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1. 용사일행 출신 사제의 우울
* * *
1.용사일행 출신 사제의 우울(4)
"후우..."
책상 서랍을 뒤져 그녀의 것으로 보이는 연초를 하나 꺼내물고 불을 붙이자 약간은 과일향이 나는 듯하면서도 짙고 독한 연기가 폐부를 채워온다.
방안은 열락의 행위로 인해 뜨겁게 달아올라 비릿한 냄새로 가득해있었기에 살짝 갑갑한 느낌이 든 나는 담배를 꼬나물고 창문을 열어젖혔다.
스폴 나름의 명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로의 화려한 불빛에 따라 늘어선 야시장과 아래층에서의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시원한 바람을 타고 함께 흘러들어온다.
슬쩍 옆을 바라보자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새근새근 숨을 내뱉고 있는 수의 모습이 보인다.
이불을 덮어주기는 했지만 그녀의 머리카락, 얼굴 등 이불 밖으로 드러난 부분에는 희여멀건한 액체가 온통 흩뿌려져 들러붙어있다.
대체 몇시간동안이나 행위에 열중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짐승처럼 서로의 몸을 탐하며 쾌락에 뇌가 녹는 것 같은 기분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수가 연속절정의 끝에 몇번째 일지 모르는 오르가즘을 버티지 못하고 기절해버리는 것으로 겨우 끝이 났으니 말이다.
창가에 기대 연초를 태우다 손에 따뜻한 느낌이 들어 시선을 내리니 어느새 손가락 가까이까지 타들어가 있다.
잠시 멍하니 있었던 모양이다.
손을 털어 저 아래로 꽁초를 떨어뜨려 버리고 가만히 검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와 이런 관계가 된 건 꽤나 오래전의 일.
첫 만남은 아마.. 노아의 장비를 구하기 위해 스폴에 들렀다가 우연치 않게 구하게된 여우수인이 바로 그녀였던 걸로 기억한다.
노예상으로부터 도망쳐나와 쫓기고 있던 그녀가 골목길에서 뛰쳐나오다, 나와 부딪혀 넘어진 것이 이 인연의 시작이었지.
사실 그때 이후로는 어떻게 지내는지 잊고 살았었는데.. 한창 북대륙에서 지내고 있을 즈음, 필요한 물건들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다시 들른 나는 그녀와 다시 재회할 수 있었다.
재회의 그 순간 나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용케 나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에단 씨..? 에단 씨인가요?'
마연을 잔뜩 사들고 허리춤에는 쇠말뚝을 주렁주렁 단 내 손목을 붙잡은 그녀가 처음으로 내게 했던 말이었다.
당시 그녀는 이미 힘있는 상단주로서 수많은 경호원와 수행인들을 데리고 있었고, 당장 입고있는 옷만 하더라도 고급스러움과 사치스러움의 극치. 뿐만아니라 주변인들에게의 평소의 언동, 말투와 나를 대하는 태도간의 차이가 상당했던지 주변에서 그 모습을 본 이들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금란객잔의 최상층인 이곳으로 초대되어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야 그때 내가 구해준 여우수인이 바로 그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몇 번이고 신세를 졌다.
어느새 스폴의 최고권위자가 되어 있을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리고 나와 그녀가 이런 관계가 되어버린 것까지도...
지끈..!
이번에는 조금 늦었다.
"윽..."
요새 들어 점점 그 빈도가 잦아진 두통은 점점 그 정도가 심각해져 가고 있다.
마연을 끊은 이후로는 조금 괜찮아졌나 싶더니...
머리를 움켜쥐고 창틀에 이마를 가져다 대자 차가운 목재의 감촉이 뜨거운 이마를 식혀주었지만, 이는 잠깐에 불과했다.
차라리 다 끝나고 시작돼서 망정이지, 수의 앞에서 못볼꼴을 보일 뻔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소리가 고막을 터뜨릴듯 점점 커져가는가 싶더니 결국은 찢어지는 듯한 이명으로 바뀌어 한참을 귀를 울리다, 점점 가라앉는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돌아오는 몸의 감각에, 술없이도 비교적 가볍게 지나갔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올린 그때였다.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 가느다란 실선이 끊어질듯 하면서도 이어져 땅을 잇는다.
"..."
한순간의 반짝거림에 불과한 그것은 내 착각이거나, 환청에 이어 환각을 본 것인지도 몰랐으나,
차라리 그 편이 더 나았을 거라고, 나는 곧 생각하게 되었다.
그 반짝임은 그저 전조였을 뿐이라는 듯 거대한 빛기둥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빛기둥이 떨어져 내리고 있는 곳은...
바실리카.
어두운 하늘을 반으로 가르듯 끝없이 높은 하늘의 저 편에서부터 이어진 신성한 빛줄기.
그 거리가 상당함에도 나에게는 저 신성한 기운의 파장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어둠에 빠진 세상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한 줄기 빛.
기적과 구원을 눈앞에 재현해 놓은 듯한 저 현상에 대해 나는 들어본 적이 있다.
"분명.."
*
화륵.. 화르륵...
고오오오오오오...
동굴 내부로 보이는 좁고 어두운 공간에는 스산한 바람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드문드문 횃불이 걸려 있었지만 내부 전체를 환히 밝힐 정도는 아니다.
공간의 가운데에는 둥그런 탁자가 하나 놓여 있었으며 이를 둘러싸고 있는 일곱 개의 의자.
동굴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이 고급스러운 의자들의 빈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검붉은 로브를 뒤집어쓴 괴인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아직 비어있는 자리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모양이다.
"우선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소집에 응해주신 대주교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정중한 목소리로 회의를 진행하는 앳된 소년의 목소리.
"하얀 토끼는 또 어디로 가고, 아침은 멀었는고?"
왜소한 체구에 허리가 굽은채 옆구리에는 다양한 길이와 모양의 검들을 차고 있는 인상좋은 노인이 헛소리를 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이내 이들 중 가장 덩치가 큰 괴인이 벌떡 일어나 테이블을 내리쳐 부수며 고함을 지른다.
"본론부터 이야기 해!!"
테이블이 박살나며 비산한 나무조각이 자신의 로브자락에 떨어지자 이를 털어내며 한숨을 내쉬는 또다른 괴인.
"하아... 다들 대주교로서의 자각은 있는 거야? 성전이 시작된 거라고, 드디어.. 이몸의 대서사시에 막이 오른 거지."
"닥쳐! 이 교미중독자가!!"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륵!!!!
동굴벽에 걸려있던 횃불이 일제히 거세게 타오름과 동시에 무시못할 기운이 가장 처음으로 말을 꺼낸 앳된 목소리의 괴인으로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허허... 따뜻하구먼"
"다들 조용히"
"쳇!"
"흥.."
분위기가 진정되고 나서야 힘을 거둔 괴인은 다시금 말을 이어간다.
"바실리카에서 신탁이 내려왔음을 확인했습니다."
신탁이라는 말에 헛소리를 하던 노인을 포함한 괴인들 모두가 멈칫하더니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 내용은... 새로운 용사와, 새로운 성녀의 탄생. 저희의 목표는 바실리카보다 먼저 그들을 찾아내 둘을 교단으로 회유하는 것, 차선책은 죽이는 것입니다."
"좋아! 그자식들은 어디에 있는데!!"
손톱을 길게 뽑아내 보이며 투지를 불태우는 그를 한심스럽게 바라보며 빈정거리는 다른 괴인.
"죽이는 건 차선책이란 말이야 개대가리. 설마 차선책의 의미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시체를 회유할 수는 없다고."
"네놈 먼저 죽고싶은 거냐?!!"
화르르르르르륵!!
"또한."
기운이 담긴 목소리에 겨우 다시금 수그러든 분위기.
그는 마지막 전달사항을 이야기했다.
"인류배반자 에단, 레베카 이 둘을 최우선 척살 대상으로 지정하고 그들의 처단을 위해 지금부터는 나머지 대주교분들의 소재 파악에 힘써주시길 바랍니다."
*
"으음..."
수가 일어난 모양이다. 이불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곧 가운을 다시 입고 있는지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깨어났을 때 옆에 있어줬으면 했는데.."
"여기 있잖아."
"하아... 그 말이 아니잖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심통이 난듯 입을 살짝 내밀면서도 천천히 내게로 다가오는 그녀.
내게 뭔가 말하려던 그녀도 열려있는 창밖으로 아직도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는 빛줄기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저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나..?"
"아마 맞겠지."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야?"
"... 글쎄."
내 애매하고 성의없는 대답에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에단, 당신은...!"
"..."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녀가 깨어나기 전 이미 몇시간이고 고민한 결과 내놓은 결론이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바실리카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 당신이 꼭 필요할 거야."
"그럴리가."
한때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하며 기다려왔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
가만히 입을 다물고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과거 나를 동경하던 이의 시선은 지금의 내게는 피하고싶을 뿐인 부담스러운, 거기다 불편하기만한 시선일 뿐이었다.
"... 에단."
"우선 다녀올게."
내가 살아있는 이상, 결국 바실리카로 돌아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나는 당장 해야할 일이 있다는 핑계를 구실삼아 당장 신탁을 확인하는 것을 미루고 있다.
그 이유또한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신탁이라는 커다란 변화는 분명, 지금껏 내가 안주하고 있던 일상을 하나부터 열 까지 전부 부숴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그게 두려울 뿐이다.
먼 옛날에 이미 변화를 포기하고 그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속에서 풍화되기를 선택한 나에게 신탁은 더이상 희망이 아니다.
선고와도 같았다.
두렵다.
그런 경험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아.
"미안, 너무 파고든 것 같네."
잠깐 그녀의 서운한 표정이 스쳐보인 것 같다.
내가 이를 의식하고 반응하기 전에 몸을 돌려 자신의 책상 쪽으로 걸어가는 그녀.
한 손으로는 가운의 가슴께를 누르며 조심스레 고개를 숙이고는 아래쪽 서랍을 열어 내게 서류 한 장을 건넨다.
이미 준비해 뒀던 건가.
금란상단의 직인이 찍혀있는 통행 허가증.
".. 가는 길, 몸 조심해."
관을 둘러매고 문고리에 손을 올린 내 뒷편에서 그녀의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어라 대답해줄 말이 없었기에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 그대로 그녀의 집무실을 나섰다.
"하아..."
문을 닫자마자 곧장 한숨이 새어나온다.
지금도 이 희망없이 끝나버린 세상을 그저 태어났기 때문에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과 절망속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그야말로 인류배반자라는 멸칭에 딱 어울리는 한심한 꼴이 아닌가.
".. 미안."
들리지 않을 사과를 홀로 조용히 중얼거린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