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일행 출신 사제의 우울-21화 (21/137)

〈 21화 〉 5. 악운의 교차점

* * *

5.악운의 교차점(1)

포르투나의 강줄기는 결국 하나로 돌아온다.

*

툭.

툭.

툭.

각진 곳 없이 반들반들한 돌멩이 하나가 떠올랐다가 손바닥 위로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뭔가 의미가 있어서 하는 행동은 아니었다.

내 하루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말이다.

툭.

눈치채지 못한 사이, 모닥불의 불빛에 비쳐 반짝거리는 소녀의 눈동자가 돌멩이를 따라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에 손을 멈추자 내려앉은 돌멩이를 따라 잠시 멈춘 소녀의 눈동자.

나는 작은 돌멩이를 한 번 꾹 쥐었다가,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다 먹은 건가?"

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의 발에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신발이 자리하고 있다.

그때 조금 남겨뒀던 마물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 한 번 소녀에게 집어던진 적 있는 그것 말이다.

그때 고함을 친 것에 대한 늦은 사과의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일단 받아주었기에 한결 마음은 편하다.

손재주가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닌지라 외견이 조잡하기는 해도 마물의 가죽이니만큼 어지간해서는 찢어지지 않는 내구성을 가졌으니 스폴까지는 충분히 쓸만할 거다.

"슬슬 다시 출발하자."

"응."

내가 일어나자 소녀는 주변의 흙을 발로 긁어모아 모닥불을 끄고, 출발했을 때보다는 가벼워진 배낭을 능숙하게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내 뒤가 아닌 옆으로 다가온다.

"..."

"...?"

뭐..

마물이 갑자기 나타난다면 뒤에 있는 것보다는 옆에 있는 편이 대응하기 편하기는 하다.

나는 이에 대해 딱히 언급하지 않았고, 소녀 역시 별말은 하지 않은 채, 한참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재를 맞아가며 걷고 나서야 나와 소녀는 이곳으로 건너오기 위해 건넜던 그 다리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가까이 와."

"왜. 둘다.. 하지않아? 또.. 아파."

"그래서야 건너갈 수가 없으니까."

퉁. 퉁.

소녀의 몸 주변으로 둘러준 신성 보호문을 약하게 두드리며 말하자 소녀는 내가 한 것처럼 그 작은 주먹을 들어 하얀색의 반투명한 보호막을 통통 두드려 본다.

적의 공격은 막아주고 내 공격은 통과시켜주는 그런 편리한 건 아니라서 말이다.

적어도 한 명은 시야를 가릴 정도로 들러붙어오는 마물을 떨어뜨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만들어내지 않고서야, 이 다리를 건널 수는 없었다.

물론 그 많은 마물 무리를 단순히 힘으로 밀고 나갈 수 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겠지만, 잠깐이라면 몰라도 이 긴 다리를 다 건널 때까지 그 정도의 힘을 내는 건 나로서는 힘들었다.

철그렁.

쇠사슬을 꼭 붙잡고 뒤에 붙어선 소녀를 데리고 다시 다리 위로 올랐다.

"..."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다리를 이제 막 반쯤을 건너 지나갈 즈음이었다.

"... 왜 나오지 않지?"

이쯤 되면 다시 그 징그러운 그림자들이 이빨을 맞부딪히는 불쾌한 소음을 내며 다리 위로 솟아오를 법도 했지만, 다리 아래에서는 협곡 사이를 강물이 흘러가며 부서지는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다.

주변을 살폈지만 당연하게도 이곳에는 나와 이 소녀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기척도 전혀.. 잠깐.

".. 이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다리 위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전투의 흔적을 한 발자국 앞두고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흔적.

며칠 전 이곳을 건너올 때에는 이렇게 커다랗고 선명한 흔적 같은 건 없었다.

아무리 다리를 건너는 동안 온 신경이 주변을 둘러싼 마물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고는 해도, 이렇게나 큰 홈이 발밑에 있는 걸 눈치 채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단단한 석재로 쌓아올려진 다리 위를 평범한 흙바닥이라도 되는 것처럼 난도질해 헤집어 놓은 모습이 여기저기 보인다.

마물의 손톱자국처럼도 보이는 이 흔적들은 이곳 다리의 중심부에서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피... 인가?"

그리고 그 흔적들 사이로 부서진 나무 파편들과 함께 끈적거릴 것처럼 보이는 검은 액체가 크게 흩뿌려져 있는 게 보인다.

"..냄새... 불길해.."

썩은 비린내가 나는 검은 액체를 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는 소녀. 불길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나도 찬성한다.

일단 이 다리에서는 빠르게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습격을 받더라도 이렇게 사방이 뚫린 장소에서는 사양이니까.

나는 주변을 더욱 철저하게 경계하며 나아가는 발걸음을 서둘렀지만,

나와 소녀가 다리 위를 전부 건너올 때까지 그 어떠한 위협도 나타나지 않았다.

무사히 넘어온 것은 분명 잘 된 일이지만 여전히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전투 흔적만이 있을 뿐 그 흔한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 다리는 북서대륙 셀틱과 저주받은 땅을 연결하는 통로.

그 위에서 전투가 있었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무엇보다 나 이외에 대체 누가 저주받은 땅으로부터 나가고 혹은 들어가려고 한 걸까.

"... 좋지 않은 예감이 드는데."

내게 이렇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불길한 예감을 느낄 때면 항상 관여되어 오는 놈들이 있다.

어깨 위 검붉은 로브를 두르고 그림자 아래를 걷는 이단자들.

역시 그렇겠지.

새로운 신탁이 내려온 지금, 놈들이 가만히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모든 살아 숨 쉬는 이들의 죄악은 적룡의 불길 속에서 비로소 정화될 수 있다고 믿는 그 광신자들이 또 무슨 꿍꿍이 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이 앞에서 마주친다고 하면..

내 시선은 자연스레 내 옆에서 다리를 뒤돌아 보고 있는 작은 수인 소녀에게로 향한다.

...이 소녀를 지킬 방법은 없다.

"..."

"...?"

놈들이 가지 않았을 법한 길.

이대로 곧장 남쪽으로 향하거나 산맥을 따라 셀틱을 가로지르는 것이 스폴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길이겠지만.. 북쪽 해안을 따라 트라사를 다시 한번 거치고, 왔던 길로 멀리 돌아가는 편이 놈들과 마주칠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북대륙의 일이니만큼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 셀틱의 왕도, 산탈라는 적룡교의 손에 떨어진지 오래.

내가 매 추모제 때마다 이곳에 올 때 굳이 트라사에 들러 셀틱을 위쪽으로 크게 돌아가는 데에는 그 이유 역시 무의식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쪽에서 먼저 이쪽을 찾아오는 거라면 이건 무의미한 짓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저쪽도 우연히 만날 수 있을 만큼 거리를 나돌아다니는 이들은 아닌지라 의식하고 피하려 한다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사람이 없는 곳, 그리고 그에 그치지 않고 마물이 많은 곳으로 향하는 게 그 방법이었다.

특히나 내게는 마물보다도 성가신 놈들이니만큼, 일단 마주치는 상황자체를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었다.

"가자. 발소리는 줄이고."

하지만.

나는 이때까지도 이 상황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

북쪽 해안을 따라 막 트라사에 도착했을 때,

나와 소녀를 반겨준 것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하고 무거운 공기와, 서늘한 바닷바람에 밀려오는 짙은 피 냄새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