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104화. 한국으로!(2)
* * *
인천 국제 공항.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 두바이에서 여러 유명 인사들이 나를 찾아왔다고 들었지만, 아쉽게도 일일이 만나서 인사를 나눌 시간적 여유가 적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달래고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맡길 수 밖에 없었다.
오랜시간동안 비행을 하다보면 정신이 몽롱해지는 기분이다. 잠을 계속 자다보니 머리가 아픈느낌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일행들과 함께 짐을 챙기기 위해 자리를 옮기고 있을 때 였다.
웅성 웅성
많은 사람들이 떠들면서 생긴 소음이 공항을 채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그러게..?"
"뭐..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대표팀들이 있나보죠~"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며 지나가는 유정이.
"흐음..."
여기는 입국하려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서 밖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예상되는건 당연히 기자들이 쫙 깔려있는 상황이다. 이건 모르는게 이상하니 애초에 입국하기 전에 비행기 안에서 부터 일행들끼리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을테니 표정관리 하라는 둥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단 짐이나 챙기고 갑시다! 다음 일정까지 몇 일 밖에 안남았으니 조금 쉬어야죠!"
박코치님이 선수들의 등을 한번씩 두드리면서 짐을 챙기라고 보채기 시작하셨다. 우리는 점점 멀어지는 소음이 어떤 슈퍼스타가 지나가고 있을 것이라고 주절대고는 짐을 찾기위해 이동했다.
***
"하하하!"
"형! 진짜 사람 많네요!"
"이게 다 우리 인기 덕분 아니겠냐?"
"그쵸. 그쵸. 우리가 저기 대만까지가서 콘서트를 하고 왔을 정도니까요!"
선글라스를 착용한 꽤 반반한 청년들이 입국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선글라스와 마스크까지 착용한 남성들이 아이돌일지 일반인들이 어찌 알겠는가.
"저기.."
"응?"
그때 10살이 조금 넘어보이는 자그마한 소녀가 아이돌들 중 한명의 바짓가랑이를 당기고 있었다.
"...싸인..."
자그마한 손으로 종이와 유성팬을 힘겹게 잡고서는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는 남자에게 건내려고 했다.
"아이씨..."
그런데 남성은 꽤나 귀찮았던 모양인지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의 동료들을 쳐다보았다.
"왜그래?"
"누구야 저 애는?"
"아.. 몰라! 애야. 우리 지금 바쁘거든? 나중에 찾아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젓는 남성.
아이는 상당히 실망감을 느꼈는지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눈나 왜 우러..?"
더 어린 남동생이 있는지 아장아장 걸어와서 누나의 손을 잡는다.
"하아.. 가자!"
귀찮은 일은 질색이라는 듯이 아이들을 내버려 두고 떠나는 아이돌들.
"응? 지혜야! 왜 울어?!"
평소에 딸내미가 티비를 보면서 좋아하던 아이돌들을 발견했다고 신나해서 급하게 종이와 팬을 찾아서 싸인을 받아오렴하고 말하고는 잠시 짐을 찾으려고 이동했다가 돌아왔더니 딸내미는 싸인은 커녕 히끅 히끅 하며 울고만 있었다.
"으음.. 도대체 얘가 왜 이런담...?"
"여보.. 여보는 못 봤어?"
"아니 나도 지수를 보고 있어서..."
"아니 여보는 딸내미가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서 움직이는제 잘 지켜보지도 않고..!"
"미안.. 미안해.."
"저기..."
아내가 남편을 구박하면서 자신의 딸내미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는데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두들기는게 느껴졌다.
"음..? 네...? 헉!"
"여보 왜그... 헉!"
"저기.. 제가 요즘 사인 연습 중이라서.. 실례가 안된다면 사인 한번만 더 연습해도 될까요..?"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보니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음에도 느껴지는 육감적인 몸매와 티비에서 보던 아름다운 연예인을 뺨싸다구를 왕복해서 때려버리고도 남을 아름다운 외모. 무엇보다 여자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키와 체격에 압도를 당했다.
"어... 어! 혹시.. 이... 이지혜..."
"...! 이지혜 선수?!"
부부는 같은 두바이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탔기에 어떤 여행을 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물론 다른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일수도 있지만 아들의 손에들린 자그마한 태극기와 딸의 볼에 그려진 태극마크 페이스 페인팅으로 보면 두바이에서 온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저 남자들이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연예인인듯한데 인성교육이 잘 되있질 않은 것 같다. 겨우 공놀이 하는 우리들도 구단에서 수시로 팬서비스에 대한 강의를 진행한다.
"아이구.. 애기야. 언니 봐바!"
"크흥... 훌쩍! 으응? 우와... 예쁜 언니다아..."
질질 울던 아이가 나를 보고는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 언니도 꽤 유명하긴 한데 사인 하나 해줘도 될까?"
"싸인요...? 진짜요?!"
자고로 어린 아이들에게는 세세한 의미는 필요없다. 내가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단지 사인을 받는다는 행위가 기쁠뿐이다. 자신이 관심받고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
"그럼~ 물론이지! 애기 이름이 뭐에요~?"
나는 평소에 하지도 않던 콧소리까지 내며 근처 앉을만한 곳으로 이동해서 아이를 내 무릎위에 올려 앉혀 놓고 사인을 해주기 시작했다.
"제 이름은 이! 지! 혜! 입니다!"
어린 아이 특유의 자기소개를 들으며 나는 놀랐다. 동명이인이라니.. 신기한 인연이기도 하다. 뭐... 흔한 이름이긴 하지만..
"이 언니 이름도 이지혜야~ 잘 봐~"
나는 지난 거지같았던 사인을 버리고 간단하게 꾸민듯한 모습의 이름을 사인으로 채용했다.
이 지 혜 [사랑스런 이지혜에게... 만나서 반가워♡]
내가 나에게 보내주는 사인 같아서 웃겨보이지만 아이는 기쁜가 보다.
"우와... 고맙습니다 언니!"
사인을 받아들고는 나에게 90도 배꼽인사를 하는 아이. 너무 귀엽지 않은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부부도 나에게 인사를 해준다.
"아니에요~ 혹시 축구 경기 보셨나요?"
"네!! 물론이죠! ...사실 결승전만 봤어요.. 여자 축구 소식이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해서요..."
"하하하! 아무튼 응원 감사드립니다! 사진 한장 찍을까요?"
"와!! 좋아요!"
나는 내 근처에서 지켜보던 가은언니에게 손짓을 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김치이~~"
"김치이~~"
귀여운 아이 둘이서 손을 브이 하고는 귀엽게 웃는다.
찰칵!
"하하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언제나 응원할게요!"
"빠빠 눈나~"
"언니 안녕히가세요오~"
나는 그 가족들에게 손인사를 하고는 이동하려고 고개를 돌리니 사람들이 몰려있는게 보였다.
짝짝짝
휘이익~
"사인해줘요!"
"눈나 이쁘다!!"
"개념이 있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이 많았던 건지 나에게 박수를 쳐준다. 아니 이게 그렇게 박수까지 받을 만한 일이아닌데...
나는 머쓱해서 뒷머리를 긁적이며 꾸벅 꾸벅 인사를 하면서 지나가려고 했는데 사람들 사이에 대표팀 선수들도 있는 걸 보았다.
"아하하하 언니! 뭐해?"
"무슨 일이야?"
"아 몰라! 일단 박수나 쳐줘!"
대표팀 선수들은 자신들의 짐을 챙기느라 상황을 보진 못했는지 얼굴들에 물음표를 띄우며 단지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는 바로 이동하려다가 종이를 들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고는 금방 사인 해드리고 이동하겠다고 주장언니에게 말하니 천천히 하고 나오라고 말했다.
"...우리도 사인 할 줄 아는데.."
"아하하하! 불만 있으면 더 열심히 해서 유명해지라고!"
"하긴.. 지혜 정도면 이제 거의 프리미어리거 수준이니까.."
그래도 간간히 지나가려는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사인 요청이 와서 그녀들도 행복한 미소를 띠며 사인을 해주었다.
***
"으음... 왜 안나오지?"
"여자 축구 대표팀 도착시간은 이미 훌쩍 넘었는데... 뭐 화물 문제 때문에 늦게 나오는 경우도 많으니까 기다려야겠지.."
"같이 입국한놈이 대표팀 선수들 안에서 사람들한테 사인 해주고 있대."
"팬서비스는 어쩔 수 없지... 후우... 기다리자고. 오늘 다른건 몰라고 대표팀 선수들 사진이랑 이지혜 선수 코멘트는 따내야만 해."
이미 국내에서 이지혜에 대한 인기는 엄청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여자 축구라는 비인기 종목이 이렇게 주목 받는 이유가 이지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남자 축구 리그에서 뛴다는 사실 하나가 엄청난 크기의 장작 하나를 더 넣어버린 수준이니까.
기자들은 신경이 날카로운 수준이다. 올림픽 특수는 언제나 조회수를 폭발시켜주기 때문에 이슈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하기 때문에 여자 축구 대표팀을 빼놓는건 현재 상황에서 미친짓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역사책에 적힐만한 위대한 업적. 여자 축구 종목 금메달. 수백년간의 올림픽에서의 최초라는 타이틀은 어마어마하게 무겁다. 실수로라도 여자 축구 대표팀에 대한 불온한 발언을 한다? 현재 상황에선 무덤에 묻히는 수준이 아니라 묻히고 나서 부관참시까지 당하고도 남을 만한 분위기다.
웅성 웅성
"곧 나온대. 참 오래도 걸리는 군."
"그래도 팬서비스 정신이 대단한가보네."
"이지혜 선수 곁에서 지켜보았다는데.. 한번도 인상쓰지 않고 한명 한명 정성스래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줬다는군.. 이것도 이슈거리야."
"크으..."
"나온답니다!"
기자들은 한명의 기자가 소리침과 동시에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찰칵!
하지만 입국장에서 나온건 여자 축구 대표팀이 아니라 왠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낀 남성들.
"오오... 기자들도 꽤 많이 나왔네?"
"벌써 이렇게 소문이 났다고? 하하! 오랜만에 소속사에서 돈 좀 풀었나보네?"
"크으... 자자 빨리 준비해!"
남성들이 갑자기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기자들 앞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뭐하는거야! 빨리 나와!"
"씨발! 가리지 말고 나와! 경비!"
"...?"
갑자기 기자들이 카메라를 내리고 욕지거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남성들은 이해를 하지 못한 표정으로 멍하게 서있기 시작했다.
그 순간 공항 경찰들이 남성들의 몸을 붙잡고 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왜 이래!"
"우리가 누군줄알고 이래?!"
"아씨.. 지금 누구 나오는 줄 알아요?! 저항하지 말고 나오세요!"
"누가나오는데 그래?!"
남성들은 입국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확인 하기 위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엄청난 휘광을 뽐내며 앞장서서 나오는 여성을 보았다. 세계를 투어하며 보았던 연예인들도 저 수준은 아니였다. 그 순간
찰칵 찰칵 찰칵!
"여기! 여기 봐주시죠 이지혜 선수!"
"여깁니다! 여기에요!"
"축하드립니다! 금메달!"
"와아아아아아!!!"
기자들도 한국인이기에 그 결승전을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애초에 스포츠 기자들은 이지혜의 존재를 알고서는 예선 리그 부터 보았기에 더욱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안전하라고 만든 세이프 라인을 쳐놓은걸 뛰쳐들어가서 사인을 받고 싶은 욕망을 억지로 억눌를수 밖에 없었다. 카메라로 보던 것과 실물을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기에..
물론 여자 축구 대표팀 모두가 사람들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오고 위대한 선수들로 기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슈퍼스타.
이지혜에게서는 알 수 없는 슈퍼스타의 기운이 느껴졌다. 몇몇의 기자들은 등장하자마자 셔터를 눌렀지만 대부분의 기자들은 멍하게 선두로 나온 이지혜를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
안전하게 끌려가는 남성들도 어안이 벙벙한채 끌려갈뿐이였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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