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26화. 대뷔전(3)
* * *
"으음... 언니 여기 봐바."
"오. 이 자리가 지혜 프로필 사진이 들어갈 자리라는 거지?"
"응. 오늘 라커룸에서 선수들이랑 인사를 하고 사진을 촬영할거래."
나는 오늘 가은 언니랑 같이 웰링 구장을 방문 했다. 오늘 까지는 휴식을 가지라고 했지만, 계약을 하고 나서일까. 가슴속에 작은 불씨가 생긴게 느껴 졌다.
움직이지 않고 서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정원에서 공을 차고 집주변을 뛰어 봤지만 전혀 불씨가 꺼지질 않았다.
결국 황대표님을 통해 내가 구단에 방문 하고 싶다는 의사를 알렉스 감독님께 전했고, 감독님은 흔쾌히 방문하라고 말해주었다.
오늘 팀 훈련이 시작 하기 전에 잠깐 인사를 나누는 것도 좋겠고, 온 김에 프로필 사진도 촬영하자며..
"...아직 방송 촬영 허가를 받지 못한게 아쉽네. 마붕이들 한테 이 멋진 곳을 보여 줄 수 가 없자나?"
그렇다. 저번에 계약 하자마자 웰링 구장을 소개하는 영상을 찍자고 했는데... 외부 촬영은 가능 하지만 내부는 아직 불가능 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아마 현재 웰링 팬들의 심기 때문에 눈치를 본 거 겠지. 만약 우리가 활짝 웃으며 구장들 돌아다니며 영상을 찍는 걸 어느 팬이 본 다음 다른 팬들에게 퍼트린다면,
나는 팀 상황이 좋지 못한데 노는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는 소문이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생각이긴 하지만.
"일단 가은 언니는 내 매니저라고 소개 할까? 실제로 내 근처에서 챙겨주는건 언니뿐이잖아."
"...그럴까? 매니저라니! 지혜가 유명해지면 나도 유명해지는거 아니야?"
그렇게 가은 언니와 구단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운영진들이 있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안에서 통역사 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부탁드릴게요. 선수들 한테 좋은 인상을 보여야 할테니까요.
"아 안녕하세요 언니."
"오셨네요. 지혜씨 감독님이 기다리고 계시더군요. 바로 라커룸으로 이동하시죠."
...왠지 긴장이된다. 등뒤에 식은땀이 느껴지고 가슴이 두근댄다.
어떨까? 선수들은 나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화를 내려나? 여자 선수 따위를 팀에 들여보냈다며 라커를 거칠게 때리고 짐을 챙기고 떠나려나?
머릿속에 잡다한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지혜야. 걱정하지마 세상에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많지는 않아."
옆에서 가은 언니가 내 손을 꼬옥 잡아준다.
왠지 부끄러운걸, 겉은 외모지만 속은 남정네인 내가 찌질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니...
'나도 이제 프로니까 프로답게 당당해야. 같은 프로 선수들에게 무시 받지 않을 거야.'
발걸음을 옮기며 등을 곧게 펴고 고개를 들고 눈에 힘을 준다. 꽤나 억지로 만든 자세지만, 왠지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는 것 같다.
똑똑
통역사 언니가 라커룸의 문들 두들긴다.
"...예 누구시죠?"
처음 보는 남성이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 밀어 우리를 쳐다 보았다.
"아! 이지혜 선수. 오셨군요. 잠시만요... 감독님께 이지혜 선수가 오셨다는 걸 전해드리겠습니다."
남성이 문을 살짝 닫고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쿵쿵쿵 철컥!
"드디어 오셨군! 우리의 스트라이커가! 자! 다들 박수를 치도록 해."
문을 거칠게 연 알렉스 감독님이 나를 보자마자 내 팔을 잡고 라커룸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
나는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호오..."
"와..."
"...사진으로 보긴 했는데 실물이 더 예쁘잖아?"
"하하하 야! 심슨! 쟤가 너 보다 큰거 같은데? 물론 키가 말이지! 땅딸보 새끼!"
"하하하!!!"
"...이 새끼가!"
빨간색으로 된 라커들 앞에 선수들이 한명씩 앉아 있었다. 이미 오전 연습을 끝내고 온건지 살짝 땀냄새가 나지만 왠지 선수들에게서 강렬한 열기가 나에게 까지 밀려오는 것 같아 가슴을 펴게 만든다.
"자자 조용! 얼른 박수를 치도록 해! 우리의 득점을 담당할 루키 이지혜 선수다. 여자라고 무시했다간 개망신을 당할 거라고 생각하도록. 내가 장담 하지. 폴! 너가 당분간 루키를 담당 하도록해. 거부는 거부하겠다."
"...예 감독님! 자 뭐해 다들! 새로운 동료과 왔다고! 박수를 쳐줘야지!"
대머리를 하고 있는 덩치가 큰 백인 남성이 뭐라고 소리치는데 알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이 박수를 치는 것을 보아하니 나에게 박수를 쳐주라고 말했다는 걸 이해 할 수 있었다.
'이러다간 눈치만 늘겠어...'
"자 인사하도록 해. 지혜"
이제 완전히 자신의 선수가 됬다는 걸까. 통역사 언니가 감독님이 나에게 편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전해 주었다. 오히려 좋다. 한참이나 어른이신 분이기도 하고.
"네. 저는 이지혜라고 합니다. 앞으로 제게 공을 몰아 주신다면 다 골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
"...이지(Eazy)? 오 EZ!"
"으하하하하하!!! 야! 심슨! 쟤가 너 보다 남자다운 것 같은데? 거시기 때시지!"
"...제길! 좀 닥치고 있어!"
"하하하 자만심인가 아니면 확실한 자신감인가. 지켜보면 알겠지만 우리 루키는 참 보기 좋군. 그래 그런자세야. 자고로 스트라이커란 작자들은 그런 면이 있어야지."
웰링의 주장으로 보이는 이 남성은 폴 조지. 앞으로 나를 이끌고 여러가지를 멘토링 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라커룸 앞의 선수들에게 걸어가 한명 한명 소개해 주는데... 언젠간 기억 하겠지? 아직 나한테 외국 이름은 너무나 외우기 어렵다고.
"...그리고 여기가 우리 위대한 루키가 사용할 라커지!"
빨간색 라커 안에 축구 유니폼이 하나 놓여 있었다.
등번호 7번.
번호 위에 내 이름 이지혜가 영어로 적혀있었다.
"거기 있는 축구화와 신가드는 나와 마크 구단주님이 선물해준거다. 데뷔전에서 사용해 주면 기뻐 하실 거다."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 져있는 멋있는 너이키 축구화가 놓여져 있었다.
"멋있지? 언젠가 너가 위대한 선수가 된다면 너만의 축구화가 만들어 질지도 모르는일이지."
감독님은 허허 웃으며 이제 프로필 사진을 찍으러 이동하자고 했다.
나는 선수들에게 살짝 손을 흔들어 주었고, 선수들은 내게 휘파람을 불어 주었다.
우리는 라커룸을 나와 복도를 걸어 갔다.
"...그런데 감독님. 선수들이 제게 호의적인 것 같은데요?"
"...음? 아... 다들 스포츠 선수라서 그래. 도전하는 사람에게 모진말을 하는 녀석은 우리팀에 존재하지않지. 만약에 있었더라도 이미 나한테 죽도록 두들겨 맞고 쫒겨났겠지."
"우리 모두는 밑바닥에서 시작한 사람들이야. 물론 이 상황을 완전히 이해 못한 친구들도 있겠지만... 뭐 자신들이 밑바닥에서 기어올라온 기억이 났겠지. 분명히. 그 녀석들은 아마 너를 많이 도와줄거야. 인생 선배들이잖나."
"아... 그렇군요. 대두분 하위리그부터 같이 해온 선수들인가요?"
"전부 다는 아니야. 너도 알잖나. 우리를 엿먹이고 떠나버린 스트라이커가... 떠나는건 별로 문제가 아니야 축구 선수들은 언젠간 떠나고 새로운 선수가 들어오기 마련이니까."
"그럼 왜 배신했다고 하는거죠?"
"우리 상황을 잘 알고 있는데도 떠난게 문제란거지. 나랑 구단주님이 새로운 선수를 구할때 까지만이라도 있어달라고 부탁했지만 듣지 않았지. 그렇다면 반시즌만. 세달만. 한달만이라도. 근데 그녀석은 바로 계약을 하고 떠나버렸고 지긋지긋한 촌구석에서 떠나서 기쁘다고 인터뷰에서 지껄였지."
세상에 맙소사. 미친새끼가 아닌가?
"..."
"하하하 걱정 말게 우리는 잊지 않았지만 다들 잊고 있을 거야. 가슴속에 담아 두고 복수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지. 결국 현재는 아무런 상관 없단 이야기야. 자 도착했다. 아주 멋진 프로필 사진을 찍어서 우리 구장의 슈퍼 스타가 되자고!"
왠지 감독님이 더 신난 기분인걸?
그나저나 그 녀석.. 언젠간 다시 만날 텐데 왜 그런거지? 다른 해외 클럽으로 이적한 것도 아니고 겨우 한 단계 상위리그인 챔피언십인데... 대회에서 만날 수 도 있는 거잖아? 울버햄튼이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
"자자 고개를 조금 더 들어 주세요. 아니다 아니야 잠깐만요."
사진사 아저씨가 사진기를 쳐다보며 고개를 저으며 내게 다가 왔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게 사진이 실물을 전혀 못따라가서 마음에 안드네요... 사진을 찍어본 경험이 별로 없으신가 보네요. 아! 욕하는게 아닙니다."
"그렇긴하죠."
"잠시 쉬었다 하시죠. 그래도 우리 얼굴 간판 스타가 되실 분인데 대충 찍을 수는 없죠."
나는 잠시 구석의 거울로 걸어가 나를 쳐다 보았다.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유니폼 안에는 이너웨이를 입어 검은색과 빨강색의 조합이 상당히 멋있다. 몸매가 좋으니 유니폼을 입어도 섹시하게 보이는 구만. 내 몸매 지만 아주 마음에 들어. 팬들이 보고 반할 거야.
내가 거울을 이리 저리 보고 있으니, 사진사 아저씨가 다시 돌아와 촬영을 다시 해보자고 했다.
"자자 좋아요 여기 보세요 여기! 고개 들고 아래를 내려다 보듯이! 거만하게! 오... 이거에요! 잠시 잠시만! 기다려요! 여왕님 처럼! 여왕님 처럼! 아랫 것들을 쳐다 보듯이!"
...왜 이렇게 흥분하셨습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