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48화
“미혹에 빠진 자들이여 벗어나라.”
야안은 스탯을 찍어 신성력을 회복하고는 ‘젠’을 응용하여 미혹에 빠진 자들을 구원하였다.
확실히 ‘젠’의 힘의 근원이 신성력이다 보니 하급 뱀파이어들은 그 소리에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고, 상급 뱀파이어들 또한 진저리치는 모습을 보였다.
리트담은 야안의 옆에서 그가 벌인 그 경이로운 일에 놀라다 그도 잠시 이내 크게 소리쳤다.
“병사들을 물려라. 이대로는 피해만 있을 뿐이다. 미혹을 물리친 강자만이 앞으로 나설지어다.”
야안의 일갈이 부모의 따스한 충고라면 리트담의 일갈은 아찔할 만큼 강렬한 훈육과도 같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일갈을 내지르며 미혹에 빠진 이들을 일깨우니 그들이 아니, 깨어날 수는 없는 일.
물론 그럼에도 뱀파이어들에게 제대로 혼이 빠져 칼을 거꾸로 드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깨우는 방법은 이들을 미혹시켰던 뱀파이어들을 베는 방법밖에 없었다.
한스는 그토록 기다렸던 야안과 리트담이 모습을 드러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한 숨 돌리겠군.’
곧 야안과 리트담에 의해 미혹에 빠져 미쳐버린 병사들이 안정을 되찾자 한스는 리트담의 말대로 일반 병사들을 뒤로 물렸다.
이후 기사급의 강자들이 그 자리를 채우게 하였는데, 이미 한바탕 뱀파이어의 그 마력에 혼이 났던 그들은 신중한 태도로 뱀파이어들을 맞이하였다.
교태로운 웃음과 매끈한 피부. 유혹적인 몸놀림, 아리따운 얼굴을 지닌 여인들의 모습은 사내라면 넋을 놓을 수밖에 없는 일이나, 더 이상 그들은 미혹에 빠지지 않았다.
‘휘이이이익-’
조금 전까지만 해도 뱀파이어들에 의해 지쳐 있던 심신이 거짓말 같이 힘이 넘쳐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다름 아닌 야안이 리트담의 서에서 얻은 칭호 제왕지기로 인한 변화였다.
[전투 시 그대 수하와 동료들을 어떤 상황이든 그 지닌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게 만든다.]
라는 때에 따라 엄청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제왕지기는 이번에도 기적과도 같은 일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뱀파이어의 유혹을 이겨내는 힘을 준 것인데, 이로써 한없이 밀려들었던 전장은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인간들을 유혹하는 것을 하지 못하다고 해서 뱀파이어들이 인간에게 형편없이 밀린다는 것은 아니었다.
상급 뱀파이어들을 이끄는 자들. 일명 군주라고 불리는 뱀파이어들은 이 피가 넘쳐나는 전장에서 초인과도 같은 위용을 벌이는 것이 가능했다.
죽음이 깃든 피를 이용해 피의 마법을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인데, 이렇게 펼쳐진 마법의 파괴력은 초인의 수준과도 견주어볼만 한 것이었다.
그러한 군주가 아홉이었으니 야안 제국의 초인들은 여유가 없었다.
뱀파이어들과 함께 하고 있는 카이엘 제국의 초인들과 더불어 이들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상급 뱀파이어들 또한 상급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검사가 아니면 상대하기란 만만치 않은 존재들이었다.
인간들이 상대하기에 역시나 상성이 나쁜 것인데, 만약 이들과 반대 상성인 거인족이 있었다면 지금의 어려움은 없을 터였다.
여하튼 그렇다고해도 현 전장의 승기는 완전히는 아니지만 야안 제국으로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었다.
“라켄.”
뜨거운 전장의 열기의 가운데 리트담은 한기 어린 표정을 보이며 차갑게 중얼거린다.
그리고 잠시 후, 야안에게 무언가를 말하던 그는 이내 대기 속에 녹아드는 연기처럼 그 자취를 감추었다.
야안은 사라진 리트담이 있던 곳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저것이 탈인.’
동화의 술을 펼쳤을 때도 짐작은 했었지만, 확실히 리트담은 지난 고대 시절 야안이 만났을 때를 떠올리기 미안할 정도로 성장을 한 상태였다.
진정한 의미로 대자연과 소통하는 대현자에 오른 야안조차 리트담을 발견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대현자 급의 마법을 펼친다면 찾을 수야 있겠지만, 그것은 리트담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알 수 있는 작업이었다.
야안 그가 발견하지 못하였으니 이 전장의 그 누구도 리트담을 발견할 수 없으리라.
곧 그의 기척에서 시선을 돌리고 주위 전장의 흐름을 바라보던 야안의 몸이 순간 앞으로 쭉 나아가기 시작했다.
저 멀리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도발적인 기운을 뽐내는 자를 향해 간 것으로, 그곳에는 낯설지 않은 두 명의 존재가 있었다.
한 쌍의 연인으로 보이는 이가 있는 것으로 야안은 이 두 사람과 모두 관련이 있었다.
사내는 그가 고대 시대로 가기 전에 잠시 만났던 당시 삼황자였던 피르망 황제였으며, 여인의 경우 고대 거인 퀘스트에서 강렬한 기운을 보였던 악마 라켄이었다.
‘기묘하군. 기묘해.’
붉은 노을의 손에 죽었던 라켄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에 야안은 새삼 역사가 바뀌었음을 인지했다.
그러면서도 그 바뀐 역사의 원인이 된 자신이 바뀌지 않은 것에 대해 야안은 흥미로웠다.
만약 상황이 이러하지만 않았다면 오랫동안 연구하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러한 여유 따위는 야안 그에게 없었다.
이는 다름 아닌 황제 피르망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나는군.”
그때도 그러했듯 오만한 표정이 묻어나오는 그의 물음에 야안은 그를 바라보다 낮은 한숨을 내쉰다.
“후우. 이제 그대는 인간이 아니군.”
인간의 껍질을 쓰고 있으나 그는 악마였다. 아니, 악마가 되었다.
그 대가로 얻은 힘은 야안 그도 처음 보는 형태의 것이었다.
인간이면서도 악마인 존재가 되면서 두 개의 힘을 다루게 된 존재가 된 것인데, 단순히 그 힘만을 따져 본다면 지금의 야안이라고 해도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자가 희생된 것인가?”
그에게 묻는 것이 아니었으나 야안의 중얼거림을 들은 황제는 웃으며 라켄에게 말했다.
“하하. 몇이었지? 천만까지는 세었던 것 같은데.”
“그런가요? 저는 관심이 없어서.”
라켄은 장난 어린 말에 황제는 다시금 웃음을 흘렸고, 야안은 분노하였다.
어느새 그의 검은 검집을 빠져나왔으며, 다른 한 손에는 현자의 지팡이가 꽉 쥐어져 있었다.
엄청난 기세를 보이는 야안에 황제는 낮은 감탄을 흘린다.
이제 초인 정도는 한 손으로도 찢어 죽일 힘을 얻게 된 황제였으나 야안의 기세를 만만히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역시나 전설의 현자다운 힘이로군.”
완성되지 않은 존재가 이 정도인데 완성된 전설의 현자라면 과연 어떤 힘을 발휘할지 황제는 쉽사리 감이 오지 않았다.
“뭐~ 결국 자네는 여기서 죽네.”
황제 또한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라면 야안을 상대할 수 있을지언정 죽이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하지만 피의 악마 라켄이 그를 도운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서슴없이 먼저 손을 쓰려는 야안의 모습에 황제는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며 감각을 일으켰다.
혹시 누군가 그를 도우려 하기에 그러한 것이 아닌가? 판단한 것인데, 그는 이내 그것이 아님을 인지했다.
설사 야안이라고 해도 자신의 기척을 벗어날 수 없을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먼저 손을 쓴 것은 다름 아닌 야안이었다.
검에서 일어나는 그의 검강은 상식을 초월한 형태의 것이었다. 하기야 주술, 마법이 합해져 나타난 강기의 벽을 넘어서 강기였으니 그 힘이 작을 리 없었다.
‘콰아아앙-’
하지만 그보다 무시무시한 것은 황제가 펼친 검이었다. 실로 모든 것을 지워버릴 듯한 야안의 검을 가볍게 상대하였으니 말이다.
황제의 검은 야안처럼 요란스럽지 않았다. 마치 정제되고 정제된 기운의 정수를 보는 듯했다.
악마의 기운 때문인지 강기는 짙은 검은 빛을 띄우고 있었는데,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야안의 강기를 뜯어 먹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단순히 강기의 대결에서도 황제가 우세를 보이고 있었으나 황제가 무서운 것은 단순히 강기의 질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검의 종주에 오른 자의 힘이었다.
악마로 각성하면서 그 부족하였던 부분들을 보완하게 된 황제의 검은 가볍게 펼친 검에도 엄청난 오의가 자리했다.
평생을 두고 감히 얻을 수 없는 검의 오의가 그 안에 있는 것인데, 특히나 야안을 상대로 펼친 그의 검은 더욱 그러했다.
‘심연의 검.’
제대로 모든 경지를 밟고 오른 것이 아니라, 야안이 펼친 심연의 검에 비한다면 조금은 미숙할지 모르지만, 황제가 펼치는 검은 확실히 심연의 검의 그 오의가 자리했다.
이 때문에 야안으로서도 미숙하게 심연의 검을 펼쳐야 했는데, 그런 가운데 그의 가장 큰 힘이라 할 수 있는 마법은 라켄의 손에 묶여 황제를 제대로 상대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자였다면 힘이 고갈되기도 전에 무너졌을 것이 분명한 일이나, 새롭게 얻게 된 ‘젠’이라는 힘이 두 악마의 합공에서 버티게 해주었다.
‘젠’의 활용을 통해 마법, 검, 주술을 펼치는 속도를 끌어 올린 것으로, 이것이 아니었다면 이미 야안은 큰 낭패를 보았을 것이다.
상상을 초월한 형태로 펼쳐지는 황제의 검과 요사스러운 피의 마법으로 야안을 옥죄이는 라켄 이 두 사람의 합공에 야안이 세 힘을 하나로 묶기란 어려웠을 테니 말이다.
지금도 현자의 지팡이를 통해 펼쳐지는 마법은 둘로 나누어져 하나는 검에 그 부족한 힘을 실어주었고, 또 하나는 피의 마법을 떨치었다.
주술은 모든 전력을 다해 검의 뒤를 받쳐주고 있으며, 그의 검은 뜨겁게 달아오른 여름의 하늘처럼 푸른 빛을 내며 어둠에 맞서 싸워댔다.
마치 신화시대의 악신과 싸우는 신화의 영웅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힘인 정령술이 묶인 지금 부족한 전력을 ‘젠’이 감당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가 고위 신관을 앞둘 만큼의 신력을 지니었다고 해도 ‘젠’의 힘을 깨달은 것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고작 그 시간에 깨달은 ‘젠’으로 정령술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간 모아두었던 스탯이 아니었다면, 이미 큰 손실을 보았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스탯이 무한정일 수 없는 노릇이니, 절망적인 상황은 어쩔수 없는 가운데에도 야안의 얼굴에는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다름 아닌 리트담이 그의 곁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음을 알고 있어서였다.
역시나 그의 생각대로 황제조차 리트담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가 나타나는 순간 이 전투는 정리가 될 터였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순간 그 전장에 요상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피의 마법으로 야안의 목을 조이던 라켄이 어디선가 분 미풍에 닿기 무섭게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
결코, 이해되지 않는 현상에 순간 그 엄청난 전투가 끊겨 졌다.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황제는 크게 소리쳤고, 야안은 지친 가운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떻게 한 것인지 모르지만 라켄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지워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