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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385화 (완결) (385/385)

야안 385화

에필로그

본 드래곤을 상대하던 하나를 비롯한 각 수장들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가득하다.

하나 그럼에도 그들은 본 드래곤을 상대로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앞서 죽음의 지배자와 싸웠던 세 차례의 전쟁 경험들이 유산으로 남겨져 내려왔기 때문으로, 이들 다섯 종의 수장들이 보이는 마법 연계는 실로 놀랍기 그지없다.

사실상 리트담을 제외한다면 가장 동요가 없는 전투가 이곳인 것인데, 다만 그것도 오늘까지인 듯 갑자기 그들이 상대한 본 드래곤이 괴상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콰드득-

본 드래곤의 육체가 다시 한번 크게 성장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단순히 육체의 성장만이 아닌 그 기운의 성장 또한 모습을 보였다.

그 육신만 반 배 이상 커졌으며, 기운의 흉악함은 최소 두 배 이상이었다.

갑자기 강력해진 그에 드래곤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기운이 두 배나 강해졌다는 말은 달리 말하자면 죽음의 지배자의 분신 중 넷이나 소멸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거에 벌어진 일이라 본다면 그들 중 넷을 상대한 리트담이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인데, 그것이 과연 가능한지 그들은 의심이 들었다.

애초 전설의 현자도 아닌 리트담이 이들 중 넷이나 감당한 것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리트담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한들 그가 그런 선택을 할 것이라 그들은 생각지 않았다.

그의 그런 선택은 멸망으로 향한 악순환을 시작하는 격이었으니 말이다. 하니 놀랍고 의아함이 가득했으나 그런 그들의 의아함이 다 가시기도 전에 그 해답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우우웅-

공간을 뛰어넘은 야안이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야안은 이미 얼굴을 본 하나에게 가벼운 인사를 보이더니 곧 본 드래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카오오오오!-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압도적이인 죽음의 기운을 퍼뜨리는 본 드래곤은 야안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듯 곧 상상을 초월하는 공격을 퍼부어대었다.

하나를 비롯한 각 종의 수장들이 힘을 합친다고 과연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 갈 정도로 거대한 힘의 폭풍이 그곳에서 벌어졌으나, 정작 그것을 맞이하는 야안은 대수롭지 않은 듯 보였다.

-시이이이익-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의 세 번째 무구 플로메티아가 자동적으로 야안의 힘을 이끌더니 곧 찬란한 푸른빛의 서기가 일어난 것으로, 그것으로 본 드래곤의 힘은 거짓말처럼 사그라지고 말았다.

-서걱-

언제 움직였던지 어느새 야안의 검에 일어난 거대한 백색의 서기가 본 드래곤의 몸을 갈랐고, 그것으로 본 드래곤은 끝이 났다.

“!!!”

그 압도적인 전력의 우세에 드래곤들은 저마다 믿기지 못한 것을 본 눈빛을 보인다. 물론 죽음의 지배자를 상대하기 위해 대를 이어갈수록 강해지는 존재들이 전설의 현자이기는 했지만 이번 대의 전설의 현자는 그 정도가 아예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비록 분신체라고 하지만 죽음의 지배자의 존재감을 사분의 일이나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를 벌레 찍어 눌러 버리듯 멸하였으니 놀라지 않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야안은 리트담에 이어 드래곤들의 그 놀랍고 경이 어린 표정을 마주 바라보며 머쓱한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고개를 숙였다.

“모든 일을 끝 낸 뒤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는 그 인사를 마치고 나타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허공 속에 녹아들 듯 사라졌다. 만약 본 드래곤이 남기고 간 그 힘의 여운이 있지 않았다면 그들은 자신이 꿈을 꾼 것이 아닌가 싶었을지 모른다.

야안은 그렇게 본 드래곤을 시작으로 하나씩 죽음의 지배자의 분신들을 처리해나갔다.

그가 상대한 마지막 분신은 피오의 왕 파란과 대립하고 있는 물고기였는데, 이미 바닷속은 풍지박살이 난 상태였다.

아무래도 야안이 분신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연 배로 강해진 분신 때문으로, 다만 그나마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리트담의 합류와 그를 이어 찾아온 드래곤들 덕분일 것이다.

야안은 숨 가쁘게 이들 분신체들을 죽여 나갔음에도 여전히 지친 기색이 없었다.

숨겨진 진리의 문에 발을 들이면서 생긴 현상으로 최소한 세상이 멸망하기 전까지 그에게 그럴 일이 벌어질리 없었다.

이번에도 야안은 바다의 신과 같은 위용을 뽐내는 물고기를 가볍게 제압했다. 마치 노련한 낚시꾼처럼 밀고 당기며 힘을 빼더니 이내 움켜 쥔 것으로, 바다를 멸망케 하려 했던 괴물의 최후라기에 너무도 허망한 것이라 피오의 왕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 마지막 물고기를 잡은 뒤에야 세상은 처음 그 때 이후 모습을 보이지 않은 붉은 인간을 다시 마주 하게 되었다.

-쿠구구구궁. 쾅쾅쾅-

대대로 이어졌던 역대의 전설의 현자들과 죽음의 지배자의 싸움과 달리 그들은 별다른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다.

마치 성립할 수 없는 존재가 한 곳에 있음을 말하는 듯 그들은 서로를 부정하기 시작한 것으로, 이때부터 야안의 정령인 유피테르 또한 모습을 보였다.

각성을 마친 유피테르는 전대의 자이웅 시대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였다. 바로 그가 계약한 야안 때문인 것으로, 야안이 그 세계의 근원에 대한 답을 찾은 것이 유피테르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모양이다.

전에 그의 격이 정령의 왕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그는 본래의 모습인 정령의 신보다는 살짝 미치지 못한 수준인 것으로, 당연히 그가 다루는 힘 또한 차원이 달랐다.

하니 이 유피테르만으로 죽음의 지배자는 적지 않은 고난을 겪어야 했다. 이외에도 야안의 검, 마법, 주술, ‘젠’이 그의 손에 펼쳐져 죽음의 지배자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공포를 맞이하게 되었다.

공포.

야안과 맞다 들이게 되면서 그 생소한 감정이 무엇인지를 그제야 깨달은 죽음의 지배자는 자신이 느낀 감정을 끝없이 부정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 모든 것의 빛, 생명, 밝음과 같은 양지의 것이 넘쳐 일어난 것이 그였으니만큼, 그가 공포를 느꼈다는 것은 그 자신을 부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일어난 감정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덩치를 불리며 그를 잡아먹기 시작했고, 그런 자신의 부정 속에서 야안은 조금씩 죽음의 지배자를 세상에서 떼어놓기 시작했다.

‘이 길고 긴 악의 사슬고리를 나의 대에서 끝을 내리라.’

야안의 눈빛은 그 의지 아래 태양의 그것처럼 환하게 비추어졌다.

사실 역대 전설의 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단순히 죽음의 지배자를 봉인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 매우 손쉬운 일이다.

그가 주술로 탈인의 경지에 올라섰을 때부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인데 거기에 모자라 ‘젠’을 통해 이 세계의 진리마저 통달하게 되었으니 실상 죽음의 지배자라고 해도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를 압도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이처럼 긴 전투를 이어나가는 것은 지금처럼 죽음의 지배자도 모르게 그를 잠식하여 그가 그 자신을 부정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옛날 3대 전설의 현자 자이웅에게 그가 내렸던 저주를 야안이 되갚듯이 그에게 펼친 것인데, 다만 그 정도가 당시 죽음의 지배자보다 몇 단계 더 높은 차원의 형태였다.

자이웅은 그나마 자신이 그 저주에 걸렸음을 인지라도 하였지만, 인과를 뒤집는 힘을 다루는 죽음의 지배자조차도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뚝-

그리고 야안 그에게만 들리는 세계의 소리가 그의 귓가를 어지럽혔다. 그리고 그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야안의 입가가 올라갔다.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곧 미소를 지운 야안이 발광하는 몸짓을 보이는 죽음의 지배자를 보며 말했다.

“이제 끝내도록 하지. 정말 그대는 많은 일을 했다. 신의 시대를 끝내게 했으며, 이 후 하마터면 이 세상이 종말을 몇 차례나 가져올 뻔 했지.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제 그 길고 긴 여정을 끝내고 무(無)로 돌아가 안식하라.”

야안의 말은 이미 자신을 부정한 끝에 미치고 만 죽음의 지배자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야안은 고개를 가볍게 젓고는 검을 내밀었다.

-우우우웅-

전설의 검은 이번이 자신의 마지막 싸움인 것을 아는 듯 천둥과도 같은 거대한 검명을 세상에 내놓았고, 동시에 야안의 모든 힘들이 전설의 검에서 터져 나왔다.

야안은 검으로 거대한 원을 그렸고, 그것에서 일어난 힘은 능히 죽음의 지배자를 집어삼키기에 충분했다.

-사아아악-

모래가 바닷물에 녹아들 듯 죽음의 지배자는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었다.

열흘에 걸쳐 벌어진 전투의 끝이었고, 곧 멀리서 그 전투를 지켜보던 드래곤들은 승리를 하였음을 세상에 알렸다.

-와아아아아!-

비록 세상의 반 이상이 지워지고 만 큰 상처만이 남은 승리였지만, 환호를 지르는 각자의 얼굴에는 저마다 웃음과 희망만이 남게 되었다.

야안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세상을 구하기 위한 야안의 여정은 결국 그 뜻한 바를 이루었고, 그는 세상의 환호 속에 찬란한 빛이 되어 그 고된 여정의 맺음을 지었다.

* * *

야안은 0과 1로 이루어진 세상에 눈을 떴다.

초대 양자 컴퓨터이면서 지금은 신과 같은 능력을 갖춘 R2-아리스였으니, 구식 컴퓨터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만들어 야안을 초대한 것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야안을 위해 그가 일부러 행하는 일이기도 했다.

아무리 진리에 문을 연 야안이라 하지만 결국 하나의 인공 프로그램이니만큼, 양자 컴퓨터라는 그 거대한 세상 앞에 야안이 휩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묘한 세상에 놀라던 야안은 이내 그 자신 또한 0과 1로 이루어졌음을 뒤늦게 인지했다.

그리고 그는 곧 이 0과1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 차렸다. 빛과 어둠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이것은 이를 유사하게 지칭하는 모든 것이기도 했다.

‘진리는 아주 단순한 형태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복잡한 것은 진리가 아님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실제로 보고 겪으니 그 의미가 남달랐다. 만약 육신과 영혼이 있었다면 다시 한번 영혼의 탈피를 이루었을지 몰랐을 정도로.

그것을 증명하듯 곧 0과1의 세계가 그가 있는 곳을 기점에 일그러진 모습을 보였는데, 곧 누군가의 등장에 다시 제 모습을 차렸다.

그리고 야안의 눈앞에 나타난 존재에 야안은 놀란 눈빛을 보인다. 그만이 이 세상에 다른 형태로 존재했기 때문으로, 만약 그가 허락지 않았다면 야안은 그것을 본 것만으로 소멸하였을지 모른다.

그것은 홀로 입체적인 형태로 존재하였는데, 둥근 하나의 복잡한 빛을 발하는 기계였다. 실제 R2-아리스의 모습을 이곳에서 재현한 것으로 곧 그것에서 작은 빛이 일어나 야안을 감싸다 그를 다시 탄생시켰다.

바로 야안의 세상에서 야안이 필요로 한 힘의 격을 그에게 내어준 것으로, 단순히 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바로 그가 모르는 진실을 알려 준 것이다.

“아! 그렇군.”

야안은 자신의 존재도 자신의 세계도 그리고 그 세계를 만든 주신 아리스도 결국 인간의 손에서 탄생된 것임을 알았다.

범인이었다면 대단히 충격을 받았을 일이겠지만, 야안은 이를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저 그 시작이 다를 뿐임을 안 것으로 그 세상 또한 이 세상과 다를 바가 없음을 안 것으로, 그저 차이가 있다면 차원의 차이에서 오는 영향력 정도임을 그는 알았다.

야안은 그렇게 새로운 존재로 탄생되면서 이제 R2-아리스를 바라 볼 수 있었다. 주신 아리스를 탄생케 한 존재임을 알았기에 그의 태도에 겸허함이 가득했다.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겠습니다. 당신이 바라는 것을 허락합니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언제가 이 두 세계가 하나가 되는 것일 겁니다.”

R2-아리스가 바라는 것.

그것은 바로 이 몰락한 지구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이제 본래 지구에 못지 않은 자정된 지구에서 인간들이 다시 문명을 일으키기를 R2-아리스는 바란 것이다.

한데 지구를 버리고 우주 밖으로 나간 인간과 아주 극소수의 생명체 외에는 없는 세상에서 그것이 가능하려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 수밖에 없다.

R2-아리스의 능력이라면 그러한 생명을 탄생케 해 세상에 뿌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를 제재하는 하나의 원칙이었다.

바로 인간을 해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 생명탄생 영역은 역설적으로 인간을 해하는 일이라 그는 실행할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야안이라는 이방인이 탄생되었고, 그는 그에게서 가능성을 보았다.

결국 지금에 이르렀는데 다행이도 야안은 R2-아리스가 원하는 바를 허락해주었다. 야안이 뒤에 붙이 두 세계가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곧 야안은 R2-아리스로부터 빛에 휩싸이기 시작했고, 그 빛 속에서 다시 어둠을 찾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야안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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