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18. 비명이 파묻힌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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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비명이 파묻힌 도시(2)
무덤처럼 조용한 골목길을 지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광장에 도착하자눈 앞에 펼쳐진 것은,소녀를 함께 데리고 온 걸 후회하게 되는 풍경이었다.
이 매캐하고 텁텁한 속이 불편해지는 냄새에 어째서 내가 익숙했던 것인지를 뒤늦게 눈치챈 탓이었다.
화르르륵...! 화륵..!
투두둑.. 쿠둑.
쿠훅..! 푸쿡...!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 하나는 얼굴에 뒤집어쓴 천 조각 하나에 의지한 채, 두 손에 기다란 막대를 들고 익숙한 듯 불을 들쑤시고 있다.
푹..! 쿠훅....! 화르르륵.....!!
노인이 불속의 까만 덩어리를 막대기로 밀쳐 뒤집자 재와 불씨가 주변으로 튀어 오르며 불은 더욱 생기를 얻어 높이 타오른다.
그의 주변으로 쌓여있는 것들은 시체의 무더기.
굳이 확인하지 않더라도, 이 시체들이 역병에 잡아먹힌 이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턱.. 화르르륵...!
타닥... 탁....
나는 불속에서 까맣게 타오르고 있던 시체의 팔이 이제 막 힘없이 늘어지는 걸 보고 끝내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아직 다 타지 않은 손가락의 형상이 남아 이쪽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것처럼 보인 탓이었다.
".. 이런."
"에단?"
광장은 이미 썩은 시체를 태우는 고약한 냄새로 가득 차 있다.
나는 귀가 먹먹해지고 머릿속이 멍하니 울려오는 두통의 전조에 이마를 짚고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광장의 돌바닥에는 타다만 옷조각과 쓸린 핏자국이 검게 말라붙어있었지만 그럼에도 속은 다소 진정되었다.
불에 타올라 마치 숯처럼 까맣게 변해버린 시체들이 이미 주변에 가득했으니 말이다.
지끈..!
머리 속에 갇힌 작은 난쟁이들이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 생살을 찢고 나오는 듯한 버티기 힘든 두통에 나는 끝내 비틀거리다 실비아의 팔에 붙잡혔다.
과연 수인답게 어린 체구에도 날 붙잡을 힘 정도는 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지금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걸 보면 아직까지는 상태가 그리 심각하지는 않은 듯하다.
"후..."
불에 탄 시체 같은 건 질릴 만큼 봐 왔다.
옆에 실비아가 있는지금은 안된다.
이곳에서 소녀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그러니 여기까지 와서 한심한 꼴을 보일 수는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악물자.
"허억.. 헉... 그흐.. 후우..."
그 바람이 간신히 닿았던지 마침내 먹먹하던 귀가 뚫리고, 어느새 가까이까지 다가와 있는 노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자네들은.."
겉보기에도 상당히 수상쩍을 나와 소녀를 보고도 경계없이 다가온 그를 향해 나는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이 주변에서는 못 보던 얼굴들이군 그래.."
".. 다들 역병에 쓰러진 겁니까."
"뭐.. 가는 데에는 순서가 없다고 하지 않나."
"..."
이 많은 시체들 가운데 홀로 서서 시체를 태우고 있던 이가 하는 말이라기에는, 몹시 담담한 목소리라 다소 위화감이 생긴다.
그저 불이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 장작을 집어넣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의 상태는 이상할 만큼이나 평온해 보인다.
".. 흐음, 보아하니 외지인 같은데 어쨌든 큰 광장들은 피하시게."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는지, 어째서 왔는지와 같은 이유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처럼,더 할 말은 없다는 듯 다시 막대기를 잡고 등을 돌린 그를 오히려 내쪽에서 불러 세웠다.
"...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밖에 나와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으음..? 이런 다 죽어가는 노인에게 물어볼 게 있다고?"
"값은 치르겠습니다."
묻고 싶은게 있다는 말에 그제서야 흥미를 보이며 고개를 옆으로 젖힌 그였지만, 값을 치르겠다는 내 말에는 큰 감흥 없이 짧게 웃었을 뿐이다.
"허허.."
화르르르륵...!! 쿠르륵... 화륵..!
불더미 안으로 이름모를 시체를 하나 막대기로 밀어 넣고 나서야 노인은 다시 등을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불빛에 비쳐 드러난 노인의 얼굴은 검댕과 땀방울이 섞여 깊게 패인 주름들 사이로 지저분하게 자국을 만들어 놓고 있었고, 입과 코를 가리고 있는다 헤진 천 조각은 이미 피가 지저분하게 말라붙어있다.
"좋네, 젊은이들과 대화하는 것도 오랜만이니."
그 역시도 역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눈치챈 나는 실비아의 손목을 붙잡았다.
물론 질문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 바실리카에서 찾아온 사절단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 아아.. 그렇지, 그 사제들 인가보군. 그들을 찾으러 왔나 보구만."
운이 좋았던지 잠깐 기억을 더듬은 노인은 당장 그들을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반응해 온다.
"맞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 다 죽었다네."
하지만 그 대답은 그리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마치 동네에서 간간이 보이던 개가 죽었다는 것처럼 무신경하게 내뱉어진 그 대답에 내 눈가에 슬며시 힘이 들어갔지만,
"..."
그에게는 당장 눈앞의 나와 소녀가, 혹은 그 자신이 쓰러져 죽더라도 저렇게 담담할 것이었다.
"그들이 어쩌다 화를 당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 글쎄, 나도 셋째 아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들은 것뿐이라 말일세."
"..."
"대로를 따라 동부지구로 가면... 성당이 하나 있었지 아마. 그들이 그쪽으로 향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네."
동부지구..
오랫동안 연락이 끊기기는 했어도 모르부스에는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성양교의 성당이 있었다.
다른 사제들이나 신도들에게 용사와 성녀를 찾기 위한 도움을 받기 위해 나라도 성당으로먼저향했을 테니, 이 이야기는 기억해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 가는 건 조금 더 생각해 보시게나. 역귀들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한참 돌았거든."
"... 역귀..?"
"그게 아니더라도.. 큽, 역병이 퍼지기 시작한 곳이... 크훅..! 콜록콜록...! 커헉.. 쿨럭..."
"...!"
곧바로 소녀를 내 뒤로 끌어당기고 그로부터 거리를 두게 했지만 노인은 그런 내 반응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나 역시 자연스러운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다지 미안하지 않다.
".. 이거 미안하네... 그래도 자네는 옷을 입은 걸 보면 사제겠지?"
"맞습니다. 원하던 대답도 들었으니 지금 바로 치유를..."
텁..!
"...?"
치유를 위해 뻗어진 내 팔을 잡아챈 건 다름 아닌 노인의 앙상하게 마른 손이다.
그러나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한 노인의 연약한 손에 붙잡힌 내 팔에서는 분명한 거절 의사가 느껴지고 있었기에 당황스럽다.
".. 됐네. 그것보다는 이야기나 좀 더 함세."
"..."
노인은 내 팔에서 손을 떼고 잔기침을 하며 시체들이 불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이미..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지 오래인 듯 하다.
"냄새는 고약해도.. 따뜻하구먼."
"..."
저 말에서 그가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시체들을 태워온 것인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 값을 치른다고 하지 않았나?"
"... 알겠습니다."
"커허어.. 쿨럭. 허허... 젊은이들과 대화해 본 지도 오래거든.. 역병에 걸리고부터는 매일같이 시체들을 태우느라 아무도 근처에 오지 않아서 말이야."
"이 많은 시체들을 혼자서 말입니까."
노인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왜 여기에서 홀로 역병으로 죽은 이들의 시체를 태우고 있는지는 그리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다.
"곧 죽을 노인네가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하겠나."
역병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곧 죽을 것처럼 보이는 노인이 마침 역병에 걸리기까지 했다.
시체에 남아있는 역병을 태워 없애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역병이 옮을 위험을 감수해야 했으니, 불편한 이야기지만 누군가 해야 한다면 그가 제격이라 할 수 있었다.
그가 시체들을 태우다 그대로 쓰러져 죽으면 다른 역병에 걸린 이가 와 저 막대기를 주워들고, 그의 시체를 태울 것이다.
".. 어차피 집에 돌아간다 해도 기다리는 이가 없으니 말일세."
"..."
그가 이런 불합리한 사회적 합의에 대해 일말의 불만도 없이 수긍한 이유였다.
"아무튼 그래, 사람과 말하는 게 오랜만이라 그런지 막상 내 쪽에서 할 이야기가 없군. 더 묻고 싶은 거라도 있나?"
"그럼.. 황제와 저항군에 대해서도 아시는 게 있습니까?"
"황제 전하?... 그렇지, 자네들은 외부인이었지. 베르디히 전하를 말하는 거라면 조금 아는 게 있네."
.. 베르디히인가.
사절단을 처형시킨 건 다름아닌 황제의 명령이었다고 했다.
"왕위를 찬탈한 귀족입니까?"
"아니, 선왕이신 루이폰스 전하의 차남일세. 극성이던 귀족들을 모조리 처형시키고 돼지들의 밥으로 줬던 그 사건은 아무리 주름살이 늘어도 잊혀지지 않는군."
.. 딜런이 전해들었다는 이야기들은 아무래도 전부 과장없는 진실이었던 것 같다.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왕위를 적자가 물려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는 의구심이 들기는 하지만, 그가 왕가의 일을 깊숙이 알고 있을리는 없겠지.
"그렇다면 저항군은 왜 황제와 싸우고 있는 겁니까?"
".. 싸워? 허허허.. 재밌는 소리를 하는구먼."
"...?"
그는 정말이지 재밌는 질문을 들었다는 것처럼 막대기를 부여잡고 끅끅댄다.
하지만 나는 여태까지 조금도 변화가 없었던 그의 눈동자가 한순간 미약한 분노로 번들거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 콜록.. 콜록.."
그는 힘겨운 잔기침 끝에 말을 이었다.
"싸우고 있는 게 아닐세. 그들은.. 그저 살아남으려 열심히 발버둥 치고 있는 거지."
"..."
"북부지구는 이미 미래를 뿌리 뽑혔고, 이젠 겁쟁이들과 벙어리들만이 모여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네.. 자네도 헛된 저항을 구경하는 데에 관심이 있다면야, 남부지구로 내려가 보시게나."
그는 또다시 허허허 웃었다.
불타오르는 시체더미들을 뒤에 두고, 멀쩡히 웃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어딘가 섬뜩하게까지 느껴진다.
"아.. 그렇지. 대신 그곳에 갈 생각이라면 옆의 아이는 잘 챙기도록 하고."
"..."
굳이 실비아를 언급하며 조심하라는 그의 말에 의문이들어 소녀를 한번 쳐다보자, 어느새 소녀는 배낭에서 물이 담긴 작은 통 하나를 꺼내 손에 들고 있다.
소녀는 내쪽으로 시선을 주며 수통을 내게 조심스럽게 들이밀고 있다.
".. 에단..."
굳이 묻지 않더라도 이것을 누구에게 주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 이쪽만 대답을 들은 것 같아, 아무래도 답례를 해야겠습니다."
"... 으음..?"
나 역시 노인에게 정보를 얻고도 답례를 하지 못해 찜찜하던 차였다.
실비아의 손에 들린 수통을 건네받아 노인에게 건네자, 치유는 거부했던 그는 이 작은 수통만큼은 흔쾌히 받아든다.
".. 이건 물인가?"
"깨끗한 물입니다."
"그렇군... 고맙네."
수통을 받아들고 나서도 한참동안 자신의 손에 들린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노인은 남은 한 손으로 다시 긴 막대를 쥐었다.
"... 허허.."
광장을 떠날 때까지, 나와 소녀의 등 뒤로는 고저 없는 웃음소리와, 숨에 차 흔들리는 기침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기침소리는 멎고, 새로운 시체 하나가 힘없이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광장에는 마개를 열지도 않은 수통 하나가 떨어져 구르는 소리가 잠깐 들려왔을 뿐. 그마저도 불이 타오르는 소리에 집어삼켜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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