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108화. 한국으로!(6)
* * *
이지연이란 아이가 상당히 눈에 밟히건 사실이지만, 기구한 인생을 사는 아이가 이 아이만 있는 건 분명 아니다. 내가 이지연을 품에 품고 도와줌으로써 이지연을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내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나중의 일은 나중의 지혜가 해결해주겠지 하며...
내가 주로 위치할 영국에 데리고 가는 것은 상당히 좋지 않은 생각이라고 판단했다. 이 아이는 분명 제대로 된 코칭을 받는다면 뛰어난 선수가 될 수는 있겠지만, 본인이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과 떨어져야 된다는 것이다. 아직 너무나도 어린 아이에게는 너무 가혹한 계획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센터에 주로 머물게 하면서 최고의 코칭과 지원으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과 비교하면 나는 돈이 차고 넘치는 수준이였으니까.
"자! 언니가 주는 선물!"
기대감을 가지고 내 손 주위를 바라보는 이지연에 의해 나도 왠지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라 가슴이 두근 두근 대는 것 같았다. 전에 아이들은 그렇게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마냥 아이들은 시끄럽고 귀찮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같이 있으니 그런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귀엽다는 생각만 들었다.
"후훗..."
선물을 가져다 준 레베카씨마저 아이의 귀여움에 빠졌는지 흐뭇한 표정으로 이지연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선물 보따리를 이지연에게 건내주고 필드를 보니 공주님과 가은 언니가 또 다른 선물보따리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역시...
"우와!!"
"뭐에요 이거?"
"꺄아!"
아직 10살이 채 되지 않은 아이들 부터 10대 중반까지의 아이들 모두 하나 같이 가슴에 선물보따리를 품고는 해맑게 웃고있다.
이지연을 다시 필드로 보내고는 김기철씨와 동료들과 다시 모였다.
"아이들이 하나 같이 밝아서 보기 좋네요.."
"그렇죠? 센터가 업무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할게 너무 많아 힘들 때 마다 밖으로 나와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입니다. 허허"
왠지 김기철씨의 말이 이해가 되는 기분이다. 나도 한국에 올 때 마다 센터에 방문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센터에 시급하게 필요한게 뭔가요?"
"물론 코치들입니다. 좋은 인력은 언제나 부족한 상황이니까요."
"흐음..."
나는 인맥이 부실하다. 하지만 좋은 인력을 찾는데 아주 좋은 사람을 알고 있다.
"그 부분은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리고 이지연에 대한 부분입니다만.."
나는 본론을 꺼내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이 문제는 몇 일 심히 고민 해보는게 좋겠지만, 가슴 속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외침이 있었기에 한번 질러보기로 마음 먹었다.
"흠.. 무슨 말씀 하실지 예상이 됩니다만.. 그 부분은 수녀님이랑 이야기 나눠보는게 어떠실까요?"
"...그렇네요 하하."
아무래도 현재 이지연이 소속된 고아원에서 보호자로 등록되 있는 사람은 수녀님일 것이다. 자문을 구할 거면 수녀님이랑 이야기를 나눠 보는게 좋겠지.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죠."
"...벌써 가시는겁니까?"
서운하다는 표정을 짓는 김기철씨에게 영국으로 출국전에 한번 만나 식사를 하자고 약속을 하니 그제서야 우리를 놓아주었다.
***
"여기가..."
희망 고아원이라는 자그마한 문패가 걸려있는 상당히 오래된 듯 보이는 자택이 보였다. 자택이라고 부르기에도 많이 허접 해 보이는 건물이였다. 바로 옆에는 성당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었는데 이 조차 허름한 건물이였다.
나의 인식안에서의 종교란 앞에서 선한척하고 돈이란 돈은 다 빨아먹는 자들이라고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보라 주변의 교회 건물만 보더라도 상당히 거대하고 신축이 된듯 보이면서 주변의 자동차들은 대부분 외제차. 물론 편협된 생각은 상당히 좋지 않다는 걸 알고있다.
"..."
"...정말 여기에 사람이 사나요?"
공주님이 거짓말 하지말라는 듯 한 표정으로 건물은 쳐다보고 있었다.
"공주님.. 잘 알고 있으실거라 생각하지만.."
"알아요.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레베카씨는 평생 부족함 없이 살아온 마야 공주님이 말실수를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표정으로 공주님을 바라보았지만 공주님은 머리칼을 목 뒤로 쓸어넘기면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래도 보기와는 달리 생각도 깊은 사람이니 실수는 하지 않으실거다.
"자.. 미리 연락은 드렸습니다. 아이들은 전부 나가있는 시간이니 얼른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죠."
레베카씨가 우리를 이끌고 성당으로 들어갔다.
성당은 생각보다 넓었다. 매우 낡은 시설이긴 했지만, 누군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공을 들여서 건물을 관리해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벽면은 금이가는 곳이 있지만 바닥과 유리창이 정말로 깨끗해서 깨끗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연락 해 주신 분들이신가요?"
나긋 나긋한 목소리가 성당 안쪽에서 들려왔다.
누가 보아도 수녀님이셨다. 나이는 40대에서 50대 사이로 보일 정도로 중후해 보였지만 인상에서 숨길 수 없는 선함이 느껴졌다.
"네! 연락을 드렸던 이지혜라고 합니다!"
"어우~ 기운이 넘치시네~ 미녀분들이 이렇게 찾아와주시니 눈이 부시군요~"
입을 가리면서 호호하고 작게 웃으시는 수녀님. 아무래도 나에 대해 자세하게 아는 듯한 눈치는 아니셨다.
"일단 사무실로 이동하셔서 이야기를 나누시죠.."
사무실로 이동하니 사무실은 일반적인 사무실로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고아원을 운영하는 성당이라서 그런가 칙칙하지 않고 각종 스티커와 장난감들로 꾸며져 있었다. 고아원 아이들도 이 사무실에 와서 노는듯 보였다.
"차는 어떤걸로 드릴까?"
"아! 그냥 물만 주셔도 괜찮습니다!"
"아이고~ 어떻게 손님이 오셨는데 아무것도 안 드릴수가 있겠어요?"
호호하고 웃으시면서 각종 다과와 차를 주신다. 김기철씨가 조사를 해보았다고 하면서 말해주는 걸 들어보니 성당의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는걸 알고 있기에 이런 사소한 배려에도 부담감이 느껴져온다.
"아! 일단 저희 이거.."
그래도 맨손으로 방문 할 수 없기에 간단한 간식거리를 준비해 왔다. 너무 비싼걸 주면 받는 사람이 부담스러워 할 수 있다는 가은 언니의 조언에 따라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마카롱 같은 달달한 것들만 준비해서 왔다.
"아이고~ 어떻게 이런걸 다..."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짓는 수녀님. 하지만 챙겨가시는 속도가 재빠르시다. 역시 많은 아이들을 돌보는 어머니라는 건가.
"기부.. 흠... 기부로 괜찮나? 솔직히 저는 좀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나는 이 성당에 방문하기 전까지 고민을 해봤지만 단순한 기부로는 적절한 케어를 해준다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물론 다른 불우한 아이들 보다는 과분한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내가 돕고 싶어하는 아이인데 오로지 돈만 케어해서 될까라는 고민을 했다.
"기부도 상당히 감사한 일이죠~ 이지혜씨는 어떤걸 생각하고 계신지요?"
"일단... 이 성당이랑 고아원에 대한 특별한 애정같은게...?"
"네? 애정은.. 딱히 없어요. 단지 없는 생활에 겨우 아이들이 들어와 생활할만한 정도죠.."
쓴웃음을 짓는 수녀님. 아무래도 돈지랄을 좀 할때가 온 듯 싶다. 김기철씨는 내가 출발하기전에 과도한 기부는 역효과가 날 수 도 있다고 조언을 했지만 나와 공주님은 정반대의 생각을 했다. 돈지랄을 해서 불우한 아이들이 나중에 독립했을때 격차를 견디지 못한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립을 도와주면 되는 일이고, 애초에 아이들은 불필요한 불행을 겪어왔다고 생각한다.
"흐음...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설에 들어와 있는 아이들 대부분이 제 축구 센터에 가입되어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원래는 지연이만 가입시키려고 했는데.. 센터장님이 워낙 아이들을 데리고 와달라고 극성이셔서.. 아이들도 흥미를 가져서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가서 뛰어 노는 정도랍니다."
"세상의 모든 불우한 아이들을 도울 수는 없지만.. 제 품에 들어온 아이들은 확실하게 돕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부족한건 사랑과 관심과... 그리고 돈아니겠습니까?"
바로 돈 이야기를 꺼내면 부담감을 느끼실 것 같아서 사랑같은 간질 간질한 단어를 선택했다.
"...그렇죠. 사실 무언가를 하려면 돈이 항상 필요하니까요. 아이들에게 못해주는게 너무 많아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기부하시는 분들이 별로 없나보네요?"
"안타깝게도.. 기부금 영수증만을 위해 소액을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가끔 진지하게 오신 분들도 몇 번 기부 하시고 나서는 관심을 끊으시더라구요. 하지만 어쨌든 감사한일이죠."
"그럼... 이렇게 해보죠. 제가 아이들이 생활에 필요한 적당한 금액은 계속 기부할게요. 그리고 시설은 재건축을 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좋은 것만 보고 자라야 할 아이들이잖아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수녀님. 재건축이라니. 놀랄만 할 것이다. 억소리가 넘는 돈이 들어갈테니까.
"일단 제가 일정이 몇개 있으니 다시 찾아올게요.. 일단 레베카씨."
레베카씨가 현금이 들어있는 봉투는 수녀님에게 공손하게 건내주었다. 수녀님은 당황하는 표정 그대로 봉투를 건내 받고는 확인하더니 놀라신다.
"일단... 제가 영국으로 돌아가면 상당히 바쁠 상황이라.. 자주 챙겨드리지 못할 것 같아서요.. 아이들에게는 당분간 숨겨주시고 적절하게 사용 해 주셨으면해요."
수십년을 아이들을 위해 살아오신분이다. 내가 크게 걱정할 일은 없겠지. 봉투안에는 1억원 정도 넣어 놓았다. 나에게는 푼돈이지만, 이들에게는 생명의 동아줄과 같은 일이니. 아이들은 커가며 중,고등학교 막판엔 대학과 사회생활을 해야할테니 적은 돈이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나중에 영국으로 전부 초대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아이들에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네요. 하하하"
수녀님은 거절을 하려고 했지만 내가 바로 말을 끊어 버려서 내가 도로 받지 않을 것이라는 걸 눈치 채신 듯 하다. 감사하다며 몇 번 고개 숙여 인사하시는 걸 말리고는 성당을 나왔다.
"끄응~"
"좋은 일 했네."
"단지 좋은 일이 아니야. 지연이가 확실히 성장할 만한 발판은 준비가 되야 하잖아? 여기는 아이들이 지내기엔 너무 어두워."
나는 아무도 듣지 못하게 조용한 목소리로 가은 언니에게 말했다.
"그렇긴해.. 아무튼 일단 돌아가서 쉬고 다음 일정으로 가자."
우리는 그렇게 성당을 떠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