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검가 로이넨-135화 (135/258)

제135화. 차출시험 (1)

‘이제 곧 시작되겠군.’

월요일,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새벽. 루빈은 뜬눈으로 침대에 누워, 곧 시작될 장교육성위의 차출시험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장은 아르페지오관이라고 했었지.’

켄시온에서 엿들은 장교육성위장 폰드리안의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출시험은 기숙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시험의 첫 번째 단계.’

루빈이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이 시험의 첫 번째 단계는 생도들의 혼을 빼놓는 것이다. 일단 잠든 생도들을 혼란에 빠뜨린 다음, 시험장으로 내몰 테지.

그리고 거기에서, 하네케가 창안한 9단계 시험이 차례대로 치러질 터였다. 탈락자는 남고, 생존자만 나아가는 생존 방식으로.

‘우선 시험관들의 이목부터 사로잡아야겠군.’

그게 마도구를 파괴할 루빈의 첫 번째 계획이었다.

그때였다.

콰콰콰쾅!

기숙사 랩소디관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잠들어 있던 생도들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났다.

“뭐, 뭐, 뭐야!”

호들갑스럽게 외쳐대며 침대를 뛰쳐나오는 오스카. 주먹을 그러쥐고는 고개를 휙휙 돌렸다.

“전쟁이라도 난 건가?”

“진정해, 오스카.”

“지금 진정하라는 말이 나오냐?”

투명천장 너머로 루빈을 바라보던 오스카가 인상을 찡그렸다. 콰콰콰쾅! 그 와중에도 기숙사 곳곳에서는 굉음이 멈추지 않았다.

침착하게 귀기울이던 루빈은 금세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폭발음 간격이 일정해.’

잔뜩 흥분한 오스카가 방문을 열고 복도를 내다봤다. 복도엔 오스카처럼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생도들이 겁에 질려 배회하고 있었다.

“어제 점호 때 스레힘 사감이 했던 말 생각나?”

루빈은 넌지시 말했다.

“스레힘 사감? 뭐라고 했더라…….”

오스카는 지난밤의 점호를 떠올려 봤다. 그러고 보니 지난밤은 뭔가 이상했다.

원래 스레힘 사감의 동물들은 방문 앞에만 머무를 뿐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방 안에 생도가 착석해 있는지만 확인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확실히 달랐다. 짐승들이 방 안까지 들어오지 않았나.

루든의 방에는 은빛 털이 명명한 늑대가, 오스카의 방에는 한때 귀족 춤 파트너였던 울르딘 곰 룰루가 들어왔었다.

‘게다가 입에 투명구슬을 물고 있었지.’

그 안에는 마적석이 들어 있었다. 바로 스레힘의 목소리를 전송하는 마적석이었다. 루빈은 그 내용을 똑똑히 기억했다.

“다들 쓸데없는 짓 말고 일찍 자두는 게 좋을 거다! 내일이 되면 이 푹신한 침대가 그리워질 테니까”

콰콰콰쾅. 또다시 이어지는 굉음.

순간, 루빈은 이 폭발음이 왜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지 알아챘다.

“이 폭발음도 녹음된 거야.”

“뭐? 녹음된 거라고?”

일정 구간이 반복되고 있는 데다, 이 정도 굉음이라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할 진동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 참. 이놈의 학교는 새벽부터 이게 무슨 짓이야. 신개념 자명종이야, 뭐야?”

콰콰콰쾅!

“일단은 움직여야겠는데.”

어느새 열쇠벌레가 작동하고 있었다. 날갯짓으로 바깥으로 나가라는 뜻을 계속 내비치면서.

루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법생 로브를 뒤집어썼다. 그걸 바라보던 오스카도 루빈을 따랐다.

“에이씨,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따라가 보자.”

잠시 후, 랩소디관 1층.

잠결에 뛰쳐나온 생도들이 한데 모여 온갖 추측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뭐야? 이 폭발음? 설마 이거 깜짝 수업, 뭐 그런 거야?”

“와. 건물 무너지는 줄 알았잖아.”

“근데 왜 다른 기숙사 건물은 조용하지? 설마, 이것도 마법인가?”

루빈의 예상대로 굉음은 랩소디관에만 울렸던 모양이다. 맞은편의 고학년들 기숙사인 허밍관은 불 꺼진 채 고요하기만 했다.

루빈은 모인 생도들을 여유롭게 관찰했다. 생도들의 행색은 다채로웠다.

루빈이나 오스카처럼 로브라도 챙겨온 생도들은 그나마 나았다. 정말로 전쟁이라도 난 줄 알고, 잠옷 차림으로 달려 나온 생도도 있었으니까.

“이게 뭐야, 갑자기?”

“나,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고. 나는 1시간밖에 못 잤다니까.”

“전쟁 난 거 아니었어?”

반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비장한 얼굴을 한 생도들도 보였다. 아마 미리 귀띔을 받은 귀족 생도들일 것이다.

어쨌든, 신입생도 전원이 모였으니 그 숫자만 300명이 넘었다. 루빈은 놀란 생도들을 지나쳐 저쪽에서 손을 흔들고 이는 오스카에게 다가갔다.

“여기야, 루든!”

“…….”

오스카 옆에는 새벽에 갑자기 뛰쳐나왔다기엔 너무나 정갈한 복장의 달리아 델린이 서 있었다. 루빈은 모른 척, 짐짓 물었다.

“달리아. 설명 좀 해주면 안 돼?”

“설명이라니?”

“내가 보기에, 몇몇은 이게 무슨 일인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너나 에릭 같은 애들 말이야.”

달리아는 푸른 머리칼을 뒤로 묶으며 루빈을 흘깃 쳐다봤다.

“…눈치가 빠르네. 곧 알게 될 거야.”

“어제 일찍 자는 게 좋을 거라는 말이 이거였구나.”

듣고 있던 오스카가 발끈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형광개구리 따위의 거짓말에 놀아나지 않는 거였는데! 그는 달리아에게 괜히 화풀이했다.

“아니, 달리아! 너, 정말 이러기야?”

“내가 뭘?”

“우리도 알려줘! 나도 지금껏 너한테 매일매일 식사 메뉴 미리 알려줬잖아.”

“하.”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 치는 달리아는, 결국 못 이기겠다는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럼 딱 두 가지만 알려줄게. 첫 번째, 안 죽으니까 겁먹지 말 것. 두 번째, 어려울 것 같으면 일찌감치 포기할 것.”

“엥,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좀, 그런 줄 알아.”

“…안 죽으니까 겁먹지 말라고? 난 왜 그 말이 더 무섭게 들리지?”

중얼거리는 오스카를 뒤로 하고, 루빈은 다시 찬찬히 주변을 살폈다. 그러곤 두 번째 환을 개방해 암연을 넓게 펼쳤다.

지이이잉.

역시나 예상대로다. 지금 랩소디관 1층에는, 300여 명의 신입생도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멀찍이 떨어져 이곳 상황을 관찰하는 자들이 있었다.

‘허밍 관에 두 명, 호숫가에 세 명. 저 앞쪽엔 네 명. 전부 장교육성위의 시험관들이군. 음?’

그때, 루빈의 암연에 새로운 존재가 감지됐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수였다.

‘뭔가가 다가오고 있군. 생도들을 시험장으로 몰아가려는 건가?’

쿵… 쿵……

마침 적요한 새벽의 마탑들 사이로,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타닥타닥!

누가 신호를 주지도 않았는데 앞서 뛰쳐나가는 생도들이 보였다.

에릭을 위시한 D반 생도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곁에 있던 달리아도 갑자기 질주하기 시작했다.

“야, 달리아! 어디 가!”

“너희도 뛰는 게 좋을걸!”

“뭐라…? 어, 루든?”

루빈도 대뜸 오스카의 뒷덜미를 움켜쥐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먼저 달려나가는 생도들을 훨씬 앞지르는 속도였다.

“오스카, 일단 뛰어.”

“아니… 이 새벽에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냐고!”

“일단 뛰어보면 알겠지.”

거의 그와 동시에, 생도들 무리의 뒤편에서 괴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꺄아악!”

“해, 해골들이 오고 있어! 다 검 들고 있잖아!”

“앞에 길 좀 막지 마. 빨리들 움직이라고!”

1층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뒤편으로 빠르게 다가드는 해골 무리가 보였다. 해골이 살아 움직인다는 건, 음화된 마나의 영향이라는 뜻. 즉, 흑마법이 펼쳐지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장교육성위 안에도 흑마법사가 있었군. 어제 본 폰드리안 위장인가?’

그건 차차 알게 되겠지.

“루든! 이건 습격이 분명해! 어떤 세력이 학교를 집어삼키려고…….”

“침착해, 오스카. 해골들을 잘 보라고.”

“으응?”

“잘 봐. 하나도 안 위험해.”

루빈의 말대로였다. 해골들은 검을 든 손을 들어올리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실제로 휘두르거나 생도들을 다치게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단지 공포감을 조성하고 학생들을 한쪽으로 몰아가려는 것뿐이었다.

‘아르페지오관. 그 지하에 시험장을 만든다고 했으니까. 그리로 가도록 유도하는 거야.’

생도들은 해골들을 피해 밀치고 뒤엉키며 자연스럽게 아르페지오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음?’

그리고 루빈은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시험장에 점차 가까워질수록 생도들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마나가 담긴 세 번째 환이…….

‘얼어붙고 있어.’

이번엔 오스카도 느꼈는지, 사색이 된 얼굴로 물어왔다.

“루든… 너, 이거 느껴져?”

“그래. 느껴져.”

“왜 마나의 환이 얼어붙고 있는 거지……?”

그 말대로, 얼어붙는다는 표현처럼 마나의 환이 빠르게 경직되고 있었다.

이 역시 시험마도구의 능력일 터.

‘마법 시전이 불가능한 환경을 만들었어.’

마법생도들한테는 뒤를 바짝 쫓아오는 해골들보다도 더 공포에 젖어 들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대, 대체 왜…….”

평소 활기찬 오스카조차 어느새 얼굴이 새까맣게 굳어져 있었다.

* * *

한편, 같은 시각. 카포티니 외곽.

골렘과 제국군이 삼엄한 경비를 서는 이곳은 카포티니 시장의 별채. 학기 중인 지금, 위더스푼 가문의 막내딸인 클로이가 임시숙소로 쓰는 곳이기도 했다.

“흐음.”

클로이는 창가에 서서 커피를 홀짝였다. 날이 밝기에는 두어 시간이나 남은 터라, 창밖으로 보이는 건 도시에 내려앉은 어둠뿐이었다. 그래도 클로이는 마탑구역으로 예상되는 쪽을 계속 눈여겨봤다.

그런 클로이의 뒤편으로 셀레스네가 다가왔다. 셀레스네는 시간과 상관없이 클로이가 깨어있는 시간에는 언제나 정복 차림이었다.

“아가씨, 너무 일찍 일어나셨어요. 이제 겨우 새벽 네 시라고요.”

고개를 돌린 클로이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셀레스네, 저택에 방문객이 찾아온 것 같은데?”

“아, 알고 계셨군요. 제국군 장교육성위 위장이 1층에 와 있습니다. 시험을 시작하기에 앞서 아가씨께 인사를 드리려고 한답니다. 만나보시겠어요?”

“응. 그 장교, 아는 사람이야. 들어오라고 해줘. 응접실에서 기다릴게.”

셀레스네가 밖으로 나간 뒤, 클로이는 옆문을 통해 응접실로 들어갔다.

똑똑.

잠시 후, 노크 소리가 울렸고 클로이가 허락하자, 제국군 제복을 갖춰 입은 폰드리안이 들어왔다. 그는 클로이에게 군모를 벗으며 예를 표했다.

“제국군 마법사여단의 장교육성위 위장 폰드리…….”

“폰드리안, 잘 지냈어?”

“…리안 예프입니다. 제국귀족을 뵙습니다.”

클로이는 폰드리안 위장에게 의자에 앉도록 권했다. 셀레스네가 두 사람이 마실 차를 내왔다.

“저번 황실에서 열린 축제 때 뵙고, 1년 만입니다.”

“응. 큰오빠는 잘 지내?”

“예, 여단장님께선 잘 지내십니다. 카포티니로 출발하기 전에, 여기에 클로이 아가씨가 계시다는 걸 알려주셨습니다.”

클로이는 찻잔을 들고 창가로 걸어갔다. 여전히 창밖은 어두웠다. 지금쯤 C반 애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런 궁금증 속에 클로이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런데 왜 오빠는 나한테 이 일을 말해주지 않은 걸까…. 내가 여기에 있을 때 차출시험이 있을 거라는 거 말이야.”

클로이가 제국군 장교육성위의 시험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지난밤이었다. 기숙사 시점으로는 점호가 끝난 뒤였다.

“그건 군 보안상의 문제이기에…….”

“나도 알아. 알고 있었어도 친구들에게 미리 알려주지는 않았을 텐데.”

폰드리안은 클로이가 카포티니의 생도들을 두고 ‘친구’라는 표현을 썼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몇몇 귀족 가문에서는 이 시험이 있을 거란 걸 미리 알고 있었다던데. 난 보안을 지켰을 테지만, 그쪽 사람들은 보안을 지키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폰드리안은 손에 쥐고 있는 모자를 가만히 움켜쥐었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셀레스네가 끼어들었다.

“아가씨.”

제국귀족과 제국군 고위장교의 대화에 시녀가 끼어드는 일은 무엄하다고 할 수 있으나, 폰드리안은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셀레스네가 그냥 시녀가 아니라는 것쯤은 그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릭 도련님뿐만 아니라, 달리아 아가씨 역시도 미리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러니 C반의 친우분들 걱정은…….”

“달리아는 다른 애들한테 말해주지 않았을걸.”

장교육성위의 차출시험에 통과한 생도는, 곧바로 학교를 떠나 제국군의 마법사여단으로 편입된다. 십 대 초반의 나이부터 고위장교로 육성되는 엘리트 코스. 그랬기에 마법명가의 자제들로서도 이기적으로 욕심을 내는 게 당연했다.

폰드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가씨께서 무얼 걱정하시는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시험이 공정하지 않을 거라는 걱정은 접어두셔도 좋습니다. 귀족들 중 일부가 시험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귀족들이라 해도 시험 방식을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장교육성위의 시험이었지만, 세상에 그 방식이 노출되지 않았던 이유.

시험을 마친 응시생도들은 망각 마법에 의해 시험 과정을 까맣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장교육성위의 시험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할 뿐, 시험이 어떤 단계들로 치러졌는지는 기억할 수 없었다. 그 모든 걸 기억하는 건, 우수한 성적으로 마쳐 결국 장교생도로 차출되는 학생들뿐이었다.

“그리고 이건 뛰어난 마법사를 찾는 게 아니라, 장교가 될 만한 자들을 찾아내는 시험입니다.”

“마나가 제한된 시험이라는 거군요?”

셀레스네의 질문에 폰드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죠. 생도들은 순전히 육체적·정신적 시험에만 처할 겁니다. 우리가 확인하려는 건 생도들의 판단력을 비롯한 전술적인 능력이기 때문이죠. 마법 능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마법생도들한테는 더 곤란하겠지만.”

* * *

폰드리안이 클로이의 저택을 나선 건, 새벽 네 시 반이었다. 지금쯤 시험의 두 번째 단계가 막 시작됐을 터였다. 그러나 정원을 가로지르는 폰드리안의 발걸음은 느긋했다.

“긴박한 상황일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건 아닌가 보네요.”

옆에서 나란히 걷는 셀레스네의 말이었다. 장교를 배웅해주라는 클로이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다.

“저는 시험장을 구축한 다음, 여기에 왔던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험관들이 착실히 진행하고 있겠죠. 제가 확인해야 할 건 시험이 본격적인 단계에 돌입한 이후부터입니다.”

“본격적인 단계라면?”

“세 번째 단계입니다. 그때부터가 진짜죠. 그전까지는 자연스럽게 걸러내는 단계이고요.”

폰드리안의 태도에는 자신감과 오만함이 모두 묻어났다. 이 장교에 대해서라면 셀레스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위더스푼가의 역학관계를 누구보다 주시해야 하는 셀레스네로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제국군 장교 폰드리안 예프는, 최근 들어 장남 콘래드 위더스푼의 믿음을 사고 있다는 군인.

그뿐 아니라 위더스푼에는 못 미치긴 해도 원휘의 마법명가에서 출생했고, 출신학교는 당연히 아메릭마나.

거기에 스무 살 나이에 장교육성위의 책임자까지 맡고 있다면, 오만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힘들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셀레스네가 굽힐 만한 인물인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위장님께서도 짐작하시겠지만… 장교육성위에 대해서는 제가 따로 가문에 정보를 요청할 겁니다. 아가씨 신변에 관한 것이니 불만은 없으시겠죠?”

“예, 그러도록 하시죠.”

이윽고 숲길로 들어서는 두 사람. 숲길 끝에 나루가 있고, 거기에 폰드리안의 곤돌라가 정박해 있었다.

셀레스네가 물었다.

“아, 그리고 알아두시면 좋을 게 있어요. 이 학교의 교수 몇몇은, 마법사여단 출신들입니다. 알고 계시죠?”

“예,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의 교장이라는 분이 저를 여기까지 안내해 주셨거든요.”

그러면서 폰드리안은 덧붙였다.

“안내라고는 해도 사실상 감시에 가까웠지만.”

“학교 내 구역에 자유롭게 출입하도록 허락된 원휘 마법사가, 클로이 아가씨와 저뿐이어서 그런 거겠죠.”

“흠, 어쨌거나 저로서는 이 학교 측의 융통성이 부족한 걸로 보이더군요.”

장교의 날카로운 태도. 셀레스네로서는 의외였다.

“키건 교장님은 마법사여단에서 여러 족적과 무용담을 남긴 것으로 아는데요. 폰드리안 위장님은 선배에 대한 존경이 없으신 것 같군요.”

하지만 폰드리안은 심드렁한 표정일 뿐이다.

“뭐가 됐든 삼휘 아닙니까. 아, 저기에 계시네요.”

숲길이 끝나는 지점. 나루에 정박시킨 곤돌라 앞으로 거구의 뒷모습이 보였다. 교장 키건은 평화로이 서서, 수로에 비치는 달을 감상하는 것처럼 보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