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43화. 첫 원정경기(3)
* * *
디에고가 오른쪽 터치라인을 따라 드리블을 하며 올라와서 급하게 낮은 크로스를 올렸다.
터엉!!
오우...
내가 강하게 찬 논스톱 발리슛이 골대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위건 애슬래틱 FC의 골대 뒤쪽에 자리하고있는 우리 웰링 서포터즈들이 머리를 붙잡고 아쉬워 하는 모습이 보인다.
디에고가 열심히 달려와서 차준 귀한 기회 였는데... 축구선수가 항상 골을 넣을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다지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긴한다.
"좋은 시도였어!"
디에고가 나에게 따봉을 던지며 돌아갔다.
"후우.."
나는 디에고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오른 손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디에고와 제리. 이 둘은 약속된 플레이와 같이 빈 공간을 찾아 열심히 뛰어 다니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나타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 미친 위건새끼들은 페널티 라인 근처에서만 윙어를 마크하고 그 외 지역에서는 마크를 하지 않고 내 주위만 맴돈다.
경기는 아직 전반이긴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갑갑하기만하다.
확실히 수비가 주변에 5명이나 배치되어있다보니 숨이 막히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다들 하나같이 나만 노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는데 이리저리 움직여 봤자 이미 좁은 5명 사이에서 그다지 해낼 수 있는게 없다는게 느껴졌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선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이 위협적이라면 나에게 공간이 조금 더 생길 것이라고 판단하겠지만, 실전과 관전은 다른 법.
'하지만 실망시킬순 없지'
위건과의 경기든 아니든 나를 지켜보고 있는 수 많은 시선들이 있다. 예들 들테면 한국의 팬도 있고 웰링 서포터즈들도 있다. 나는 평범한 선수가 아니다.
이미 여자 선수로 뛰고 있다고 첼시를 박살내며 세계에 어그로를 끌고 나타나고 말았다.
도전을 하는 입장이라서 그런가.. 항상 마음속 구석에 조그만 부담감을 지고 경기를 하는 듯 하다.
물론 축구선수의 가치가 골로만 매겨지지는 않지만, 축구에 관해 그리 빠삭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나로서는 스트라이커라면 골로 증명을 해내야만 하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내 말은.
수비가 5명이 서있든 11명이 서있든 골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뜻이지. 무모 하지 않냐고? 이미 여자의 몸으로 프리미어 리그에 도전하려는게 무모한 상황이다.
우우우우우!!!!
위건 애슬래틱의 서포터즈들이 목청이 터져라 야유를 보낸다.
'크윽...'
홈경기를 할때는 못 느꼈던 기분이 발 밑부터 차오르는게 느껴진다. 이게 압박감이라는 건가? 저 사람들이 다 나를 박살나기를 원하고 있다는게 느껴진다.
조금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고 오히려 우리 팀 동료들만 눈으로 쫓으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헤이!!"
세명의 센터백 앞을 정신 없이 왔다 갔다 거리며 손을 들었다.
"..."
"...쯧"
"마크 한명!"
"알았어. 백업 잘 부탁한다고"
센터백 3명과 중앙 미드필더 두명 사이에 끼어 있으니 진짜 숨을 못 쉴거 같은 기분이다.
"...저리 꺼져!"
나는 은근슬쩍 밀어대는 센터백을 거칠게 어깨로 쳐버리고 공을 소지하고 있는 우리 중앙 미드필더를 향해 달려갔다.
"...시발!"
많이 내려온 라인이지만 이렇게 움직여줘야 윙어가 중앙으로 치고 들어갈 공간이 생기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뛰기 시작하니 팀경기를 한다는 느낌이들어 재밌기도 하다.
제리가 열심히 달려와 스루패스로 측면으로 빠지는 공을 따라가서 왼발을 쭉 뻗어 공을 잡는다.
확실히 제리의 공을 다루는 솜씨고 2부리그에 있을 만한 실력은 아니다.
유명한 클럽의 유소년팀에 있었다고 했지? 아마 저 친구도 제대로 터지면 더욱 날아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제리가 멋진 스텝오버를 시도하며 센터백을 뚫어보려고 했지만 백업이 빠르게 와 둘러쌓여 뺐기고 말았다.
"...하아"
제리는 다시 우리 진형으로 뛰어가며 한숨을 쉬는게 보였다.
"..."
나는 재빠르게 위건 새끼들의 진형을 다시한번 확인해보고 슬며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을 소지하고 점유율을 올리기 위해 중앙에서 티키타카 놀이를 하고 있는 미드필더 놈들...
'씨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대놓고 중앙만 틀어막아? 우릴 개무시하는거 아냐?'
나름의 위건 애슬래틱이 머리를 모아 생각한 작전이고 뛰어난 전술일수도 있겠지만, 나만 틀어막아서 이기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이 전술은 조금 우리들을 기분나쁘게 만드는 모양이다.
'다들 조금 흥분한 모양이야. 감독님이 지시한 것 보다 더 다이렉트한 것 같은데...'
템포가 너무 빠르다 보니 제리랑 디에고가 공을 따라가기도 벅차하는게 보인다. 어찌 어찌 공을 크로스 해서 나에게 올려 준다고 해도, 좋은 자세에서 차올린게 아니라 불안정한 자세에서 차올리다 보니 공이 부정확한 궤도로 올라온다.
타앙!
다시한번 디에고의 크로스를 논스톱으로 때려 보지만 센터백의 다리를 강하게 맞추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젠장"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공을 받고 슈팅을 했다면 넣었을 수도 있다. 오늘의 나는 조금 조급한 느낌이다.
'제리한테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는데...'
아무래도 경험이 적다는 사실이 조금씩 발목을 붙잡는듯하다.
프로페셔널은 어떠한 상황에도 단련된 정신력을 유지하면서 흔들림이 적다고 멘토링 수업때 들었는데... 나에겐 아직 좀 부족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변한건 육체일 뿐이라. 정신적인 능력치가 프로의 수준에 아직 못 올라왔다는 느낌이다.
아직도 귓가에 위건 애슬래틱 서포터즈의 응원가가 강하게 들려온다.
'더욱 더 움직여야해. 생각자체를 못할 정도로.'
나는 불안감이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에서 온다고 느꼈다.
라인을 점점 내리는 웰링을 따라 위건은 점점 라인을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잡생각을 털쳐내려고 위건 선수들의 공의 움직임을 노려보며 슬슬 움직였다.
"...?! 뭐야 시발!"
나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티키타카를 시전 하는 사이에 중앙에 끼어들어 슬라이딩으로 공을 컷트 해내고 말았다.
"공 빨리 잡아!"
"라인 정비 빨리!"
위건이 기겁하며 라인을 복귀 시킬려고 자신의 골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이 급하게 달려온 웰링의 중앙 미드필더가 공을 소유해냈다.
"...제리!!"
중앙 미드필더가 공간을 찾아낸 제리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왼쪽 방향으로 스루패스를 낮고 빠르게 찬다.
텅!
"...!"
제리가 공을 받고서 달리기 시작한다.
나도 제리를 한번 쳐다보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제리가 뭔가 감이 왔는지 센터서클을 조금 지나자마자 상대 페널티 박스를 향해 중앙 대각선으로 스루패스를 했다.
"키티이이이이!!!! 달려어어어어!!!"
나도 제리가 패스를 차자마자 등에서 전기가 흐르는듯한 느낌이 찌릿하게 들며 바로 달려야만 한다고 심장이 말하는 듯 했다.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팔을 왼팔을 격하게 앞으로 뻗고 오른 팔을 뒤로 보낸다. 그리고 팔에 맞춰 몸을 앞으로 날린다는 느낌으로 바닥을 차올린 다리의 무릎이 명치부근까지 올라 왔다가 다시 땅을 박차기 위해 앞으로 뻗어 바닥을 박찬다.
여자의 몸이라고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단련된 허벅지 근육에서 힘이 폭발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잔디를 밟고 밀어낼때 마다 잔디가 강하게 파여 날아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퍽! 퍽! 퍽!
몇 발자국만에 센터백을 지나치고 페널티 박스 바로 앞까지 굴러가는 공을 향해 달렸다.
"!!!"
"씨발! 뭐야!"
바람이 강하게 내 귀를 때리고 지나간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아무생각도 하지 않고 앞으로 굴러가는 공을 향해 달려간다.
공을 잡고 때리면 늦는다는 불길한 기운이 앞에서 느껴졌다.
앞을 바라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앞에 키퍼가 달려 나왔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앞을 한 순간이라도 본다면 공에 늦게 도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압박감이 얼굴에 뜨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디로 차야 할지 생각을 해버린다면 늦는다.
나는 달리는 힘 그대로 공 밑을 내리 찍어차서 올려차듯 공을 띄웠다.
그제서야 나는 고개를 들고 키퍼를 찾으니 이미 자신의 키를 넘겨버리고 아름다운 포물선으로 넘어가는 칩슛을 향해 새우마냥 점프해서 허리를 휘며 손을 뻗었지만 야속하게도 공은 이미 골라인을 넘어가고 말았다.
"...헉헉. 으아아아아아!!!"
나는 골이 들어 갔다는 사실을 알아채자 마자 우리 웰링 서포터즈들을 향해 달려갔다.
이야아아아아아아!!!!!
우우우우우...
함성과 야유가 동시에 들려온다.
"씨발!!! 이 느낌이야! 난 이 느낌을 원했던 거였어!!"
제리가 등뒤에 매달려 소리를 쳐댄다.
"하하 패스 존나 좋았어 진짜로."
"이야아아아아!!!! 존나 빠르네 진짜!!!"
나를 따라 세컨드 볼을 노리려고 달려왔던 디에고도 제리의 등에 매달렸다.
사람들이 나를 향해 경악하고 환호하는게 느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