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폭발 계획 (2)
카포티니에서 장교육성위의 시험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그 시각, 트레스덴.
쿠쿠쿠쿵.
‘협곡 감옥’의 견고한 정문이 둔중한 울림과 함께 열리고 있었다.
감옥 정문을 터덜터덜 걸어 들어온 로젠탈러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감옥 상태를 확인했다.
점차 그 표정이 일그러져갔다.
“히탄, 이 멍청한 새끼가…….”
감옥은 대규모 공습이라도 받은 것 같았다. 철문이 뜯겨나간 감방이 하나둘이 아니었고, 복도에는 아직 수습하지 못한 제국군과 죄수들 시체가 낭자했다.
로젠탈러가 첫 번째로 향한 곳은 1급 죄수들의 감방이 모여 있는 심층부였다. 여기서 탈옥 사태가 시작됐고, 빠져나간 1급 죄수 중 둘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머지 1급 죄수 중 탈옥을 시도하던 놈 셋을 즉결 처리했다는 것이다.
“하, 머저리 새끼.”
심층부의 처참한 상태를 확인한 로젠탈러는 소장실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소장실 한가운데, 무표정한 히탄이 앉아 있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서는 로제탈러를 발견하고 힘없이 웃었다.
“웃음이 나오나 보네.”
“엔조가 빠져나간 지 서른 시간이나 됐나? 빨리도 왔군. 카포티니라면 꽤 걸렸을 텐데.”
로젠탈러는 히탄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를 처리하러 온 사람 같지 않았고, 오랜만에 친구를 방문한 사람 같았다.
그래봤자 정해져 있는 결말.
“오랜만이네, 로젠탈러.”
툭.
로젠탈러는 인사를 무시하고 탁자 위에 자신의 장검을 내려놓을 뿐이다.
“1급 감옥에서 탈옥 사태라니. 그래도 다행이지. 이만한 사고에 비해 소문이 많이 퍼지진 않았으니까.”
“…룰포 님께서 직접 내리신 명이냐?”
“그래. 네 시체를 찢어다가 1급 죄수들한테 던져주라더군. 그놈들이 심심할 때마다 뜯어먹을 수 있도록.”
농담조의 말이었지만, 히탄은 이게 실제 룰포의 전언이라는 걸 알았다. 룰포는 그런 자였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로젠탈러도 틀림없이 그 명령을 실행할 놈이고.
칙명부 내에서 동기라 할 만한 둘이었지만, 로젠탈러에게 히탄의 처리를 맡길 정도로 경지 면에서는 엄연한 격차가 있었다.
둘 다 칙명부의 비전검술을 익혔다지만, 히탄은 로젠탈러와 겨뤄 십 분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알지? 어차피 내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널 죽일 사람은 많아. 그나마 룰포 님이 황제 폐하께 부탁해서 신사적인 방식으로 죽일 수 있는 거지.”
“수장님께서 많이 난처해졌겠군.”
초연한 모습으로 그렇게 말하는가 싶던 히탄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째려보았다.
“네놈이 페르 그 애새끼를 빨리 찾아냈으면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거야. 그 말총머리 가이젠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로젠탈러는 피식 웃었다.
“히탄. 내가 말단요원으로 로이넨 꼬맹이나 맡고 있으니까, 감이 떨어진 거냐?”
“그래, 맞아. 그 꼬맹이…. 그래, 본가의 아들이라는 그놈. 어쩌면 이번 일에 그놈이 연관된 거 아닐까?”
“그럼 좋겠지? 그럼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감정이 눈에 띄게 격해진 히탄은 상체를 부들부들 떨었다. 사실 그는 루빈 로이넨과는 관련이 없다는 걸 잘 알았다. 증거가 명백했으니까.
“개소리는 집어 치우라고. 전부 오러가 묻은 시체였잖아. 어떻게, 오러의 흔(痕)은 좀 분석해봤냐?”
“…….”
“그래, 곧 죽을 놈이니까 이해한다. 네놈이 싼 똥을 치우는 게 내 일이기도 하고.”
로젠탈러가 여기에 온 이유엔, 시체에서 오러의 흔적을 확인하여 어느 검술명가의 짓인지 추적하기 위함도 있었다.
암살검가는 오러를 쓰지 않으니까. 정말 그들이 개입한 거라면, 시체에서 오러의 흔적이 있어서는 안 됐다.
“어쨌든 루빈 그놈은 아니야. 여기가 난리 났던 그 시점에, 카포티니에 있는 걸 확인했으니까.”
로젠탈러는 덤덤하게 말했다. 습격이 있기 전날, 마주하지는 않았지만 서점에 있는 루빈을 분명히 보았다.
그게 티나가 변신한 모습이라는 걸 알 리 없는 그로서는 당연한 확신이었다.
“소각장 앞에서 나온 제국군 시체, 어딨냐?”
히탄이 손으로 뒤편을 가리켰다. 집무실 책상 근처에, 열 구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로젠탈러는 의자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걸어가 시체를 뒤적였다. 오러의 흔적을 눈여겨보기 위함이다.
“어느 가문이지? 흠, 눈으로는 감별이 안 되는데.”
시체의 부패가 발생하지 않은 걸 보니, 수준급의 오러인 건 확실했다. 정확하게 감별하려면 시간이 좀 더 소요될 것 같았다.
칙명부 내에 오러를 감별해낼 수 있는 전문가가 있으니, 그쪽으로 시체를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도려내야겠군.”
그러려면 검이 필요했다. 로젠탈러는 히탄이 앉은 탁자 쪽으로 손을 뻗었다. 마치, 뭐든 제 손안으로 날아오라는 듯.
잠시 후.
“…….”
드드드드.
탁자 위에 올려진 그의 장검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주인의 부름에 응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당장 날아들 기세였다.
히탄은 장검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롭슨의 비검(飛檢)’
이 검은 칙명부 수장 룰포의 무수한 보구 중 하나였다. 특징이라면, 일정 거리 안에서라면 주인이 원할 때 언제든 주인의 손으로 날아드는 것.
‘저 귀한 보구가 로젠탈러 손에 있다는 건, 그만큼 룰포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뜻이겠지.’
칙명부 내에서는, 로젠탈러가 실책의 희생양이 되어 카포티니로 좌천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로젠탈러에 대한 룰포의 신임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카포티니에서의 임무를 내주며 비검을 하사한 것만 봐도 그랬다.
정말로 룰포의 눈밖에 났을 땐, 좌천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죽임을 당하리란 걸 그는 잘 알았다. 바로 히탄 그 자신처럼 말이다.
휘이이익.
“……!”
탁자 위에 떠오른 장검이 날아들며 아찔하리만치 가깝게 히탄의 목을 스쳤다. 비검은 빠르게 로젠탈러에게 날아들더니 그 손에 탁 잡혔다.
오랜만에 비검을 쓰는지, 로젠탈러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어서 날 죽여.”
“기다려. 이것부터 하고.”
스으으응.
이윽고 비검에 샛노란 오러가 덧씌워졌다. 칙명부에서도 오직 룰포가 인정한 무인에게만 전해지는 ‘비전검술’의 오러였다.
만약 히탄이 살아남으려 로젠탈러에게 대항한다면, 이 공간 안에서 칙명부의 두 오러가 격돌하겠지. 물론 히탄에게 승산은 없겠지만.
저벅저벅.
시체 부위를 잘라낸 로젠탈러가 한 걸음씩 등 뒤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아, 맞아. 히탄.”
“……?”
“지금 카포티니에 마법사여단 놈들이 왔더라고. 장교육성위인가 뭔가 말이야.”
“…….”
“오늘 여기에 오면서 알게 됐거든. 넌 알고 있었지? 그런데도 나한테 말하지 않았고.”
그의 노란빛 오러에서 웅웅거리는 울림이 뿜어지며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로젠탈러가 검을 높이 쳐들었다.
“네 그 미련함 때문에, 로이넨 꼬맹이가 나한테 따져들겠지. 왜 미리 알려주지 않은 거냐고 말이야. 넌 죽어도 모를 거다. 그 꼬맹이 새끼가 얼마나 맹랑한 놈인지!”
다음 순간.
콰직.
‘롭슨의 비검’이 히탄의 정수리 위로 내리꽂혔다.
검은 두개골을 관통하여 목을 관통, 심장에까지 가 닿았다. 검신에는 여전히 노란빛 오러가 작열하는 상태였다.
“멍청한 놈.”
로젠탈러는 한참 동안이나 검을 뽑지 않았다.
* * *
한편, 시험장.
탈락한 생도들은 모두 기숙사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이때, 생존한 생도들은 겹겹이 쌓이는 피로와 허기 속에서 힘겹게 버텨내는 중이었다.
어느덧 차출시험은 8단계에 이르렀다.
남은 응시생도의 숫자는 고작 다섯이었다.
“하아… 하아…….”
‘젠장, 이제는 피로가 해소되지도 않아.’
에릭 이엘로스는 자기도 모르게 솟았다가 꺼지는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시험의 초반 단계에서는 통과하면 저절로 몸의 피로를 씻겨내는 작용이 이뤄졌지만, 그것도 4단계까지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만큼 시험이 혹독한 것은, 일개 마법사가 아닌 제국군 장교 떡잎을 선별해 내겠다는 의지일 터.
‘근데, 저놈은 도대체 뭐지?’
루든 포이넨. 모든 시험을 아무렇지 않게 통과해 버리고 있는 유일한 응시생.
모두가 잔뜩 지쳐 앉아있는 지금, 루든만이 유일하게 멀쩡히 서 있었다. 바람결에 검은 머리칼이 흩날리는 것을 가만히 매만지면서.
에릭은 이를 갈았다. 입학식 전, 마법상점 앞에서 저놈과 마주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거기에, 자신을 무시하고 저놈에게 춤을 신청했던 클로이까지.
생각만 해도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일들이었다.
“달리아.”
“……?”
“저놈, 대체 뭐야?”
“루든을 말하는 거야?”
“그래, 루든인지 뭔지. 너랑 같은 반이잖아.”
달리아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애매한 답을 내놓았다.
“뭐랄까. 좀 특이한 애야.”
“특이?”
“너도 봤잖아. 우리한테 없는 걸 가진 애라는 거.”
“뭐라는 거야?”
그러면서도 에릭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무인의 자질, 오러.
그걸 말하는 것이다.
에릭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인간이 지닌 환에는 오러 혹은 마나만 담길 수 있지만, 아주 드물게 오라와 마나가 공존하는 인간도 있다는 것을.
“다른 말로는 마도무인이라고도 하지. 마검사라고도 하고.”
“흥, 반쪽짜리라는 거잖아?”
에릭은 피식 웃었다.
루빈이 마도무인이라는 사실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만 보자면 루빈이 선두였고, 에릭과 달리아가 그 뒤를 따랐다.
즉, 이 셋이 장교생도로 뽑힐 확률이 높았다.
‘시험을 뒤집을 순 없을 거 같고. 일단 장교생도가 돼서 그다음에 저놈을 처리하면 되겠군.’
루빈의 뒤를 쫓는 신세라는 게 너무도 굴욕적이었지만, 이건 잠깐일 뿐이다. 장교생도로 뽑히고 나면, 지금의 치욕은 마나의 경지 차이로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 어쨌든 잘 된 거야. 이 빌어먹을 카포티니.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는데. 시험만 마치면 이제 제국 본토로 갈 수 있다.’
에릭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금 다잡았다.
한편, 루빈은 하네케와 대화 중이었다.
-벌써 8단계로군. 아마 이번 단계도 큰 무리는 없을 걸세.
하네케가 이토록 자신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장교육성위의 모든 시험을 창안한 것이 바로 그였으니. 차출시험 내용 또한 예전과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루빈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루빈이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알려줬다 해도 큰 도움이 안 되었을 거란 걸 그는 잘 알았다. 그만큼 루빈은 혼자서도 잘 해내고 있었다.
‘하네케, 문제는 당장 8단게가 아닙니다. 이 다음, 9단계예요.’
-그래, 거기서 마나 폭발을 일으킬 거라 했지.
9단계는 응시생도의 전략·전술적 능력을 확인하는 요체로, ‘라스키엔 대난전(大亂戰)’이라는 정식 명칭이 붙어 있었다.
-자네를 포함해서 여덟 명이 지휘관이 되어 가상 전투를 치르는 거라네. 인원이 부족하다면 시험관들이 대신 참전하겠지. 이길 수 있겠나?
‘우선 제가 원하는 전황(戰況)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서 대장군의 도움이 필요한 거고요.’
루빈이 원하는 전황이 가장 중요했다. 그게 감찰보고서에 적혀 있는 마나 폭발의 핵심 조건이었다.
다만 루빈은 ‘라스키엔 대난전’이라는 보드게임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애초부터 전략 연구를 위한 것이었기에, 제국군 소속만 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루빈은 이미 하네케에게 필요한 전황에 대해 전부 설명한 뒤였다.
‘제가 원하는 대로 전황을 만들려면 우선 뭐가 필요할까요?’
-…….
그 순간.
루빈은 하네케가 다른 응시생도들을 관찰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달리아와 에릭을 비롯한 네 명을 제 시야에 담았다.
-일단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두 명이 필요해. 내가 보기엔 에릭과 달리아가 괜찮아 보이는군.
‘이번 8단계에서 저 둘을 통과시키라는 거죠?’
-맞네. 물론 저 둘이 없다고 해서 불가능할 건 아니지만, 그러면 좋겠군.
‘그러죠.’
바로 그때, 기다리던 8단계가 시작됐다.
두두둥.
우선 그들 눈앞에 펼쳐진 건 커다란 사각기둥이었다. 방공호 꼭대기에 닿을 정도만 한 사각기둥 하나.
투둑. 투둑. 투둑. 투둑.
최초의 사각기둥을 중심으로, 다른 두께와 높이의 사각기둥들이 솟아올라 들러붙기 시작했다. 마치 증식하는 곰팡이처럼. 또는 파문의 출렁임처럼.
응시생도들은 술렁였다.
“뭐, 뭘 하라는 거지?”
그와 동시에, 생도들은 자신들이 사각기둥들로부터 점차 밀려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최초의 사각기둥만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킬 뿐, 이외 모든 걸 밀어내는 중이었다.
펄럭.
얼핏 사각기둥 정상에 있는 깃발이 보였다. 중심으로부터 밀려나는 만큼, 시야 속 깃발이 빠른 속도로 작아졌다.
루빈은 이 시험의 승리조건이 무언지 곧장 깨달았다.
‘깃발을 뽑으라는 거군.’
그 순간.
“으라아!”
생도 하나가 먼저 뛰어나갔다. 에릭 이엘로스였다.
깃발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 건 그만이 아니었다. 뒤이어 달리아 또한 깃발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걸 신호로, 다른 생도들 전부 뜀박질을 시작했다.
파팟.
사각기둥들은 높이가 제각각이어서, 생도들은 하나씩 뛰어넘고 매달리며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두르륵! 두르륵!
그런 와중에도 사각기둥들은 점점 그 증식하며 생도들을 깃발 바깥으로 밀어냈다.
“으악!”
A반 소속 생도 하나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며 외곽으로 한없이 밀려 나갔다. 이를 지켜보는 A반 담임교수 솔라나의 입에서, 아마 심한 욕설이 튀어나왔으리라.
그리고 그때.
쓰러진 A반 생도의 머리 위로, 루빈이 뛰어나갔다. 가볍고 경쾌한 움직임. 딱히 암연을 쓸 필요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