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105화. 한국으로!(3)
* * *
"도대체..."
한 남자의 울분이 섞인 목소리가 라커룸안에 흐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
"어휴.."
"또 시작이야?"
팀 동료들도 그 남성을 멸시하는 표정이 아니라 안타까워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꼴을 보아하니 하루이틀 있었던 일이 아닌 듯 보였다.
"도대체 언제 오시는 거야?!"
콰앙!
"제발 그만해! 라커룸 다 때려 부수게 생겼네!"
웰링의 주장 폴 조지가 지긋 지긋하다는 표정으로 남성을 어깨를 붙잡고 통곡하듯 외쳤다.
"흑... 흑... 내 시간은 아직도 흐르고 있지 않아..."
"....중증이군"
"도저히 눈 뜨고 볼 수가 없네.. 그 정도야?"
"...그 정도라니! 당신들은 정말 배가 불렀군!"
엄한 라커룸을 폭행하던 남성이 뒤로 돌아 팀 동료들을 바라보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꽤나 유창한걸 보니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게 느껴져 왔다.
"이봐 제리!"
"...네"
제리는 이 상황이 꽤나 불편하다. 눈 앞의 남자는 오를란도. 롤랑이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한 이 남자는. 분데스리가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던.. 아니 이름을 날린다 수준이 아니라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위대한 선수 중의 한명이다. 저기 구석에 있는 롤랑이랑 같이 이적온 이적생 르노 드 몽튀방은 상당히 조용한 성격 같은데 롤랑은 전혀 반대의 성격의 소유자인 듯 하다.
가뜩이나 위대한 선수가 같은 클럽에서 뛴다는 사실도 어안이 벙벙한데 이 남자는 웰링의 다른 사정보다 이지혜에 대한 소식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으니 어이가 없을 정도 였다. 사실 기다린다는 수준이 아니라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해간다는 기분이기도 하다. 도대체 이 위대한 선수의 무엇이 그렇게 참을성을 없게 만든 것인가..
"너가 이 클럽에서 여왕님이랑 제일 친하다며?! 뭔가 연락 받은게 없어?!"
갑자기 내 앞으로 순간이동을 하듯 날라와 내 어깨를 붙잡고는 침을 튀기 듯 소리를 친다.
"크읍.. 아뇨.. 저도 올림픽 기간동안 연락 받은 적이 한번도 없어요..."
"...친구 맞아?"
"...저도 요새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해요.."
그래도 클럽 생활에서 꽤나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착각이였는가하며 고민하기 시작한 제리.
"하하하! 아마 눈코뜰새 없이 바빠서 그렇겠죠~"
웰링의 덩치를 담당하고 있는 톰이 장비를 챙겨입으면서 웃으면서 말을 했다.
"크윽... 올림픽은 이미 끝난거 아니야?! 왜 안오는거지?!"
자신의 엄지 손톱을 깨물기 시작하는 롤랑.
콰앙!
"아하하하하!! 걱정말게! 아마 다음주면 돌아올걸세. 한국에서의 일정이 있다고 하니 이해해주자고!"
라커룸을 열고 알렉스 감독님이 들어오면서 소리치신다.
"기분이 좋아보이시네요 감독님"
제리가 씁쓸하게 웃으며 기뻐보이는 알렉스 감독에게 말을 걸었다.
"당연히 기분이 좋지! 우리 간판 스트라이커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물론 여자 종목이지만 기쁜건 달라지지는 않지!"
"다음주?! 다음주요! 똑똑히 기억했습니다!"
롤랑이 알렉스 감독에게 달려가서 어깨를 잡고는 침을 튀기며 소리를 쳤다.
"으...으응... 일단 그렇게 연락이 왔네만.. 크흠! 일단 진정 좀 하고! 지혜가 돌아왔을때 클럽에서 긍정적인 무언가를 느껴야 하지 않겠나! 그걸 위해서는 우리가 프리시즌에 더욱 나은 팀 워크를 쌓아 놓을 필요가 있지!"
"분위기가 상당히 좋아서 다행입니다."
폴 조지가 라커룸을 둘러보면서 팀 동료들의 안색을 살펴보는데 승승장구 해나아가고 있는 프리시즌에 다들 자신감이 차있는 표정이였다.
"그렇지! 그걸 위해선 서브 멤버들이 더욱 고생해주어야겠지만.. 언제나 도움이 되고있다네 심슨."
이제는 완전한 후보 교체 선수로 자리를 잡은 심슨은 불만이 없는 표정이였다. 애초에 자신은 챔피언십 리그에 적합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는데 요새 팀 분위기 덕분에 자신의 실력이 상승하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는 오히려 이 위치가 자신에게 더욱 유리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저는 지혜 만큼 할 자신은 없어요. 하지만 팀을 위해 희생하는데 가치를 느낍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 부터 뛰어온 웰링에 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내치지 않고 후보라도 써주는 것에 더욱 감사함을 느낀다. 물론 주급도 상당히 올랐긴 하지만.
"원톱 스트라이커 전술로만은 컵 대회에서 승승장구하기에는 조금 벅찰거야. 이지혜의 부담감이 커지면 커질 수록 부상의 위험이 있으니.. 여러 전술에 혼동이 생기는 건 미안하지만 우리는 해내야만 해. 이지혜라는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챔피언십 리그에 머물게 된다면 상당히 쪽팔리는 일이 될거니까."
이미 많은 분석가들이 내놓은 이지혜의 몸값은 어마어마 하게 치솟고 있었다.
물론 이는 실력뿐만 아니라 여자라는 특수성과 외모가 가진 스타성을 포함했기에 거품이 끼어있긴 하지만, 대체로 들여다 보면 롤랑과 르노를 제외한 웰링의 선수들을 전부 포함해도 될까말까한 수준이였으니까.
"흐음... 감독님의 전술이 공격형 전술에서 수비형 전술로 조금씩 변화하는 느낌입니다."
폴 조지가 자신의 느낌을 조심스럽게 알렉스 감독에게 피력했다. 상당히 건방지게 느껴질 수 도 있는 발언이겠지만, 밑바닥에서 부터 같이 올라온 동료라서 그럴까, 알렉스 감독은 그리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은 아니였다.
"나도 고민을 많이 하고는 있네만.. 이미 공격력은 충분하다고 느끼고 있네."
전술판에 이리 저리 선수들을 배치하며 선수들에게 전술을 보여주기 시작한 알렉스 감독.
"자네들이 걱정하는건 공격적이였던 전 시즌과 너무 차이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는게 아닌가?"
"그렇죠."
"흐음..."
롤랑과 르노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알렉스 감독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이 둘은 세계적인 클럽에서 뛰다온 경력이 있으니 오히려 이런 약팀에서 뛰는 전술도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난 축구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하네. 승리가 최우선이긴 하지만... 이런 재밌는 선수들을 데리고 재미없는 축구를 하기엔 너무 아쉽게 느껴진단 말이지..."
알렉스 감독은 이지혜의 위치를 공격수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수비라인에 우겨 넣기도 해보았다.
"어어..."
"아하하하하!! 다들 보았지 않는가? 지혜의 수비를"
"하지만 팬들은..."
"자자... 난 지혜를 수비에 넣어도 수비를 시킬 생각은 없어."
"아... 아하하하하!!"
롤랑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아... 그런거군요.."
"이제 다들 실력이 충분한 라인업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니 말이지.. 상대팀을 혼란시키는 것 만큼 재밌는 건 없다. 이말이지."
"그럼 우리가 해야할건 하나겠네요."
가만히 말을 듣고만 있던 르노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해야할거...?"
멍하니 팀 동료들을 바라보던 제리가 멍청한 목소리로 내뱉고 말았다.
"하하... 우리가 여왕님의 기사들이 된다... 이말이지.."
"최고야! 최고라고! 난 최고의 감독을 만나고만거야!"
"연습해야할게 산더미야. 아마 지혜가 돌아와도 연습을 계속 이어져야만 할거다. 그 전에 우리가 먼저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만 하겠지."
"아하하하!! 정말 기대가 됩니다!"
롤랑이 만세를 하면서 라커룸에서 방방뛰기 시작했다.
"하아.. 점점 미친 사람들만 팀에 들어오는 것 같은데..."
"하하하! 내가 보기엔 너도 미쳐있는 사람 중 하나인 것 같아!"
톰이 제리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지만 제리는 신경질적으로 팔을 쳐내었다.
"시발! 니가 젤 미친 사람이야! 이 근육 머신 같으니라고! 시즌 오프동안 근육 트레이닝을 얼마나 한거야?!"
"내가 보기엔 너가 너무 트레이닝을 안하는 것 같은데.. 그런김에 오늘 나랑 근육 트레이닝을 하고 가자!"
"안해!"
"해야지. 키티가 널 한 손으로 들고 휘두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이런 젠장!"
"아하하하하!!!"
그렇게 웰링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은 다음 친선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라커룸을 나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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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의 헤프닝은 꽤나 조용하게 넘어갔다. 사실 더 크게 터질 수도 있는데 누구의 입김이 닿은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런걸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자 축구 대표팀과 해후를 가지고 다른 종목의 대표팀들과 행사가 하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일정이 있다고 하고는 불참했다. 축구협회는 이에 조금 화가난듯 보였으나 나에게 직접 무언가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고 레베카씨와 공주님이 뭔가 입김을 불어 넣은 것 같으니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으음..."
"지혜야 거의 다 왔어."
"쓰읍..."
차에서 곤히 자는 나를 가은 언니가 톡톡 치면서 깨웠다.
"흐읍! 여기야?"
"응 우리 모두 처음 와보는 거라 할말이 없네."
나랑 가은 언니는 뒷자석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았다.
[이지혜 풋볼 센터]
"이 걸 내가 벌써 할만한 건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풋볼 센터라니.. 보통 월드컵이나 이런 저런 세계적인 대회에서 수준급의 퍼포먼스를 보인 사람들이 만드는 시설인데... 아니 생각해보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니까 이 정도는 할 수 있는건가?
"충분합니다. 지혜씨의 퍼포먼스가 워낙 압도적이여야 말이죠.."
운전을 하던 레베카씨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다독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말씀드리지만 아직 회원이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아직 홍보를 하지는 않았거든요. 축구계쪽 인사들의 자제들이 몇명 들어와있는 상황입니다만...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 해주시길 바랍니다. 말 그대로 이 시설은 지혜씨가 상징이니까요."
이 시설의 대부분의 자본은 공주님의 지갑에서 나왔지만 나도 적지 않은 돈을 투자했다. 내가 치트 수준으로 얻은 이 육체로 벌은 돈을 사회로 환원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다. 처음 레베카씨와 상담했을 때도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고, 나도 이 시설에서 대단한 친구가 나오길 바라니까.
"그럼! 우리 미래의 새싹들을 만나러 가볼까?"
나는 기지개를 쭈욱 피고는 차에서 내려 시설을 향해 걸어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