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20화. 입단 테스트(2)
* * *
"휴우..."
긴장감이 온 몸을 얽매인다. 머릿속에서는 차분하라며 아우성을 치지만 내 인생이 걸린일이라 도저히 마구 뛰는 심장을 컨트롤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여기서 떨어지면 갈 곳도 없어! 내셔널리그로 눈을 돌리느니 차라리 접는게 낫지...'
이번이 벌써 세번째 참석하는 입단 테스트이다. 대상은 작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던 웰링 유나이티드. 지금은 아주 처참하게 박살이나며 고생하고 있다지만, 그래도 전과가 있는 클럽이다. 다시 떡상할 기회가 있는 클럽이라고 생각하면 이만한 시작점도 없다.
어쩌다 내가 여기까지 왔을까... 한 때는 유망한 유망주로 토튼햄 핫스퍼 U18팀에서도 기대받는 몸이였는데...
자유계약으로 풀려나 버렸을 때는 다 포기해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까 고민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꿈이란게 그렇게 쉽게 포기되진 않더라 죽더라도 프리미어리그에 발가락만이라도 담가보고 싶은게 이 밑바닥 청년들의 꿈이 아닌가.
이제 나도 20살이다. 더 이상 물러날곳도 없고 슬럼프라고 자위하는것도 지긋지긋 하다.
'연습한대로만 하면 돼'
에이전트도 날 떠나간지 오래되었다. 말그대로 밑바닥 부터 다시 시작할 기회가 온 것이다.
"헤이 제리."
"응...? 아... 톰... 이 지긋지긋한 새끼"
나에게 웃으며 다가오는 이 곰탱이는 나랑 같은 처지에 있는 지긋지긋한 악연이다. 무려 3번째인 입단 테스트를 매번 같은 곳에서 만나는 대단한 새끼. 이 놈도 일이 그리 잘 풀리지는 않는가 보다.
"제리 왜이리 죽상이야? 이런 좋은 날에"
"좋은 날? 넌 이게 좋은 날인가 보지? 겨우 리그1팀 입단 테스트에 거의 백명이나 왔어. 이게 무슨 뜻인거 같애?"
"흠.. 좋은 인재들을 찾는거 아닐까?"
이 곰탱이 자식을 매번 만날 때 마다 생각하는건데 이자식은 마인드가 상당히 긍정적이다. 이 놈은 나한테 매번 넌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데 난 그냥 현실적으로 생각할 뿐이라고.
"내 생각은 2군 스쿼드를 싹 물갈이 하는게 아니면 뭔가 보여주기식인것 같아. 입단 테스트가 단 일주일만 하는것 만 봐도 그래."
"야야 이거 내가 소문을 하나 듣긴했는데..."
이 떡대가 덩치를 수그리고 한손으로 입을 가리는 꼬라지를 보니 오히려 웃음이나온다.
"뭔데 그래?"
"그게 이번 웰링에 스트라이커가 필요하잖아? 뭔가 대단한 스트라이커를 구했나봐."
"이 새끼 구라치지마. 그 대단하신 스트라이커님께서 고닥 리그1팀에 온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소문이 그렇게 났는데..."
"하아... 넌 그 소문을 어디서 들었는데?"
"내 옆집 에밀리"
"....씨발 널 믿은 내가 병신이지"
떡대 녀석이 허허허하고 넉살 좋게 웃는다.
웅성웅성
"이게 지금 뭐하자는겁니까!!"
"테스트에 참여하기 싫으시다면 그냥 퇴소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뭐야 무슨일인데?"
나랑 톰이 시끄럽게 떠드는 무리에게 다가갔다.
"지금 저 사람이랑 우리를 동급으로 보시는겁니까?!"
"흠 저는 저분이 당신 보다 한참 윗 클래스라고 생각됩니다만, 실제로 경기력을 본게 아니라 말을 아끼도록 하죠."
나는 인파 사이로 고개를 쏙 내밀고 쳐다보았다.
'음...? 뭐지? 동양인인가...? 아니...! 여자잖아?!'
"와 제리. 저 여자 좀 봐 정말 예쁘지않아?"
"..."
확실히.. 단지 검은색 저지차림새긴 하지만 길게 뻗은 기럭지와 떠질듯한 가슴이 여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저 얼굴은 또 어떤가. 지금 이 상황을 이해못하고 있는 표정이지만 이목구비가 상당히 날카로워보여 길고양이가 떠오른다.
"전 이 테스트를 받기 위해 정말 노력했습니다!"
"그럼 그 노력을 테스트에서 발휘하시면 되겠군요."
저 남자가 왜 저리 화내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자랑 같이 테스트를 받는게 자존심이 상당히 상했나보다.
"...쳇 왜 냄새나는 아시안새끼까지 온거야.."
"!?"
저...저 미친새끼!
입단테스트를 담당하고있는 것 같은 저 코치가 인상을 와락 구기며 다가가 멱살을 잡았다.
"당장 나가. 너 같은 쓰레기 새끼는 우리 클럽에 필요 없다."
휙 하고 거칠게 남자를 내던지니 저 멍청한 자식은 바닥에 침을 퉤 뱉고는 구장을 나갔다.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현대 축구는 모든 인종이 즐기는 스포츠입니다. 항상 올바른 스포츠맨쉽을 생각하고 행동하십시오."
저 코치는 단호하게 경고한거다. 자신의 앞에서 인종차별을 한다면 단호하게 내보낼거라고.
"...괜찮을까 저 사람?"
"지금 저 멍청한 새끼를 걱정할 때냐 우리가? 그리고 저 새끼는 지 복을 지가 발로 찬거라고"
경기장 밖 펜스를 슬쩍 쳐다보니 기자들이 보인다. 흠... 톰이 곰탱이가 제대로 된 소문을 물어온건가? 저 기자들은 확실히 구단이 불러온걸 거다. 무슨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건 기회지 기자들의 눈에 들 수 있으니까.
"자.. 집중하시고. 이제 팀을 불러드릴 테니 팀별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
오 A팀이라니 뭔가 느낌이 좋다. 저 특이한 동양인 여성도 있고.
"와! 제리 이거 봐 이번엔 우리가 될 날 인가보네? 저 키티랑 같은 팀이야!"
키티? 확실히 고양이 처럼 생기긴 했다. 좀 사나워 보이지만..
"톰 이건 기회야. 아마 내 생각에는 구단이 저 여자한테 관심이 많은 것 같아. 경기에서 저...키티랑 호흡이 잘 맞는 모습을 보여주면 될거야."
이름이 뭐라 했더라? 이지...? 기억이 잘 안난다. 동양인 선수는 처음이라 이름을 외우기 어렵다.
톰새끼가 흥분했는지 코를 벌렁거리며 여자에게 다가 간다.
"저기... 만나서 반가워 키티. 난 톰 브라운이라고 해"
저저 미친새끼 본인 앞에서 키티라고 부르네.
"?"
"응...?"
"어... 헬로?"
앗 저 여자 영어를 못하나 보네... 톰이 여자 앞에서 당황하는게 보여 내가 다가가 뒷목을 잡고 끌고온다.
"미친놈아 처음 보는 여자한테 키티라고 부르면 어떻게 해? 다행이도 영어를 못해서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지만..."
"...그래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왜? 예뻐서 그러냐?
"응 봐바 내 옆집 에밀리보다 수십배는 이쁘다고! 난 저런 여자는 처음 봐"
미치겠네... 이딴 마인드로는 테스트고 뭐고 소용없다.
"음.. 만나서 반가워. 내 이름은 이지혜."
여자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어설픈 영어로 자신을 소개한다.
"어! 나도 만나서 반가워 키티."
이 미친놈이 또 급발진을 하네?
"...키티?"
여자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로 쳐다본다. 그래 차라리 이해하지 못하는게 나을거야.
"자. 연습경기가 A팀부터 시작할건데 우선 기본기 테스트 부터 진행 후에 실행 할 겁니다."
운이 좋은건가 나쁜건가 우리가 제일 먼저다. 그래 해보자고.
***
짧은 스프린트 테스트 부터 슈팅까지 기본기를 하고나니 몸이 달아오르는게 느껴진다.
그런데 입단테스트란게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은건가? 아까부터 다들 나만 쳐다보는것 같아서 부담스러운데... 하긴 왠 동양인 여자가 끼어있으니 신기하긴 하겠지.
근데 뭔가 조금 실망스러운데? 다들 실력이 그리 좋지만은 않아보인다. 물론 박코치님네서 봤던 선수들 보다는 훨 잘하지만...
근데 아까 인사를 나눴던 홀쭉이와 퉁퉁이가 좀 눈에 띈다. 홀쭉이는 패스에 자신있는지 힘이 실린 패스가 상당히 정확하게 구사 되었고. 퉁퉁이는 수비수인지 수비를 좀 하는 모습이지만 눈에 띈건 저 힘. 돌파하려는 선수가 그냥 나자빠진다.
'이제 본 게임을 하는거지?'
나는 구석쪽으로 가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멀리서 홀쭉퉁퉁 듀오가 달려왔다. 그나저나 저 둘 이름이 뭐지. 큰쪽이 톰 머시기 였던 것 같은데...
퉁퉁이 쪽이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뭐라고 횡설수설댄다. 영어를 못하는거 큰문제네 빨리 공부하든지 해야겠다.
홀쭉이가 퉁퉁이의 뒷목을 잡고 끌어내더니 나에게 악수를 건낸다.
"영어를 못하지..? 나는 제리 맥과이어. 저기 쟤는 톰 브라운."
홀쭉이가 자신을 가르키며 제리 맥과이어라고 천천히 말해 주었고. 퉁퉁이를 가르키며 톰 브라운이라고 말했다. 친절한 친구네.
"...아까는 정말 멋있었어"
제리가 나에게 따봉을 날린다.
기본기 테스트에서는 내가 영어를 못한다는것을 코치진들이 이미 알고있었던 부분이였기 때문에 순서를 제일 마지막으로 밀어넣었었다. 다른 사람들 하는거 보고 하란 소리였겠지.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도 많은 사람들의 집중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대부분의 테스트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나에게 홀린듯 바라보았다.
누군가 나를보고 수군수군거리는건 사실 그리 기분 좋은 모습은 아니건만 나 자신도 꽤 괜찮았다고 생각한 실력을 뽐낸뒤 듣는 수근거림은 꽤 기분이 좋더라.
그나저나 저 톰이라는 덩치 큰 녀석은 내가 일대일 드리블 및 수비 테스트에서 넛메그(알까기)를 몇번이나 먹였는데도 저리 헤실헤실하며 들이대다니. 상당히 착한녀석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신. 패스. 매우 좋음."
나는 제리를 바라보고 되도 않는 영어를 머리를 쥐어짜며 말해주었다. 얼굴이 헤실헤실 풀어지는 꼴을 보니 저기 덩치녀석이랑 짝자꿍이 잘 맞는듯 하다. 그나저나 톰과 제리라니 이름 꼬라지 부터 재밌다.
삐익!
"자 모이시길 바랍니다. 첫번째 연습경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A팀 B팀 이쪽으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