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15. 수면에 비친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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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수면에 비친 달처럼(6)
뒤에서 나를 껴안고 있는 가녀린 팔과, 그녀의 숨소리가 긴장으로 떨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 없는 나라도 알 수 있다.
"... 무리하는 거 아니야?"
"무리를 해서라도 에단을 따라가고 싶으니까요."
텁.
"... 읏, 에단..?"
내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자 그녀는 아직 괜찮다는 것처럼 내 손을 뿌리치려 저항했지만 내가 그녀를 멈춘 건 딱히 거절의 의미가 아니었다.
"책임이나 빚보다는 차라리 몸으로 엮인 관계를 만들어 두려는 네 생각에 대해 크게 뭐라 할 생각은 없어."
여린 속박을 떨쳐내고 몸을 돌려 서로를 마주 볼 수 있게끔 하자, 불안과 서운함으로 얼룩져있던 그녀의 표정이 드러난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흠칫 놀라며 금방 표정을 가다듬었지만..
그녀의 연기는 형편없었으니 말이다.
"고맙게도 생각하고 있고, 하지만 네가 이렇게까지 의지를 보여준다면... 나도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지."
"에단..."
서툴러 보이는 이비에게 전부 맡겨두었다가는 오히려 서로 불편하고 어색한 상황들이 더 생겨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도중에 싫으면 싫다고 말해."
"에헤헤.. 좋아요."
좋아요가 아니라..
하아, 아니 됐다.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 서로를 이렇게나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 보고 있으니 아무리 취기의 도움이 있다고는 해도 낯이 따끔거린다.
성가시다고만 생각했던 이 엘프의 관심이 집착이 되고, 또 호감이 되어 이런 상황으로까지 이어질지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흣..?"
가장 먼저 내 손이 향한 곳이 자신의 무방비한 옷가지가 아닌 머리칼이라는 데에 의문 섞인 반응을 보이는 이비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는지 내 손에 자신의 머리를 슬쩍슬쩍 들이밀며 쓰다듬는 손길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녀가 나와 몸을 섞으려고 하는 건 그야 일단은 호감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불안 때문이라는 걸 안다.
"어디까지 날 곤란하게 해야 성에 차겠어?"
"으음.. 그러게요. 헤헤..."
엘프에게 있어 자신의 처음을 내놓는다는 것의 의미는 내가 엘프가 아니더라도 알고 있다.
아주 오랜 세월을 세계수의 곁에 머물며 살아가는 폐쇄적인 종족이니만큼 어지간해서는 부부의 연을 맺지도 않는다.
정략결혼이나 혼기 같은 개념도 없이 이성간의 관계에 있어 몹시 자유로운 이들이지만 오히려 그래서인지 더더욱 조심스러운 모양이다.
지금 이비의 결정이 그만큼이나 절박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나는 적어도 최소한의 예의를 그녀의 앞에서 지켜주어야 했다.
".. 이번 일,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에단...?"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나도 감사 인사 정도는 할 줄 알아. 그저... 마땅히 기회가 없었을 뿐이야."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느긋하게, 하지만 결코 멈추지는 않으며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유야 어쨌든.. 날 믿어줘서 고맙다."
"으후후... 이것 봐요, 벌써 이렇게 보답해 주고 있잖아요."
얼굴은 진작 붉게 물들인 주제에 기세등등하게 콧대를 세우는 모습이 퍽 귀엽다.
"햐읏..?"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손으로 다시 한번 그녀의 귀를 건들어, 아예 가볍게 움켜쥐고 간질이자 그 표정은 금방 무너져 내린다.
"당신... 정말.."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약하게 말아 쥔 주먹으로 툭툭 내 어깨 근처를 두드리는 이비를 보자 왜인지 마음이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많은 일들을 겪고 난 탓에 지쳐있던 마음이 위안을 얻고 있는 모양이다.
흠칫...!
"... 아까도 말했지만, 싫으면 싫다고 말해. 억지로 할 생각은 없으니까."
"....."
귀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그녀의 뺨과 매끈한 턱선을 따라 내리며 끝내는 아담한 어깨에 올려놓으니 이번에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툭.. 툭...
그 침묵에 따라 어깨에서 한 번 더 미끄러져 내린 손이 그녀의 옷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풀어헤치고 있었지만, 이비는 자신의 앞섬이 결국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흐읏..?"
괜찮다는 대답으로 받아들인 내가 앞섬에 그대로 손을 밀어 넣어 그녀의 가느다란 맨허리에 뜨거운 손바닥을 얹어놓자, 술내음과 과일향이 섞인 따뜻한 한숨이 약하게 터져 나온다.
이미 한 번 호수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던 그녀의 나신을 본의아니게 훔쳐 본 적이 있었지만, 손안에 아담하게 들어오는 이 매끈하고 여성스러운 몸매에는 새삼 다시 감탄하고 만다.
그때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주제에, 지금은 마치 잘 따르는 소동물처럼 손길만으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주는 이 차이는 뭔지..
"속옷은.. 입지 않는 건가?"
"위쪽은... 보통.. 갑옷을 입는 경우가 아니면.. 흣, 잠깐..?"
일부러 말을 걸고 그 상태로 손을 위로 끌어올려 그녀의 봉긋하게 솟은 가슴을 약하게 움켜쥐자.. 이 반응은 정말이지, 먼저 날 침대로 끌고 온 게 그녀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비교해서는 안 되는 것이겠지만, 수의 풍만한 젖가슴에 비하면 한참 빈약하다 말할 수 있는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는 것에 특별히 어떤 쾌감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을 리는 없었지만, 늘 나를 곤란하게 했던 이비의 신선한 반응을 지켜보는 것만큼은 분명 즐겁다.
아직 덜 여문 과실을 탐하는 내 부족한 기분을 채워주기 위해 연신 부끄러운 신음과 함께 몸을 비틀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금방 검게 물들어가는 내 마음은 그녀의 입에서 조금 더 여성스러운 신음을 터뜨려보고 싶다는 욕망과 그 충동을 머릿속에 채워온다.
"읏, 햐읏..?! 에.. 에단..??"
여전히 그녀의 가슴께에서 손을 놓지 않으며, 나머지 손으로 그녀를 끌어안듯 잡아당겨 품속에 깊숙이 파고든 나는 그대로 그녀의 하얀 목덜미를 물었다.
약속한 것처럼 또 활기 넘치는 반응을 보여주는 그녀 탓에 몰래 입가에 웃음기를 머금으며 어딘지 좋은 냄새가 나는 그녀의 살갗 위로 내 흔적을 새겨나갔다.
그녀의 몸은 아직 누군가를 유혹하기에는 다소 자극이 부족했지만, 이 기분 좋은 살내음과 매끈한 몸매의 만족스러운 감촉은 다가온 나를 꼭 붙잡고 늘어진다.
"..."
목덜미에서 점점 아래로 내려와 쇄골 근처에서 붉은 자국을 선명하게 남기고 있었던 나는 누군가의 뜨거운 시선을 느끼고 시선을슬쩍위로 끌어당겼다.
".. 표정이 꽤나 볼만한데."
"힉..?"
아련한 듯, 홀린 듯... 아니면 단순히 술에 취한 듯 풀린 눈과 녹아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놀리듯 한마디를 던지자 화들짝 놀라 급하게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다.
"마음에 들었나 보네?"
"..."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녀의 귀 끝이 붉게 달아올라 있는 게 보였기에 굳이 들을 필요도 없었다.
이번에는 내 손에 알맞게 들어차는 그녀의 아담한 가슴에도 입으로 흔적을 남기며 장난을 조금 쳐볼까 생각했지만, 당장은 그녀 쪽에서 무리일 것 같아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이제 그녀의 하의를 내리기 위해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지만, 그녀의 손이 내 손등 위로 다급하게 얹어지며 소심하게 막아세워 온다.
아쉽긴 하지만 그만두려는 걸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이다.
"에단도... 벗어줘요. 혼자서는.. 부끄러우니까."
"그래도 옷을 벗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나 보네."
"... 으으.. 어린애 취급하지 말아요.."
이젠 완전히 입장이 뒤바뀌어버렸다는 걸 충분히 느끼고 있는지 처음에 보였던 그 자신감은 이젠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게 눈에 훤히 보이고 있다.
스륵...
툭.
몸을 일으켜 잠시 그녀에게서 떨어진 내가 사제복을 벗어 침대 옆에 걸어두는 사이, 옆을 힐끗 보자 비적비적 하의를 내리고 있는 이비의 모습이 보인다.
지하의 호수와 수정들이 만들어낸 은은한 자연조명 아래 부드러워 보이는 허벅지가 옅은 빛을 머금고 드러나고, 곧 예쁜 곡선을 그리며 뻗어진 종아리와 가는 발목까지 완전히 노출된다.
끝내 하의를 벗어낸 그녀였지만 앞섬이 전부 풀어헤쳐진 상의와 아래의 유일한 속옷만큼은 벗기를 주저하고 있다.
그 매끈한 나신을 전부 드러내기까지 이제 허술하게 걸쳐진 상의 하나와 그녀의 비부를 지키는 작은 천쪼가리 하나만이 남아있다.
스윽...
"...!"
내가 직접 그녀의 어깨 위에 양손을 얹고 미끄러지듯 옷과 함께 손을 아래로 내리자, 이젠 정말이지 무방비한 그녀의 나신이 다시 한번 내 눈앞에 놓이게 된다.
마른 몸이지만 미적 기준에서 우월한 엘프답게 뛰어난 신체 비율이라든가, 허벅지와 가슴께에는 알맞게 살집이 붙어 은밀한 골짜기에 곡선을 더하고, 예쁜 형태의 가슴 또한 봉긋하게 솟아있어..그야 인위적으로 조각해놓은 예술품처럼 내 시선을 잡아끈다.
과장이라기에는 그녀의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 때문에라도 그런 착각을 더하는 것이다.
"흉터가 남지 않아서 다행이네."
"... 에단이 잘 치유해 준 덕분에요."
"지금 몸 상태는 어때. 조심하겠지만 무리시킬 생각은 없으니까."
"괜찮아요.. 그.. 으으..."
"...?"
그녀의 시선이 연신 힐끗거리며 내 하반신을 살피고 있었던 만큼 따라서 시선을 내리자 뻐근하게 느껴졌던 만큼이나 정상적으로 발기해 있는 남성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반응은 음란하다기보다는 애쓰는 모습이 귀엽다는 쪽의 감상이었지만 팔 안에 가볍게 들어오는 여성의 가녀린 몸과 살갗의 부드러움과 향기에 수컷은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대로 이렇게 몸을 보여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내 몸에 지저분하게 흉터가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새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만."
물론 정말로 그만하자고 그녀가 말한다면 아쉬워할 마음은 내심 있었지만, 그녀의 말 한마디면 멈춰줄 자제력이 아직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서로 맨살을 맞대어 온기를 나누다 그게 열기로 번지게 된다면 그때는 조금 어려울지도 몰랐기에 하는 말이었다.
"... 읏.. 으읏.."
그녀의 침대 위로 무릎을 걸치고 올라온 내가 그림자를 그녀의 몸 위로 드리우자 아예 눈을 꼭 감아버린 그녀는 다리 사이와 가슴만을 두 팔로 가리며 허술함의 극치를 보인다.
내 자제력을 시험하려고 일부러 이러는 걸까 싶기도 했지만 그것까지는 아닌듯하고...
"으힛..?"
꼭 모아진 그녀의 허벅지에 손을 올려놓자 튀어나온 반응이었다.
아주 조금 힘주어 벌리자 그 있는 듯 없는듯한 저항은 무의미할 뿐이었고,
처음일 그녀에게 당장 내 남성을 받아들이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녀가 지레 겁먹고 무의식중에 내놓는 이런 반응들은 괜히 내 남성을 자극하며 힘껏 꺼떡거리게 하는 것이다.
"에.. 에단, 잠깐..."
"기다려 줄 수 있어."
막상 이렇게 알몸으로 마주하게 되니 겁도 나고 걱정도 되는 거겠지.
얼마든지 기다려줄 수 있다.
밤은 길었으니까.
"에단.."
내게 여전히 붙잡혀 있는 그녀의 허벅지가 긴장한 채 작게 떨리고 있었던 만큼, 나는 최대한 시선을 그녀와 맞추며 성의껏 대답해 주기로 했다.
"그래, 말해."
"에단은.. 왜 제가 다치지 않았으면 해요..?"
누가 되었든 나는 딱히 타인이 다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이 이상한 질문이 의도하는 바가 내가 곧이곧대로 이해한 대로는 아닐 테기에 조금 더 생각했다.
지금 이 상황은 그녀의 억지에 내가 어울려 주는 것으로 남녀 간에 쉽게 끊어내기 힘든 관계를 만드는 행위이다.
그녀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내가 그녀를 거부할까 봐.
그렇다면 지금 이비가 바라고 있을 대답이라면, 나는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진심에 대한 것일 게 분명했다.
"네가.. 좋은 녀석이니까."
움찔..
손바닥에서부터 그녀의 기쁨에 찬 반응이 튀어 올라왔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성가시게 굴기는 했지만.. 눈치껏 관에 대해서는 줄곧 묻지 않은 걸 보면 배려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본능에 충실한 수인 아이들에게 평판이 좋았다는 건 무슨 연기를 했든 네가 착한 녀석이라는 거겠지."
"... 으으.."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잠시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허리를 가져다 붙였다.
유일하게 남아 그녀의 은밀한 골짜기만을 간신히 지키고 있는 하얀색의 작은 천쪼가리가 무색하게도,그 위로 발기한 남성을 주저 없이 얹어놓자 이 뜨겁고 단단한 것에 놀란 듯이 아랫배를 튕기는 모습이 꽤나 와닿는다.
세로로 예쁘게 패인 배꼽 양옆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복근이 긴장하여 움찔거리는 모습에는 자칫 자제력을 잃을 뻔했다.
"..."
내가 그녀에게 이렇듯 어울려주고 있는 이유는 남자라면 거부하기 힘든 아름다운 얼굴과 완벽에 가까운 몸매를 가지고 유혹해오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라고 한다면 한 가지밖에 없다.
"이브, 네가.. 날 믿어주었으니까."
그녀가 나를 믿어주었기 때문이라는 몹시 단순한 이유였다.
하지만 단순한 만큼이나 내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
내 대답을 들은 이비는 마치 안심하기라도 한 것처럼 몸의 긴장을 어느 정도 덜어내고, 내게 몸을 맡겨온다.
그녀와 맞닿아있는 내 몸 위로 느껴지는 무게감에서 알 수 있다.
일말의 불안마저 버릴 수 있게 된 그녀가 내게 몸을 허락한 것이었다.
"상냥하게.. 해주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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