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검가 로이넨-136화 (136/258)

제136화. 차출시험 (2)

“위장님.”

셀레스네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돌아서기 전, 폰드리안에게 다시 한번 당부할 게 남아 있었다.

“…아까 아가씨께서 하셨던 말씀, 꼭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친한 응시생도들을 잘 관찰해달라는 클로이의 부탁 말이다. 제국귀족이 이따위 삼휘 마법생도들과 친교라니.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폰드리안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에서 특히 친한 관계는 루든, 오스카라. 달리아 델린은 이해할 수 있어도…. 여단장님 말씀처럼 지나치게 관대한 아가씨군.’

그렇게 두 사람은 목례를 하고 헤어졌다.

마침 기다리고 있던 키건이 폰드리안의 기척을 느끼고 돌아섰다. 그는 뒤편에서 막 돌아서려는 셀레스네와 짧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교장님, 가시지요.”

“그럼, 먼저 타겠네.”

거구가 오르자 곤돌라가 크게 휘청거린다. 티 나지 않게 표정을 구기는 폰드리안을 알아챈 키건이 씩 웃었다.

“출발하지.”

그 말과 함께 곤돌라가 앞으로 나아갔다.

곤돌라는 도심을 거쳐 카포틴 호수로 향했다. 새벽의 도시는 고요했지만, 부지런한 시민들은 벌써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개중 몇몇이 새벽부터 바삐 움직이는 곤돌라를 보곤 놀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낯익은 거구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었다. 키건을 향한 존경을 담은 인사와 함께.

“키건 교장님, 이른 새벽에 어딜 다녀오십니까?”

“뭍에 볼일이 있었네. 힘찬 하루 되시게나.”

“교장님도요!”

폰드리안은 의외라는 듯 미간을 좁혔다.

‘생각보다 명망 있는 자였군.’

그의 경험상, 탄탄한 지지층을 가진 자는 대개 고집이 셌다. 고집이 세다는 것은 다루기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좀 신경 쓰이는데.’

어느덧 다다른 마탑구역.

형형한 결계가 수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출입 인가를 받지 않은 폰드리안이 무작정 들어가려 했다면 결계가 작동되면서 경비용 설계마법이 쇄도했을 것이다.

키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휘저었다. 결계를 임시로 해제한 뒤, 곤돌라를 전진시켰다.

피이이이.

곤돌라가 카포틴 호수를 가로질러 북쪽의 학교구역으로 나아가는 동안, 키건은 장교를 향해 말을 던졌다.

“폰드리안 위장,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지.”

“말씀하시죠.”

“내가 알기로, 이건 아주 드문 일이야. 안 그런가?”

“사전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차출시험을 치르는 것 말입니까?”

폰드리안은 교장이 시험의 절차를 두고 불평하려 한다고 짐작했다. 습격하듯 들이닥쳐서 시험을 진행하는 장교육성위의 방식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겠지.

“교장님이 모를 수도 있겠지만, 장교육성위에서는 3년마다 마법학교 한 곳을 지정하여 시험을 치르고 있습니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네.”

“……?”

“갑자기 마법사여단의 기조가 달라진 건가? 장교육성위가 삼휘의 마법학교를 지정한 게, 이번이 최초잖나.”

키건 교장의 날카로운 지적에 폰드리안은 순간 입을 다물어버렸다.

키건 말대로 장교육성위는 생겨난 이래, 줄곧 원휘나 모휘의 마법학교에서만 차출시험을 진행했다.

‘여단의 장교마법사가 대부분 원휘로 구성되어 있는 이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법사 세계의 권력 구도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휘식의 성질에 따라 합리적으로 내려진 결정인 것이다.

원휘, 모휘, 삼휘.

각 휘식마다 강점이 달랐다.

모휘는 방어마법, 삼휘는 공격마법.

그리고 원휘는, 범위마법에 특장(特長)을 이루는 휘식이었다. 범위마법에 있어서는 세 휘식 중 가장 효율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원휘가 득세하는 것은 그만큼 제국이 안정적이라는 뜻이기도 하지.’

공격마법이나 방어마법은 어디까지나 전시에 각광받는 휘식이다. 여전히 괴수와 이인족(異人族), 그리고 이민족이 남아 있긴 했지만, 현재 대륙은 릴리크 제국이라는 단일체제로 확립된 형태였다.

지금처럼 황제의 권위가 막강한 때도 없었다. 이런 시기에는, 다수를 통제하기에 용이한 범위마법이 장려되는 법.

그러니 텔마흐라는 절대 권력이 군림하는 한, 마법사여단의 기조가 원휘 중심으로 흘러가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갑자기, 역사에도 없던 삼휘 마법학교에서의 차출시험이라니. 키건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제국군이 뭔가를 준비하는 건 아닌지.”

“준비하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위장도 알다시피, 삼휘는 공격마법에 특장을 이루는 휘식이 아니던가?”

삼휘의 특징은, 마법의 재시전 속도가 월등히 빠르고, 연쇄적인 마법 시전에도 위력이 쉬이 유지된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파괴하기 위한 마법에 특화되어 있는 것이다.

“…….”

대륙에서 삼휘의 마법사가 주목을 받았던 건 수백 년 전의 이야기. 전란기의 대륙에서나 여러 왕국에서 등용해갔지만, 릴리크가 패권을 잡고 제국을 완성하자 더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번 차출시험은 확실히 일반적이지 않았다. 어찌 보면,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고 의심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저는 모릅니다. 저는 그저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뭐, 올해 카포티니 신입생 중에 유독 유능한 자제들이 많다 하니 그런 걸지도 모르지요.”

“하긴. 알고 있다 해도 제국군 장교가 나한테 얘기할 리 없겠지.”

“흠…….”

폰드리안은 일부러 키건의 시선을 피했다.

사실, 그 역시 교장과 똑같은 의문을 품었었다. 그래서 올해의 시험은 카포티니에서 진행하라는 여단장의 명령이 떨어졌을 때, 기꺼이 의문을 제기했었고.

‘여단장님, 카포티니에서 마법생도를 차출해 오면 다른 마법학교에서 반발이 있을 겁니다.’

‘폰드리안.’

‘……?’

‘이건 여단장인 나도 어쩌지 못하는 흐름이다.’

‘그 말씀은, 대장군부의 명령이라는 겁니까? 아니면 마법부 대관님?’

‘황명이다. 황제 폐하가 내게 직접 내린 명이다. 그리고 3년마다 실시하던 차출시험을, 앞으로 5년 동안은 1년마다 하도록 하라.’

이 또한 황제의 명이라 했다. 심지어 그 대상도 5년 동안 바뀌지 않을 거라 했다. 매년 카포티니의 새로운 입학생도 중에서만 장교생도를 차출해 간다는 것이다.

모든 게 파격적이었다. 키건의 지적처럼, 장교육성위가 창설된 이래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비인(非人)의 땅이라는, 엘프들의 대밀림이라도 정벌하려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제국군이 그만한 공력을 들일 대상이 있었던가?

아무리 추측해 봤자, 폰드리안이 품고 있는 궁금증은 해결될 수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닌, 황명이었다. 그저 따르는 수밖에.

“자, 도착했네.”

때마침 곤돌라가 호숫가에서 멈췄다. 교정에 내려선 키건이 성큼성큼 앞서나갔고, 폰드리안이 뒤따랐다.

차출시험이 진행되는 곳은 마탑 아르페지오 관. 통칭 ‘학생관’이라 불리는 이 마탑 지하에는 전란기에 만들어진 방공호가 있는데, 시험장은 바로 그곳에 구축된 상태였다.

“폰드리안 위장. 당부의 말 하나 하지.”

“뭡니까?”

“차출되어 장교생도가 된 뒤라면 몰라도, 그 이전까지는 안에 있는 생도들 전부가 카포티니의 마법생도라는 걸 잊지 말게.”

미소를 머금기는 했지만, 사뭇 날카로운 태도였다. 폰드리안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을 감시하는 게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 시험마도구,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난 알고 있어. 그게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

“글쎄요.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건 지금까지의 이야기이지.”

“…교장님은 걱정이 많으시군요.”

키건은 물러서지 않았다. 줄곧 짓던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지도 않았다.

“나도 이 시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하는 말이니, 좀 신경 써주면 좋겠군.”

“…예. 한때 마법사여단 소속이었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폰드리안은 키건을 올려다보면서,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완고한 표정이었다.

“전 은퇴한 장교라고 아무나 다 떠받들어주는, 그런 무른 성격은 못 됩니다.”

“…….”

“가만히 지켜보시죠. 여기 카포티니에서 제국군 장교가 한 명이라도 차출되는 영광을 누리고 싶다면 말이죠.”

“그런 영광은 필요 없네. 위험하다고 생각이 들면, 곧장 개입할 걸세.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 믿지.”

키건의 경고 아닌 경고에, 폰드리안은 속으로 비웃었다. 이 거구의 교장이 문제인 건지, 카포티니 학교 자체가 문제인 건지.

‘여단장님을 통해 마법부에 정식으로 보고해야겠군.’

아무리 마법학교 교장이라지만, 그래봤자 삼휘일 뿐이다. 제국군에 필요한 건 이 학교 출신의 장교들인 거지, 이 교장의 참견 따위가 아니었다.

게다가 장교육성위와 카포티니 교장은 앞으로 몇 년은 마주해야 할 공적인 관계. 계속 이런 식이면 곤란했다.

폰드리안은 콘래드 위더스푼에게 보고하여, 이 학교에서의 키건의 영향력을 조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폰드리안은 고개를 내저을 뿐 더는 말을 내놓지 않았다. 그저 걸어 나가 지하실의 문을 열었다. 등 뒤에선 또다시 키건의 말이 들려왔다.

“나는 다른 곳에서 지켜보지. 이제부터는 에겔러 교수라고, 나보다 훨씬 정중한 노교수가 안내할 걸세.”

‘하여간, 끝까지 거치적거리는군.’

예의상 몸을 꾸벅 숙인 폰드리안. 이내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선 곳은 지하 방공호의 상층부였다. 조명은 아래편의 시험장을 가리키고 있었던 터라 상층부는 상대적으로 어두웠다.

폰드리안은 고개를 돌려, 시험관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았다.

다가가니 직속부관이 그를 발견하고 군례를 올렸다.

‘저자가 에겔러인가?’

직속부관 옆으로 중후한 노인이 서 있었다.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간략한 인사를 나눴다.

“에겔러라고 합니다. 키건 교장은 만나보셨습니까?”

“방금 만나고 오는 참입니다.”

“아마 그 친구, 카포티니에서 장교육성위를 맞이할 줄은 생각도 못 했을 겁니다. 별다른 조언은 없었습니까?”

“조언이라. 그건 모르겠고, 으름장을 놓으시더군요.”

에겔러는 가볍게 웃으며, 이곳의 특제 음료인 카포닐리아를 건넸다. 그래도 이 사람은 교장보다는 훨씬 나긋한 편이군.

“삼휘의 마법학교에서 최초로 치러지는 시험이라, 저 역시 감회가 새롭군요. 제 모교이자 제가 교수로 있는 학교라서요.”

난간으로 다가가며 에겔러가 말했다.

이제 시험은 도입부가 끝난 시점. 사실상 세 번째 단계부터가 본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여러모로 대단하더군요. 정말로 제대로 된 군인을 찾아내는 시험으로 보입니다.”

에겔러 교수는 장교육성위가 펼치는 시험을 인상적으로 바라보는 중이었다.

여단에 속했을 때 에겔러의 군직(軍職)은 장교가 아닌 특수병과. 마법지뢰와 마법함정이 그의 특기였다. 때문에 고위장교를 뽑는 차출시험을 직접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때, 직속부관이 폰드리안에게 다가왔다.

“위장님. 여기, 쌍안경 있습니다.”

시험마도구의 영향으로 마나가 차단됐으니, 시험관인 그들 역시 직접적으로 마법을 시전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 그대신 마도구나 마적석을 이용해야만 했다.

“그리고 위장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왜, 뭔 일 있었어?”

“조금 이상한 응시생이 있습니다.”

“이상하다?”

“아니,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일단 시험을 녹화해놓은 게 있으니, 한번 보시지요.”

직속부관은 품속에서 마적석을 꺼냈다. 거기엔 폰드리안이 없는 사이 진행된 1단계와 2단계 시험이 녹화되어 있었다.

* * *

한 시간쯤 전. 시험 1단계.

생도들은 아르페지오 관 지하층 방공호에 집결해 있었다. 오스카는 여전히 집요하게 굴었다.

“달리아.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 건지 그냥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면 안 될까?”

“귀찮으니까, 그냥 다른 애들을 따라가 봐. 그럼 최소한 혼자 탈락하지는 않을 거 아냐?”

“칫, 치사하긴.”

구시렁대는 오스카. 다른 생도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처음과 달리, 더 이상 겁에 질려 있지 않은 모습들이었다. 그들을 내몰았던 해골들도 어느새 모습을 감췄다.

다만 궁금할 뿐이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눈앞에 수많은 ‘문’들이 놓여 있는지 말이다.

오스카가 제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투덜댔다.

“이 문들은 대체 뭐야? 왜 이렇게 문이 많은 거냐고! 정신 요란해지겠네.”

생도들 눈앞에는 두꺼운 벽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동일한 간격을 두고 문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문의 개수는 총 20개, 문 외형은 각양각색이었다.

“루든, 넌 뭐 좀 알 것 같아? 문 너머에 괴수라도 있는 건가?”

“글쎄. 그럴지도.”

문 너머에 괴수라. 그럴싸했지만, 아니었다. 루빈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암연을 펼쳐 이미 전부 감지했으니까.

‘문 너머에 두 개의 문. 그 너머엔 또다시 두 개의 문. 계속 같은 식이군. 일종의 미로야.’

루빈은 잠시 고민했다. 분명한 것은, 어느 문을 열고 들어가든 위험 요소는 없다. 하지만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정답인지는 정해져 있을 거다.

올바른 문으로만 들어가는 것. 이번 단계의 핵심이었다.

‘시험마도구를 성공적으로 부수려면 일단 저들의 눈에 띄어야 해.’

루빈은 어둠에 가려진 지하층의 상층부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어떤 방식이어야, 저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지.

여러 방식들이 떠올랐지만, 역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공법, 저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내는 거겠지.

루빈은 다른 생도들을 살폈다.

‘그나저나 다들 마법생도라 어쩔 수 없는 건가. 마나가 차단되니까, 다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네.’

“루든! 쟤네 봐.”

오스카가 스무 명 남짓한 D반 생도들을 가리켰다. 에릭을 위시한 무리였다. 아무래도 그들이 가장 먼저 움직이기로 결정한 것 같다.

“D반 놈들. 머릿수로 뚫어보겠다는 거야, 뭐야?”

그들은 20개의 문 중 하나를 선택해 그 앞에 일렬로 섰다. 문 너머에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줄지어 들어가보겠다는 전략이다.

당연히 에릭 이엘로스는 행렬의 가장 안전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후미와 중간 사이에 위치했다. 그는 경멸 어린 눈으로 다른 반 생도들을 흘겼다.

“답답하기는.”

아무런 결정도 못 내리고 있는 생도들을 바라보며 비웃는 에릭. 특히 루빈과 달리아가 있는 쪽을 쳐다볼 땐, 고개까지 절레절레 내저었다.

“루든, 쟤네 표정 봤어?”

오스카가 방방 뛰었지만, 루빈은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그의 어깨를 홱 잡아끌었다.

“우리도 출발하자.”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가자는 거야?”

“대충은.”

“…뭐? 진짜?”

처음엔 이 시험을 창안한 하네케에게 도움을 요청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이건 너무나 간단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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