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4. 추모의 밤은 깊어만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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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추모의 밤은 깊어만 가고(4)
낮게 울리는, 약간은 으르렁 대는 듯한 소리가 섞인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의자에 주저앉은 그들은 결코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적룡교의 수송책과 만났을 때에 느꼈던 공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흉포한 위압감에 그들은 감히 고개를 돌렸다가는 죽게될 거라는 확신과 두려움에 휩싸여있었다.
"응..? 또 잘못 찾아온 건가? 이봐..! 말 좀 해봐..!"
폐허의 벽을 무식하게 부수고 나타난 정체 모를 이가 신경질적으로 외치는 것이 자신들이 있는 방향이 아니었기에, 궁금증을 못이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
그곳에는 얼마 전 트라사에서 만났던 그 수송책이 검붉은 로브를 두른 덩치가 커다란 괴인의 손아귀에 머리가 붙잡혀 있었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마연을 운송하기 위해 등 뒤로 매고 있던 커다란 나무 상자가 반쯤 부서져 있는 걸 보면 확실해 보인다.
"...."
남자의 손에 붙잡힌 머리로부터는 끊임없이 검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아무리 고함을 치고 흔들어도 괴인은 입을 열지 않는다.
"하여간에 그년이 만들어낸 인형들은 하나같이 기분 나쁘단 말이야. 크르르르르..."
퍼석....!!!
짜증이 났는지 머리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어 그대로 으깨어 버린 로브인은, 손을 털어 괴인의 시체를 바닥에 던져놓고, 테이블 쪽으로 다가온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테이블위의 시체 사이로 넘어지지 않은 술병 하나를 들어 입안에 털어 넣는다.
그때 잠깐 후드 아래로 보인 입의 모양이, 짐승처럼 앞으로 튀어나와 검푸른빛을 띠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여자는, 그의 덩치가 어째서 이렇게나 큰지를 알 수 있었다.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너무 커다란 손.
술병에 비친 등불의 빛으로 슬쩍 드러난 날카로운 송곳니.
300레니는 훌쩍 넘어 보이는 저 덩치는 분명 수인들 중에서도 극소수로, 자신 역시 소문으로만 들었던 순혈자가 틀림없었다.
"에잇.. 퉤에엣. 퉷...!! 이딴 것도 술이라고...!"
쨍강...!!!!
퍼석..!!!
쾅!!
싸구려 술이 입에 맞지 않았는지 신경질적으로 휘두른 술병에 가까이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얻어맞게 된 운 없는 사내의 머리통이 반쯤 무너진 채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힌다.
"으으으....."
그의 얼굴이 술병과 함께 깨져나가며 터져나온 핏물을 얼굴로 받아내는 것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이들의 몫이었고 말이다.
주르르륵...
뚜욱.. 뚝.
"킁킁... 누가 아직도 똥오줌을 못가리나?"
작은 물소리와 함께 올라오는 지린내.
바지에 오줌을 지린 것으로 보이는 건너편의 사내는, 극도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달려나가 버린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음..? 뭐야?"
하지만 딱히 쫓아간다거나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잠깐 그 방향을 바라보다가 그가 일어났던 자리에 엉덩이를 붙인다.
그 모습에 도망가지 못한 다른 사내들은 진작 도망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섞인 눈빛으로 서로의 눈치를 본다.
하지만 이미 바로 옆에 앉아버린 덩치의 수인.
의자가 작아 보일 정도의 덩치는 앉은키 만으로도 한참을 올려다보아야 할 정도다.
"... 자자... 바다 비린내가 진동을 하는데... 누가 트라사의 판매원이지?"
덜덜덜덜덜....
온몸이 떨려왔지만 그녀는 지금 이 상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주 조금이라도 그의 신경을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짧은 고뇌 끝에 손을 들어 올렸다.
"제.. 제가, 트라사의 판매원입니다."
"오오..! 네가 트라사의 판매원이었냐! 자..! 그래서 그 에단이라는 놈은 어디에 있지?!!"
번뜩이는 짐승의 눈동자가 그녀를 똑바로 주시한다.
두려움에 정신이 아득해질것 같았지만 그녀는 허벅지에 손톱을 박아넣으며 그 고통으로 자신을 일깨웠다.
"... 지금은... 여기에.. 없습니다.. 위대하신 주교님..."
"뭐?!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냐..?!!!"
쾅!!!!!
그가 나무 테이블 위를 주먹으로 내려치자 시체와 함께 테이블이 박살나며 나뭇조각과 함께 조각나 비산하는 사지들이 얼굴 주변으로 스쳐지나간다.
동시에 짙어진 위압감은 전신의 뼈마디 하나 하나를 짓누르며 몸의 통제권을 앗아가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방금 그 대답 덕분에 그녀는 확신했다.
눈앞의 저 존재가, 공포스러운 주교들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살길이 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자는 몰래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에는 벌레만도 못해 보일 이 사내들과는 달리 자신은 말단이기는 해도 일단은 적룡교의 일원이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이곳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자는 적룡께서 잠드신 성지로 향했습니다...!"
"크르르르르... 그 말 확실하겠지?"
"네..! 그자는 스폴의 통행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분명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겁니다...!"
죽일듯 노려보며 뿜어대던 살기가 그저 장난이었다는 것처럼, 그는 단번에 주변을 짓누르던 형체없는 압박을 풀어주며 홀로 중얼거린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스으으윽...
".....?"
그 반응에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데, 건너편에 앉아 있던 그가 어째서인지 자신의 머리 양옆으로 손을 뻗어 가까이한다.
자신의 머리통보다도 훨씬 커다란 두 손이 그대로 자신의 머리를 으깨어 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여자는 부릅 뜬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스르릉...
장갑을 뚫고 나오는 날카로운 손톱을 확인한 여자의 심장이 멎을듯했을 때.
눈앞에 보이던 손이 빠르게 사라진다.
아니,
스겅....!!!!
툭..!!!! 툭!!!!! 툭.....!!!
푸슈우우우우웃...!!! 푸슈슈슛....!!!
그는 그대로 헤엄을 치듯 양쪽으로 팔을 휘둘러, 테이블에 남아있던 사내들의 머리를 단번에 몸으로부터 분리시켰다.
"아아....."
앉아있으라고 한 이유를 이제서야 깨닫게 된 여자는 두려움에 떨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통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 주교님, 이놈은 어떻게.."
"어으으으.... 살려.... 사.. 려어.."
오줌을 지리고 도망쳤던 사내는 양쪽 다리가 뜯겨져 나간 채 뒷덜미를 붙잡혀 또 다른 로브인에게 질질 끌려왔다.
그 뒤의 어둠속으로도 수십명이 넘는 로브인들의 인영을 확인한 그녀는 숨을 죽였다.
놓아준 게 아니었다.
주교쯤이나 되는 자가 혼자 움직일 리가 없었다.
애초부터 살려줄 생각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알아서 처리해, 우리 동포들도 그간 굶주렸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커흐러억...!"
로브인의 손이 사내의 가슴을 뚫고 나온다.
정확히는 등을 꿰뚫은 팔이 반대편까지 뚫고 나온 것이었다.
축 늘어지는 그를 보며 마른 침을 삼킨 그녀는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주교의 노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피와 살점이 낭자한 수라장이 된 이곳에 자신만이 아직 목숨을 붙이고 있었다.
살고싶다.
살고싶었다.
이 파리한 목숨하나 보존하기 위해 자신은 여태 그 어떠한 짓도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목숨줄을 쥔 눈앞의 저 짐승은 자신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고민하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결정이 내려진 모양이었다.
"그래.. 나도 먼 길 오느라 조금 굶주렸거든.. 크르르르..."
펄럭..!
의자에서 일어난 그가 로브를 젖히자, 어지간한 남자의 팔뚝보다도 훨씬 두껍고 거대한 남성기가 털로 뒤덮인 사타구니 사이에서 드러나 보인다.
순간 굶주렸다는 그 말에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오해로 몸을 떨었던 그녀였기에, 얼굴앞에 나타난 흉측한 거근에 안심한 이유는 죽는 것 보다야 하반신이 망가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꿀꺽.."
그의 덩치만큼이나 커다랗고 흉포한 저 물건을 받아들였다가는 다시는 평범한 이들과 관계를 맺을 수 없을 정도로 아래가 망가져 버릴 테지만... 목숨을 잃는 것보다야 나았다.
그리고... 일이 잘 풀린다면 스폴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네...! 비록 볼품없는 몸이지만 주교님께서 원하신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바치겠습니다...!"
"크하하하하하...!"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지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끌어 몸에 걸치고 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그 배려라고는 없는 손짓에 몸 여기저기가 손톱에 베어 핏물이 배어나왔지만 그녀는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억지로 웃음을 지어보였다.
순식간에 알몸이 되어버린 그녀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그 자리에 개처럼 엎드려 자신의 엉덩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
시신과 핏물 위로 부서진 테이블의 파편이 즐비해있고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이었기에 불편하기 그지없는 자세였지만 뒤로 받아내는 편이 망가지는 하반신을 지켜보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게다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보였다가는 심기를 건들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으니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크흐흐.... 좋아..."
그녀는 곧 아래에서 찾아올 고통에 대비하며 눈을 꼭 감았지만, 그녀가 대비해야 할 곳은 그곳이 아니었다.
그가 자신의 한쪽 팔을 붙잡고 잡아당긴다.
단순히 잡고 흔들 목적으로 생각했지만, 어째 계속해서 끌려올라가는 팔에 그녀가 의문을 품었을 때였다.
콰직....!!
"흐끅......!!!!!??"
자신의 어깨 아래로부터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처음으로 겪어보는 커다란 고통이 치솟아 오르자 그녀는 오히려 입을 벌리고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다.
"쩝.. 쩝.... 쩝..."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피가날 정도로 깨물고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오른팔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둥근 어깨의 바로 아래쪽으로, 사라져 버린 팔 대신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팔을 쥐고 맛있다는 듯 씹어먹으며, 개처럼 엎드린 자신을 비웃고있는 소름돋는 눈동자가 보인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뒤늦게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찌지지지지지짖...!!
"꺼윽.....??!!!!"
사타구니가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불에 달군 쇠말뚝같은 거대한 물건이 질내로 파고드는 것을 느낀 그녀는 다시 꺽꺽 대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댔다.
남은 한쪽 팔을 휘적거리며 그에게 벗어나기 위해 바닥을 미친듯이 긁어댔지만 애꿎은 손톱만 뜯어져나갈 뿐이다.
퍼억..! 퍽! 퍼억! 퍽..!!
숱한 남자들을 경험해본 그녀였지만 마치 처녀라도 된 것처럼 수인의 거대한 성기가 제멋대로 왕복할 때마다 피를 쏟아낸다.
그건 처녀혈이 아니라, 그녀의 좁은 여성기가 무참히 찢어져 쏟아져 내리고 있는 피였다.
우두둑 우둑...
그녀의 팔을 뼈째로 씹어 먹으며 헤벌쭉 웃은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눈앞의 암캐를 만족스럽게 내려다보며 열심히 허리를 흔들어댄다.
들썩. 들썩. 들썩. 들썩. 들썩.
줄이 끊긴 연극인형 처럼 힘없이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그녀의 눈동자로부터 희미하던 빛이 사라지며, 겨우 그 끔찍한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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