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4. 추모의 밤은 깊어만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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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추모의 밤은 깊어만 가고(5)
타닥.. 탁.... 탁...
오두막의 지붕이 튀어나온 아래, 내리는 재를 겨우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공간.
작은 철제 화로 안에서 타들어가는 모닥불 위로 흑단나무의 나뭇가지로 꿰뚫어 고정해둔 마물의 고깃덩이가 괜찮은 냄새를 풍기며 표면위로 조그맣게 지글거리는 소리를 낸다.
적당히 자르기는 했지만 안쪽까지 제대로 익혀야 하니 겉이 조금 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끼이이익..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자 방금까지 조금 열려있던 오두막의 문이 닫히며 회색 털빛의 꼬리가 좁은 문틈사이로 잠깐 보이다 사라진다.
"...후우."
... 그저 그녀의 관 가까이에 서있었다는 이유로 과격한 행동을 보이고 말았다.
애초에 사슬을 풀 힘도 없는데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에게 성급하게 실수를 저질렀다는 점은 인정한다.
이번 일로 소녀와 나 사이의 거리는 조금 더 멀어져 버렸지만.. 상황이 마냥 나빠졌다고 볼 수는 없으려나.
오히려 소녀에게 있어서는나와 가까워져서 좋을 것 하나 없으니 말이다.
놀라게 한 것에 대한 사과는 하겠지만, 당부는 해둬야 겠지.
"후..."
뻐근한 목에 재차 한숨을 내쉬며고개를 들어올리자, 오두막 지붕 아래의 경사 때문에 연기가 걸려 빠져나가지 못하고 뭉글거리고 있는 게 보인다.
연기 때문에 부러 오두막 밖에서 고기를 굽고 있던 거였지만, 이래서야 벌써 안쪽으로 다 스며들지 않았나 싶다.
"... 이런."
츠즈즈즉...
연기를 바라보고 있던 내 코끝에 스치는 탄내에 뒤늦게 나뭇가지를 돌렸고, 한쪽 면이 많이 타버린 고기는 기름이 섞여 끈적한 표면 위로 검은 기포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
나도 모르게 그 까맣게 탄 살점 위로 끓어오르는 검은 기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별 이유도 없이 계속 그 검은 것을 지켜보고 있던 어느 순간,
부글거리며 기포가 생겨났다가 터지는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들려온다.
"...?"
화르르르륵.....! 투두국...! 툭!
"...!!"
불길이 거세진다 싶더니 모닥불 속 장작 사이로 검게 탄 팔이 솟아올랐고, 위에 얹어져 있던 것들이 바닥에 떨어져 내리며 어수선한 소리를 낸다.
불길 속에서 길게 뻗어져나온그 팔은 정확히 내 목을 잡아채 단단히 붙잡고 강한 힘으로 불길 속으로 끌어당긴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그 검게탄 피부가 쩍쩍 갈라지고 부스러져 진득한 핏물이 배어나오고 있다.
꽈아아아아아악...!
"컥... 헉..!"
어떻게든 끌려가지 않기 위해 나도 힘을 주었지만, 점점 불길에 가까워지고 있다.
눈앞의 불길은 괴롭게 절규하는 얼굴의 형상이 되어 크게 울부짖었고,
귓속으로 산채로 타들어가는 이의 찢어지는 비명이 쿵쿵 울린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소리에 따라 불길이 거세게 요동치자 이에 휩싸인 얼굴의 형상마저 녹아내리고, 코와턱이 허물어진 징그러운 형상으로부터는 이제는 바람빠지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하지만 그 기분나쁜 소리는 불길이 치솟는 소리에 곧바로 묻히지도, 끊어지지도 않으며 길게 늘어져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고...
곧, 모든 소음이 멎는다.
그 조용한 가운데 여전히 안면을 뜨겁게 달구는 열기와 함께 매캐한 연기가 내 숨을 틀어막았고,
힘껏 기침을 하고 싶었지만 내 목을 붙잡은 검은 손은 필사의 저항에도 미동조차 없이, 오히려 더 단단하게 내 목을 조여오고 있다.
점차 숨이 막혀가며 눈앞의 불길을 따라 춤을 추듯 시야가 흔들린다.
꽈아아악...
이대로 힘이 빠지거나, 숨이 막혀 정신을 잃거나.. 결국저 불길 속으로 끌려들어가게 될 것이다.
흐려져가는 시야에 따라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음도 함께 뭉뚱그려져 간다.
"아..."
그렇게 가장 유약한 단말마가 내 입가에 흘러내린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더이상 버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 그 순간, 갑작스럽게도 귀를 등진 이명이 머릿속을 날카롭게 쑤셔들었다.
거의 동시에 내 목을 붙잡고 끌어당기던 검은 팔이 제 힘을 못이겨 완전히 부스러졌고, 불씨섞인 재가 되어 눈앞으로 휘날린다.
"허억....! 헉...! 헉... 허윽.... 컥..?"
화르르르륵...
타닥... 탁......
"....."
가까스로 원래대로 돌아온 시야 속, 마치 거짓말처럼 모닥불은 화로 속에서 얌전히 일렁이고 있었고, 노릇노릇 구워져가는 고깃덩이가 내는 기름진 냄새가 코로 스며든다.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무 가깝다.
안면과 두 손바닥으로 선명하게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나는 내가 달아오른 철제 화로를 찌그러질 정도로 단단히 붙들고, 그대로 머리를 불길 속으로 처박으려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커헉...! 하아..."
목구멍 안으로 가득 채워진 뜨거운 연기를 연거푸 토해내고 나서야 나는 등 뒤로 느껴지는 미약한 저항감을 눈치챌 수 있었다.
".. 그러지마."
양손으로 내 옷자락을 붙잡은 소녀가 단호한 목소리로 나를 나무라며 뒤쪽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날... 붙잡아준 건가...?
언제 밖으로 나온 거지..?
"... 아..."
불길이 머릿속을 갉아먹는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도 있었겠지만, 정말 간발의 차이로 소녀가 나를 깨우는 것이 먼저였던 모양이다.
두통같은 알기 쉬운 전조도, 예고도 없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나를 찾아오는 이것은 특히나 위험했다.
나는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연신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다.. 내가 소녀에게 건넨 말은 고작..
".. 다 익었겠다."
"..."
겉이 다 타버려 까만 돌처럼도 보이는 고깃덩이를 가리키고 있는 나를 소녀는 말없이 쳐다보고 있다.
화로를 잡고 있던 손에 세로로 길게 남은 화상자국이 깨끗하게 사라져가는 것을 나도 모르게 숨기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계속해서 고깃덩이를 가리켰다.
"... 응."
의외로 소녀는 붙잡고 있던 옷자락을 순순히 놔주고는 화로의 반대편으로 돌아가 쌓아둔 장작더미 위에 앉는다.
나는 단검을 꺼내 고기의 탄부분을 도려내고, 나뭇가지가 긴 쪽으로 소녀에게 건네 주었다.
"... 먹어도 돼."
고함을 친 것에 대해 뭔가 제대로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방금전의 일까지 더해졌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소녀를 쳐다보는 게 껄끄럽기 그지없다.
이런 내 기분을 알아주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괜히 눈치섞인 시선이 향하고야 만다.
"우물 우물...."
하지만 소녀는 내게 받아든 고깃덩이가 무엇의 고기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망설임없이 한입 크게 베어물고 그 작은 입을 우물거리기 시작했을 뿐이다.
"..."
고기가 질긴 탓인지 얼마간을 더 우물거린 다음에야 꿀꺽 삼켜낸 소녀는 아마 처음 먹어봤을 고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번에는 더 크게 한입을 베어문다.
두 볼이 살짝 부풀어 오를 정도로 입안 가득 고기를 채워넣고 한동안 말없이 우물거리기만 하던 소녀는,
그걸 전부 삼켜낸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맛있어."
그 말에 긴장이 확 풀려버리고 만다.
여러가지 부분에 있어서 말이다.
"후....."
일단 입에는 맞는 것 같아 보인다.
어쩌면 단순히 처음 먹어보는 고기라서 좋은 반응이 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처음이 하필 마물의 고기라는 건 꽤나 기구하다.
"여기는.. 집?"
내 어색한 침묵에 대고, 소녀는 문득 질문을 해왔다.
소녀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당연히 주변에 한 채뿐인 이 오두막.
단순히 궁금해진 것 뿐인지, 아니면 이 불편한 상황을 신경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답하기 어렵지 않은 질문이다.
"내집은 아니지만. 이곳에선 꽤 오랫동안 지냈어."
"...?"
"버려진 곳이야. 내버려두기는 아까우니 잠시 빌렸지."
이 작은 오두막은 위치가 나쁘지 않다.
숲의 초입이지만 장벽처럼 하늘높이 늘어선 검은 연기의 흉흉한 모습이 이곳에서도 보일 뿐더러,
불타는 검은 숲과 이곳, 재 덮인 숲 사이를 가르는 작은 계곡이 마물들의 동선을 분산시켜준다.
그때처럼 마물들에게 훌륭한 고깃덩이가 되어주고 싶은 게 아니라면... 며칠 걸러 한 번씩은 수면욕을 해소할 장소가 필요했다.
"... 빌렸다?"
표정을 보아, 소녀는 빌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같다.
일단은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신뢰가 있다는 것을 가정해야 하는 개념이니, 그리 친숙한 단어는 아니겠지.
"그러니까.. 남의 물건을 잠시 내가 사용하는 거지."
".. 단검, 빌렸다...?"
내가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가리키는 소녀.
다친 발을 치유받고 잠들어버린 소녀를 모닥불 근처로 옮겨주는 과정에서 그녀의 품 속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 의미가 틀린 건 아니지만...
"아니, 이건 잠시 맡아두는 거야."
"으음..."
뭐가 다른 건지 잘 모르겠는지 갸우뚱하던 소녀는, 두 단어를 명확히 구분짓는 것보다는 눈앞의 고깃덩이가 식어버리지 않는 게 지금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는지 다시 고기를 베어물고 우물거리기 시작한다.
이 짧은 대화 덕분에 어색하던 기류가 조금이나마 옅어진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저 투명한 눈동자를 바라보는 건 쉽지 않다.
그래도 역시 말한다면.. 지금밖에 없겠지.
".. 관에는 손대지 마. 꼭 네가 아니더라도 그 누구에게도 마찬가지니까."
"... 우물우물... 응."
내 예상과는 달리 흔쾌히 대답하는 소녀를 보며 이참에 사과도 해둘까 생각하는데, 입안의 고기를 삼킨 소녀의 질문이 먼저였다.
"그런데, 관이... 뭐야?"
"..."
거기부터 인가..
머리가 약하게 지끈거려온다.
하지만 기분나쁜 지끈거림은 아니다.
".. 도착하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
"응.."
분명 조용한데도 어째서인지 어수선한 기분이 드는 모닥불 앞에 마주앉아,
나도 다익은 고깃덩이 하나를 들어올리는 것으로 이 대화를 서둘러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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