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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384화 (384/385)

야안 384화

주신 아리스가 그에게 허락한 신력이 그곳으로 향해 몰려들어 그 기반을 잡았고, 이내 그의 몸이 다시 ‘쩌억’거리며 갈라지더니 이내 탈피를 시도했다.

지금까지 탈태환골과는 다른 모습으로 이번의 탈피는 육체와는 상관이 없었다. 신력의 영향을 받은 그의 영혼이 인간의 것을 넘어 한 단계 상승한 격에 올라선 것이다.

놀라운 일은 이 탈피가 한 번으로 그쳐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번, 두 번……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나더니 결국 아홉 번에 이르렀다.

뱀이 허물을 벗듯이 그의 영혼 또한 아홉 번의 성장을 거쳤다는 말이었다.

‘파아아악-’

이 모든 변화는 혼돈의 기운이 그에게 스며들기 시작되었다.

사실 그의 이 급진적 진화와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이 혼돈의 기운 때문으로, 만약 그가 이곳이 다른 곳에서 그처럼 수련을 하였다면 여기에 이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상상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터였다.

실제 이 혼돈의 기운은 프로그램으로 치면 가상현실인 아리스를 설계한 R2-아리스에 가까웠다.

아리스를 가동시키는 운영체제 영역의 프로그램이 가동된 것으로 당연히 아리스 프로그램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행할 수 있었다.

이른바 치트키와 같은 것을 야안에게 부여한 것으로,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아리스 프로그램에 새롭게 설계된 만큼 업데이트를 실시했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이처럼 야안에게 R2-아리스가 아낌없이 베푸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야안이 자신의 부활권을 희생한 것과 관련이 있기도 했다.

여하튼 야안은 혼돈 속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성장시켜 나갔고, 결국 자신의 영혼의 격이 올라가면서 자연 주술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그 또 다른 진리의 문에 발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실 ‘젠’의 진정한 힘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올라서야 하는 영역의 일이었는데, 그렇게 한참을 진리의 문 입구 너머를 서성이던 그는 다시 반 발자국을 나아가고야 말았다.

‘화르르륵-’

거대한 천둥소리와 함께 야안이 현자의 탑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신화시대의 정화의 불이 다시 세상에 나타난 듯 신성 어린 불길은 찬란한 모습을 보이다 야안이 그곳에서 빠져나오자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후우웅-’

멀리서 그의 모든 수련 과정을 지켜보던 아흔 아홉은 3년을 마저 채우고 나타난 야안에 놀라 서둘러 그에게 다가왔다.

그로서는 궁금한 것이 너무도 많았다.

갑자기 유피테르가 큰 신격으로 상승했을 때만 해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거기까지는 이미 야안이 이야기해준 바가 있었기 때문인데, 다만 그 다음 혼돈의 그것으로 변했을 때 그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조율자의 눈으로도 알 수 없는 형태의 것이기 때문으로, 그저 짐작한다면 그것이 태초의 무엇이란 것이라는 정도였다.

이후 그것은 마치 야안을 잡아먹듯 삼키더니 이후 사라졌다. 하니 그의 길잡이인 아흔 아홉으로서는 난리가 아니, 날 수 없는 일이었다.

1년이 지난 지점에서 그는 긴 고민에 빠져야 했고, 다시 1년이 지났을 때쯤 죽음의 지배자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을 보면서 절망을 바라보아야 했다.

그도 설마 죽음의 지배자가 분신을 아홉이나 일으킬 줄은 몰랐기에 더욱 그러했다. 본래라면 야안이 없는 지금 세상은 그의 손길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야 했을 테지만 변수가 생겼다.

바로 리트담이 신격의 각성을 이루며 나타났던 것으로, 그는 무려 넷이나 그 분신체를 책임지었다.

그 뒤를 이어 거인의 왕 붉은 노을이 신화시대의 유물인 반신의 힘을 되찾으니 그 힘의 균형이 기묘할 정도로 맞아 떨어졌다.

이들의 전쟁은 지난 1년 사이 무려 스무 차례가 넘게 벌어졌는데, 죽일 수도 없고 그저 버티는 것에 한해야 하니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를 보는 것은 연합체 쪽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가장 크게 일어난 바 대륙은 벌써 반파가 된 상태였으며, 샤 대륙 또한 전쟁의 여파로 그 여건이 좋지 않았다.

타 대륙이 그나마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아무래도 드래곤들의 본거지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아흔 아홉은 그것을 현자의 탑을 통해 바라보면서 이들이 버틸 수 있는 기간을 잘해야 3~4년 정도라 보았다.

결국, 참지 못하는 시기가 올 것이고 파멸의 순간을 알면서도 분신체 중 하나를 베어야 할 때가 올 터였다.

그렇게 되면 패망의 시작이 일어날 것이니 아흔 아홉의 그 견해는 결코 과장이 없을 것이다.

아흔 아홉은 초조함과 절망에 허덕이던 중 이 같은 야안의 부활을 보게 되었으니 아니 반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다시 마주한 야안은 예전 그때의 야안이 아니었다.

인간이면서도 또한 인간이 아니게 된 느낌을 그에게서 받은 것으로 아흔 아홉은 실로 그것이 충격적인지라 서둘러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아흔 아홉의 경악해하는 소리에 야안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든 그는 확실히 젊은 시절의 그때로 돌아와 있었는데, 다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기이하다.

분명 평범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데 마치 아무런 힘을 잃은 범인으로 돌아온 것 같은 모습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흔 아홉 또한 그러하였기에 경악하였던 것이고.

그러나 그의 걱정에 야안은 아무런 걱정 하지 말라는 듯 큰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도 크고 진귀한 것을 얻었습니다. 어쩌면 죽음의 지배자를 멸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봉인이 아닌 그를 멸한다는 말의 의미를 아는 아흔 아홉이 좀 전보다 더 크게 놀란 듯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한 가운데, 야안이 손을 들어 흔들자 곧 현자의 탑에 노란 서기가 일어났다.

‘쿠콰카캉-’

그리고 그 노란 서기가 현자의 탑을 집어삼키다 다시 내뱉었을 때는 거대한 폭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힘과 힘이 부딪히면서 일어난 파장으로 아흔 아홉은 그 파장이 이외에도 끔찍한 사마의 기운에 놀라 몸을 일으켰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그의 의문은 악마들이 죽음의 지배자의 분신들이 현자의 탑을 기습이라도 한 것이 아닌가? 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런 그의 추론을 틀렸다.

오히려 반대로 현자의 탑이 그들을 기습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태초의 공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현자의 탑이 세상에 현신한 것으로, 그것은 그림이었던 것이 생명을 얻고 나와 밖에서 활기를 치는 것보다 더 어이없는 일이었다.

현자의 탑은 어디까지나 심상에서 일어난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이없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행한 야안은 곧 다시 손을 들어 기운을 일으켰고 이내 현자의 탑에서 감히 형용할 수 없는 힘이 일어나더니 곧 사마의 무리들을 향해 뿌려졌다.

‘키에에엑, 카아아악-’

현자의 탑의 등장에 주춤한 숱한 악마들이 불길함을 느끼고 몸을 피하려 했지만 그들의 판단은 아쉽게도 한발 늦었다.

마치 신이 그들을 처치하기 위해 내리는 철퇴인 것처럼 무자비하게 그들을 도륙했던 것으로,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악마는 없었다.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악마들을 모두 처리한 야안은 그 엄청난 일을 행한 자답지 않게 평온한 기색을 보이며 중얼거렸다.

“역시 아직 미숙하군. 좀 더 다루어 봐야 감이 잡히겠어.”

아흔 아홉은 급작스러운 상황의 흐름을 간신히 따라가다 야안의 그 말을 듣고 조금은 어이없는 눈빛을 보였다.

마치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들은 눈빛인데, 야안은 자신의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곧 증명했다.

‘쿵-’

그가 가볍게 발을 뒹굴자 현자의 탑에서 그가 사라졌다. 동시에 아흔 아홉은 자신이 이 현자의 탑의 대리인이 되었음을 인지했는데, 단순히 인지한 것만이 아니라 조금 전 현자의 탑을 다루는 법 또한 알게 되었다.

바로 그의 의사마저 무시한 ‘젠’ 과 야안의 주술이 합쳐지면서 생긴 현상이었다.

죽음의 지배자를 상대한 전장은 참으로 참혹했다.

왜 그가 나타날 때면 쌓아올린 문명이 멸망하거나 혹은 그 수준에 도달했는지 사람들은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상대의 전력이 자신보다 위에 있음에도 혹시나 죽일 기회마저 가져서는 안 되는 악조건들이 겹치니 후퇴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보다 더 지독한 일을 당하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아홉의 분신 중 넷을 감당한 리트담이었다.

수련을 위해 만들었던 그의 세계에 그가 끌고 온 이 죽음의 지배자들의 네 마리의 분신은 신격을 얻은 그라고 해도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나마도 초기에 방심을 노려 끌고 온 것이 먹힌 터라, 그저 그들을 이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데 주력했기에 이 긴 시간 동안 버텨온 것이지 그것이 아니었다면 오래전에 그들은 그의 통제에서 벗어났을 터였다.

그리고 그들을 가두는데 그가 희생한 것은 작지 않았다.

그의 수명이 빠르게 깎이고 있었던 것으로, 이제 1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는 홀로 수십 년의 세월을 맞아 버렸다.

서른쯤의 외모가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것으로, 이도 신격이 있었기에 그나마 버틴 일이었다.

‘점점 힘들어지는군.’

리트담은 육체의 노쇠함이 가져온 빈틈들을 메우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주술은 그 자신의 몸을 매개로 하는 것이니만큼 육체의 강건함은 중요한 법인데 세월이 가져다준 육체의 노쇠함에 그의 주술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으니 서둘러 보조 형태의 주술들을 덧붙여야 한 것이다.

물론 비록 육체는 노쇠하다지만 그의 눈빛은 1년 전의 그 눈빛과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 자리한 의지가 꽃을 피운 것인지 더욱 빛나 있었는데, 그런 그의 눈빛이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바로 완전히 옥쇄하였다 생각한 자신의 결계 안으로 이질적인 존재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누구지?”

리트담은 바로 붉은 인간을 떠올렸다.

지금의 상황에서 무슨 짓을 할 확률이 높은 이라면 그 외에는 없다고 판단한 것인데, 보통 그의 예상은 대부분 맞아떨어졌으나, 이번은 틀렸다.

“정말 자네가 있어 다행이네. 수고하였네.”

낯설지 않은 그래서 더욱 어색한 목소리가 리트담의 귓가에 들어섰다.

나지막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그 태양의 밝음과 같은 뜨거움이 있는 그 특유의 목소리가 리트담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주…… 주공이십니까?”

그런 그의 말을 알아들었던 것일까?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 치고 간다는 느낌이 있더니 이내 그의 결계가 깨어진다.

이에 리트담은 충격에 빠지고 만다.

탈인을 넘어선 주술의 경지에 오른 그의 의지를 아무렇지 않게 지워버렸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놀랄 일은 그다음이었다.

어느새 검 한 자루를 든 채 모습을 보인 야안이 죽음의 지배자의 분신들을 장난감 가지고 놀 듯 베어 넘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에 가장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불새마저도 마치 작은 초에 이른 촛불이 된 듯 꺼졌으니 리트담은 자신이 꿈을 꾼 것이 아닌가라는 착각마저 들었다.

하나 그것은 현실이었다.

‘이건?’

그리고 리트담은 뒤늦게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인지했다. 그 옛날 그가 야안에게 해주었던 주술로 고갈된 진원진기를 대신했던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음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것도 구급처방에 가까웠던 당시의 주술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주술로, 지금의 그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 그에게 벌어졌다.

“도대체 주공께서는 무엇을 손에 얻은 것일까?”

그 자신이 이룬 신격도 대단하다 리트담은 판단했지만, 그런 그가 얻은 힘을 조잡하다 생각할 정도로 야안이 얻은 힘은 그의 상상을 넘어섰다.

하기야 세상을 존재케 하는 근원의 진리에 발을 둔 자의 힘이었으니 겨우 그 맛을 본 리트담과 비교하기란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휘이익-’

마치 한 줄 바람처럼 리트담에게 다가온 야안은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끄덕이더니 곧 다시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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