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2. 늑대 소녀는 주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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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늑대 소녀는 주인을 찾는다(1)
예언에 따라 대성당에 모이게 된 네 명의 용사 일행은 위대한 여정에 올랐다.
기나긴 모험의 종착지에서 악과 마주한 용사 일행은 용의 두 날개를 꺾어 부러뜨리고 여섯 개의 머리를 잘라내 펄펄 끓는 용암 속으로 빠뜨렸으나 끝내 남은 하나의 머리를 베어내지 못하였다.
용사와 성녀는 죽고, 사제와 마법사는 겨우 목숨을 건졌으나 그 사이 용은 검은 연기를 내뿜어 그 안으로 몸을 숨겼으니 검끝은 갈길을 잃고 구원 또한 희미해졌다.
성양경 15장 9절 '묵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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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끼이익....
얼굴을 민무늬의 가면으로 가린 뱃사공은 노가 아닌 손잡이를 잡고 그것을 돌리고 있었다.
배의 중앙에 있는 두꺼운 기둥, 그리고 당장 고개를 위로 조금만 들어도 두꺼운 쇠사슬이 하늘에 걸려있는 것이 보인다.
이 기둥에 연결되어 있는 손잡이를 돌리면 배가 쇠사슬을 타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평범한 배를 운행하기에는 포르투나의 물살이 워낙 거센 탓이었다.
그렇다고 다리를 짓지 않는 이유는 역시 마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더 중요한 이유로는 북대륙의 부랑자들을 스폴로 들이지 않기 위함이다.
그러기에는 뱃사공 한 명으로 너무 안전에 취약하지는 않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뱃사공은 배에 오르는 이를 굳이 막지 않는다.
다만 스폴에 도착했을 때, 상단 연합에서 발행한 통행증이 없다면 항구의 망나니들에게 당장 목이 떨어지고 말 것이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두꺼운 쇠사슬이 서로 부딪히며 나는 소리는 정말이지 요란하고도 시끄러웠지만, 배는 그만큼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
배에는 나 이외의 손님은 보이지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이 배가 향하고 있는 곳은 북서대륙 셀틱.
네 개의 대륙들 중 생존자 하나 없는 북대륙을 논외로 치면 심판의 날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대륙으로, 적룡교의 총본산인데다 저주받은 땅에서는 마물들이 줄곧 넘어오곤 했으니...
적어도 평범한 사람이 살만한 곳은 되지 못한다.
끼리리리리릭... 덜컥....!
지난해에도 마찬가지로 이 자리에 앉아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지만, 그 덕분에 벌써 배는 셀틱에 도착해 있었다.
"..."
말없이 내 쪽으로 한 손을 내밀고 있는 뱃사공
나는 뱃삯을 요구하고 있는 그에게 마연이 든 주머니를 건네주고, 배에서 내려 한때 번성했던 항구마을의 폐허가 된 모습을 바라보았다.
온몸에 불이 붙어 고통에 몸부림치는 남자는 살려달라는 말보다는 그저 고통스러운 비명만을 내지르며 애꿎은 땅바닥을 두드린다.
불이 붙은 채 강으로 뛰어든 이들은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고,
무사히 배 위에 오른 이들도...
그 위로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불덩이에...
끄그그그그긍... 드르르륵..
묵직한 쇠사슬 소리에 깨어난 나는, 나를 내려준 배가 벌써 저 멀리 스폴로 멀어지고 있음을 깨닫고 그제서야 의미 없이 멈춰있던 발걸음을 떼었다.
드문드문 느껴지는 인기척과 함께, 다 쓰러진 건물 잔해 사이로 보이는 경계심 가득한 시선이 희미한 안광과 함께 내 쪽으로 쏠리고 있다.
배를 타고 반대편으로 건너간다면 건너갔지 배를 타고 이쪽으로 돌아오는 이가 있다니, 그것도 일행도 없이 혼자라면 경계를 할 수밖에 없겠지.
먹을 게 없어 식인마저 자행되는 북대륙에서는 더더욱,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자와 약자를 구별하는 눈이 필요했다.
그리고 다른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약육강식이 의미 곧대로 쓰이는 이 마을에서 나는 굳이 눈에 띄는 행동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산송장들로 가득한 이 마을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거대한 무덤과도 같다고 느끼며... 나는 기억을 더듬어 버려진 가도 위에 올랐다.
"..."
주변에서 속속히 사라져가는 기척들.
아마 지금쯤, 나를 덮칠지 내버려 둘지를 고민하던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겠지.
이 길은 깊은 산세로 이어진 길, 마물이 득시글 거리는 이쪽으로 홀로 발걸음을 옮긴다는 건 자살할 생각이 아니라면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
타닥... 타닥.. 탁....
불씨가 퍼져나간다.
썩은 나무를 태우는 좋지 않은 냄새가 연기와 함께 안면을 뒤덮는다.
매캐한 연기가 목구멍을 틀어막는다.
나는 그럼에도 미동도 없이 다 꺼져가는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연기 사이로 아른거리는 장작과 불씨는 마치 다 타고남은 사람의 팔다리를 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게끔 한다.
투둑... 툭..
무언가 떨어져내리는 소리를 따라 자연스레 고개를 내리자 피에 흠뻑 젖은 내 두 팔이 시야에 들어온다.
두 팔을 지저분하게 뒤덮은 핏물은, 아직도 마르지 않은 채 핏방울들을 연신 떨어뜨리고 있다.
어느새 바닥에 고인 피웅덩이와 그 위로 떨어져내리며 파문을 일으키는 붉은 핏방울들.
내가 들은 건 바로 이 소리였다.
"..."
연기를 타고 날아오른 작은 불씨 하나가 내 손바닥 위로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곧.
피로 흠뻑 젖은 두 팔의 피부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부글부글부글부글....
크고 작은 기포들을 만들어내며 점점 녹아내리는 피부 아래로 이미 까맣게 타버리고 남은 속살에 불씨들이 아른거리고 있다.
화르륵...!
불씨로부터 크게 일어난 화염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려는 듯 게걸스럽게 일렁거리며 내 두 팔을 집어삼켜간다.
그리고 나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멍하니 앉아 타오르는 내 두 팔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신 채 잠시 호흡을 멈춘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뜬다.
"후..."
약간의 핏자국이 말라붙어있을 뿐인 멀쩡한 두 팔.
두어 번 주먹을 쥐었다 펴자 마른 피가 부스러져 떨어져내린다.
바닥에 고여있던 피웅덩이는 어느새 사라져 있고, 모닥불은 최후의 불씨를 불사르며 천천히 어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명이 잦아들며 안면을 달구던 뜨거운 기운이 사라지자, 목구멍을 통과하는 서늘한 공기에 그나마 정신이 든 나는 먼저 주변을 살폈다.
내 주변은 검은 털을 지닌 커다란 덩치의 마물들의 시체로 가득했고, 나는 피냄새을 맡고 찾아온 또 다른 마물 무리의 기척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발을 들어 끈질기게도 남아있던 모닥불의 마지막 불씨를 짓밟아 꺼뜨렸다.
오랜만에 맡는 마물의 짙은 피 냄새에 당장 안주머니의 마연으로 손이 갈 뻔한 걸 참아냈더니, 금세 찾아오는 이 지긋지긋한 두통은 대체 언제쯤 나를 놓아줄지 모르겠다.
허리를 숙이고 바닥에 놓아둔 관위로 손을 얹자, 그나마 조금은 안정되어가는 기분이다.
"아가사..."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당연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내 이름을 부르던 그녀의 고운 목소리도,
세상을 밝히던 미소 가득한 얼굴도,
기억해 내려 할수록 두통만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
철그렁..
결국 손을 떼고, 쇠사슬을 들어 올려 관을 둘러맨 나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밤은 길었고, 갈 길은 정해져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