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검가 로이넨-139화 (139/258)

제139화. 폭발 계획 (1)

“교장님, 여기 계셨군요. 한참 찾았습니다.”

“왔어?”

키건 교장 곁으로 다가오는 베니테즈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교장님을 뵈니, 이제야 좀 현실감이 드네요. 새벽에 달려 나오면서도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아십니까?”

“이게 원래 저들 방식이야.”

“원래 방식이라. 참 편한 말이군요. 그나저나 어디에 다녀오시는 건가요?”

“저쪽 책임자가 클로이 위더스푼을 만나 인사를 드려야 한다기에. 안내해 주고 왔지.”

“아, 그럴 만도 하군요.”

사담은 접고, 다시 시험에 집중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베니테즈. 저 아이, 달리아 델린 맞지? 네가 담당하는?”

“예, 교장님.”

“대단하네.”

다리에 화살이 박히고도 포기하지 않다니. 달리아가 보여준 끈기와 집념은 장교생도로든 마법생도로든 귀감이 될 만했다.

“이번엔 루든입니다.”

“네가 선점한 아이잖아. 어때, 통과할 것 같나?”

“제 생각엔 무리 없이 통과할 것 같군요.”

“흐음, 그래?”

그때, 두 사람 곁으로 또 다른 교수가 다가왔다. 회색 머리를 쓱쓱 매만지는 가이젠이었다.

“가이젠, 어서 와.”

“안녕하십니까, 교장님.”

“현재까지 자네 학급이 가장 많이 남아있군.”

현시점, D반의 생존자가 전체 응시생도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다. 초반 단계라고는 해도 학급 교수로서는 꽤 흐뭇할 만한 일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어쩐지 가이젠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무슨 일 있나, 가이젠?”

가이젠은 쓴웃음을 지었다. 몸은 오한에 걸린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목적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손길. 그는 자신의 머리칼을 마구 만져댔다.

‘하아…. 뭐지, 이건?’

그 본인조차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시험장 가운데로 걸어나가는 루빈을 바라보자니,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이상한 공포감에 시달렸다.

일전에 루빈이 그를 찾아왔고 ‘검은 잎’의 주입으로 공포와 고통 속에 허우적댔던 기억은 이미 증발한 지 오래.

그러나 암시 마법에 의해, 그리고 ‘검은 잎’의 상흔에 의해 가이젠의 무의식 속엔 루빈에 대한 왠지 모를 공포감이 자리 잡은 상태였다.

“괘, 괜찮습니다. 시험에 집중하시지요.”

“몸 상태가 안 좋으면 말해. 자네들은 신입생도들 담임이라 여기에 들어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종료할 때까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예, 그…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가이젠은 애써 루빈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그는 멀거니 시험장 곳곳을 둘러봤다.

타다닥.

귓가에 닿는, 루빈이 달려나가는 소리. 뒤이어 들려온 건 화살이 날아드는 소리였다.

“……?”

그런데 어느 순간.

바로 옆에서, 키건 교장의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심지어 산적 같은 그 얼굴에서는 거친 말소리까지 튀어나오기까지.

“제기랄! 이것들이?”

뭔가 이상이 생겼다는 건가? 가이젠은 본능적으로 시험장을 바라봤다.

없다.

징검돌 위에 루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제가 한눈을 팔았군요. 그런데 루든 생도는 어디로 간 거죠? 탈락한 건가요?”

그 말에 대답한 건 베니테즈였다.

“뭔가 이상하군요. 화살의 간격이 갑자기 바뀌어버렸습니다.”

“예?”

“오작동이 일어났나 봅니다.”

* * *

‘분명 오작동은 아니야.’

루빈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는 의도적인 전환이며, 그 의도가 바로 자신의 탈락이라는 것을. 모든 건 루빈의 예상대로였다.

‘폰드리안이 시험마도구를 조작한 거야.’

상황은 루빈이 네 번째 징검돌에 올랐을 때 벌어졌다.

네 번째 징검돌은 유난히 돌출된 부분이 많은 괴석으로, 발을 헛디디기 쉬운 곳이었다. 앞서 탈락한 생도들 중 상당수가 여기에서 떨어져 나갔다.

‘방금까진 8초였는데.’

네 번째 징검돌에 발을 디딘 후로부터 정확히 8초가 지나면, 화살이 날아든다는 건 이미 확인했다.

그게 원래의 방식이었지만.

‘어라?’

루빈에게는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괴석에 발을 디디고, 돌출된 부분을 손으로 부여잡는 바로 그 찰나였다. 고작 1초 만이었다. 피할 틈을 주지도 않은 채, 화살이 사출된 것이다.

루빈은 피식 웃음이 났다. 자극당한 폰드리안의 술수가 분명했다. 루빈은 계획했던 바를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스스슷.

대부분의 목격자들 눈에는, 루빈이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괴석을 기준으로, 호선을 그리며 몸을 멀찍이 튕겨낸 것이다.

곧 사출된 화살이, 방금까지 루빈이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파박!

시험의 3단계는 어디까지나 ‘예측 가능한 공격 상황’에 대한 대응이었다. 갑자기 화살의 간격을 바꾼다는 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물론 ‘예측 가능한’이라는 건 사람마다 좀 차이가 있겠지만, 절대적인 기준은 늘 똑같았다.

‘반드시 일정한 규칙이 있을 것.’

시험관들이 미리 등장시킨 흑표범의 역할도 화살의 간격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다른 참가자들은 화살의 사출 간격을 기억해 두고 거기에 맞춰 움직였다.

징검돌에 발을 내디디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출되는 화살. 그 시간만 제대로 파악한다면 시험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두려움만 극복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규칙을 바꾸면 날 떨어뜨릴 수 있을 줄 알았나 본데.’

틀렸다. 루빈은 다른 사람들로선 생각도 못할 방법으로 이 시험을 치를 생각이었다.

띠리릭, 툭.

암연으로 잔뜩 벼려진 감각. 증폭한 청각을 통해 루빈은 아주 작은 소리까지 정확히 분별해냈다.

사출되기 직전의 화살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화살이 날아오는 타이밍을 파악하는 방법이었다. 쏘아지는 타이밍만 알면, 나머지는 육체적인 움직임만으로 얼마든지 피해낼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나오려나.’

파밧, 파바밧.

불규칙적으로 연달아 날아오는 화살들을 가볍게 피해낸 루빈은, 여유롭게 상층부를 올려다보았다. 캄캄한 그림자로 가려진 곳. 시험관들이 있는 곳이었다.

캄캄했지만 상관없었다. 어둠을 헤집는 루빈의 시야에 상층부 내부가 속속들이 들어왔으니까. 시험관들은 루빈이 곧 떨어질 거라 생각했는지,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저깄군.’

그 한가운데, 폰드리안의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 한 방 크게 먹은 듯, 잔뜩 열이 오른 모습이었다.

그 후로도 루빈만을 노리는 변칙적인 화살은 계속 이어졌다. 차례가 끝날 때까지 내내 그런 식이었다.

그때마다 루빈은 사출 직전에 들려오는 소리에 의존하여 움직였다. 당연하게도, 화살은 번번이 루빈과 엇갈릴 수밖에.

‘이쯤이면 됐어.’

이제, 폭발의 조건이 갖춰졌다.

루빈이 원하는 대로 3단계에서 폰드리안은 시험마도구에 임의적인 조작을 가했다. 이제부터 슬슬 마도구에 균열이 가기 시작할 것이다.

‘회귀 전에 보았던 감찰보고서에 따르면 이게 정석이야.’

3단계에서 폭발의 조건이 갖춰지고, 마지막 단계인 9단계에서 실제적인 마나 폭발이 일어나는 것. 그게 보고서 내용의 핵심이었다.

‘이대로 9단계까지만 살아남으면 돼.’

나머지는 전부 쉬운 일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루빈은 마지막 징검돌까지 나아갔다. 먼저 통과한 생도들은 눈을 끔뻑이며 루빈을 쳐다볼 뿐이다.

‘마나도 없이, 이 미세한 차이를 눈치채긴 어렵지.’

고작 1초도 안 되는 오차였으니까. 암연과 암살자의 섬세한 감각이 아니라면 쉬이 알아챌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 징검돌까지 건너온 뒤, 루빈은 태연히 걸어 나왔다.

* * *

“아가씨.”

클로이의 눈길이 책에서 느릿하게 올라왔다. 셀레스네가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점심 드실 시간입니다.”

“벌써? 책 읽느라 몰랐네.”

“오늘은 모처럼의 점심이니 특별하게 만들어봤습니다. 아가씨가 좋아하시는 크레파뉴입니다.”

크레파뉴는 달콤한 기름에 새콤한 과일이 풍미를 자극하는 면 요리였다. 클로이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근데 모처럼의 점심이라니?”

“평일에는 학교에서 점심을 드시잖아요. 이곳 학교의 식사 품질이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으니 매번 신경이 쓰였다고요.”

“치, 알지도 못하면서. 먹어본 적도 없잖아. 나름 맛있어!”

예상한 대응이라는 듯이, 셀레스네는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가씨, 저도 여기 교내식당에서 식사해 봤습니다.”

“엥? 너, 학생관에 가봤어? 언제?”

“한 시간 전에요.”

원휘의 마법사이지만, 출입 허가를 받은 셀레스네였으니, 마탑구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클로이가 음식 먹는 것도 잊고 눈을 깜빡거렸다.

“한 시간 전? 지금 학교에서 장교육성위 차출시험 중일 텐데.”

셀레스네는 한숨을 푹 내쉰 다음, 앞에 놓인 음식을 열심히 눈짓했다. 얼른 식사하라는 성화에 클로이는 포크를 들어 야금야금 음식을 집어 먹었다.

“안 그래도 학교 전체가 어수선하더군요.”

셀레스네는 현재 장교육성위의 시험이 아르페지오관의 지하층에서 치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점심시간이 되니 시험에서 탈락한 생도들이 학생관 상층부에서 식사하더군요. 저도 그 안에 섞여서 먹어봤어요. 저희 아메릭마나에 비교하기엔 한참 모자란 맛이더군요.”

“셀레스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무슨 말씀 하고 싶으신지 압니다. C반 생도들이 궁금하신 거죠?”

“응. 루든은? 오스카는? 달리아는? 어떻게 됐어?”

“오스카 투니오 도련님은 이미 탈락했는지, 아주 신나게 점심 식사 중이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거의 다섯 번이나 더 먹었어요.”

오스카가 우걱우걱 먹는 장면이 떠올랐는지, 클로이가 피이 웃었다. 탈락 소식은 좀 의외긴 했지만, 마나가 제한된 시험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잘 먹고 있다니 다행이네. 마나만 쓸 수 있었으면 분명 오스카가 우승했을 거야. 다른 친구들은?”

“달리아 아가씨와 루든 도련님은 못 봤습니다. 에릭 도련님도요.”

시험은 새벽 네 시 무렵에 시작했고, 어느덧 지금은 정오가 지나고 있었다.

차출시험이 후반부에 접어들었으니, 지금까지 탈락하지 않았다면 사실상 최종 후보에 속한다고 봐야 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반사적으로 미소짓던 클로이는, 잠시 후 어색한 표정이 되버리고 말았다.

“아, 그러면 루든이나 달리아랑 헤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잖아……”

크레파뉴를 찍어 누르는 클로이의 포크에서조차 아쉬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셀레스네의 목소리가 한층 진지해졌다.

“아가씨.”

“응?”

“다양한 인연을 쌓는 것도 좋지만, 아가씨께서는 막중한 과업을 띠고 여기에 오셨다는 걸 잊으시면 안 돼요. 그것도 다른 분도 아닌, 가주님께서 내리신 과업이잖아요.”

“…알아, 안다고. 셀레스네, 너도 그것 때문에 학교에 갔다 온 거잖아, 그치? 페르에 대해 알아보려고?”

페르라는 이름에, 표정이 한결 진지해진 셀레스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

클로이의 방에는 일상적으로 고차원의 방음막이 서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레스네는 언제나 신중을 기했다.

이건 그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네, 틈틈이 탐색하고 있긴 하지만… 이번에도 페르 로렌치니의 흔적은 없네요.”

클로이와 셀레스네가 카포티니에 오기까지의 과정은 우연이 아니었다. 교류학생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건 만들어진 명분일 뿐.

그들에게는 숨겨진 내막이 있었고, 그건 바로 페르 로렌치니라는 아이였다.

‘각성의 사슬. 엔조 로렌치니.’

클로이도 처음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2년 전, 예비 방문차 이 도시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아버지가 마법사 사회의 화합을 위해 자신을 교류학생으로 보내는 거라 생각했었으니까.

그러나 정식으로 카포티니로 떠나는 날, 위더스푼가의 가주이자 대륙에 있는 네 명의 대마법사 중 한 명인 매큐언 위더스푼은 막내딸에게 막중한 과업 하나를 내주었다.

바로 카포티니에서만 할 수 있는 과업이었다.

‘클로이. 내가 널 카포티니에 보내는 이유를 아느냐?’

‘마법사 사회의 화합 때문이 아닌가요?’

‘그래, 화합. 크게 보면 그 또한 맞는 말이지.’

‘다른 이유가 있으시다는 건가요?’

‘그곳에 네가 보호해야 할 아이가 하나 있다. 내가 그 아비에게 아들을 그곳으로 보내라고 해두었지.’

‘보호라고요?’

‘아마 정체를 숨기고 있을 텐데. 넌 그 아이를 찾아내 보호해야 한다. 그 아이와 아비 사이에 있는 ‘각성의 사슬’이 절대로 끊어지게 해서는 안 돼. 마법사 사회에 혼란을 가져올 테니까.’

‘각성의 사슬이요? 그게 뭔가요?’

‘그래, 그것부터 설명해줘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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