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일행 출신 사제의 우울-71화 (71/137)

〈 71화 〉 11. 불신과 맹신

* * *

11.불신과 맹신(6)

"왜 나를 이곳으로 부른 겁니까."

그녀의 단언과는 다르게, 허무 속에서 나를 건져내준 세계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

내 쪽을 향해 그 시선을 향하고는 있지만,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대답도 내게 들려주지 않는다.

그러자, 이미 다 허물어졌을 거라 생각했던 마음속 폐허 한구석에서부터 비열하기 그지없는 원망의 감정이 기어 나온다.

"... 직접 겪어보라 했던 게.. 이런 의미였습니까?"

"..."

"내가.. 아이들을 죽이게 될 거라는걸...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까?"

추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발버둥조차 될 수 없는,

그러한 물음이다.

절망에 말라죽어가는 지혜로운 현자는 이 미련한 물음에 대해 드디어 말문을 연다.

"진실이라는 건, 때로는 멍청하기도, 잔혹하기도 합니다. 마주하려는 의지가 없는 이들에게 함부로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

"과거의 허상에 젖어 고집을 부리고, 변덕을 고수하는 태도. 언제라도 원래의 마음 편한 위치로 돌아갈 수 있도록, 늘 한 발은 뒤에 걸치고 결과를 지켜보고 있던 당신에게, 마주할 의지가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나요?"

"... 나는.."

더 떨어질 곳 없는 인류 배반자의 위치로 돌아가, 언제라도 마음 편히 쥐고 있던 모든 것을 놓아 버릴 수 있도록..

나는 내 손에 새로이 쥐어진 것을 제대로 힘주어 쥘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나의 한심한 본질을 꿰뚫어 보고, 신랄하게 질타하고 있다.

"분명 머릿속으로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제 편한 그늘을 찾아 기어들어가, 자신을 구더기라 욕하는 자들에게 한마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끝까지 당신을 믿고 있던 이들에게조차 마지막 남은 신뢰와 희망마저 저버린 당신에게는... 진실에 가까이 설 자격조차 없어요."

"아이들이... 아이들이 죽었어.."

그녀의 말에는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저 나는 수인 아이들의 죽음을 반복해서 중얼거리고 있다.

그들의 죽음에 대해 내가 대체 무슨 할 말이 남았다는 건지.

나는 내 두 눈을 가리고,

그들의 죽음에 나 역시 애석함을 느끼고 있다며, 동정심을 사려 들고 있다.

그런다고 해서 무언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알면서도 이러는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다.

"항상 그런 식으로 자신의 변덕스러운 감정을 내세워, 때로는 구원자처럼, 때로는 배반자처럼, 때로는 썩어문드러진 시체처럼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하죠. 지금 당신에게는, 미리 아이들의 죽음을 알려주지 않은 제가 마냥 원망스러울 거예요."

"..."

목에 묵직한 쇠로 된 추를 매달아 묶고 당긴 것처럼, 내 고개는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그것이 너무나도 무거워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릴 수 없을 만큼이나, 그녀의 말들은 내 추한 민낯을 낱낱이 파헤치고 또, 눈앞에 드러내 놓고 있다.

"만약 누군가 진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해도, 그건 제가 되어서는 안돼요. 그래서는... 그 험난한 길 앞에 모습을 드러낼 더욱 잔혹한 진실 앞에, 당신은 견뎌낼 수 없을 테니까."

그녀의 말대로다.

앞으로도 내가 포기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을 거라 단언할 수 있을까?

내가 아이들을 죽이지 않았다는 그 간단한 말 한마디 조차 하지 못하는 내가..

나 자신을,

.. 스스로를 믿는 것이... 내게 가능할까?

열 번을 똑같이 생각해 보아도, 열 번을 똑같이 그럴리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온다.

"선택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당신을 가엾게 여겨 저는 지혜를 빌려주었어요."

"..."

"책임을 회피하려 들지 말아요. 저는 분명히 조언했어요. 더는 성소에 오지 말라고,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당신은... 신뢰받고 있지 않다고. 모든 조언을 다 했지만 전부 무시하고 변덕을 부리며 남은 건 당신이잖아요."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는 그녀의 말을 듣자, 나는 낭떠러지 끝에 내몰린 짐승처럼 신경질적으로 목소리를 내뱉었다.

"... 내가..!"

"지혜롭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내가... 그러면, 빈손으로 바실리카로 돌아가서 무너져 내리는 결계를 두 손놓고 지켜보고 있었어야 했다는 건가?"

이래서는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내 입은 추한 울음소리를 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비겁하게 평생을 도망쳐온 내 본성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지껄이고 있다.

"나는.. 나는 너를 살리려 했어...! 너를 살리기 위해 두 팔이..!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을 견디고, 죽음 뒤의 허무 속에서 발버둥치며 괴로워 했다고...!!"

"... 고마워요."

"뭐...?"

"하지만 그래서는 안됐어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당신의 행동은 불씨를 지피고 말았어요."

눈을 치켜뜨고 그녀를 노려보면서, 마지막까지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나를... 세계수는 처음과 같은 담담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차라리 그녀도 함께 목소리를 높여 나를 비난해 주었으면, 저 진한 녹색의 눈동자에 한 번이라도 경멸이 담겼으면 하고 바랐지만... 그녀는 내 이기적인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저 시선이 너무나도 무섭다.

도망치고 싶다.

"말라죽어가는 제게 온몸이 묶여.. 저주가 끝날 때까지 모든 은총을 빼앗기며 의미 없는 죽음을 앞으로 수없이 겪어야만 하는 이 최악의 굴레에, 보기 좋게 걸려든 지금보다는 나았을 거예요. 제 말이 틀렸나요?"

"..."

"지금의 당신을 보고 있자면, 이번 한 번을 운 좋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더라도 더한 굴레에 제 발로 걸어들어갔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지만요."

구르르르륵.... 구르르륵..

"저주가.. 당신을 찾아왔네요. 이번이 저희들의 마지막 만남이에요."

"...!"

"듣기 싫은 소리만 잔뜩 해버리고 말았지만... 이렇게 당신을 부른 건, 변덕이든 무엇이든 저를 구하려 한 그 마음에 대해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오로지 당신에게 달렸죠."

기회를 주겠다는 그녀를 앞에 두고도..

나는 온몸을 불쾌하게 기어올라오는 어둠에 오히려 안도하고 있다.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을 눈앞에 들이밀며 나를 괴롭게 하는 그녀로부터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내 추악한 본성이 어둠에 순응하고 있는 것이다.

"... 멍청한 진실이든, 잔혹한 진실이든.. 이를 알게된 자에게 진실은언제나야속한 법이에요."

*

허무 속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 끝에, 코끝으로 생기 잃은 푸석한 흙내를 맡으며 눈을 떴다.

온몸은 물론이고 방금 뜬 눈꺼풀에조차 내리 앉은 이 무기력함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기 이전부터 이미 은총이 세계수에게 흡수되고 있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나는 지금.. 매달려 있는 건가...?

고개를 들 힘조차 없었지만 목과 사지를 결박한 차가운 쇳덩이의 감촉은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다.

"..."

깜빡.

이젠 이따금씩 한 번 깜빡거리는 수정의 빛에 의지하여주변을 살피자 보이는 건, 말라비틀어져 죽어버린 세계수의 묘목들.

눈에 익은 장소...

모를 수가 없다.

내가 몇 번이고 세계수를 정화하기 위해 악을 쓰다 쓰러졌던, 엘프들의 성소다.

그들의 성소가 지금은 감옥이 되어 나를 가두고 있다니... 기구하기도 하다.

엘프들이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후대에 전할 일은 없을 테니.. 언젠가 나는 모두의 기억속에서 사라져 버리게 되겠지.

그러자 문득, 얼마나 지나야 저 밖에서 내가 남긴 흔적들이 사라질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곳에서.. 내가 누군지 스스로조차 잊어버리게 될 때면 사라질까?

어차피 가장 소중하다 여겼던 것들을 이름과, 그것을 소중히 여겼다는 사실 이외에는 기억해 내지도 못하는 나다.

... 나 자신에 대해서는 의외로 금방 잊어버릴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하..."

깜빡.

수정이 깜빡거리며 잠시 주변이 밝아졌다가 다시 어둠이 내리깔리는 것을 보는 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전부다.

어둠으로인해 시야에 담을 것이 사라지자, 지루함이라도 느낀 것인지 세계수와의 마지막 대화가 떠오른다.

"..."

그녀가 내게 한 비난과 질책들은 모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스스로의 변화를 갈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과거에 발목이 잡혀 누구보다도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 내 모순을 아프게 꼬집은 것이다.

당장 지금만 해도 이름만으로도 두려워지는 영원의 형벌을 받게 되자 마음 편히 끌려와 만족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분명 내 안에 있었으니 말이다.

정말 우습게도 나 스스로가 내 죄에 대한 벌이니 어쩌니 하던 것들은 전부.. 내 마음 하나 편해지기 위해 집착하던 것뿐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알겠다.

그저 지금까지 내 성에 차는 형벌이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영원히 세계수의 뿌리 속에 갇혀 살아났다 죽기를 반복하면서, 거기다 용의 저주와 이 빌어먹을 은총으로 세계수를.. 나아가 이 요람의 주민들까지 살린다는 보기 좋은 구색까지 갖추었다.

온몸이 늘어지는 무기력함은 그저 세계수에게 은총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이대로 나는 영원히... 힘없이 늘어진 비참한 꼴로, 감히 희생하는 것이다.

깜빡.

그리고, 이 짧은 회상이 끝에 다다르자 웃음기가 사악 가신다.

"..."

... 마지막으로 세계수가 했던 말 또한, 나는 기억하고 있다.

'말해 드리죠. 부정할 수 없을 진실에 대해.. 아이들을 목졸라 죽인 건 틀림없이 당신의 죄 많은 두 손이에요.'

검은 어둠의 덩어리에 뒤덮여 끌려내려가던 나에게 똑똑히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는아이들을 죽인 것이 나라는 '진실'을 알려주었다.

'... 이 진실을 안고 앞으로 나아갈 의지가 있다면, 먼저 당신은 금서고에서 불의 계약에 대해 알아 내야만 할 거예요.'

그녀의 말은 아직까지도 이해가 되지 않아, 이대로 허무 속에 정신을 묻고 싶어하는 나를 잡아끌고 있었다.

아이들을 목졸라 죽인 게 나라는 진실을 이야기해주고는,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조언을 덧붙인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불의 계약이니 뭐니,이대로 마음 편히 영원 속에 죽으려는 나를 방해하기 위한 그녀의 수작인 걸까?

깜빡.

당장 고개를 돌릴 힘조차 없는데, 뭔가를 알아낸다거나 하는 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알고싶지도 않다.

지금만큼은... 그 누구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 허무 속으로 빨리 되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이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듯한 무기력함에 몸을 맡기면...

깜빡. 깜빡.

"...?"

뚜벅 뚜벅 뚜벅 뚜벅.

'....'

'...'

'.......'

그러나 이내 들려온 차분한 발소리와, 곧이어 저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작은 수선은 잠에 들듯 몽롱해지던 내 시야를 잠시 돌려놓아 두었다.

끼이이이익..

마른 나뭇조각이 비틀리는 소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저 바깥의 빛으로 인해 잠시 눈앞이 밝아져 왔기에 나는 반사적으로 두 눈을 감았다.

"..."

이 폐쇄된 성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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