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80화. 가자! 올림픽으로!(2)
* * *
"안뇽! 오랜만이네?"
"연락은 자주 했잖아..."
수아가 나에게 달려와 안긴다. 조그만 다람쥐 같은 그녀는 매번 이렇게 안길때마다 소동물 인형 같은 느낌을 주어서 굉장히 포근해진다.
"그나저나 지혜야... 주변에 사람들이 꽤 늘었나보네?"
나를 만나기 위해 호텔로 찾아온 수아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아 왔어?"
"가은 언니!!"
수아가 가은 언니에게 달려가 안긴다. 얼마만에 만나는 거지? 거의 반년 가까이 되기 시작했나?
"흐음... 안녕하세요?"
가만히 앉아있던 레베카씨가 수아를 향해 한국어로 인사를 건낸다. 나를 맡기 시작하면서 한국어도 공부중이라는데 확실히 똑똑한 사람이라 그런지 배우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것 같다. 한글은 배우기 쉽다고 들었지 한국어를 구사하는 건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잘 모르겠다.
"어...어... 안녕하세요?"
수아는 외국인을 잘 상대하지 못한다. 전형적인 한국인이라고 해야할까. 영어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회화는 어려워하는.
"후훗. 또 귀여운 분이시네요. 왠지 지혜씨 주변에는 미녀만 모이는 듯한데요?"
마야 공주님이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고혹적인 미소로 말을 한다.
"어... 안녕하세요?"
마야 공주님은 한국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어로 인사를 건내는 수아. 압도적인 미녀 두명이 연속해서 말을 건네니 수아는 조금 어색해 하는 듯해 보였다.
"자자. 수아야. 여긴 내 에이전트이신 레베카씨고 여긴 웰링 유나이티드의 실질적인 구단주이신 마야 공주님이셔."
"어?! 레베카씨는 에이전트시니까 그렇다 쳐도 여기 공주님은 왜..."
확실히 마야 공주님이 왜 나랑 같이 있는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
"제가 설명드릴게요."
"어?!"
나는 갑자기 한국어로 말하는 공주님에게 깜짝 놀랐다.
"...공주님 한국어 공부는 언제...?"
"후훗. 제가 지혜씨랑 친해지고 싶어서 꾸준하게 공부하고 있답니다?"
"..."
미녀가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오니 너무나도 쑥쓰럽다. 어쨌든 이런 저런 인사를 나누고는 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한 5인.
"그나저나 올림픽에 같이 다닐거라고? 아버지랑 같이?"
"응! 이번에 우리 아빠도 올림픽 국가 대표 코치로 수임하셨거든.. 그래서 가는김에 나도 가서 일도 배우고.. 겸사 겸사지 뭐..."
"오오! 드디어 현장 실습도 하네~ 근데 이거 인맥빨 아니야?"
"아니야! 알바 하러 가는거야.. 일손이 많이 부족하대. 원래는 자원봉사자들을 많이 모집하는데 해외까지 나가는 봉사자들이 얼마나 있겠어?"
"그렇지.. 봉사라니. 진짜로 그런 일이 존재했었구나?"
"그럼! 나도 이미 몇번 대표팀 훈련에 참가했는데 봉사자 분들 몇분 계셨어.. 그래도 군말없이 열심히 하는데 대우가 그리 좋지는 않나봐."
"으음..."
나는 옛날 부터 전해 들어온 자원봉사자썰이 수도 없이 많았기에 나는 그들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레베카씨의 눈치를 보기시작하자 왠지 레베카씨가 나를 보며 웃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참.. 지혜씨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인다니까요? 표정 관리도 사회 생활하는데 필요한 덕목이랍니다?"
마야 공주님이 어깨를 으쓱이며 내게 다가와 바로 옆 의자에 앉아서 내 눈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봉사자들을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다는 거죠? 알겠어요. 지혜씨랑 저랑 같이 힘을 모은다면 꽤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에요. 물론 모든 종목의 봉사자는 어렵겠지만.. 축구쪽 봉사자들은 저희가 책임지고 맡아봐요."
"제가 혼자 해도 될텐데..."
"아뇨! 지혜씨가 하는 일을 같이 하고 싶은 것 뿐이에요!"
두 눈을 반짝이며 내 손을 잡아오니 거절 할 수가 없다. 어쨌든 좋은 일이니 거부가 참여한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그럼... 나중에 제가 뭐가 필요 할지 알아볼게요. 저도 좋은 일에 동참하고 싶은걸요?"
레베카씨가 커피를 홀짝이며 자신도 동참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와아!! 다들 좋은 분들이시네요!"
"지혜가 하는 일은 자동으로 나도 하는 일이니까."
가은 언니도 씨익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요새 거의 가은 언니와 나는 친자매 마냥 붙어다니고 살고 있으니 한가지를 하게 된다면 같이 한다는 느낌이다. 물론 가은 언니도 심성이 착한 사람이라 이런일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터.
"벤 하이머 감독님이 하루 빨리 합류하기를 원하기는 하는데.. 제 생각에는 그렇게 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레베카씨가 대화의 주제를 다시 돌려 올림픽으로 집중시켰다.
"흐음.. 얼마나 남았죠?"
"이제.. 한달 정도 남았네요. 대한민국팀은 최종 예선 부터 시작이니.. 미리 경기를 치를 필요가 없네요. 올림픽 개막 후에 경기가 잡힐 거니까요."
우리 나라의 아시아 피파 랭킹이 5위권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처음부터 예선전을 치를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 뜻은 지난 수년간 여자 축구 선수들이 열심히 경기를 뛰어서 랭킹을 유지 해 왔다는 뜻일 테니 대단한 거다.
"흐음.. 언제 합류하는게 가장 이상적일까요?"
"한 이주전에 합류하는게 좋을 것 같네요. 솔직히. 여자 축구 대표팀에서 훈련을 오래 받는다고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이건 여자 축구가 미흡한 실력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라 남자 축구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에요. 서로 추구하는 축구의 방향이 다르니까요."
"그렇네요.. 그럼 그렇게 합류하죠! 기왕 합류하는거 두바이로 출발하기 전에 합류해서 같이 훈련도 하고 이동하도록 하죠."
"네. 그럼 그렇게 벤 하이머 감독에게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아마 그쪽도 다른 불만은 없을 겁니다."
레베카씨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고 호텔방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럼 수아 아버지는? 코치님 말이야."
"응? 아.. 오늘은 나 혼자 왔어! 바쁘신가 보더라고..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할일이 꽤 많더라니까?"
"흐음.. 인사한번 드리고 싶었는데.."
"안그래도 조금 삐져 계시더라! 한국에 돌아왔으면 먼저 자기를 찾아와야 하는거 아니냐고! 어떻게 예능에 먼저 출연할 수 있냐고.. 게다가 나도 보러 안왔잖아!"
수아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한다.
"아니.. 둘다 바쁘다면서... 너는 급한 과제가 있다고 말했고 코치님은 훈련장이 서울이랑 너무 멀어서 그냥 나중에 보자고..."
"히힛! 농담이지~ 그냥 보고 싶었다고~"
수아가 농담이라고 말하며 나에게 다시 안겨온다. 이렇게 스킨십을 좋아하던 앤가? 물론 난 좋아한다.
"으음 그럼 이제 뭘해야 하나? 딱히 계획을 잡은게 아니라.."
"그러게. 한 이주 정도 시간이 있는데.. 방송이라도 킬래?"
"아니.. 지금은 올림픽에 집중하는게 나을 것 같아. 운동이라도 할 수 있는 곳에 가자."
"그래. 좀 오래 쉬었지? 내가 괜찮은 헬스장 알아봐놨어."
가은 언니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두들기며 헬스장을 찾기 시작했다.
"한국에 제 별장을 하나 구매 해 놔야겠군요..."
마야 공주님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난 잠깐 아빠한테 전화하고 올게."
수아도 잠시 방을 나선다. 그러고 보니 나도 감독님에게 전화를 해봐야 겠다.
"여보세요?"
[오 그래. 어쩐일인가? 올림픽 건 때문에 그런가? 이미 나는 허가 결정을 내렸네만.]
"아 그건 정말 감사드립니다.."
[뭘. 선수가 원하는걸 막는건 좋은 감독이 아니지. 게다가 조국을 위해 뛰고 싶다니. 얼마나 장한가. 프리시즌 초반을 거의 날리는 셈이지만.. 부상만 조심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영국을 상대로는 살살할 수 있는가?]
"..."
[농담일세. 아마 자네가 영국에 돌아올때 쯤에 뉴페이스가 와있을 수도 있겠군.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 하겠네.]
"감사합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는 앞으로의 일정을 잡기 위해 가은 언니와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
"오오 안녕하십니까."
드디어 올림픽 여자 축구 대표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간 언제 합류하냐며 보채는 벤 하이머 감독님이지만 이렇게 만나니 밝은 얼굴로 맞이 해 준다.
여기는 강원도의 올림픽 선수촌. 여러 종목 선수들이 두바이로 떠나기 전에 여기서 합숙을 하며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으음..."
세월이 많이 지났음에도 시설이 그다지 훌륭하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심지어 웰링 유나이티드 시설보다 후지다고 생각이 들 정도니까.. 사실 나도 경악할 정도다. 국가대표면 이 정도 대우를 받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딴 곳에 우리 지혜씨를..."
왠지 안좋은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한 마야 공주님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게 많이 좋아진거래요."
수아가 내 옆에서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한다. 이게 좋아진거라니.. 여기 저기 시설이 녹슨게 보이고 보수해야 할 곳이 엄청나게 자주 보인다.
"...이건 촬영해도 되려나? 지혜 대표팀에 합류해서 운동하는거 촬영해서 올릴려고 했는데.."
"그건 좀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 내 이야기가 아니라 시설 이야기만 잔뜩 나올 것 같아서 말이야."
"하긴... 이건 좀..."
세월은 이미 많이 흘러 2040년이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최첨단이고 깔끔하기 마련인데, 이 국가대표 선수촌은 왜 이런 꼬라지를 하고있는 것인가..
"...안되겠어요. 축구 대표팀만이라도 딴 장소로 옮길 수 있냐고 이야기 해봐야겠어요."
레베카씨와 마야 공주님 마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벤 하이머 감독님에게 다가가 어떤 이야기를 시작했다.
몇 분 기다리고 나니 벤 하이머 감독님이 나에게 다가왔다.
"좋은 일이네요! 저도 선수들이 더 좋은 시설에서 훈련할 수 있다면 환영입니다! 바로 두바이로 이동하죠!"
이후에 감독님이 훈련 중인 선수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하니 왠지 커다란 함성소리가 들려온 듯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