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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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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긴 잠에서 깨어난 용이 한 쪽 날개를 펼치니 황혼이 찾아오고, 나머지 한 쪽 날개를 마저 펼치니 끝나지 않는 밤이 찾아오더라.
대지가 어둠으로 뒤덮이고 공포가 산자들의 목소리를 앗아갔으니 이 적막한 가운데 아이의 울음소리와 날아오른 용의 날갯짓 소리만이 선명하게 울려퍼지더라.
하늘 높이 날아오른 용은 태양을 집어삼켜 대지로부터 빛을 빼앗고, 붉은 숨결을 내뱉어 모든 것을 불태웠으니 시체를 태우는 시꺼먼 연기가 온하늘을 뒤덮었더라.
이 사악한 붉은 용은 막을 도리 없는 재앙이자 죽음이오, 곧 종말이었다.
성양경 13장 4절 '심판의 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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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심판의 날 유일하게 용의 숨결을 피한 신성불가침의 성역, 바실리카였지만 그 뒷골목은 여느 더러운 뒷골목들과 마찬가지로 어두침침한 분위기로 질척거리고 있다.
매캐한 연초 연기 사이로 보이는 어두운 골목은 싸구려 술냄새, 매춘부들의 독한 향수 냄새, 거기에 젖은 먼지와 지독한 하수구 냄새까지 뒤섞여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장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틀어막고 이 곳을 피해갈 것이다.
....! ...!
"흐하하하하하하...!"
"....!"
하지만 이곳 역시 사람사는 곳인지.
이런 다 망해가는 세상에서도 여전히 일확천금에 눈이 먼 노름꾼들.
그들이 취하기를 기다리며 돈 주머니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소매치기들.
몸을 들이밀며 유혹해오는 짙은 화장을 한 여인들.
여러 목소리가 어두운 골목사이로 주점의 불빛과 뒤섞여 함께 흘러나오고 있다.
"방금 다 봤어! 오른 손 내놔 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새끼가..!"
"이거 왜이래!!"
쿵! 우지끈!
"우오오오오오!!!"
"싸움이다!!"
역시나 오늘도
뒷골목의 주점은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당장 싸움이 벌어지니 말리기는 커녕 오히려 분위기가 달아오르며 누가 이길지 그 자리에서 곧바로 내기가 진행되는가 하면 주점의 마스터도 테이블이 부서지든 의자가 날아다니든 늘상있는 일이라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퍽!! 퍽!
짧은 갈색 머리칼의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가 그보다는 조금 어려보이는 짙은 녹색 머리칼의 사내를 밀쳐 바닥에 넘어뜨리는 데에 성공했고 그대로 깔고앉아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얼굴을 두들기는 주먹이 둔탁한 소리를 내고 떨어질 때마다 피가 튀어오르고, 구경꾼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져 간다.
"와아아아아아!! 죽여버려!"
"어이! 일어나! 젊은 놈이 힘 좀 써보란 말이야!!"
"네놈한테 성은화 3개나 걸었다고!"
"으아아아아!!!"
녹색 머리의 사내는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뒤집었고 이번에는 갈색 머리의 사내가 바닥에 깔린다.
여태 맞은 것을 배로 되갚아주려는듯 매섭게 내리꽂히는 주먹.
둘의 입과 코에서는 피가 터져나와 나무판자로 된 주점의 바닥에 핏자국이 지저분하게 생겨나자 마스터의 한숨이 조금더 짙어져 간다.
"이겨라!!"
"연륜의 힘을 보여줘!!!"
퍽!! 퍽!
"으랴아아아!!"
"어어어...!"
"어...!"
".....!"
.....
질 수 없다는 듯 오만상을 찌푸리며 있는 힘껏 자신을 깔고 앉은 녹색 머리의 사내를 밀쳐낸 갈색 머리의 사내는 뭔가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점 내부가 얼어붙은 듯 조용해 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신없는 상태로 일어나 어설프게 가드를 올리고는 상대가 있을 방향을 바라본 갈색머리의 사내는 어째서 주변이 조용해졌는지를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등골이 오싹하고 소름이 돋으며 뜨거워 졌던 머리에 누군가가 얼음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제정신이 돌아온다.
"끄으..."
자신이 밀쳐낸 상대는 간간이 신음을 흘리며 아직 쓰러져 있다. 물론 이게 그리 놀랍거나 공포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문제는 이 놈이 쓰러져있는 위치에 있었다.
손님 하나가 앉아있을 뿐인 구석진 곳의 자리였지만 저 자리만큼은 절대 민폐를 끼쳐서는 안됐다.
탁.
조용한 가운데 술잔 밑바닥이 테이블을 때리는 소리만이 선명하게 들려온다.
"꿀꺽..."
뒷골목의 주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하얀 사제복, 그 위로는 후드가 달린 색바랜 외투를 걸치고 있는 한 사내.
안그래도 주점 내부는 그리 밝지 않았고 후드 아래로 음영이 져있었지만 조금이나마 드러나 있는 그의 깔끔한 피부를 보면 나이는 그리 많지 않아보인다.
"후우...."
그는 테이블 위를 빽빽히 채우고 있는 술병들 사이에서 겨우 자리하고 있는 재떨이에 손을 뻗어, 위태로이 걸쳐둔 연초를 들어 한 모금 들이마시고는 아직 반도 태우지 않은 그것을 그대로 재떨이에 비벼 끈다.
테이블에 놓인 술병들 만큼이나 잔뜩 쌓여 있는 꽁초들.
"... 비켜주지 않겠어? 보기는 흉해 보여도, 내게는 꽤 소중한 물건이라."
술과 담배에 절어 있는 낮고 거친 목소리가 조용한 주점안을 나지막이 울린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바로 그의 정면, 테이블의 건너편 의자에는 그의 사제복만큼이나 깨끗한 하얀색의, 거기에 반짝거리는 황금 장식이 여럿 달린 관이 하나 두꺼운 쇠사슬에 꽁꽁 묶인 채 놓여있었는데.
녹색 머리의 사내는 하필 그 관의 위로 쓰러져 피를 흘려대고 있었다.
이미 정신을 잃은 그가 비킬 수 있을 리 없었기에 자신이 한 시라도 빨리 저 자를 치워야 했지만... 발이 얼어붙어 움직이지를 않는다.
그저 애처로운 눈빛으로 녹색 머리의 사내가 빨리 정신을 차리길 기도할 뿐이었다.
"... 무리한 부탁이었나?"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190레니는 되어보이는언뜻 보기에도큰 키를 가지고 있었기에 똑같이 서 있었지만 갈색머리의 사내는 상대가 자신을 내려다 보는 시선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눈빛에서 살의가 느껴진다거나 어떠한 흉흉한 기세가 느껴지는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저 우묵한 검은 눈동자에 그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차마 닦아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저 관에 달려있는 황금 장식을 탐내고 함부로 손대려 했던 이들이 어떤 꼴이 되었는지 이 근방에서는 아마 모르는 이가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싸움은 밖에서 해야지, 마스터에게도 민폐니까."
"며.. 명심하겠습니다!"
뚜벅 뚜벅
그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은 갈색머리의 사내는 그 험상궂은 인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애처롭게 몸을 떨고 있었지만 발소리는 이미 그의 앞을 지나쳤고 시간이 어느정도 더 지났음에도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자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털썩 턱!
사제복의 사내는 관 위에 늘어져 있는 녹색머리 사내의 뒷덜미를 잡고는 먼지라도 털듯 바닥으로 내팽개 쳤고 품속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관 위에 묻은 피를 정성스레 닦아내고 있다.
쩔그렁
핏자국을 다 닦아낸 그는 두꺼운 쇠사슬을 잡고 그대로 관을 들어올려 마치 배낭을 매듯 쇠사슬 사이로 팔을 집어넣어 자신의 등 뒤에 고정시킨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안정적으로 고정된 관을 슬쩍 어깨를 흔들어 다시 한 번 확인한 그는 반짝거리는 성금화 하나를 카운터 위에 올려두고는 그길로 주점을 나섰다.
"....허억 허억 허억.."
그가 나가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는지 그대로 주저앉은 갈색머리의 사내는 마치 샤워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늦게 밀려오는 수치심에 괜히 눈앞에 쓰러져 있는 녹색머리 사내의 머리를 발로 걷어차며 분을 달랬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