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34화. 휴식의 날(1)
* * *
위이이잉
"으어어어..."
어디선가 남성의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확실히 세상이 많이 변한듯 하다.
경기가 모두 마무리가 되고 마사지룸으로 들어가서 칸막이가 쳐있는 공간에 선수들이 한명씩 들어갔다.
"아. 이지혜 선수. 이쪽으로 오시죠."
의사 가운을 입은 한 남성이 나를 비어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의사 선생님이신가?
"저는 수석 스포츠 과학자입니다. 뭐... 그냥 선수들의 몸 상태를 관리 해주는 코치라고 생각 하시면 편합니다."
"아...안녕하세요."
"편하게 대해 주세요. 오늘 경기는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어이~ 얼른 우리 루키녀석 마사지나 시작해 달라고~"
"아주 귀하신 몸이니까 말이야."
"푸하하하하하!!!!"
"앞으로 우리 골을 책임져줄 다리니까 잘 해주라고~"
닫혀있는 칸막이 뒤쪽의 방들에서 능글 맞은 선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자. 얼른 합시다."
"오..."
확실히 세월이 지나니 뭔가 바뀌긴 한 듯하다.
커다란 원통형의 기계. 마치 MRI를 촬영하는 의료기기 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엄청 비싸보이는 기계다.
"요즘은 대부분의 클럽이 이런 장비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하위권 클럽이라고 할 지라도요. 사람이 재산인 동네이지 않습니까."
"그렇네요... 영차!"
나는 들어가서 엎드려 누우라는 지시를 따라 누웠다.
드드드드드드
"오...오오"
축구를 시작하고 나서 제대로된 마사지를 해보지 못해서 그런가. 격한 운동 후 마사지는 필수라는데, 기분 좋다...
"어떻습니까. 바로 느낌이 오지 않습니까?"
"...너무 좋은데요 이거? 맨날 여기 들어가 있고 싶다."
""하하하하하""
주변의 선수들이 내 말을 듣고 실실 웃고 있지만, 상관 없다. 땡땡한 다리를 누가 살살 만져주는 기분이 너무 좋은데.
"시간이 조금 걸릴테니 주무셔도 됩니다. 저는 이만..."
수석 스포츠 과학자라고 소개한 남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칸막이를 치고 나갔다.
나는 그다지 잠이 오지는 않아 스마트폰을 켜서 투게더를 들어가 보았다.
[마리눈나 첼시전 하이라이트 모음]
크으 역시 스포츠하면 국뽕 아님? 이 펄럭 하는 기분때문에 다들 외국으로 나간 선수들 경기 찾아보는거 아니냐고 ㄹㅇㅋㅋ
게다가 그게 초절정 미소녀다? 말 다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ㅋㅋ
솔직히 경기 방송만 봐도 이제 배부를 것 같다.
눈나 맨날 선발 출전만 해줘라ㅜㅜ
[야 니들 마리눈나 외국인이 발음할때 이쥐해라고 하는거 아냐?]
나 영국에 동런던쪽에 사는데 오늘 경기보고 영국인 친구들한테 소개해 줬는데 침 질질 흘리면서 보더라.
첼시 경기이긴 한데 상대가 웰링 쩌리라서 그런지 진짜 웰링 서포터즈가 아니면 경기 본 사람도 없나 보더라.
하여튼 시발 애들이 이 여자 누구냐고 이름 알려주니 이쥐해 ㅇㅈㄹ ㅋㅋㅋㅋㅋ
하긴 첼시 상대로 이쥐하긴 했지 ㄹㅇㅋㅋ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증해라 구라치지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실성 없긴한데 존나 웃기네... 이게... 국뽕...?
축구...근육....미소녀...윽! 머리가!
[지금 SNS가 난리남]
트짹이랑 얼굴책에 각종 기사들 퍼날르는 웰링 팬들이 존나 많은 것 같은데.
고작 한 경기하고 이정도 파급력 있는 선수가 누구 있었지? 루니?
아무튼 우리 눈나 존나 멋있다~ ㄹㅇㅋㅋ
데뷔전을 첼시랑 한게 신의 한 수 였다 ㄹㅇ
ㄹㅇ 그냥 리그1에서만 경기했으면 인지도 올리는데 시간 좀 걸렸을 듯
'....흐음. 벌써 반응이 오네. 경기한지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나는 투게더를 보던 스마트폰을 집어던졌다.
단 한경기로 인식을 많이 바꿔준듯 하다.
'뭐 아직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시작은 웰링 주 부터 차근 차근히 넓혀 나갈 것이다.
FA컵 5라운드 경기가 끝나고 모든 웰링 선수들에게 하루의 휴가가 주어졌다.
보통 어림도 없다는데 대단한 경기를 치뤄주었으니 보상차원에서 준 것 이라고 감독님이 말해 주었다.
우리 감독님은 전통적인 신사의 나라의 주민인 영국사람인데, 경기를 치뤄보니 머리가 가끔 돌아버리면 굉장히 천박해지는 듯 하다.
그런점이 오히려 호감이니까 좋은데.
'다음 경기가 단 3일 뒤인데, 출전 시켜 주시려나?'
아마 내가 나이가 어려 휴식을 더 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 영국이라는 나라는 축구에 미쳐있긴 하지만, 유망주를 혹사 시켰다가는 구단이 폭팔 할 정도로 몰매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자네는 휴식을 취할 자격이 있어.]
확실히 오늘 감독님이 그렇게 말하셨지...
그럼 이제 뭘 해야 하나...
***
구단을 나가는 길에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조금 있다.
나를 향해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던 사람들이 못알아보는 이유는 동양인이라 그런가?
저쪽 동양인 관광객을 둘러싼걸 보니 동양인 여자라면 다 나인지 물어보는 듯 하다.
"어!!! 저기 봐!!!"
한 남성이 나를 손가락질 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고 나는 미소지었다.
'...아. 이게 관심종자의 기분인가.'
나를 알아봐주고 뛰어 오는 사람들이 무섭지도 않고, 기쁘기만 하다.
다른 동양인 관광객을 둘러싼 팬들이 왠 소리치는 남성의 목소리를 듣고 나를 찾기 시작한다.
구장쪽도 한번 보니 입구에 있던 가은 언니와 보안팀이 안절 부절 하는게 보인다.
나는 괜찮다는 얼굴을 하고 사람들을 맏이 했다.
""와아아아아!!! 진짜 이쥐해야!!!""
"하하... 오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해요."
"욕해서 미안해요!!"
"저도 미안해요!! 다음 경기는 응원 할게요!!"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는 걸 본 보안팀이 살짝 사람들 사이로 들어와 공간을 만들어준다.
"싸인해 주세요!"
"...어"
'큰일이다 싸인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네 어떻게 하지 싸인 연습 같은 건 한번도 안했는데...'
나는 당황했지만 웃으면서 보안팀이 건낸 펜을 들어 등을 돌리고 티셔츠 뒷자락을 땡기는 사람의 옷에 [이지혜입니다] 이라고 '한글'로 적고 말았다.
이게 뭐야... 폼안나네 정말... 오늘 하루종일 사인연습 좀 해야겠다.
"푸하하하하"
가은언니가 어느새 내 옆으로 왔는지 내가 해준 사인을 보고는 배를 잡고 웃는다.
"...하아"
"확실히 지혜가 사인 연습을 하는 걸 못봤네? 맨날 공만 찰 줄만 알지. 가만 보면 아는게 하나 없어."
나는 옆에서 깐죽거리는 가은 언니를 살짝 무시해 주며 계속해서 들어오는 종이와 티셔츠 그리고이미 내 유니폼을 구단에서 판매하고 있었는지 7번과 내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들이미는 사람들이게 [이지혜입니다]라고 적어줬다.
"이게뭐야~ 사람들 너인거 다 알거든?"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서 그냥 하고 있는거야.. 시발... 오늘 사인 연습 존나할거야."
"그리고 첫 번째 사인은 언니한테 해줘야 하는거 아니니? 너무한다 증말."
"...내가 멋진걸로 하나 제일 먼저 해줄게. 됐지?"
"아싸아!!!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사람들을 거의 다 해줬는데 누군가들이 보인다.
"...?"
"난 여기다 해달라고."
"꺼져."
퍽!
미친 미키녀석이 자신의 엉덩이를 들이밀어대서 발로 걷어차버렸다.
남자새끼 엉덩이는 기분이 더럽기만 하다고, 미녀가 온다면 해줄지도 모르겠지만.
"야 키티가 많이 봐준거야. 프리킥 찰때 처럼 찼으면 니 궁뎅이는 피떡이 되서 넌 시즌 아웃 되겠지."
"하하하하!!!"
미키의 뒤에서 톰과 제리가 서있었다.
"아무튼 존나 잘하는건 알았는데 첼시까지 박살내다니!! 우리 귀여운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였던건가?"
톰이 능글맞은 얼굴로 나를 보며 실실 웃는다.
"...얼른 1군에 자리를 잡아서 키티랑 같이 경기를 뛰고 싶네."
"요새 제리가 힘들어 해. 그러니까 나랑 근력 운동을 좀 하자니까! 요새는 축구가 거친 전술이 많아서 그래!"
제리의 표정은 좋아 보이지만, 약간 어깨가 쳐저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뭐.. 내가 봤을 때 지금 주전 윙어보단 제리가 더 잘 하는것 같은데. 피지컬이 문제인가?"
제리는 키가 170대 중후반으로 보이지만 몸이 굉장히 말랐다.
"...진짜?"
내가 잘한다고 하자마자 등펴지는거 보소.
"그래. 수비는 워낙 탄탄해서... 톰이 수비형 미드필더 쪽으로 가면 좀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하 수비는 센터백이긴한데, 나도 요새 고민 하고있어."
"그나저나 옆의 미인은 또 누구신가?"
미친 미키녀석은 이쁜 여자만 보면 흥분하나보다. 저걸 봐라. 아주 입에서 침까지 흐르겠네,
"꺼져 씨발. 언니 건들기만 해봐."
나는 손가락으로 미키의 얼굴을 가르키고 협박했다.
NTR은 절대로 안된다. 물론 내 몸이 남자가 아니라 슬프지만, 주변의 미녀를 가로채가면 엄청 슬프겠지.
"지혜야 걱정마. 난 외국 남자한테 관심없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언니가 내 팔에 매달려서 나는 의기 양양한 얼굴로 미키를 쳐다봤다.
"...오 이것도 그림이 좋은데?"
"...시발 다 꺼져. 이제 난 간다~"
나는 대충 유니폼에 사인을 해주고 가은 언니랑 보안팀에게 다가가서 이제 퇴근할테니 길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지금까지도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기영씨는?"
"아! 급한 볼일이 있다고 먼저 가셨어. 다음엔 꼭 한번 더 뵙자고 전해달라고 하시더라."
"음... 수아도 경기를 보러왔겠지?"
"응. 박코치님이랑 왔다는데, 황대표님이 VIP룸으로 보내줘서 편하게 관람했다고 연락 왔었어."
"그렇구나... 아참 나 내일 하루 휴가인데, 수아랑 같이 셋이서 놀러갈까?"
"오 좋지! 어디로?"
"영국에도 갓즈니랜드 같은 놀이동산이 있나?"
"오! 갓즈니랜드! 영국에 생긴지 20년정도 됬지. 2023년엔가 완공 된걸로 알고있는데..."
"그럼 거기서 놀면서 방송도 잠깐 켜서 소통도 하고 그럴까?"
"그게 좋지! 내일이면 한국에도 기사가 나가고 난리가 날거야!! 물이 들어 올때 노저어야지 히히"
나는 가은 언니와 내일의 계획을 짜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사람들은 나를 사진찍고 있다.
'...이상한 소문이 나는건 아니겠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