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113화. 프리시즌(3)
* * *
"끄응...!"
정말이지 이렇게 편하게 휴식을 취한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날씨는 언제나와 같이 너무나 흐리고 찝찝하고 거지같다. 최고의 아침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럼 이제 즐거운 출근 시간~"
축구는 즐겁지만 출근을 한다고 생각하면 엄청나게 귀찮다고 느껴진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 아닐까하며 대충 스포츠백에 짐을 챙기고는 레베카씨가 먼저 대기하고 있는 차로 이동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좋은 아침입니다"
너무나도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내는 레베카씨를 보니 흐린 아침이 밝아지는 기분이라 나의 얼굴에도 화사한 웃음이 피는 듯 했다.
"푹 쉬셨나 보네요. 어제 갑자기 뛰쳐나오셨을 때는 금방이라도 쓰러질것만 같아 보였는데"
덜컹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가은 언니도 준비를 마치고 차에 탑승하고 있었다.
"그러게 어제 사무실에만 잠깐 인사 하고 돌아가자니깐..."
"하하하.. 그게 어쩌다보니.."
"이제 뭐 지나간 일이니깐.. 앞으로는 건강 생각 좀 해.."
단순히 혼낼려고 말한게 아니라 걱정하는 느낌이 강하게 나에게 전해져 오니 내 마음이 편해지는 듯 했다.
"자! 가죠!"
프리시즌이 이제 단 4주 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지난 올림픽 기간동안 프리 시즌에 참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술 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 훈련에 집중 해야만 하는 타이밍이라는 뜻이다.
***
영국에 도착했을 때나 쉬고있을 때나 감독님이 바쁜 일정이 있어서 자리를 비웠다고 해서 그 동안 만날 수가 없었다. 연락을 드려보았지만 받자마자 나중에 연락을 준다고 하고는 바로 끊으셨지.. 뭔가 바쁜일이 있으신가?
나는 시차 적응이라는 말도 안돼는 변명을 방패 삼아 조금 늦게 출근을 했기 때문에 팀동료들이 훈련하고 있는 도중에 참석하게 된 상황이였다.
"좋아! 더 빠르게 해보자고!"
"어이 제리! 거기서 머뭇거리면 어떡하나! 정신차려!"
"거기서 왜 그런 패스를 하나! 제정신인가?!"
필드에 감독님의 화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오랜만에 뛰는 웰링 유나이티드에서의 연습인데 왜 저렇게 화가 나있는지 참 궁금하다.
"더 빨리 움직이란 말이야!"
뭔가 마음에 안드시는지 주변에 있는 물건을 발로 차시기까지 하면서 화를 내신다.
"후우..."
이젠 한숨까지 쉬신다. 뭐가 그렇게 문제인걸까?
"감독님"
수석 코치가 감독님에게 귓속말로 뭔가 이야기를 하는것이 보였다.
"아! 드디어 왔군!"
훈련을 하는 동안 온갖 인상을 찌부리고 계시더니 활짝 웃으시면서 나에게 다가오신다.
"도대체 이게 얼마만인가?"
"그러게요 하하.."
동네 인상 좋은 삼촌 같은 표정을 지으시니 방금까지 화내던 모습과의 격차가 너무나도 커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응?"
나는 알아서 휴식을 취하는 팀 동료들을 슬쩍 바라보고는 다시 감독님을 향해 물어보았다.
"왜 이렇게 열이 받으셨을까요?"
"응? 아하하하! 그렇구만. 자네에게 말하지 않았었으니 모르겠지"
"뭔가요?"
"잠시만"
감독님은 나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며 수석 코치에게 잠시 대리 코치를 부탁하고는 나를 이끌고 잠시 사무실로 이동했다.
"자리에 앉게"
"...?"
오자마자 공이나 차면서 훈련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것이란 말인가?
"지금 우리 웰링 유나이티드의 상황은 무척이나 좋지!"
"그렇겠죠..."
당연한 이야기다. 재정은 공주님덕에 좋아졌다는 표현으로도 차고 넘쳐서 구단에 최첨단 시설 및 장비를 들여다 놓아도 돈이 남아 도는 상황이니까.
게다가 선수 층도 이미 2부리그를 뛰어 넘는 상황이다.
분데스리그 순위 1,2등을 차지하던 선수가 이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오버 밸런스인 상황인데 거기에 나라는 괴물이 존재하는 바람에 2부 리그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느낌일 것이다.
물론 아직 리그는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감독님이 꽤나 골치아프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조용히 들으면서 정리를 해보자니
1. 우리 웰링 유나이티드의 2부리그 예상 성적은 1위로 프리미어 리그 승격. 자동 승격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강하다라고 한다.
2. 그러니 2부 리그 팀들의 웰링 유나이티드를 피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이긴다는 생각을 배제하는 듯 하다고 한다. 확실한것도 아니고 언론에 흘러나온 것도 아니지만 2부 리그의 수비수 이적이 굉장히 활발하다고 한다.
대충 근거를 들어보니 프리 시즌 경기들을 보면 2부리그 팀들이 상당히 수비적으로 플레이 한다고들한다.
물론 기자회견장에서는 전술 훈련을 여러가지로 해본다고 입을 털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들 눈이 있는데 보면 모르겠는가.
3. 그런 상황이 소문을 타고 돌아다니니 선수들의 동기부여에 곤란함이 생긴다.
이렇게 요악이 되는 이야기였다.
"허어... 2부리그가 그리 호락 호락한 팀들이 아닐텐데요?"
프리미어 리그 2부 디비전인 챔피언십 리그는 정말 과격란 리그에 손꼽힌다. 라이벌끼리 자존심도 엄청나게 강한편이다.
"그야 물론 당연하지. 아마 언론 플레이를 흘린 것일 수도 있어. 우리 선수들을 조금이라도 방심하게 만들려고 하는 작전일 수도 있지... 아무튼 조금 골치아픈 상황이야. 그러니 자네에게 부탁하나만 하지."
"음... 뭐요?"
"프리 시즌 상당히 승승장구 해왔네 그건 알고 있지?"
"물론이죠."
감독님이 등받이에 기대고 계시다가 몸을 앞으로 숙이시면서 책상에 팔을 기대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혹시나 컨디션이 전보다 떨어졌다거나.."
"아뇨. 아주 좋습니다."
"좋아. 우리 선수들 아주 잘하고 있는데 자만이 좀 생긴 것 같아. 이게 팀이 승승장구하는게 좋기만 한게 아니란 말이지..."
"흠... 그런가요?"
"그래. 내가 보기에도 저러다가 한번 무너지면 돌이킬 수가 없어. 미리 예방 접종이라도 하는게 감독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해 질 것 같단 말일세"
"..."
"한번 팀을 작살내봐. 아마 롤랑이나 르노를 끼고서는 좀 힘들거야. 그 둘은 잠시 빼놓고 하자고"
"그거 역효과나는거 아닌가요?"
"하하! 그럴 놈들이였으면 여기까지 오기전에 무너졌겠지. 아무튼 돌아가보자고"
"...네"
나는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필드를 향해 이동했다.
***
"끄으~ 요즘 훈련 좀 빡새지 않아?"
"무슨 소리야. 프리 시즌 막바지라고 이 정도는 늘 하던거잖아?"
"그랬던가.. 하하 프리 시즌 동안 이렇게 이겨본게 처음이라서 그런가 마음이 좀 들뜨는 것 같네"
스트레칭을 하고 있으니 팀 동료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확실히 좀 풀어진게 느껴진다.
"키티"
"...왜"
톰과 제리가 내 근처로 다가왔다.
"오랜만이네'
"그러게.."
"정 없게 말이야. 뭐야? 선물이라도 없어?"
제리가 내심 삐졌는지 퉁한 모습이다.
"아하하!! 뭐야 그건 또! 왜? 기대했어?"
"...기대하긴 누가!"
"난 기대했는데?"
"아하하하!! 물론 기념품 사왔지~ 나중에 동료들이나 직원 분들께도 다 나눠줄거야"
"....정말?"
"오오!"
애새끼들도 아니고 정말.
"자! 다들 모여!"
잠시 준비를 하고 나오신 감독님이 선수들을 모았다.
"...자 그럼 주장이 잘 이끌어서 훈련을 하도록"
"네"
캡틴이 감독님에게 설명을 듣고는 선수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여기 롤랑이랑 르노는 빼고. 전부 입어"
조끼를 주섬 주섬 입기 시작하는 1군 스쿼드 선수들.
"으음?"
아까부터 말도 걸지않고 주변을 서성이던 롤랑과 르노를 나에게 붙여주는 캡틴.
"오호! 재미있겠구만!"
"이제 프리 시즌 끝나는 시점까지 이 훈련을 계속 할거다."
수석 코치님이 뒷짐을 지고서 훈련 개요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숨겨진 훈련 목적은 1군 스쿼드를 박살내버리는 것이지만 그 사실을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 단순히 여러가지 공격 패턴을 막아보는 수비 훈련을 하는 것으로 알려주었다.
"크으.. 젠장 키티까지 합세 해버리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도 그간 많이 발전했잖아? 그래도 키티를 고생시킬 수는 있겠지. 저 괴물 듀오도 직접적으로 뛰는 것 보다 보조 하는 거라니까.."
"그렇지? 그래도 우리 여태 이겨온 경험이 있잖아! 그 자식들도 꽤 하는 놈들이였다고!"
세계의 2부 리그 팀들을 상대 해오더니 자신감이 붙어 있는 모습이였다. 아쉽지만 그 정도로 만족해주어서는 안됀다. 정신차리게 해줘야지.
삐익!
반 코트로 진행되는 훈련이 시작되었다.
***
'굉장해...'
르노는 그래도 꽤나 엘리트 축구를 상당히 어렸을 때부터 해왔기에 재능이라는 단어에 꽤나 무심한 편이였다.
축구라는 종목 자체가 유럽쪽에서는 상당히 강세인 스포츠라 인구수가 어마어마하다. 그러다 보니 재능이 있는 아이들의 비율이 높았고, 그들을 지겹게 봐올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출나게 잘한다는 새싹들도 같이 축구를 하면서 봐왔지만 특별하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오히려 르노 자신의 재능이 더 대단하다고 느꼈으면 느꼈지 남을 칭찬한 적은 거의 없었다.
최초로 남을 칭찬 해본건 아주 후일에 만난 롤랑을 향해서다.
그는 당시에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축구를 하던 상황이라 주변의 목소리를 잘 듣지 못했지만, 어쨌든 굉장하다고 느꼈다.
그 이후에도 많은 선수들을 만나면서 경험을 해보았지만 딱히 가슴을 울리는 재능을 보지는 못했다. 현재 유명한 유력 발롱도르 수상 선수가 있기는 하지만 딱히 관심은 없다.
하지만 눈앞의 재능에 믿을 수가 없었다.
엄청난 스피드로 센터 서클에서 스타트 대쉬를 시작해 사이드로 수비를 끌어들인뒤 중앙 침투를 노린다.
"크윽!"
"씨발!"
벌써 몇 번째인가
쿠웅! 퍼억!
"제대로 막아!"
"씨발 뭐하는 거야!"
그간 평화로웠던 필드에 욕설이 오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런 분위기가 유럽 축구에는 걸맞다. 전쟁터와 같은 필드. 이 클럽이 조금 연약한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아니였나보다.
타다다닥!
엄청난 속도의 방향 전환
퍼억!
수비수가 붙어 봤자 어깨로 밀어버리고는 박스로 침투하는 각을 계속 노린다.
"젠장!"
반칙 상황을 감수하고 유니폼을 붙잡아도 소용이 없다. 애초에 힘이 강한 선수를 반칙성 태클로 막아봤자 손해다.
"저기 비었다고!"
롤랑이 가만히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마크가 비어버린다. 왜냐고? 저 미친 괴물녀석이 움직일때마다 수비수가 빨려들어가버려서 그런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괴물. 정확한 표현이 아닌가. 상대 수비진은 8명이다. 8명. 적은 숫자인가? 전혀아니다. 물론 한 곳에 밀집 되어있는게 아니라 진형을 만들어서 분산되어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혼자서 팀 하나를 상대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다시해!"
지켜보던 수석 코치가 소리를 치며 중단시킨다.
"허억! 허억!"
"후우..."
"..."
가만히 서서 패스를 받아주며 리턴만 하던 롤랑도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괴물을 바라보았다.
'저게 진짜 여자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상당히 편협한 생각이란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직 나는 패스를 받아주고 있지도 않다.
롤랑과의 일대일도 상당히 충격적이였건만 전술 훈련을 시작하니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였다. 과연 실전에 투입된다면 어떤일이 생기게 될 것인가..
물론 저 괴물도 완벽한건 아닌지 중간 중간 공을 흘리며 뺐기지만 이미 이 정도만으로도 괴물스럽다. 나에게 하라고 해봤자 두세명 제치면 자연스레 공을 뺐길 것이다. 축구란건 그런 법이니까.
그날 하루. 그간 평화를 누려왔던 미련한 시민들은 돌아온 괴물에게 처참하게 농락당하고 말았다.
나는 그 괴물에게 차원이 다른 재능에 대한 경외감을 느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