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68화
야안은 그의 정체를 알자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서둘러 대악마의 접전에서 크게 물러서야 했다.
불사의 군단을 제외하더라도 과거의 그가 얼마나 무서운 힘을 다루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대악마에 의해 부활한 그의 힘은 신악마로 재탄생된 것으로 과거보다 더 강하고 파괴적인 것임을 유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리트담이라고 해도 그마저 책임질 수 없을 터이니 야안으로서는 최악을 맞이한 것이나 다름없다.
겨우 찾은 이 작은 희망이 그로 인해 무너질 듯해 그는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하나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듯이 한줄기 강렬한 빛이 그 죽음의 땅에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우우웅-’
어마어마한 빛이었고, 어마어마한 마나의 유동이었다. 드래곤과 같은 초월자가 아니고서는 다루지 못하는 초마법이 펼쳐진 것으로, 대현자답게 야안은 그것이 무슨 마법인지 알았다.
비록 규모는 다르지만, 그가 이미 경험해 보았던 마법이기 때문이다.
‘공간이전마법.’
야안과 같은 대현자라고 해도 세계수라는 매개체가 없다면 불가능한 초마법으로, 야안은 자신의 시대에서 이 마법을 볼 수 있을 줄 몰랐다.
곧 이 위대한 초마법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듯 거대한 공간에 수천의 인영들이 모습을 보였다.
“이럴 수가!”
상황의 급박함에 리트담에게 이에 대한 말을 듣지 못했던 야안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하였건만 진정 이 시대에 이종족들이 모습을 보였을지 몰랐던 것이다.
이 거대한 초마법을 펼친 하이엘프를 필두로 한 엘프들과 카사, 드워프, 모롤타, 멀머던, 태양의 종족들의 종족은 실로 놀랍다.
하지만 그를 가장 놀라게 했던 것은 바로 거인족이었다.
이 위대하고 무시무시한 전력을 지닌 이들은 죽음의 지배자와의 접전에서 가장 먼저 앞서 싸운 결과 가장 먼저 역사의 뒤로 사라졌어야 했으나, 야안이라는 변수로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수장이었다.
과거가 변하기 전에도 그와 인연이 있었으며 또한 과거에서도 함께 했던 위대한 거인족의 왕이 그곳에 있었다.
“붉은 노을 님.”
그랬다. 거대한 황금빛으로 이루어진 듯한 거인이 그곳에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과거 라켄을 일거에 지워버렸던 최전성기의 그 자신을 넘어선 뒤였다.
실제로 그의 신장은 15m에 육박한 장신으로, 이를 본다면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 분명했다.
붉은 노을은 야안이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것을 듣기라도 한 듯 그를 향해 큰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소리쳤다.
“위대한 우리의 왕과 드디어 마주하게 되었도다. 시작된 왕의 전쟁에 나 붉은 노을이 필두로 나설 것이니 왕의 군사들이여 천 년의 시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이들 악마에게 보여주도록 하자구나.”
그의 전쟁선포 선언에 곧 이들 이종족들의 정예들은 대악마가 풍기는 그 압도적인 악의에 대한 두려움마저 물릴 정도로 거대한 함성을 질러 보였다.
‘와아아아아!’
곧 붉은 노을의 그 크고 부리부리한 패왕의 눈빛이 리치왕 케르몬을 향했다. 거인 족의 전설에서 나오는 별의 눈을 가진 것인지 붉은 노을은 저 겉모습에 속지 않았다. 그는 단번에 그의 정체를 꿰뚫어 보았다.
“어찌 과거의 망령이 살아 돌아온 것인가? 괴이하나 본좌에게는 참으로 기쁠 일이로다.”
비록 미숙했던 시절이라 하지만 과거 야안과 리트담 이렇게 셋이 하나가 되어서야 겨우 제거할 수 있었던 리치왕 케르몬이었다.
한데 지금의 그의 말은 능히 홀로 리치왕 케르몬을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이니 이는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곧 그 거대한 두 발을 대지에 굴렀다.
‘쿠르르릉-’
어마어마한 체격에 걸맞은 묵중한 무게가 압축되어 대지를 내찔렀고, 곧 붉은 노을의 육체는 화려한 붉은빛을 발산하며 거대한 포탄이 되어 그에게 쏘아졌다.
‘콰가가가강. 키이이이익-’
그가 나아가는 길목에는 불사의 군단이 자리했고, 이들은 하나같이 과거의 그들보다 더 강력한 힘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붉은 노을의 질주를 저지할 수 없었다.
그중에는 소드마스터와 다투어도 부족하지 않은 데스나이트도 있었으며, 고위 리치들도 있었지만, 그들조차도 감히 붉은 노을을 어찌할 수 없었다.
다름 아닌 그가 일으킨 붉은빛에는 옅으나 신성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지만 사실 거인족의 탄생 설화에 대해 안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최초의 거인을 탄생케 한 가리아는 신화시대에서 전설의 시대로 넘어온 몇 안 되는 반신이었다.
대다수 반신들은 세계를 수호하고자 탄생 된 드래곤의 거름이 되었으나, 가리아는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생각보다 많은 반신이 살아남아 자신이 굳이 드래곤의 거름이 될 필요가 없던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로는 그가 반신들 중 신에 가장 가까운 자였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던 것으로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자 했다.
하여 그는 최초의 인간 카사블랑카에게 지혜를 구했고, 카사블랑카는 그에게 자신의 육체를 담보로 새로운 종족을 탄생케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탄생된 종족이 거인족이다. 그에게 지혜를 준 카사블랑카를 모방하여 만든 종족인 것으로, 반신의 후예답게 그들은 죽음의 지배자와의 대전에서 매번 용맹함을 보였다.
가리아는 이들 거인족에게 하나의 예언을 하였는데, 그 예언이 이러하다.
‘훗날 패왕의 육체, 별의 눈, 빛의 구름마저 지닌 거인이 나타난다면 그는 나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것이니 그로 인해 진정한 거인족의 영광이 있으리라.’
이 예언에서 말하는 패왕의 육체는 달리 왕의 각성을 이야기한다. 첫 번째 탈피인 것으로, 그것으로도 능히 거인족의 초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 붉은 노을은 이 패왕의 육체에서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다시 한번 탈피한 것으로, 그는 별의 눈마저 가지게 되었다.
예언에서 말하는 세 가지 중 둘을 가지게 된 것으로, 그는 이로써 반신 가리아의 위엄을 이어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써 그는 옅으나 신성을 지니게 되었으니, 당연히 악마도 아닌 그의 수하들 따위가 그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붉은 노을의 두 번째 각성은 달리 거인족의 또 다른 각성이기도 했다. 그들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무방한 핵이 진화된 것으로 당연히 거인족들의 힘은 과거의 수준을 넘어섰다.
대전사들은 능히 초인을 넘어선지 오래였으며, 그 휘하 아래 전사들은 초인에 준한 힘을 손에 넣었다.
그런 그들이 일천이었고, 당연히 마항력과 방어력이 말도 안 되는 그들의 진격은 십만의 불사군단에게 치명적이었다.
‘쿠르르르르릉-’
이들은 거인족의 수장 붉은 노을이 어지럽힌 불사 군단의 진형을 뒤엎어버리며 나아갔는데, 곧 그들의 뒤를 이어 다른 이종족들 또한 힘을 가세해 그들의 진격을 도왔다.
“하하하. 참으로 절묘하도다.”
리트담은 이들이 늦지 않게 때를 맞춰 도착한 것에 만족한 듯 큰 웃음을 보였다. 어느새 자신을 돕기 위해 온 하이 엘프 푸른 하늘이 상급 정령과 함께 마법을 보이며 리트담의 옆에 섰는데 그는 이 상황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자~ 이제 2차전을 시작해 보도록 하지.”
중앙에서는 붉은 노을이 이종족 군단을 이끌고 리치왕 케르몬을 상대하고 있었으며 저 하늘에서는 야안과 대악마가 거대한 전쟁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 서쪽 끝에 자리한 리트담과 푸른 하늘이 이들 악마들을 얼마나 빨리 처리하느냐에 따라 이 전쟁의 승패가 갈릴 것이 분명했다.
푸른 하늘 또한 지금의 전장 상황을 이해하고 리트담이 지목한 신 악마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옛날 야안의 스승 하늘 산 못지않은 높은 경지에 오른 푸른 하늘답게 그의 힘은 신 악마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았다.
더구나 리트담이 지목한 신 악마는 파괴의 조율을 다루는 악마였기에 여타의 신 악마들에 비해 그 힘이 나약한 편이라 리트담이 주위의 악마들을 잘 견제한다면 그가 그 악마를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이 전장의 승기를 잡을 키가 제 전투의 결과에서부터 시작임을 아는 푸른 하늘은 그야말로 엘프라 볼 수 없는 거칠고 거친 전투를 보였다.
그가 다루는 상급 정령 물과 땅이 악마의 움직임을 제한시켰고, 그가 다루는 마법은 화살이 되어 악마를 꿰뚫었다.
파괴의 조율을 다루는 신 악마답게 그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지만 푸른 하늘이 작정하고 모든 힘을 풀어내니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그가 다루는 파괴의 조율이 흐트러지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리트담은 그전과 같지 않은 진형의 빈틈을 낚아채기에 이르렀다.
‘콰앙, 콰아앙-’
요란한 괴물의 주먹이 대지에서 하늘에서 튀어나와 악마들을 두들겼다. 당연히 진형은 더욱 큰 변형이 벌어졌고, 이에 리트담은 분신 중 하나를 이용해 아직도 살아남아 신악마를 돕던 두 악마를 멸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신 악마에 비해 부족하다지만 악마는 악마라 그들은 내내 대전에서 리트담을 곤란케 했는데, 이제 그들이 사라지니 리트담은 새장에서 나온 새와도 다름이 없었다.
그는 훨훨 날기 시작했고, 동시에 그를 상대하던 악마들은 다시 없을 악몽을 겪게 되었다.
‘후우우웅-’
푸른 하늘의 활약으로 이제 셋밖에 남지 않은 신 악마들은 신 악마라는 명칭이 무색할 만큼 하나씩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는 리트담이 100:1의 인지의 술을 다시금 넘어 101:1의 인지의 술을 발휘하면서 생긴 변화이기도 했다.
100:1은 인간의 한계점이라 할 수 있었으나, 진정한 탈인으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그는 법칙을 교묘하게 다룬 결과 그 한계점마저 넘겨 버렸다.
그 수치가 겨우 1이 더해졌을 뿐이지만 그것으로 리트담은 전과 차원이 다른 주술을 발휘했다.
그가 신성의 힘이 없음에도 홀로 여섯이나 되는 악마들을 상대한 것에는 이같이 인지의 술을 오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두 명의 분신이 그의 또 다른 손발이 되어주니 그들을 그에게 유리한 진흙탕으로 이끌 수 있기도 했다.
‘휘리리리릭-’
리트담은 푸른 하늘이 상대하고 있던 마지막 남은 악마마저 처리하고는 다급히 전장을 둘러보았다. 그의 주술의 특성상 유리할 때 폭발적인 힘을 보이기에 생각보다 빠르게 그의 전장이 마무리가 되었지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신중히 선택하고자 했고, 곧 그 길을 찾았다.
다행히 중앙에서 불사의 군단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이종족들은 푸른 하늘의 가세로 곧 그 승기를 잡을 것이다.
그리된다면 리치들을 비롯해 데스나이트들의 숱한 방해로 자신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붉은 노을이 제 기량을 보일 것이 분명했다.
하니 리트담으로서는 이쪽을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가 이제 신경 써야 할 것은 단 하나 이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대악마와 야안의 결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