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62화. FA컵 결승전(6)
* * *
삐익 삐익 삐이이익!!!
드디어 기나긴 경기가 끝이났다.
[격렬했던 경기가 종료 되었습니다! 리버풀 FC vs 웰링 유나이티드! 5 대 4로 리버풀이 우승컵을 들어 올립니다!]
[경기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선수들이 보여주는 군요. 필드위에 드러눕지 않은 선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아 이지혜 선수가 울고있군요. 상당히 아쉬웠나봅니다.]
'아 씨 쪽팔려...'
경기중에 타올랐던 열정이 어떤 감정으로 변해 목구멍을 지나 얼굴로 올라오니 눈에서 땀이 나는걸 막을 수 없었다.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감추며 잔디 위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가 얼굴을 때리지만 온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시원하다는 느낌이 든다.
"...키티"
좀 멀리 떨어져 드러누운 제리가 말을 건다.
"어"
"아쉽다. 그치?"
"그러게"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
제리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아니 그는 현재 능력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기가 끝나기 얼마 전에 다리에 쥐까지 나서 경기장 밖으로 혼자 기어나갈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제리뿐만이 아니다. 이 경기장에서 뛰었던 모든 선수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미친듯이 필드위를 누볐고, 당연하게도 선수들의 가치를 알 수 있을만큼 다들 열정을 느꼈다.
"자 다들 일어나 팬들에게 인사 해야지."
벤치에 있던 후보 선수들과 코치들이 모두 필드위로 올라와 선수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끄응!"
심슨이 내 팔을 들고 어깨에 들쳐맸다.
"뭐 이리 무거워!"
"내가 무거운게 아니라 니가 약한거야 이 새끼야"
나는 힘이 들어가지 않지만 심슨 녀석을 찌릿 째려보며 말했다.
"..."
한 체력 코치도 나에게 다가와 반대쪽 팔을 들어주며 도와주었다.
"고생 많았다. 대견하구나."
올해 40세가 넘어가는 고령의 코치. 평소 지구력 훈련때 자주 훈련을 지도 하시는 코치님이다.
"감사합니다."
"...아쉽겠지만, 고개를 들어보거라."
"?"
나는 라커룸으로 통하는 통로로 이동하며 고개를 드니 관중들이 나를 보며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대단했어!!"
"우린 리버풀 서포터즈지만 너희들이 마음에 드는데?"
"거기 여자는 리버풀로 이적해!"
"개 같은 소리 하지마!"
"하하하하!!"
선수들이 들락날락하는 입구라 양쪽 서포터즈들이 같이 있어 서로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웰링이나 리버풀이나 다 하나같이 지쳐 나가 떨어졌기 때문에 따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웰링의 선수들은 전부 준비되고 있는 시상대를 바라보며 아쉬워하고 있었다.
"...가자고"
이제는 승리자들이 축하 받아야 할 시간이다. 우리들은 라커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기자회견장.
"마테오 감독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분명히 쉬운 대진이였고, 무난하게 이겼어야만 하는 경기에서 고전을 하고 말았습니다. 현재 기분이 어떠십니까?"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프로들이고 프로에 걸맞는 경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 경기는 이기고 졌다는 사실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 같군요. 우리는 트로피를 얻었지만 경기는 졌다고 생각합니다. 확연하게도 우리 리버풀이 승리하기 위해 투지를 불태운건 웰링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투지가 우리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오오오
마테오 감독이 너무나도 쿨하게 웰링 유나이티드를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이쥐해 선수가 감독님의 골문을 지독히고 괴롭혔는데 어떻습니까?"
"...대단한 선수더군요. 단언하건데 오늘 필드위의 어떤 선수도 오늘 그녀보다 대단하지 못했습니다."
"최우수 선수에 선정된 누노 레오 선수 보다요?"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누가 보아도 뻔하지 않습니까? 누노 레오는 경기 중반에 대충뛰는 모습을 관중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정말 실망스러운 태도였구요, 물론 이 말은 누노 레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중반 웰링이 동점 상황을 만들 때까지 정말 한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4골이나 넣은 이쥐해 선수가 최우수 선수를 수상해야 한다고 평가하는데요."
"어쩔 수 없이 대회에서 우승한 팀에게 최우수 선수가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 뿐이죠. 이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오늘 이쥐해가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찰칵 찰칵
"오늘 많은 감독들이 감독님의 경기를 관전하러 웸블리 스타디움에 찾아왔습니다. 현재 계약기간이 얼마 안남은 누노 레오를 지켜보러 왔을 것 같습니다만, 지키실 자신이 있으십니까?"
"흠... 제 생각엔 누노 레오 보다는 이쥐해에게 관심을 가질 것 같군요. 그리고 누노 레오에게는 새로운 계약을 제시할 것이고 이적하지 않을 겁니다."
웅성 웅성
***
경기가 완전히 끝나고 우리들은 클럽으로 다시 돌아와 스트레칭과 아이싱을 하며 몸을 추스리고 있었다.
똑 똑
개인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나에게 가은이 찾아왔다.
"...왔어?"
"응 오늘 수고 많았어!"
나는 괜히 머쓱하게 대답을 했건만, 가은 언니는 나에게 거침없이 다가오며 아주 밝게 웃으며 나를 격려 해 주었다.
"오늘 진짜 멋있었어! 사람들 반응도 엄청 좋은 것 같아!"
"오 정말?"
"응 이제 우리 나라에선 꽤 유명한 정도는 됬을거야! 대부분의 남자 축구팬들은 다 이지혜의 이름을 알게 됬을걸?"
사실 이 정도나 했는데 나를 모른다면 축덕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마붕이들은?"
"일단 다들 호텔로 돌아가서 쉬기로 했어. 이따 저녁 시간에 지혜. 너가 깜짝 방문하기로 했잖아? 아직 그건 아무도 몰라."
"흐흐... 다들 엄청 놀라겠지?"
"그렇지. 오늘 다들 너가 쉬는 줄로만 알걸? 그렇게 열심히 뛰는걸 다들 눈으로 직접 지켜 보았으니까!"
두손을 꼭 쥐며 내 얼굴 앞에서 얼굴을 살짝 붉히고 갈색 웨이브 롱 헤어가 살짝 내 얼굴에 스치도록 가까이 다가와서 눈을 반짝였다.
"근데 왜 이리 얼굴이 엉망이야?"
가은 언니의 얼굴은 마치 전날 라면을 먹은 사람처럼 조금 팅팅 부어있었다.
"아...아무것도 아냐!"
"....그래?"
나는 가은 언니가 찍은 경기 영상을 다시 돌려보며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혹시 이적 제의가 들어오면 이적할 생각이니?"
가은 언니가 조금 주저 하며 나에게 물어보았다.
"으음... 이적이라..."
나는 짐짓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언니를 바라보았다.
이적.
사실 많은 축구 선수들은 상당히 자주 자신의 자리를 이동하며 선수 생활을 한다. 물론 원클럽맨도 존재하긴 하지만 뛰어난 선수들은 많은 관심에 노출되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다가오는 클럽들에게서 선수들을 방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과 나의 상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일까?
다른 선수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 부터 공과 함께 자라고 자신이 사랑하는 클럽과 함께 자란다. 그러다 보니 드림 클럽이 존재하기도 하고, 평생의 목표가 확연하게 정해져 있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언제든 떠나는 선수들이 많은 것이다. 혹여 드림 클럽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이적을 요청하게 된다면 고민 하지 않고 바로 이적 해버릴 정도로.
그렇다면 나의 상황은 어떨까? 그다지 심도 깊게 고민 해본적이 없는건 큰 문제다.
하지만 한가지는 명확하게도 별로 이 클럽에서 이적하고 싶은 마음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왜 3부리그에 짱박혀 있냐고? 혹여나 성장에 방해 되는 클럽이 아니냐고?
나는 확신한다. 이번 시즌에 2부로 승격할 것이라고, 이 정도 경기력을 보이는 클럽이 3부 리그 팀들에게 질리가 없다. 그리고 조금만 힘을 낸다면 프리미어리그 까지 승격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의 문제는 아직 모르겠다.
그리고 가장 커다란 마음이 가슴속에 생겼다.
"나는 리버풀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
이때 나는 몰랐지만 가은 언니가 나에게 말해주길 눈동자안에 왠지 불꽃이 일렁이는 모습이 보인 것 같다고 했다.
오늘 진 이유가 비가 와서? 만약 맑았으면 이겼을 수 있을까? 아무 의미 없는 고민이다. 나는 준비를 완벽하게 하지 않았고 결국 내 문제가 튀어 나온 것이고 이런 결과가 나온것이다. 물론 나 혼자 경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 마음이란게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지 않은가?
"한 1년은 이적 생각을 안하려고해"
"그렇구나. 이미 지혜는 마음을 굳혔구나. 다행이다.."
"다행이라고?"
"응 이걸 봐."
[바이에른 뮌핸 이지혜에게 관심을 가지나?]
[파리 생제르망. 이지혜를 영입하기 위해 백지 수표를 준비중!]
[레알 마드리드 회장. 새로운 갈락티코가 나올만한 상황인가? 그녀를 보니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SNS 집중!]
[도대체 이지혜가 누구인가? 그녀에 대해 알아보자!]
인터넷에 엄청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경기가 끝난지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다들 이런 설레발을 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기사에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들 자기 생각일 테니까.
"한번 황대표님과 에이전트에 대해 상담해보는건 어때? 슬슬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가은 언니가 내 볼을 콕콕 찌르며 말을 했다.
"그러게 확실히 이제 필요할 것 같아."
나는 대충 대충 대답했고, 나는 앞으로 어떤 고생을 할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