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62화
분신은 그 말과 함께 만약을 위해 리트담이 남겨둔 힘에 대해 말했다.
그것을 깨우면 탈인에 준한 힘을 끌어올리는 게 가능하다 말한 것인데, 부작용이라면 그 발현되는 시간이 길지 못하다는 것과 그것으로 분신은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하나 그런 것을 보더라도 이는 믿기 힘들 만큼 놀라운 일이다.
물론 완전한 탈인의 수준은 어렵겠지만 천 년 전 그가 본 리트담의 수준에 올라간다는 것을 말함이니 말이다.
또한 당시의 주술과 지금의 주술은 그 격이 달랐다. 인과의 법칙까지 손을 대는 것이 가능할 정도인데 당연히 엄청난 전력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다행인가?’
리트담의 소식이 들리지 않는 지금 언제까지나 그를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안 된다면 혼자서라도 갈려 했건만 그가 남긴 분신이 그 같은 일을 벌일 수 있다니 천만다행이었다.
곧 수하들을 불러들여 사정을 이야기한 야안은 만남의 기쁨이 사라지기도 전에 그들과 헤어져야 했다.
한스를 비롯한 그의 충성스러운 수하들은 그러한 야안의 말에 표현치 않았으나 사실상 그들은 속으로 비통함을 보였다.
여전히 주군의 뒤를 따라가지 못할 만큼 약하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자괴감을 낳게 한 것이다.
그렇게 야안은 돌아올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려운 그 험한 전장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탁-’
야루스 산맥의 중심부에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두 인영이 모습을 보였다.
나타난 이들은 다름 아닌 야안과 리트담으로, 그들은 현자의 탑을 통해 공간을 건너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빛의 신 할라가 야안 그에게 가르쳐 준 기억에 의하면 대악마는 라의 대륙에 있었다.
하지만 죽음의 지배자에 의해 라의 대륙은 야루스 산맥이 되었고, 결국 그들의 목적지가 야류스 산맥인 것은 당연했다.
야루스 산맥 특유의 거칠고 껄끄러운 분위기가 그들을 에워싸는 가운데 야안이 하늘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오크들이 야안 제국의 그 막강한 전력에 의해 끊임없는 사냥이 이루어지는 지금에도 야루스 산맥은 인간들의 접근을 거부하는 곳이었다.
굳이 오크가 아니어도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죽음의 지배자가 남긴 저주에 이곳 야루스 산맥의 몬스터들은 변이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산맥의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러했는데, 도칸 급의 몬스터들은 매우 영리한 터라 적이 강할 경우 결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야루스 산맥을 완전히 정복하려는 것은 야안 제국의 모든 기량이 총동원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인데, 그렇다고 해도 긴 시간과 희생을 필요한 터라 결국 제국은 어느 정도의 타협을 본 상태였다.
지금은 국력을 소비하기보다는 앞으로의 전쟁을 위해 최대한 성장시켜야 할 시기였다. 타이탄과 인공 마정석의 등장으로 대혁명이 일어난 지금, 문명의 대부흥기라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다.
고대 시대를 넘어서는 기량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적어도 타이탄의 등장으로 무력으로 넘어선 지 오래였다.
여하튼 그러한 국력에도 야루스 산맥은 제국이 다가갈 수 없는 금지의 영역이었고, 이는 적어도 이곳에서만큼 그 인명의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말과도 같았다.
하니 야안이 안도를 표한 것이다.
신화시대 빛의 신 할라가 해결치 못했던 죽음의 지배자의 파편 대악마와의 전투에서 일어날 영향을 생각한다면 그로서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트담의 분신은 야안의 그 속삭임과 같은 혼잣말을 옆에서 듣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거대한 전쟁을 앞두고 걱정하는 것이 이러한 것이라니 정말이지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절로 뜨거울 지경이다.
‘내가 분신인 게 아쉽군.’
만약 이곳에 본신인 리트담이 있었다면 그가 어떠한 감정을 가졌을지 짐작이 되는 터라 그의 입가의 미소가 짙어졌다.
‘저벅, 저벅-’
야안이 나아가기 시작하자 분신은 그 뒤를 따랐다.
그가 나아가는 길은 야루스 산맥의 깊은 곳이라, 점점 갈수록 길이란 것을 찾기 어려울 만큼 험악해졌으나 그것은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화아아악-’
야안이 마법과 주술을 다루자 길이 거짓말처럼 생겨났기 때문이다.
오염된 수풀과 저주의 삿된 기운들이 그의 힘에 밀려난 것으로, 자연 그 중간 중간에 있던 도칸 급의 몬스터들 또한 두려움에 떨며 꽁무니를 뺐다.
그렇게 한참을 나아가던 그들은 아마도 야루스 산맥의 가장 깊은 곳이라 생각되는 곳에 도착했다.
그 높이를 예측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절벽에 도달한 것으로, 의외로 그곳에서는 어떠한 삿된 사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악기가 감도는 야루스 산맥의 유일한 휴식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나 이곳을 찾은 야안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굳어 있었다. 긴장한 것으로, 이는 그가 빛의 신 할라의 기억에서 본 그 기운을 이곳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오직 신의 격을 이룬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기운이기도 했는데, 야안이 그러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에는 다름 아닌 빛의 신 할라의 축복이 그에게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소름이 돋는군.’
그간 그가 상대한 악마들은 하나같이 끔찍한 기운을 풍기는 괴물들이었지만, 그러한 그들의 기운 따위를 한낱 봄날의 그것마저 만들 만큼 이곳에서 풍기는 기운은 격이 달랐다.
거침없이 앞만을 보고 왔던 야안의 걸음은 결국 멈추고 말았다.
“이제 나는 대악마의 봉인을 풀 것이다. 하나 과연 그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그것이 너무나 두렵구나.”
야안의 말에 분신은 이를 깨물었다.
리트담의 기억에 의한다면 그의 주군 야안이 저처럼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저 무모하리만큼 진리의 길을 거침없이 걸어가던 그가 저같이 주저하는 모습이라니 도대체 이곳에 얼마나 터무니없는 존재가 봉인되어 있다는 것인지 그로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얼마 안 될지 모르겠군.’
그는 한탄과 동시에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분신이 각오를 새롭게 다질 무렵 야안은 잠시 눈을 감다 곧 주저했던 한 걸음을 내밀었다.
결국 행해야 할 일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기서 물러난다면 다시는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직감이 그를 그렇게 행하게 했다.
그 무겁고 무거운 걸음을 떼어내야 했을 만큼 앞으로 그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너무도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더불어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닌 그 자 죽음의 지배자의 것이었으니, 야안의 이같은 고민조차도 사치가 될 지경이다.
야안은 빛의 신이 그에게 준 권능을 이곳에서 풀었다.
알록달록한 모든 빛이 쉴 새 없이 그의 몸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그 빛은 기이하게도 어두운 절벽을 향해 나아갔다.
이후 인세에 보기 힘든 광경이 그들의 눈에 펼쳐졌다.
물질이던 절벽이 마치 빙벽이 녹아 기화되듯 빛으로 환해지기 시작한 것인데, 그 사이에서 대현자인 왕영도 겨우 짐작할 엄청난 형태의 수식들이 무서운 속도로 풀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신화시대 빛을 담당하던 신의 힘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일면이라 야안은 놀라면서도 또한 근심을 보였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저 같은 힘을 다루어 봉인해야 했을 만큼 대악마의 격이 무섭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제 빛의 신의 권능을 모조리 푼 터라 대악마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 봉인이 풀려나면 그가 느꼈던 기운이 세상에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예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듯 세상은 거대한 재앙을 마주하게 되었다.
‘쿠구구구궁-’
어마어마한 절벽이 사라진 자리로 무언가가 나타났다.
집채만 한 타원 형태에 온통 검정색인 그것은 오직 거대한 눈 하나만이 자리할 뿐이다.
하니 그 모양새가 달걀에 장난을 친 모양새라 제법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를 마주한 야안은 물론 분신 또한 그것이 우습다 생각지 못했다.
그런 것에 신경을 쓰기에는 그 존재의 기운이 너무도 끔찍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운을 느꼈음에도 앞으로 나아간 것인가?’
분신은 그제야 야안이 왜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달았다. 또한, 그의 의지가 얼마나 고결한 것인지를 알고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야안은 그러한 분신의 눈길을 모르는 듯 그의 눈은 대악마를 향해 있었다.
‘우우웅?’
너무도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 봉인에서 풀려난 대악마는 의아함을 보이고 있었다. 무언가 낯선 것으로, 그런 그의 반응은 당연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가 존재했던 당시는 신화의 시대였다. 전설의 시대를 건너 고대를 지나 현재 인간의 시대가 왔으니 그 이질감이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닐 터였다.
대악마는 야안과 분신을 앞에 두고 있음에도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그들 따위가 감히 자신을 어찌할 수 없다 판단한 모양인데, 그러하기에 그의 모든 시선은 이 세상의 법칙에 자리했다.
지금 자신이 머무는 시대가 어떠한 것인지 알고 더불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한 모습인 듯했는데, 이를 알았던 야안은 결국 그가 풍기는 기운을 물리치며 검을 빼 들었다.
‘차아아앙-’
요란한 검명과 함께 전설의 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죽음의 지배자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설의 검답게 죽음의 지배자의 분신 대악마를 마주하게 되자 그 일어나는 적의는 상상 이상이었다.
벌써 세 차례나 전설의 현자와 함께 죽음의 지배자를 상대하였던 전설의 검은 제 존재의 목표가 나타나자 아낌없이 자신의 기운을 터뜨려댔다.
만약 야안이 검의 종주에 올라서지 않았다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는 2대 전설의 현자이자 인간사 가장 뛰어난 검사인 로블랑의 잔재가 아직도 전설의 검에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야안을 무시하던 대악마는 그 자신을 향한 전설의 검의 적의에 놀라 눈길을 돌려야 했다.
‘끼이이익-’
고작 그 거대한 눈에 있는 눈동자가 야안을 향했을 뿐인데, 그 압박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에 그는 ‘젠’을 일으켜 그것을 흩뜨리더니 곧 마법과 주술은 물론 팔라딘에 오르면서 얻은 바란마저 펼쳐 검에 담아 뻗어 나갔다.
일반적인 검이었다면 그중 하나를 담는 것도 버거웠겠지만 전설의 검은 능히 그 모든 것을 담아내었다.
‘우우우웅-’
그의 모든 정수가 담긴 심연의 일검을 펼쳐졌고, 대악마는 하잘것없는 존재가 일으킨 힘에 깜짝 놀란 듯 수많은 환영체를 일으키다 결국 공간을 갈라 그 속으로 숨었다.
‘치이이익-’
하지만 공간 속에서도 그의 검을 피할 수 없었다. 심연의 검답게 야안의 검은 공간마저 뛰어넘어 대악마에 닿고야 만 것인데, 다만 그 결과는 예상한 것과 달랐다.
그가 지금껏 상대했던 악마였다면 바란은커녕 그 하위 신성 마법인 바란탄마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인데 대악마는 그 바란을 비롯해 야안의 모든 정수가 담긴 일격을 받았음에도 정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겨우 몸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더 이상 타원형이 아니게 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