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검가 로이넨-92화 (92/258)

제92화. 카포티니 정착 (2)

“여기가 저희 위장별채입니까?”

쿠제가 경계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카포티니 외곽의 한적한 골목. 눈앞에 있는 건물은 겉으로는 평범한 창고였지만, 내부는 텅 빈 것 같았다.

“아냐. 여기서 잠깐 작업 좀 하고 넘어가려고.”

“작업이라니요?”

“지금 당신 도련님께서 마법학교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가 뭐겠어? 마나가 없다는 거잖아.”

“그래서 마나를 만들어준다는 뜻입니까? 그게 가능합니까?”

로젠탈러는 물고 있는 담배를 입으로 까딱거렸다. 그러곤 여유로운 표정으로 창고 문을 열었다.

쿠쿠쿠쿵.

루빈과 쿠제가 암연으로 느낀 것처럼 역시나 내부는 비어 있었다. 로젠탈러는 일행을 창고 가운데로 데려갔다.

“이제 키슬링이 가짜 마나를 만들어줄 거야.”

“가짜 마나?”

“너희 암살자들이 마나를 가질 수 없다는 건 나도 잘 알지. 하지만 마법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최소한의 마나가 있어야 하니까, 눈속임을 하자는 거야.”

루빈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마나는 클로이가 도와준 덕에 품게 되었지만, 칙명부에겐 들켜선 안되는 것.

대체 무슨 속셈인가 싶었는데, 칙명부의 방식은 예상했던 것보다 허술해 보였다.

“눈속임? 그것만으로 입학이 가능하겠어?”

“눈속임도 눈속임 나름인 거야. 그리 단순한 건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이어지는 로젠탈러의 지시에 키슬링이 움직였다. 그는 준비해 둔 물건을 가져와 루빈 맞은편에 섰다.

촉이 유난히 뾰족한 만년필이었다. 루빈은 이것이 마도구의 일종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펜촉은 마나석으로 만들어졌고, 잉크 역시 마나석을 정제한 것이었다.

어디서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마도구 같았다.

“우리도 꽤 힘들게 구한 물건이야. 우리 선에서는 당연히 불가능했고, 수장님을 통해야 했을 정도라고.”

“황궁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뜻인가?”

“제국귀족의 도움을 받았지.”

제국귀족 중 이 정도 마도구를 제공할 곳은 하나밖에 없지. 클로이의 가문, 위더스푼인 것이다.

“윗옷을 벗어주십시오.”

키슬링이 공손하게 말했고, 루빈은 곧바로 그 말에 따랐다. 루빈이 짐을 내려놓고 웃옷을 벗자, 키슬링은 등 뒤쪽으로 돌아갔다.

가만히 바라보던 쿠제가 나섰다.

“저걸로 뭘 하려는 겁니까?”

“어이, 너무 걱정하진 마. 가짜 마나를 위한 문신을 새기는 것뿐이니까.”

“문신이요?”

“살짝 아프긴 하겠지. 그래도 암살자들한테는 별거 아니잖아?”

“문신만 새기면 마나가 생긴다는 겁니까? 정말 확실해요?”

쿠제의 눈이 떨렸다. 그는 로젠탈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위장별채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런 임무를 받게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하기도 했고.

“이 일, 저희 가주님께서도 알고 계신 겁니까?”

“당연하지. 이미 전달된 거야. 아무런 이의도 없었어.”

쿠제의 적의가 거슬렸는지 로젠탈러도 충혈된 눈으로 노려봤다. 이번에도 상황을 정리한 건 루빈이었다.

“난 준비됐으니까 빨리 시작해.”

키슬링이 마도구 만년필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어느 정도 위험 요소는 있습니다만, 심각한 건 아닙니다. 이대로 마나가 주입되면 체내에 마나의 환이 생길 겁니다.”

“근데 가짜라는 거잖아?”

“맞습니다. 모양만 환이지, 허상이나 다름없습니다. 당연히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겠죠. 남들에겐 마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테지만요.”

“얼마나 유지되지?”

“1년 정도입니다. 그 이후엔 문신을 다시 새겨야 할 겁니다. 물론 그 전에 임무를 완수하면 다시 새길 필요는 없겠죠.”

어떤 임무일진 모르지만, 루빈은 자신 있었다. 그에겐 두 개의 암연을 비롯해, 오러와 마나까지 있었으니.

그때 로젠탈러가 끼어들었다.

“생각없이 설치고 다니다가는 금세 들통날 테니까 조심하라고.”

“그럴 일 없으니까 네 걱정이나 해. 어쨌든, 가짜 마나라. 무슨 수를 써도 열등생 신세를 벗어날 수 없겠군.”

“그래도 다행이죠. 여긴 다른 곳처럼 성적이 부진해도 퇴학시키지는 않으니.”

키슬링의 말이 맞았다.

카포티니 마법학교는 다른 곳과 달리 선민의식과는 동떨어진 곳. 삼휘를 대표하는 마법학교답게, 학생들 모두 후천적으로 마나가 발현된 사람들이었다.

선천적으로 마나를 타고난 다른 마법학교 학생들에 비하면, 거만함이나 오만함이 덜할 수밖에 없다. 학교 문화 자체도 평등하고 자유로웠다. 물론 어디까지나 ‘다른 마법학교에 비해서’지만.

어쨌든, 대개 마법학교가 졸업생보다 퇴학생이 많은 것에 비해, 여긴 거의 생도 대부분이 졸업장과 함께 학교를 떠날 수 있는 곳이었다.

루빈도 마찬가지다.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충분히 잠입 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설사 가짜 마나가 없더라도, 루빈이 가진 세 개의 환이 가능하게 해줄 터. 마법학교 생활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마나를 들킬 수도 있겠는데.’

키슬링이었다. 가짜 마나를 주입해 주는 위더스푼가의 만년필이, 루빈의 체내에 있는 ‘진짜 마나’와 반응할 수도 있었다.

물론 아주 미약한 반응이라 대부분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시술을 행하는 키슬링은 달랐다. 가짜 마나를 주입은 집중을 기해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니.

‘눈속임이 필요하겠어.’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키슬링은 루빈의 왼쪽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루빈은 의도적으로 공격적인 암연을 방출시켰다. 상대는 키슬링. 자신을 휘감는 암연을 눈치채지 못한 그는,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시달렸다.

‘뭐지? 뭘 잘못 먹었나?’

키슬링은 침을 꿀꺽 삼킨 뒤, 작업을 시작했다. 위더스푼가로부터 전달받은 마법 문양을, 루빈의 등 한가운데에 그대로 그려야 하는 작업이다.

펜촉이 살갗을 찌르며 들어갔다. 이내 방울로 맺힌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머뭇거리면 아픔만 길어질 뿐, 키슬링은 서둘렀다.

한편, 루빈은 키슬링이 자신의 ‘진짜 마나’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계속하여 암연을 퍼뜨렸다. 키슬링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걸 보니 잘 먹혀들고 있었다.

그때, 로젠탈러가 입을 열었다.

“작업이 잘된다고 해도 네가 바로 마법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야. 입학 시기는 2년 뒤가 적당할 거다.”

“그럼 그동안에는 뭘 하면 돼?”

“이 근처에 마련된 위장별채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으면 돼. 가짜 신분에 익숙해지고 도시에 적응하면서. 시간이 남으면 마법학교의 교칙이나 역사 같은 걸 공부해도 되겠지. 입학하면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될 테니까.”

“내가 기숙사에 들어가면 쿠제는 어떻게 되지?”

“그것도 칙명부에서 최대한 힘을 써줄 거다. 도련님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자릴 마련해 줘야지. 그게 너희들 전통이잖아?”

“마법학교로 같이 들여보내 줄 건가?”

“그것까진 무리고. 근처에 사업장을 하나 마련해 주지.”

어느덧 문양이 거의 다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루빈은 눈을 감고 있던 그대로 가만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문신 작업의 아픔 때문이 아니다. 마나가 담긴 세 번째 환에 일어난 변화 때문이었다.

심장을 중심으로 회전하던 세 개의 환. 그 옆으로 네 번째 환이 새롭게 생겨나는 느낌과 함께, 심장이 심하게 뻐근해졌다.

‘불쾌하군. 가짜라 그런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이질감에, 순간적으로 방출되는 암연이 흔들렸다.

“……?”

키슬링이 뭔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한 것도 그때였다.

루빈은 서둘러 암연을 이전보다 더 방출시켜, 키슬링이 착각했다는 느낌을 받도록 했다.

“역시 암살검가 꼬마는 다르네. 아프지도 않나 보군.”

“고작 이 정도로 우는 애는 암살검가에 없어. 그리고, 하나 더 해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뭐지?”

“위장 신분은 지금까지 해왔던 걸로 유지하게 해줘. 루든 포이넨, 출판사업으로 큰돈을 번 3등귀족의 자제로.”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나?”

“이 도시로 오는 중에 만난 사람이 있어. 어쩌면 학교 안에서 마주칠 수도 있을 것 같거든.”

신분이 탄로 날 가능성이 있다? 칙명부 입장에서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로젠탈러는 흔쾌히 승낙했다.

“끝났습니다.”

키슬링이 들고 있던 마도구를 내려놓았다. 문신이 완결되자마자 펜촉이 순식간에 바스러졌다.

프스슷. 프스슷.

루빈의 등에서는 한동안 열기가 피어올랐다. 이윽고 열기가 가라앉자 쿠제가 다가와 웃옷을 둘러주었다.

이제 남은 건 확인 절차.

루빈 맞은편으로 다가온 키슬링이 가만히 심장 쪽에 손을 얹어보았다. 로젠탈러는 그 옆으로 다가와 이어질 대답을 기다렸다.

“음… 생각했던 것보다 제대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진짜야?”

“네. 역시 위더스푼의 마도구라 그런지 다르군요.”

“음.”

이윽고, 루빈과 쿠제가 먼저 창고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이 곤돌라에 올라타서 기다리는 동안, 키슬링은 마도구를 정리했다.

“키슬링. 제대로 된 거 맞나?”

로젠탈러가 담배를 비벼 끄며 물었다.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있다는 듯이.

“뭐 하나 걸리는 게 있긴 합니다.”

“뭔데?”

“암살검가 일족들은 마나를 지닐 수 없다는 거, 사실입니까?”

“당연하지. 암연과 마나는 공존할 수 없으니까. 근데 그건 왜 묻지? 루빈 몸속에 마나라도 있었나?”

로젠탈러는 무슨 멍청한 소릴 하냐며 비웃곤 그대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

키슬링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아주 잠깐이지만, 작업 중 분명 뭔가를 느꼈다. 루빈의 몸속에 마나가 원래부터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착각이겠지.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키슬링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 * *

루빈의 위장별채는 카포티니 동쪽 구역에 마련되었다. 한적한 동네였고, 우연으로라도 마법생도와 마주칠 일이 드물 만큼 외딴곳이었다.

2년. 이곳에서 지내는 시간은 그 정도뿐.

그 시간이 지나면 루빈은 카포티니 마법학교 생도가 될 테고, 쿠제는 마탑구역 경계에 있는 비마법서점 주인장이 될 터였다.

쿠제의 직업을 그렇게 설정한 건, 애초 루든의 가문이 출판사업으로 3등귀족에 올랐다는 설정을 이어나가기 위해서였다.

로젠탈러는 주기적으로 루빈을 찾아왔다. 그때마다 마법학교에 관한 정보나, 카포티니 바깥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필리몬드에서 있었던 반란 모의는 ‘표백의 아침’이라 하여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암레트는 반역자 최후의 일례로, ‘빛과 반역의 탑’에 액자 하나를 추가하게 되었다. 하네케의 손자, 펠키온 브리온처럼 말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당할지 모르겠군.

‘그걸 저지하고 뿌리 뽑는 게, 앞으로의 제 역할입니다.’

-부디 저자가 마지막이길…….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루빈은 입학 전까지 위장별채를 나서는 일을 최대한 삼갔다. 그렇다고 일상이 한가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루 대부분이 수련과 연구로 빡빡했다.

하네케를 통해 오러를 성장시키는 한편, 쿠제와 함께 암연의 신기술을 조금씩 완성해 갔다.

그리고 어느덧.

“수업 첫날입니다, 도련님.”

“준비됐어.”

이웃들의 눈길로부터 차단된 저택의 뒤란.

쿠제와 수련하기에 제격인 장소였다.

누가 본다고 하더라도 문제 될 건 없었다. 암연은 특성상 가시적이지 않으니, 남들 눈에는 그냥 아버지와 아들이 뒤란에서 대화하는 것 정도로 보일 테니까.

“자, 그럼.”

쿠제의 분위기는 이제까지와는 달랐다.

지금 쿠제가 지닌 경지만 보자면, 루빈과 비슷하거나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 쿠제 역시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타인을 속이는 연기술, 위급 상황에 쓰이는 은신술, 전투에서의 공격과 방어 기술 등등.

로이넨서가 자제들을 가르치는 일반적인 항목들이었지만, 그런 점에서 보자면 루빈이 쿠제에게 더 배울 건 없었다. 모두 이전의 삶에서 거쳤던 교육들이었으니까.

쿠제의 진면목은 다른 곳에 있다. 그는 암연 기술을 창안하는 새로운 눈을 지닌 ‘암연 연구가’. 기존의 기술들을 답습하는 게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내는 능력이 특출났다.

전형적이지 않다는 것이 쿠제에게 실패자라는 오명을 남겼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종래의 암연이 지닌 공통점은 뭘까요? 바로 육체라는 틀입니다.”

육체. 그건 오러와의 차이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러가 ‘검식을 완성한 이후’에야 비로소 발현되는 힘이라면, 암연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암연은 ‘검식과 궤를 같이’한다. 즉, 그만한 암연이 갖춰지지 않으면 해당 검식을 흉내조차 낼 수 없다는 뜻이었다.

“도련님, 여기에 있는 돌멩이를 암연을 통해 감지해 보시겠습니까?”

쿠제는 땅바닥에 작은 원을 그린 다음, 그 안에 큼직한 돌멩이를 하나 넣었다.

루빈은 쿠제가 시키는 대로 해보았다. 암연을 퍼뜨려 돌멩이를 감쌌다. 암연 덕분에 돌멩이의 크기와 모양, 그리고 돌멩이와의 거리감이 명확해졌다.

“눈을 감아보세요.”

이번에는 눈을 감고 암연을 통해 돌멩이를 감지했다. 돌멩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시력을 차단했지만, 암연 덕분에 돌멩이에 대한 감각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지익, 지익.

눈을 뜨니, 쿠제가 바닥에 또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쿠제는 루빈으로부터 돌멩이까지 선을 그었다. 그다음, 다시 돌멩이로부터 루빈 쪽으로 되돌아오는 선을 그렸다.

“육체는 축입니다. 방출된 암연은 그 대상을 감싸고, 그걸 다시 육체로 전달합니다. 되돌아오는 거죠.”

“음.”

“되돌아오는 암연을 통해 우리는 대상을 파악하고, 몸의 감각을 증폭시키는 겁니다.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한 원리입니다.”

너무 간단해서 차마 들여다보지 못했던 원리. 이를테면 중력과 같달까. 물건을 공중에 던지면 다시 땅으로 떨어지게 하는 중력 말이다.

암살자가 퍼뜨린 암연도 마찬가지. 방출된 암연은 몸이라는 축으로 다시 당겨지는 본성이 있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암살자는 사물을 감지할 수 있고, 감각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원리.

“우리는 이 당연함을 깨부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암연의 기술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쿠제는 루빈과 돌멩이 사이에 오갔던 두 개의 선을 슥슥 지워 버렸다.

“도련님, 보십시오.”

쿠제가 돌멩이를 향해 암연을 분출했다. 그러자 돌멩이가 바닥으로부터 살짝 떠올랐다.

“저는 지금 암연으로 돌멩이를 감지하는 게 아닙니다. 제 암연은 돌멩이를 의식하지 않고, 그저 방출되고만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 감각 속에는 돌멩이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루빈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암연을 방출하되, 몸이라는 축으로 돌아오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직 순수한 분출에만 집중하라는 뜻이었다.

“돌멩이는 신경 쓰지 말고, 분출에만 집중해라?”

“네, 암연의 되돌아오는 본성을 일부러 깨뜨려야 합니다. 그다음엔 분출을 더 섬세하게 조작하는 것이죠.”

쿠제는 단언했다. 분출이 더 섬세해진다면, 몸을 중심으로 일정한 공간이 구획될 거라고. 마치 반구형의 돔처럼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돔 안에 들어선 적은 움직임이 느려진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그림자 역장(力場).

비운의 천재 쿠제가 고안한 첫 번째 암술이었다. 이전 생에선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이번엔 다르리라.

“일단 이 돌멩이부터 해보시겠습니까?”

루빈은 몸을 숙여 돌멩이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봤다. 중요한 것은 돌멩이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돌멩이를 잊고, 돌멩이 주위로 암연을 끊임없이 분출하라. 순수한 분출을.

“다시 해볼게.”

원리를 이해하자 결승선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했다고 그게 곧바로 실현되지는 않는 법.

루빈은 계속 반복했다. 끊임없이 암연을 방출시켰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은 넉넉해. 2년이나 남았으니까. 어쩌면… 여기에 핏빛서리까지 적용해 볼 수도 있겠는데.’

당장은 아니겠지만, 언젠간 가능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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