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109화. 한국으로!(7)
* * *
당분간 이지연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앞으로의 일이 너무 바쁜 것도 있고.. 당분간은 김기철씨가 알아서 신경을 써줄 것이니 몇일 뒤에 다시 만날 것만 신경쓰기로 하고 다른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다음은 어디로 가기로 했죠?"
"아! 다음은... 야구장이네요!"
또 야구?
"시구인가요?"
"그렇죠.. 아무래도 지난 시구가 워낙 반응이 좋았으니까요.. 한번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팬들의 요청이 엄청나게 들어오나보더라구요. 사실 일정이 급급해서 거절을 할까 고민을 했지만요. 생각 해보니 국내 팬들을 위해 팬 서비스하는 시간을 줄이는건 좋지 않다고 판단했어요."
레베카씨가 운전대를 잡고 백미러를 통해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국내 팬들을 위한 팬 서비스는 별로 없었던 수준이니까 이제는 이런 소소한 부분은 신경을 조금 많이 써줘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일반 사람들은 직접 내 경기를 직관할만한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럴때 확실하게 얼굴을 비쳐주어서 나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어주어야만 한다. 그전에...
"그.. 이제와서 말하기도 좀 그런데 내 방송 애들은..?"
거의 손에서 놔버린 듯한 기분이 드는 인터넷 방송. 이젠 거의 양심이 콕콕 찌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쯤되면 마붕이들은 이미 나에대한 욕으로 온갖 커뮤니티에 욕을 박아넣고 있지 않을까..?
"음...? 물론 아쉬워 하는 사람들이 많지~ 그래도 기다려 주는 사람이 많아서 다행이야. 딱히 악성글을 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어. 있다고 하더라도 방송 좀 켜달라는 이야기일 뿐이고.."
가은 언니가 자신의 태블릿으로 커뮤니티 글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않이... 우리 버려진거야...?]
올림픽 동안 방송 없는건 이해 할 수 있음.
그 전에도 경기가 많아서 방송이 경기 자체일 때도 불만이 없었음.
근데 아무리 그래도 한국에 왔으면 방송 한번은 켜줘야 하는거 아니냐 눈나 ㅜㅜ
ㄹㅇ 이러면 서운해 진짜.
언제는 우리 없으면 안된다고 하더니..
ㄴ 사랑은 변하는 법이라고
ㄴ 그 사랑 내꺼였는데..
ㄴ
ㄴ 진짜 정신 나갈 것 같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너튜브에는 별에 별게 꾸준히 올라오긴 하던데.
[그나저나 오늘 마리눈나 시구한다는데]
야발 야근 때문에 못간다고 ㅜ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ㅈㄴ불쌍하누
응~ 난 가서 직관할거야~ 사인도 받을 거야~
사인 해줄 시간이 있을까?
ㄴ 그건 모르겠는데 눈나 팬 서비스 마인드가 제대로라 가능하면 해줄걸?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 하고 있어보인다. 나라는 사람이 간사한걸까? 바쁘다는 핑계로 이 감사한 사람들을 여태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니...
"흐음.. 너튜브는 어때?"
"곧 100만이 넘을 것 같네~ 이야~ 역시 외모가 장난이 아니라서 그런지 몇개월이나 됬다고 골드 버튼을 받게 생겼어?"
가은 언니가 쿡쿡 웃으며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콕콕 찌른다.
"아잇! 100만 밖에 안돼?"
"100만이 뉘집 개이름이야? 아직 외국 팬들이 너가 너튜브를 하는지 몰라서 그럴 가능성도 있어~ 솔직히 구독자 수는 시간문제라고 봐~"
너튜브를 슬며시 들어가 보니 인천 공항에 입국해서 잡다한 이야기를 하던 브이로그형 영상이 수십만 조회수를 넘기고 있었다. 그 외 축구 관련 동영상들은 백만이 넘어가는 조회수인 것을 보니 꽤나 반응이 온다고 보인다.
"솔직히.. 이제 너튜브나 방송은 팬 서비스 차원이라고 생각하는게 나을 것 같아. 여기에 집중을 하기엔 지혜가 너무 커져버렸는걸~"
생각해보면 그렇다. 현재 내 직업은 축구 선수지 너튜버가 아니니까.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나를 접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너튜브로 보는게 가장 빠르고 간편한 법이니까 버릴 수는 없다.
"시구.. 하나 아이디어가 있는데 어때?"
"음?"
"...?"
내가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설명하기 시작하니 레베카씨와 공주님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꺄하하!!"
"...왜 이렇게들 웃는거에요?"
나는 내심 삐진척 눈을 흘기며 둘을 바라보니 둘을 얼굴이 시뻘게진채로 웃고만 있다.
"아이~ 지혜는 왜이리 귀여울까~"
가은 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다. ...이게 왜 귀여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혜씨 처럼 작은 일에 계속 보답하려는 선수는 참 드물어요. 푸흡! 그래도 그건 재밌는 아이디어네요! 시구 준비하는 동안 제가 준비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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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 린 행 ~ 복합니다~ 이글스라 행복합니다~
뭔가 희망적인 노래가 경기장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아직 경기시간은 몇 시간이 남아있을 정도로 시간이 널널한데 이렇게 노래를 크게 틀어 놓은 걸 보면, 상당히 긍정적인 마인드의 팀이라는게 느껴져 왔다. 물론 나는 야구의 야자도 잘 모르지만.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요새 핫한 이지혜 선수가 아니십니까!"
오늘 내 시구를 담당 해 주실 구단의 관계자분이 허리를 굽신 굽신거리며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아... 반갑습니다. 이지혜라고 합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저는 여기 한화 이글스의 운영팀장인 이덕화라고 해요."
중년의 아저씨가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슥 닦아내고는 공손하게 인사를 받아주신다.
"...벌써 사람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은데요?"
"하하하! 이미 저희 구단에서 이지혜씨가 시구를 한다고 인터넷 기사를 쫘악~ 뿌렸거든요! 못 들으셨나요?"
"아... 그렇군요..."
나는 레베카씨를 슬쩍 바라보니 레베카씨는 슬며시 웃고는 인사를 건낸 후에 자리를 떠났다. 딱히 전해 줄 필요가 없는 소식이였다는 것이겠지.
"올림픽에서 시구가 상당히 인상적이였죠! 그 정도로만 해주셔도 충분합니다!"
"아... 네..."
상당히 하이텐션의 아저씨다. 스포츠계열에 종사하는 아저씨들은 다들 이런가? 웰링에서도 그렇고 이 곳 저 곳에 돌아다녀봐도 스포츠계열에 종사하시는 아저씨들은 뭔가 굉장히 텐션들이 높다.
"하지만.. 제가 올림픽 시구를 보았을때 부족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어요! 아! 물론 이지혜 선수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아름다운 시구를 고작 그렇게 밖에 꾸미지 못했다는게 참 안타깝더군요!"
"그런가요?"
"그럼요! 오로지 시구로 경기의 결과가 좌우되는 날도 있는 법인데, 이런 중요한 행사를 아무렇게 할 수는 없는 법이죠!"
가만보니 이 구단에서 시구를 간단하게 끝낼 생각은 없어보였다. 귀찮냐고? 그건 절대 아니다. 점점 관종이 되어가는 내 성격에 이런 이벤트는 너무나 재밌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럼 제게 원하시는게 있으실까요?"
나는 영업용 미소를 신경쓰며 아저씨에게 물었다.
"하하하! 보통 그런 걸 물으시는 분은 잘 없는데 신기하네요! 일단 그건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 하시죠!"
야구장으로 들어가면서 구경을 하니, 야구장도 꽤나 신선한 기분이다. 각종 선수의 프로필 사진이 걸려있는건 비슷한데... 분위기가 다르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뭔가 침울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지나가면서 구단의 연력같은게 전시되어있는데 우승 연력이 꽤나 과거다.
'아... 이 구단은 우승을 잘 못하는 구단인가보네?'
아저씨를 따라 이동하니 한 사무실에 도착했다. 아저씨는 공손히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사무실에는 직원으로 보이는 젊은 아가씨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응...? 진철이는?"
"아! 이진철 선수는 잠시 장비 챙기러 이동했어요. 금방 돌아올거라고 했어요."
"그래.. 여기 커피? 커피 괜찮으십니까? 아! 커피 두잔만."
"넹~"
꽤나 직원들과 잘 지내시는 분이신가보다. 사무실안쪽에서 일을 하다 나오면서 나를 보더니 흠칫한다.
"아! 이지혜 선수님이 오셨구나! 팬이에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눈을 똘망 똘망 뜨면서 나를 바라보니 조금 당황스럽다.
"으음..."
"사진! 사진찍어주세요!"
"그래요..."
나는 자신의 핸드폰을 자연스럽게 이덕화씨에게 건내주는 아가씨를 보며 웃을수밖에 없었다.
찰칵!
"꺄악! 고마워요!"
인사를 꾸벅하고는 벌게진 얼굴로 사무실을 동동 떠나는 아가씨.
"...상당히 밝은 분위기네요."
"하하하! 우리라도 밝아야죠!"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하시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잠시 자리에 앉아서 안전사항과 계약사항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커피와 함께 이진철이라는 분이 같이 들어왔다.
"..! 죄송합니다! 제가 늦었습니다!"
꽤나 어려보이는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이지혜입니다."
도저히 남정네 상대로는 멋들어진 미소가 잘 지어지질 않는다. 아직도 남자의 피가 몸안에 돌고 있는 것일까?
"...영광입니다앗!"
각을 잡고 인사를 받아준다.
"아하하! 이진철군은 갓 데뷔한 신인이라 그래요. 그래도 드래프트 되자 마자 1군 경기에 라인업 될 정도로 실력있는 친구랍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앗!"
야구가 조금 군기가 강한 스포츠라고 듣기는 한 것 같다.
"어.. 저도 잘 부탁드려요."
내가 악수를 건내자 시뻘게진 얼굴로 내 손을 잡고 멍때린다.
"...저기요?"
"앗! 넵! 저도 잘 부탁드립니닷!"
"...네"
그때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와서 보니 레베카씨의 번호가 보였다.
"저 잠시 에이전트가 가져다 줄게 있다고 해서 나갔다 올게요."
"그래요.. 아직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다녀오세요."
나는 나가면서 이진철을 쓰윽 바라보니 멍하게 내 얼굴을 바라보는게 느껴졌다.
'새끼.. 이쁜건 알아가지고.'
또 다른 극성 마붕이가 생기는 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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