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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367화 (367/385)

야안 367화

야안은 그렇게 악마들을 물린 뒤에야 리트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

리트담은 물러선 악마들과 그 뒤에 있는 대악마를 바라보다 곧 야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악마들을 홀로 상대하였던 그에 그저 감탄을 보일 따름이다.

“그간의 성취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또 하나의 길에 정점에 오르셨군요.”

법칙을 다루게 된 리트담은 단번에 야안이 이룬 성취를 짐작해 말했고, 야안은 이미 분신을 통해 겪은 바라 그런 그의 안목에 놀라지 않았다. 그보다는 거짓말처럼 위기의 순간에 등장한 그가 그저 고맙고 또 반가울 따름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와 몇 날 며칠을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나 상황이 그리되지 못하는군. 최악이라 할 수 있는 전장에 자네를 끌어들인 것 같아 미안하네.”

주공인 야안의 말에 리트담은 고개를 저었다.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저는 야안 님을 주공으로 모실 것을 결심하며 이깟 목숨 따위에 연연한 바 없습니다. 저에게 삶의 목적이 하나 있다면 오직 주공의 옆에 서 있는 것이니 진정 저를 위하신다면 그런 말씀은 거두어 주십시오.”

리트담의 그 말에서 그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느꼈던 야안은 눈가가 시큰거렸다. 그의 진심에 마음이 움직인 것으로, 만약 상황이 이 같지 않았다면 눈물을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애써 감정을 누른 야안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 주공의 모습을 모르는 리트담은 저 멀리 자리한 대악마를 보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지금까지 그가 상대한 적과 차원이 다른 적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치 세상의 법칙에 관여하는 자임을 안 것인데, 그것이 무언가 했던 그는 곧 그 답을 찾았다.

“저자는 악신입니까?”

야안은 대악마의 힘을 겪지 않았음에도 단번에 그 답을 찾은 리트담에 놀라며 그렇다 하자, 리트담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신성을 지닌 자는 오직 신성을 지닌 자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저자를 상대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야안은 짧은 침묵을 뒤로하며 답했다.

“……해야지. 그를 반드시 처단할 것이네.”

주공의 그 말에 리트담이 낮은 웃음을 흘려 보인다.

“하하하. 저는 그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럼 이제 제가 길을 열어 들이지요.”

리트담은 그 말을 끝으로 그의 손가락이 튕겼고, 이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세 개의 나뭇가지가 허공에 등장하였다.

그가 소환한 나뭇가지는 단순한 나뭇가지가 아니었다. 바로 이종족들을 이 세계에 정착시키기 위해 그의 주술력을 집약한 세계수의 나뭇가지로 그는 위험성을 감수하고 이 여분의 나뭇가지를 숨겼다.

이것이 전장에 변수가 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우직-’

그는 그중 하나를 부러뜨려 거대한 주술을 펼치느라 소모한 주술력을 회복하더니 남은 두 개의 나뭇가지로 놀라운 주술을 발휘했다.

‘휘이이이이잉, 우르르릉-’

나뭇가지는 저마다 하늘과 땅에 자리해 인영을 만들어내었다. 하늘에 있는 나뭇가지는 바람이 모여들어 강력한 돌풍 속에 그 존재를 탄생케 했으며 땅에 있는 나뭇가지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뭉쳐져 깨지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것은 복잡했지만, 또한 너무도 빠른 변화였고, 곧 그렇게 만들어진 두 인영은 이내 리트담과 유사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두 명의 분신을 이룬 것인데, 그 존재를 많이 나누지 않았음에도 그 지닌 힘은 야안과 함께 했던 분신에 비해 부족하지 않았다.

세계수라는 거대한 지탱목과 전보다 더 높아진 리트담의 깨달음이 그러한 이적을 발휘하게 한 것이다.

악마들은 갑자기 적들이 둘에서 넷으로 변하자 더 이상 망설일 수 없게 되었다.

대악마가 다시 한번 신 악마를 소환할 것을 알기에 그저 대치하며 시간을 끌려 했던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안 좋게 돌아갔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먼저 움직인 것은 리트담이었다. 그는 야안에게 말한바 홀로 이 악마들을 감당하려는 듯 분신들과 함께 이룬 주술로 그들을 통째로 땅 밑으로 쳐 받아버렸다.

‘쿠우우우우웅-’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거대한 먼지바람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가운데 그 먼지가 채 가시기도 전에 그 속에서 거대한 괴음이 그 속에서 쉴 샘 없이 터져 나왔다.

리트담이 이 앞이 보이지 않는 먼지 구름에서 벗어나려는 악마들을 잡아당겨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던 것으로, 분신이라는 편법을 썼음에도 순수한 전력에서 밀리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라 할 수 있다.

“……고맙네.”

야안은 거칠고 투박한 형태로 전장을 뒹구는 리트담에 고마움을 표했다. 길을 열겠다고 한 말을 지키기 위해 이 같은 일을 행한 그의 모습을 보니 절로 그 고마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이제 내가 약속을 지킬 차례이군.”

그는 전장의 지금의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눈을 돌리지 않는 대악마를 바라보며 검을 쥐었다.

‘쿠르르릉-’

소모된 마나는 물론 신력 주술력에 스탯을 찍어 올리며 모든 기량을 회복한 그는 곧 모든 힘을 합치자 어마어마한 힘이 검에 집약되었다.

전설의 검이 아니라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그러한 힘의 형태의 발현에 대악마는 더 이상 그를 무시할 수 없는 듯 그의 눈동자가 야안을 향했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가 그를 향하기 무섭게 야안의 검이 움직였다. 그의 검은 마치 시공간을 초월한 듯 어느새 대악마가 친 결계를 찢어버리고 있었다.

‘끼기기기긱-’

대악마의 결계의 숫자는 무수했고, 그 안에 특성도 저마다 달랐다. 하나 이는 이미 겪었던 바라 야안은 당황할 필요 없이 그것을 묵묵히 깨부수기 시작했다.

리트담의 등장으로 더 이상 그를 방해할 요소가 없는 이상 그는 오직 대악마만을 신경 쓰면 될 일이었다.

하나 턱밑까지 추격하는 야안의 모습에도 대악마는 야안을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 더 중한 일이 있다는 듯 그의 그 거대한 눈은 저 먼 무언가를 인식하듯 바라보고 있었고, 야안이 결국 마지막 결계를 코앞에 두었을 때쯤 이번에도 그의 눈이 깜빡여졌다.

그리고 동시에 대기가 요란스럽게 뒤집은 모습이 보이더니 강력한 악의와 함께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하하하하-’

광기 어린 웃음이 대기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사라진 고대 시절 흔히 광장에서 보던 광대 복장을 한 괴인이 모습을 보인 것으로, 그의 주위에는 알록달록한 화사한 빛들이 요란스럽게 자리해 단순히 그 모습만 보자면 행복을 주는 광대처럼 보였다.

그랬다. 이 기괴한 차림의 광대가 바로 악마들이 기다렸던 마지막 악마의 등장이었다.

그 악마가 마지막임을 증명하듯 대악마는 더 이상 자신을 향한 야안을 상대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끼리리리릭-’

고주파를 발휘하며 야안을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그 마법은 물론 가장 자유로운 형태의 힘인 주술과 비교해도 괴이한 대악마의 고주파는 수없는 괴이함과 상식을 넘어서는 파괴력으로 야안을 곤란케 했다.

대악마가 일으킨 고주파는 검이라 일러도 무방했고 마법이라 칭해도 무방했다. 그러면서도 주술의 그 자유분방함이 따르니 야안이 만약 이 세 가지의 공부 중 하나라도 통달하지 못했다면 그는 대악마의 고주파에 휘말려 갈가리 찢겨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대악마의 고주파를 상대로 가장 활약을 한 것은 신력을 제외한다면 검이었다. 정확히는 검의 종주에 오르며 마스터하고 만 건곤대나이가 큰 활약을 했다.

만약 그가 검의 종주에 오른 것과 별개로 건곤대나이의 그 이치를 깨닫지 못했다면 대악마의 힘을 상대로 엄청난 힘을 소모하였을 것이 분명했다.

형태도 일정한 순서도 없이 다루는 고주파라 하지만 건곤대나이는 그러한 속에서도 따로 법칙을 만들어냈다.

마스터하게 되면 어떤 종류의 힘이든 그 힘의 방향을 다룬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듯 건곤대나이는 대악마가 다루는 그 괴기한 고주파마저 뒤틀어대었다.

물론 워낙 그 방향성도 그 힘의 형태도 없던 것으로 아무리 야안이라해도 모든 것을 다 다룰 수는 없었으나, 그중 일부를 뒤트는 것은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되자 대악마의 고주파의 일부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상쇄하는 과정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마치 촘촘한 그물의 일부를 얽는 작업으로, 능히 빈틈을 만들어줄 수도 있을 터이다.

이 말은 야안이 대악마를 반격하게 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야안은 그 실낱같은 희망의 등장에 이를 악물었다.

운이 닿아 마지막 숨겨둔 비수가 그 실말 같은 희망 속에 기어이 꽃을 피운다면 이 터무니없는 대악마를 멸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희망이 생기기 무섭게 변수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대악마가 마지막으로 불러들인 신 악마가 문제인 것으로, 이 악마는 앞서의 신 악마들과 비교해도 특별했다.

기존에 죽음의 지배자가 인과를 무시하며 등록한 악마가 아닌 대악마의 손에 직접 탄생된 악마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과거에 있었다 사라진 악마 중 그의 파괴의 성질에 맞은 악마가 재탄생하게 한 것으로, 이 신 악마는 놀랍게도 야안이 과거 접촉한 바 있는 악마였다.

‘튕. 화르르륵-’

그가 손끝을 튕기자 음산하기 그지없는 요란한 검은 불길이 모습을 보이더니 곧 야루스 산맥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얼마나 그 불길이 강력했던지 악마들과 진흙탕 싸움을 하던 리트담마저 따로 손을 써야 할 정도였는데, 다만 그 불길 뒤에 벌어진 일이 더 무시무시했다.

‘끼기긱. 끼긱.’

불길이 꺼지며 검게 죽은 땅 위에 그 아래에서 무언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많은 해골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해골들의 모습은 저마다 다양했다. 검을 든 병사의 모습을 한 스켈레톤을 시작으로, 말을 탄 기사의 모습을 한 데스나이트도 자리했고, 마법을 다루는 리치들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백 단위였던 그것은 어느새 천 단위를 넘었고, 다시 만 단위의 숫자를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결국 십만에 달하는 해골로 이루어진 군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섬뜩한 죽음의 기운과 함께 등장한 이 군단의 등장에 야안도 리트담은 놀라고 말았다. 이 군단의 정체를 그들은 잘 알기 때문이다.

고대 시절 그들이 이종족과 힘을 합쳐 싸웠던 적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불사의 군단으로 이들의 등장은 이 새롭게 등장한 신 악마의 정체를 추측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죽음의 지배자가 야안이라는 변수를 처리하기 위해 일으킨 악마. 리치왕 케르몬이었으니 말이다.

그때의 그는 분명 리치왕이라는 말에 걸맞게 리치의 모습이었지만, 대악마의 손에 재탄생한 그는 이 같은 광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광기 어린 모습을 지닌 그의 모습은 마치 소멸마저 제 뜻대로 하지 못한 세상에 분노한 모습 같기도 했다.

“오랜만이군.”

그는 야안과 리트담을 기억하는 듯 커다란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그 모습처럼 목소리는 가볍기 그지없었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소름이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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