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107화. 한국으로!(5)
* * *
"으음.. 저 아이요?"
나는 김기철씨가 지목한 아이를 깊게 지켜보았다.
여자아이가 보인다.
조금은 깡말라보이는 체구이지만 등은 쭉 핀 상태로 움직인다. 나이는 10대 중반이나 됬을 까 싶다. 너무 말라서 더욱 어려 보이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이 섞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게 실력이 돋보인다. 물론 나는 프로 선수들의 실력에 눈이 절어져있는 상태라 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축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저 아이는 상당히 잘 한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놀고 있는 중이지만 특출나지 않습니까?"
"호오..."
레베카씨도 여러 유망주들을 지켜보아온 짬이 있어서 그런지 눈에 불을 키고는 아이를 보기 시작 했다.
"꽤 잘하네요..."
나는 당장 느끼는 감정을 입에서 내뱉었다.
"아하하 잘하긴 하지만 유소년에 저 정도로 특출난 아이는 꽤 자주 나오죠. 하지만 제가 자랑을 하고 싶은건 그 부분이 아닙니다."
김기철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주변의 듣는이가 없는지 고개를 돌리면서 눈치를 보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희 센터의 운영 원칙 중 제일 중요한 것. 바로 자금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가장 부합하는 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제가 끌어들인 아이니까요!"
김기철씨가 가슴을 쭉피고는 자랑을 하 듯 이야기를 했다.
"흠..."
나는 흥미가 생겨서 귀를 열고 경청하기 시작했다.
"...저 아이. 고아입니다."
혹여나 아이가 들을까 손으로 가리며 작게 이야기를 했다. 나와 동료들은 흠칫 놀라고 말았지만 티를 낸다면 아이가 눈치를 챌 수도 있으니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우리 나라는 뭔가를 할려본 돈이 필요합니다. 돈. 돈. 돈! 그놈의 돈이 뭐라고.. 심지어 자그마한 맛있는 무언가를 먹으려고 해도 아이들에게는 꽤나 커다란 돈이 필요하죠."
크흠! 하고는 목을 풀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약 한달전에 한 수녀님이 저희 센터를 방문 하셨습니다. 딱 센터가 오픈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죠. 저도 꽤나 당황했습죠. 왠 축구 센터에 수녀님이라니..."
그 날을 회상하는지 꽤 어색한 미소로 고개를 젓는다.
"수녀님이요?"
내가 김기철씨에게 물으니 긍정의 고개짓을 했다.
"네. 근처에 고아원을 운영하는 성당이 있더군요. 센터가 오픈을 하길 기다리다가 찾아온 것이 분명했습니다. 처음엔 왠 어린 소녀의 손을 잡고는 오셔가지고 센터에 가입하는데 얼마냐고 다짜고짜 묻더군요."
"호오.. 그래서요?"
레베카씨가 눈빛을 밝히며 김기철씨를 바라보았다.
"아하하하! 제가 자랑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무상입니다. 물론 이 일은 비밀로 진행했구요."
"...아주 좋습니다."
김기철씨는 비밀이라고 했지만 아마 레베카씨는 이 일이 딱히 비밀로 지켜지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선행이 밝혀진다면 내 위상은 더 올라갈테니까.
"수녀님은 물론 금액을 부담하려고 하셨습죠. 꽤나 단호한 분이시라 애를 먹긴했는데.. 가끔 여기 센터 아이들에게 간식거리 같은걸 조금 제공 해주는 걸로 합의를 보긴 했습니다만.. 저희 쪽에서 준비하는 간식거리도 상당해서 말이죠. 하하하하!"
고아라. 꽤나 기구한 인생을 살아온 아이가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괜히 끼어들어서 아이를 혼란스럽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분명 아이는 수녀를 자신의 부모로 대할 것이고, 고아원의 아이들은 가족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재능은 어느 정도라고 보시나요?"
가은 언니가 김기철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흐음.. 잘만 커준다면 국가대표까지 가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
국가대표라니. 국가대표가 뉘집 개이름인가? 여자 축구 국가대표라고 쉬운게 아니다.
"저렇게 마른 체형이지만 제가 봤을때는 영양만 잘 섭취한다면 피지컬은 더욱 좋아질겁니다. 저 아이가 지금 12살인데 벌써 160 중반을 넘어서고 있으니까요."
"호오..."
꽤나 우월한 피지컬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영양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했을 텐데도 몸이 저 정도로 성장했다면.. 케어만 제대로 받는다면 어떤 피지컬이 나올지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아이가 상당히 투지가 대단합니다. 어린 아이에게 투지란 단어가 적합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게 보통 아이들과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포니테일을 한 여자아이는 흑발을 휘날리며 남자 아이들 사이로 요리조리 잘 피하면서 공을 드리블 하고 있었다.
"저는 아직 저 아이에게 특별한 코칭을 하지 않았습니다. 엘리트 코스 아이들은 저 나이땐 이미 코칭을 받겠지만, 저 아이는 몸이 만들어 지지도 않은 상태라 지켜보고 있죠. 그리고 축구에 굉장한 흥미를 가지고 있는 아이에게 괜한 입김을 불어 넣는 것도 거부감이 들고요."
생각보다 자신의 확고한 마인드가 잡혀있는 사람인 듯 했다.
"으음.. 저 아이가 저를 아나요?"
"...흠 잘 모르겠습니다. 맨날 센터 입구에서 볼 때 이지혜 선수의 사진을 지긋이 볼 때가 많긴 한데.. 아는지는 정확히.."
"이름이.."
"아! 이지연입니다."
"그렇군요."
나는 침착한 마음으로 잠시 아이들과 놀겠다고 전하고 센터로 들어가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었다.
다시 필드로 나와보니 가은 언니는 영상을 찍겠다며 카메라를 세팅하고 있었고, 주변의 아이들도 처음 보는 카메라에 흥미를 가지면서 가은 언니를 괴롭히고 있었다.
"누나! 누나! 뭐해요?"
"와!! 카메라다! 방송해요?"
"아잇! 얘들아! 조금만 비켜줄래?"
"와아아아 나 방송나온다아아아!!"
역시 아이들이라 그런지 에너지의 화신들이다. 가은 언니는 지쳐보이는 얼굴로 간이 의자제 주저 앉아 아이들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있었다.
레베카씨와 김기철씨, 그리고 공주님은 잠시 재정적인 이야기를 하겠다며 벤치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걸 궃이 밖에서 하겠다는 걸 보니 나를 지켜보고 싶다는 이야기겠지.
나는 살살 몸을 뛰어보면서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여기!"
"패쓰!"
꺅 꺅 소리를 질러대며 놀고있는 아이들. 정해진 규칙이라고는 손으로 공을 건들면 안된다는 축구의 근본적인 규칙 뿐. 아이들은 근본적인 축구의 재미만을 위해서 필드 위에서 달리면서 놀고 있다.
나는 공을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주인을 잃어버린 타이밍에 치고 들어가 공을 잡고 플릿플랩을 하면서 아이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우왁!"
"뭐야?!"
공위에 발을 얹어 놓고 손을 허리 위에 올려 놓고 아이들을 보면서 씨익 웃으니 아이들의 놀란 표정이 너무나 귀여웠다.
"...누구세요?"
"와! 이쁜 누나다!"
"키 엄청 크다..."
"...이쁜 언니다.."
"공 줘요!"
"뭐야?!"
"..."
각각 자기 할말만 하는 아이들을 보니 진짜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였다. 이지연은 한 쪽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얘들아! 나한테서 공을 뺐으면 내가 선물 줄게!"
나는 팔을 벌리고 아이들에게 어서 달려들으라며 소리를 쳤다.
"선물?! 뭔데요!"
"비밀이지~ 빨리 뺏어봐~"
"내가 선물 받을거야!"
"이익!"
그래도 남자아이들이란건가. 남자아이들이 먼저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짧은 다리로 어색한 태클을 걸어도 나에겐 그저 선풍기일 뿐이다. 몸을 크게 움직일 필요도 없이 제자리에서 공을 좌우앞뒤로 굴리면서 아이들의 발을 피하기만했다.
"이익!"
"헥 헥"
"뭐야 이 눈나 엄청 잘해!"
남자 아이들은 뭔가 잘 못 흘러가고 있다고 느끼는지 거리를 잠시 벌리면서 나에게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음?'
그 순간 뒤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져서 바로 몸을 돌리면서 공을 뒤로 뺐다.
"...큿!"
어느샌가 내 뒤에 돌아온 이지연이 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오... 이녀석 봐라?'
나는 일부로 이지연의 앞으로 공을 굴리면서 맛있는 먹있감이 여기있다며 미끼를 흔들었다. 하지만 이지연은 달려들지 않고 내 눈만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오'
축구에 대해 아무런 코칭을 받지 않았다고 했던가. 진짜로 안받은 건가? 여기 센터에 가입하기 전에도 받은 적이 없는 건가? 보통 아이들이라면 달려들고 남을 정도 일텐데... 하고 잡생각을 하는 순간 이지연이 달려들었다.
"엇!"
나는 공을 다시 뒤로 돌리며 사수 할 자신이 있었지만, 일부러 공을 살짝 건드리며 이지연에게 공을 내주었다.
"...헷"
나를 이겼다는 자신감이 생겼는지 녀석의 표정의 거만함이 살짝 보였다.
'귀엽네. 애는 애라는 건가?'
"오! 너 쫌 하는데?"
나는 오버를 떨면서 이지연에게 잘한다며 치켜세워주었다.
"쟤 진짜 잘해요!"
"남자들보다 잘함요!"
"레알루!"
"그래? 그럼 이 언니 뚫고 지나 갈 수 있겠어?"
나는 이지연이 나를 드리블 해서 제칠 수 있도록 편하게 거리를 벌려주었다.
"..."
나를 노려보다가 공을 톡톡 건드리며 다가온다. 기본기는 전혀 되어있지 않은 모습이지만 왠지 그 야성성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툭!
순간적으로 내 오른쪽으로 툭 건들면서 달려가는 자세를 취하다가 내가 막으려는 스탠스를 취하니 격한 상체 무브먼트를 하며 왼쪽으로 공을 돌려놓은 대단한 볼 컨트롤 능력을 구사해내는 이지연.
나는 일부러 막지 않고 나를 지나가면서 다치지 않게 자세를 오른쪽으로 뺐다.
"와아아아!!"
"와! 지연이가 저 누나를 이겼어!"
"이야아아아!"
나를 제치고 공을 잡고는 허리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나를 보는게 꽤나 귀엽다. 아마 나를 따라하는거겠지.
"이야! 지연이? 이름이 이지연이야?"
"...네"
순식간에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오더니 자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축구 좋아하니?"
"...네"
"그래? 언니가 선물 줄테니까 잠깐 저기 벤치로 갈까?"
"..."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따라오는데 자그마한 미소가 입가에 걸린걸 보니 아이는 아인가 보다.
나는 벤치에 이지연을 앉혀 놓고 레베카씨를 불러서 선물 하나만 준비해달라고 부탁을 드리니 레베카씨는 아름다운 미소를 이지연을 보면서 짓고는 자리를 떠났다.
"지연이는 축구를 왜 좋아해?"
"..."
"말하기 싫어? 편하게 말해도 괜찮아. 언니가 누군지 알아?"
"...으응?"
나를 보면서 고민을 하는 이지연.
"저어기. 여기 센터 복도에 걸려있는 사진 누구게?"
"...어?!"
"그래. 내가 이지혜란다."
내가 이지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이지연은 자신의 입을 양손으로 막고는 눈을 크게 부릅뜨고 나를 바라본다.
"지연이가 축구를 잘하더라고~ 그래서 흥미가 생겨서 말이지.."
"언니... 언니!"
전에 보았던 새침스런 모습은 어디갔는지 볼을 붉히며 나를 바라보는게 마치 슈퍼 스타를 만난 여성 팬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축구는 왜 좋아하는 거니?"
"...이건 비밀인데요오... 진짜 비밀이에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럼!"
"수녀님에게 들은 건데요오.. 제가 버려졌을 때. 제 옆에 축구공이 하나 있었다고 해요. 수녀님은 그게 그냥 어디서 굴러온 것 같다고 했는데, 제 생각은 그게 아니에요. 만약 제가 축구를 잘해서 티브이에 나가면 부모님이 저를 찾아오겠다는 거라고 생각해요!"
양손을 꼼지락 거리며 귀엽게 말하는 이지연의 사연은 전혀 귀엽지 않았다. 너무나도 무거운 이야기일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
"헤헤! 근데 이건 그냥 축구를 시작한 이유이고요! 제가 축구를 좋아하게 된건요! 너튜브에서 언니 영상을 매일 봐서 그래요! 저도 언니 처럼 축구를 잘하고 싶거든요!"
"...그렇구나!"
뭐라 말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였다. 나는 이지연을 품에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지연이 장하네~ 축구도 잘하고~"
"헤헤! 그렇죠?"
이렇게 밝은 아이였나? 나 참... 부모란 새끼들은...
나는 키다리 아저씨가 되기 위해 이지연에 대해 계획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