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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370화 (370/385)

야안 370화

17. 조율자들의 부활

그리고 동시에 멈추었던 모든 법칙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시간은 다시 흘렀으며, 어둠 속에 멈추었던 모든 힘이 방향을 찾아 움직였다.

‘무슨 일인 것이지?’

130:1의 인지의 술을 다루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그 거대한 기적의 순간을 인지한 리트담이었다.

비록 대악마처럼 인식하여 그것을 본 것은 아니나, 대신 그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지금 이곳에서 벌어졌음을 인지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데자뷔(최초의 경험임에도 이미 본 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와 같은 느낌인 것으로, 보통 인간들이었다면 잠시 놀라다 넘어갈 일이지만 그의 경우는 달랐다.

위대한 주술사에 오른 이후 그런 것을 느껴본 적이 없는 그였다. 이는 그가 무의식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였다.

한데 그것을 넘어 130:1의 인지의 술을 다루던 그는 진정한 탈인이라 불러도 무방한 상태였으니 이는 달리 말하면 온전히 무의식의 그 미지의 영역마저 완전히 정복하였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니 주술에서 이르는 뇌의 착각인 데자뷔 현상을 그가 겪을 이유가 없건만, 그는 그것을 겪고 있었으니 그 의미를 아는 리트담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뇌의 착각이 아니다. 주공께서 무언가 말 도 안 되는 일을 행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생각에 확신을 주기라도 하듯 어마어마한 일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분명 그와 멀지 않은 곳에 자리했던 야안이 어느새 대악마의 코 앞에 있었던 것으로, 더욱 놀라운 점은 대악마의 변화였다.

그 무시무시한 거대한 대악마의 눈이 사라져 있었던 것인데, 그 뒤의 일은 더욱 놀랍다. 그의 끔찍한 악의가 사라져가더니 곧 그의 육체 또한 붕괴되었다.

‘사라라락-’

그것은 매우 느린 속도로 대기 속에 녹아 들어가고 있었는데, 그것은 본래 있어야 할 곳에 돌아가는 모습이라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다.

하나 리트담은 그 과정을 마냥 지켜볼 수 없었다.

이 거짓말과도 같은 일을 행하였던 야안이 무서운 속도로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줌의 마나도 쥘 수 없는 상태였던지, 그는 공중에서 땅으로 고꾸라지는 모양새를 보였다.

‘휘이이익-’

이에 놀란 리트담은 서둘러 공간을 접어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를 받아들였고, 곧 그는 야안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에 놀란 표정을 보였다.

“아아아……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신 것입니까?”

리트담은 야안의 모습에 울먹이듯 비명을 질러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야안의 모습은 그가 상상한 그 이상의 끔찍한 일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손을 대서는 안 되는 금지의 영역에 손을 댄 자처럼 정신을 잃은 야안에게 들이닥친 일은 충격적이었다.

단순히 몸이 지친 정도가 아니라 마치 홀로 시간을 빠르게 돌리고 있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육체의 노화가 진행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리트담은 어떻게든 그 육체의 노화를 멈추기 위해 남은 주술을 모두 퍼부었으나, 마치 밑 빠진 둑에 물을 넣듯 그저 공허함만이 그의 손에 잡혔다.

두 개의 길을 완성하며 20대의 그것과 같았던 젊음을 보이던 야안은 리트담이 발견했을 당시 40대의 그것이 되더니 지금은 50대를 넘어가고 있었다.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풍성했던 그의 머리는 어느새 하얗게 서리를 내려 이제 흰머리가 아닌 것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안 된다. 안 돼!” 어느새 60대의 지점을 넘어간 야안의 노화의 모습에 리트담은 절망 속에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이대로 야안이 한 줌의 흙이 되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붉은 노을이 지친 몸을 이끌고 다가왔고, 리치왕 케르몬의 죽음으로 그 정체성이 뒤흔들린 불사 군단에 완전히 승기를 잡은 하이 엘프 푸른 하늘 또한 그의 곁에 온 뒤였다.

“이건…….”

푸른 하늘은 말을 잇지 못했다. 대악마의 그 끔찍한 악의가 사라지면서 이 전쟁에 승리했음을 기뻐하는 것도 잠시 자신의 왕이 죽어가고 있었으니 그의 심정은 결코 리트담에 비해 크게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그는 무언가를 기억했고, 이내 서둘러 자신의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다급히 꺼내었다.

‘쿵. 쿵. 쿵. 쿵-’

그리고 나타난 것은 묘한 울림을 일으키는 푸른빛의 무언가였다. 그는 그것을 서둘러 리트담에게 내주었고, 리트담은 흐릿한 시야 속에서 그것을 받고는 이내 강렬히 눈을 빛냈다.

“이것은!”

그것의 등장은 리트담에게 있어 어둠 속 끝에서 빛을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그 주먹만 한 푸른빛의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드래곤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심장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드래곤들은 자연 속에 풍토 되어 세상으로 돌아간다.

칠각과도 같은 경우는 외로 두나 그 외의 모든 것은 자연의 법칙에 의해 무로 돌아가는 것이다.

드래곤의 심장은 물론 껍질, 뼈 등 모든 것이 뛰어난 재료가 되어 후대에 도움이 될 수 있음에도 이러한 일을 벌이는 것은 신화시대에서 신들이 범한 우를 벗어나기 위한 행위였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그들이 남긴 힘의 반작용에 악이 커질 것을 그들은 두려워했다.

그러나 하나는 드래곤의 수장으로서 미래를 예측했고, 그에게 있어 두 번째 파트너였던 야안을 위해 암묵 속에 지켜오던 법칙을 어겼다.

고통 그 자체라 해도 무방할 길을 묵묵히 나아가는 자신의 마지막 파트너를 위해 그는 드래곤의 불문율을 어기며 심장을 남긴 것이다.

“할 수 있다. 아니…… 해야 한다.”

리트담은 엄청난 생명력과 힘이 가득한 하나의 심장이라면 이적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그것은 오직 탈인의 경지에 오른 리트담만이 할 수 있는 이적이기도 했다.

바로 야안에게 가해지고 있는 이 절대적인 대가의 법칙을 심장이 대신 치르게 하려는 것으로, 법칙을 흔드는 리트담이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우우웅-’

리트담은 뻑뻑해지는 뇌를 아무렇지 않게 넘기며 법칙을 뒤흔들었고 덕분에 엄청난 속도로 노화되던 야안의 노화가 일순간 멈추어졌다.

아니, 그의 노화는 여전히 계속 진행 중이었지만 마치 멈춘 것 같은 착각을 줄 정도로 노화되는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을 대신한 드래곤의 심장은 눈에 띄게 변화되어갔다.

맑고 선명했던 푸른빛이 혼탁한 색으로 변해갔으며 그 크게 울리던 그 심장의 고동 소리도 점차 작아져 간 것이다.

그렇게 야안의 외형이 70을 넘어 80을 바라보았을 때쯤 드래곤의 심장이 검은 재가 되어 사그라졌다.

그리고 그제서야 야안의 노화도 멈추었다.

‘쿠웅-’

무리한 주술의 부작용으로 뇌가 터져버릴 것 같은 고통에 이기지 못한 리트담은 결국 무릎을 꿇었으나 의식을 잃지 않았다.

눈을 감기 전 야안의 생사여부를 알고 싶었던 것으로, 그는 덜덜 떨리는 손길로 야안의 맥을 잡았다.

다행히 야안의 맥이 활발하게 움직임을 확인하자 리트담은 그제야 안도의 미소를 보임과 동시에 그의 의식이 끊겼다.

* * *

리트담이 의식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열흘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종의 한계를 넘어서는 뇌의 혹사는 그의 죽음으로 이어질 일이었으나, 그의 생명력은 참으로 경이로워 그는 꿋꿋이 자신의 생명력을 이어나갔다.

마치 번데기가 된 것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고 해도 무방한데, 다만 그 잠이 너무도 깊어 깨어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나 그는 의식을 차렸다.

그리고 의식을 차리는 리트담은 단번에 자신이 어떻게 무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눈 속에 야안이 인자한 미소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공.”

야안을 향한 리트담의 음성이 자잘하게 떨렸다. 오랜 시간 잠들어 목이 잠긴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그의 눈 속에 들어선 야안의 모습 때문이다.

정신을 잃기 전 야안을 살리기 위해 모든 사력을 다했던 그는 야안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한 그로서는 지금의 야안의 모습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오랫동안 야안을 알지 못했다면 쉽사리 인지할 수 없을 만큼 그는 팔순을 바라보는 늙은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자글자글한 주름과 검은 버섯이 여기저기 얼룩진 야안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하나 정작 그 당사자는 이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 그의 눈에는 한 점의 걱정도 없이 그저 아이의 그것처럼 맑고 빛이 났다.

야안은 자신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리트담에 볼을 긁적이다 나지막이 웃음을 흘렸다.

“하하. 미안하네. 자네가 나 때문에 너무도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자신의 안위 따위에 관심 없이 그저 자신을 걱정하는 야안의 마음이 전해진 탓일까? 리트담은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엉엉 울음을 터뜨렸고, 그러한 수하의 모습에 야안은 쭈글쭈글해진 손으로 그를 안아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정말 다행이다.’

야안은 생각보다 지독했던 부작용에서 살아남은 것에 그는 깊은 안도를 보였다.

물론 죽음을 각오하고 펼친 힘이었다. 이방인의 특성상 3번의 부활이 있음을 알기에 행한 일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우려를 보였는데, 이는 과연 자신에게 마지막 1번의 부활의 기회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두 번의 죽음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쓰였으니 1번의 부활이 남은 것은 당연한 일이나 그는 내내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이방인이 되면서 죽음에서 돌아온 것일까?’

그의 어머니 마리를 만나기 전 그는 죽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의 일을 당했다. 술에 취한 브란의 힘을 감당하기에는 당시의 야안은 너무도 연약했으니 말이다.

하니 그는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 부활이라는 것이 단순히 죽기 직전의 모습으로의 부활이라면 그에게는 부활의 기회는 없으나, 만약 이 부활이 온전한 상태로의 회복을 말하는 부활이라면 1번의 기회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만약 앞서 그가 겪은 두 번의 부활 중 하나가 그러한 형태에서 이루어진 죽음이었다면 알 방도가 있겠지만, 이제는 모 아니면 도인 것처럼 그것을 알 방법은 그에게 없었다.

야안은 리트담이 아낌없이 그 감정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그의 옆에 머물다 곧 그의 휴식을 위해 자리를 비웠다.

‘후우우웅-’

검에서 일어난 거대한 강기가 해일처럼 일어났다. 거스를 수 없는 대재난의 힘이 검 한 자루에서 피어오른 것인데 놀라운 것은 그 거대한 강기가 다시 압축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우드드득-’

마치 세상을 지탱하는 기둥이 부서지듯 요란한 소리가 대기 사이를 찢어버리듯 일어났고, 곧 그 압축된 강기는 결국 아주 작은 물방울로 변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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