다른 어려움이 보이지 않을 터였다.

식량 대용이었던 하층민 오크들이라면 모를까?

카이엘 제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춘 전사 오크들이 그까짓 불화살 따위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저것이 자신들에게 내려꽂히는 순간 엄청난 위험이 일어날 것임을 그들은 직감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직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크아아아악, 크르르륵-’

팔 하나가 잘려도 짧은 비명만을 흘릴 뿐인 전사 오크들에게 나왔다고 보기 어려운 고통의 신음이 사방을 메웠다.

고기 방패가 되었던 근근히 버티던 하층민 오크들의 경우에는 이 불비에 산화되어 사라져 버렸으며, 오직 전사 오크들만이 그 불에 간신히 견디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도 정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투구와 갑옷에 가려져 있다고 하지만 밖으로 나와 있는 부위가 녹아 뼈가 드러나다 못해 문드러지는 것을 보노라면 그 안의 상태는 보지 않아도 본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기야 그 정도는 되었으니 오크들이 고통에 미쳐 날뛰겠지만.

그래도 호후도칸 급 이상의 오크들은 타고난 마항력 덕분인지 그 급에 따라 피해가 점차 감소한 상태였다.

이러한 오크들과 대비되게도 그들과 가까이에서 접전 중이었던 인간들에게 있어 이 불비는 엄청난 지원이 되었다.

벌써 며칠째 유지되는 전장의 최전선에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쳐 있는 그들에게 있어 이 불비는 그 어떤 현자의 버프보다도 위대했다.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준 것인데, 실제로 부상자인 경우 큰 부상만 아니면 웬만한 상처는 그 불비를 맞기 무섭게 나아졌으니 말이다.

적에게는 철퇴를 아군에게는 등을 받쳐 밀어주니 당연히 전장의 흐름이 야안 제국에게 돌아가는 것은 당연했다.

“돌격. 돌격!”

점차 오크들이 위축되며 물러가는 모습을 보던 돌격대장 보브 자작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18 기병 대대를 이끌고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만 명으로 이루어진 18 기병 대대의 선발대는 익스퍼트에 올라선 기사들이었다.

총 백 명에 달하는 이들은 하늘 기사들 출신이었다.

제국이 세워지는 과정에서 흡수한 타 왕국 노예 중에서 그 재능을 인정받고 뽑힌 자들로 속박된 전과 달리 저 하늘에 자유롭게 살라는 의미로 하늘 기사라는 이름을 황제에게서 선사 받았다.

당연히도 이들의 충성도는 웬만한 기사들도 고개를 저을 정도인데, 이들은 격변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야안 제국을 버티는 한 측이기도 했다.

오직 재능을 바라보고 뽑은 자들인 만큼 하늘 기사들은 그 실력이 대단했는데, 특히나 그들의 힘은 전장에서 크게 발휘되었다.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이는 나라에서는 그들의 죽음에 대한 보상은 물론 이들의 모든 가족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니 그런 기사가 일백이나 되어 거대한 화살 형태로 올라가고 있으니 정화의 불비 이후 그 위세가 크게 꺾인 오크들로서는 커다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크릉. 비켜라. 막는다.”

호도칸이 검은 날개가 번쩍이는 두 손에 든 한 쌍의 검은 도끼를 휘두르며 나아갔고, 그 뒤를 이어 호후도칸 백 명과 그의 전속 부대 전사들이 몸을 뒤틀어 그 뒤를 따랐다.

‘쿠르르릉-’

검은 날개의 도끼들에서 엄청난 마나의 기운이 일어나며 앞으로 쏟아지는데, 그 엄청난 부기 앞에 사람이고 말이고 모두 갈아질 듯하다.

하지만 검은 날개에겐 아쉽게도 이 18 기병 대대에는 그를 막아설 만한 자가 있었다.

지난 야안을 따라 현자의 탑에 들어섰다 생환한 보브 자작이 그자로 그는 이미 상급 익스퍼트에 올라선 검객이었다.

특이하게도 검은 날개만큼이나 거대한 검을 다루는 보브 자작은 검은 날개가 펼친 부기 못지않은 검기를 일으키며 그 기운을 상쇄시켰다.

“너는 내가 상대해 주지.”

보브 자작은 그 가진 검만큼이나 대담한 이였다. 어릴 적 오크에게 마을 사람들을 잃은 뒤 복수를 위해 군대에 들어선 그는 전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었다.

당연히 그 기교나 전장의 그 희열 어린 분위기를 잘 탔는데, 이제 상급 익스퍼트에 올라서면서 그의 그런 면은 더욱 도드라지게 되었다.

‘쾅. 쾅. 쾅-’

검은 날개의 거력에 못지않은 강력한 일격을 보이며 검기를 일으키며 거칠게 몰아붙이는 터라 검은 날개는 결국 그에게 묶여 버리고 말았다.

검은 날개의 상황만큼이나 그를 따르며 최전선에서 밀어붙이며 올라오는 여타의 기사들을 상대하던 호후도칸들의 상태 또한 좋지 못했다.

정화의 불비에 의해 그 체력이 소모된 것도 소모된 것이지만 우선적으로 이들 하늘의 기사들 대다수가 중급 익스퍼트에 올라선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하니 상대적으로 실력이 밀리는 호후도칸들이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곧 오십여 합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기사들은 호후도칸들을 반 이상 처리하였고, 다시 이십여 합이 지났을 때는 그들을 가로막던 오크들을 모두 정리한 뒤였다.

검은 날개 또한 보브 자작에 합류한 중급 익스퍼트 기사들에 의해 몸이 찢기고 말았는데, 그러한 그의 희생 덕분인지 오크의 군대들은 생각한 것보다 양호한 상태로 본진에 합류하게 되었다.

‘뿌우우우-’

이 기세를 타고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돌아갈 것인가? 고민하는 가운데 야안 제국의 본진에서 요란한 고동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작되었구나!”

보브 자작의 감탄 어린 탄성을 터뜨리며 기감을 예리하게 벼렸고, 이내 멀지 않은 곳에서 거대한 마나가 터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제로스 후작과 이십 만에 달하는 오크들을 이끄는 도칸이 드디어 부딪히기 시작한 것이다.

보브 자작은 더 이상 망설임 없이 18 기병 대대를 이끌고 그 전투가 이끄는 지역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들의 전투의 결과에 따라 이번 전쟁의 행방이 결정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인데, 사실 그보다도 초인에 오른 자의 힘을 멀리서나마 격식 해보고 싶었던 이유가 컸다.

거대한 먼지 구름이 일어나는 가운데 저 멀리서 그 못지않은 불과 바람이 대기를 크게 어지럽히고 있었다.

이처럼 야안 제국이 승기를 잡고 있는 전장이 있는가? 하면 그와 달리 어렵게 상황이 흘러가는 전장도 있었다.

바로 카이엘 제국의 초인 중에서 그 서열이 가장 앞선 자.

오래전 야안과 폭풍 같은 격전을 벌였던 강자 레필 공작이 있는 2전장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런 그이니만큼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야안 제국의 초인은 두 명이었다. 바로 제국의 두 개의 검 중 한 측인 챈들러 공작과 이번 현자의 탑을 통해 불의 상급 익스퍼트에 올라선 초인 이준 후작이 그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본래 샤 대륙의 사람으로 그의 아버지는 적으로부터 누명을 쓰고 이곳 바 대륙에 오게 되었다.

당시는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는데 다행히도 그의 아버지는 제법 뛰어난 정령사라 야안 제국에 몸을 의탁할 수 있었다.

편견 없이 사람 그 자체만을 바라보는 야안 제국에 감격한 그의 아버지는 야안 제국에 뿌리를 완전히 내렸는데, 그의 아들 이준의 경우 그 재능이 그를 뛰어넘어 야안 제국이 운영하는 인재 육성 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엘리트 코스를 거쳐 상급 비기너에까지 순조롭게 올라선 이준은 수많은 전장에서 큰 공을 세우며 백작의 직위까지 올라섰는데, 이번 현자의 탑을 통해 초인에 올라서면서 후작의 직위까지 올라서게 되었다.

하지만 초인에 올라서 처음 맞이하는 전장에서 만난 상대는 매우 좋지 못했다.

제국의 검이라고 칭할 만큼 레필 공작의 검은 두 초인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만약 챈들러 공작이 야안으로부터 건곤대나이를 응용한 검법을 선사 받지 못했다면 2전장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크게 밀려버렸을 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또 다른 초인을 지원할 수도 없었다.

현재 야안 제국은 늘어난 초인들과 저주받은 숲의 붉은 눈 왕국을 받아들이면서 크게 호전되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오크를 견제하는 데 그 늘어난 대부분의 세력이 투입된 상태였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카이엘 제국에 의해 지원을 받고 무장된 오크들의 세력이 강력한 탓이다.

특히나 새롭게 뽑힌 도칸의 숫자가 늘어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 조건이 맞아도 오직 8마리를 뽑고 모두 죽였던 과거와 달리 그 숫자를 늘리는 데 꺼림이 없었던 탓인데 이 때문에 현재의 도칸의 숫자는 파악된 것만 열네 마리에 달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큰 것은 오크의 왕 칸의 힘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사납다는 것이다.

그를 상대하기 위해 다섯 명의 초인이 달려들어야 했다.

테리와, 한스, 자이한과 저주받은 숲의 서열 2위이자 바람의 정령사로서 초인에 올라선 케들러와 야안의 첫 번째 자식이자 공왕인 마크 공작까지 나서야 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초인 중에서도 상위에 올라선 자들 다섯이 모인 것인데, 사실 이 정도는 되어야지 파악된 칸과 제대로 싸울 수 있었다.

검, 마법, 정령, 주술 이렇게 네 가지의 힘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상승된 작용을 한 터라, 무언가 버프된 듯한 칸 또한 그들과 쉽사리 결말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었으니 2전장의 분위기가 좋지 못하다고 해서 별달리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도는 없었다.

‘주군께서 나서신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련만.’

겨우 레필 공작의 공세를 물리치고 전장을 물린 챈들러는 자연스럽게 아쉬움을 보였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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