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5화 (5/180)

5화

‘…이 아저씨가 지금 뭐라는 거야? 영웅 가문? 뭔가 단단히 착각하는 거 같은데 저는 그저 변방의 몰락 귀족인데요.’

당황한 나는 얼빠진 얼굴로 감독관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노골적으로 나를 무시하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신을 영접한 신자라도 된 듯 감격한 얼굴로 내 손을 움켜쥐었다.

“…제가, 제가 귀하신 분을 몰라 뵙습니다. 죄송합니다. 영웅의 후예시여.”

“저기, 그… 무언가 오해하고 계시는 거 같은데 저는 영웅의 후예 같은 게 아닙니다.”

“허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더니, 역시! 진정한 영웅의 후예께서는 이런 순간에도 스스로를 낮추시려고 하시는 군요. 이거 참 부끄럽습니다.”

이 아저씨가 더위를 쳐 먹었나.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감독관이 하도 호들갑을 떤 탓인지 어쩔 수 없이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방금 들었어? 저기 저 남자, 지그하르트 가문 출신이라는데?”

“우리가 아는 그 지그하르트라고…? 에이, 설마 지그하르트 가문은

100년 전에 멸문했다고 들었는데…?”

“아니야. 감독관님이 분명 지그하르트라고 하는 걸 내가 똑똑히 들었어.”

“정말…? 그 전설 속 용살자(龍殺者) 가문 지그하르트가 실존한다고…?”

“확실해. 내가 우리 할머니한테 들었는데 지그하르트 일족은 대대로 용 사냥을 위한 특수한 눈을 타고 난대. 용들의 고등 술식(高等 術式)을 해석하기 위한 특이한 형태의 눈동자라는데 그 눈이 꼭 보석 같다고 해서 보석안(寶石眼)이라고 부른다고 하더라고. 보이지? 저 자수정 같은 눈동자. 분명 보석안이 틀림없어.”

영웅…? 용살자…?

뭐야, 그게 무서워. 몰라 그런 거.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냥 이름만 가지고 있는 평범한 몰락귀족이에요.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72교단. 이 광신도들아. 지그하르트 가문은 저기 촌구석에 몰락한 백작가라며. 대체 왜 이렇게 유명한 건데.

대대로 내려오는 보석안이고, 나발이고. 그냥 내 취향대로 만든 것 뿐 이라고.

‘근데 저 설명충 자식은 뭔데 지그하르트 가문에 대해서 저렇게 잘 아는 거야.’

나는 혼신을 다해 지그하르트 가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소년을 바라봤다.

작은 체구에 커다란 안경, 전형적인 공부벌레 같은 인상이었다.

그 순간,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내 시선을 느낀 건가?’

소년은 나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입을 움직였다.

[72교단을 위하여.]

어쩐지 수상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 했더니 저 놈도 교인이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저 정신 나간 광신도 새끼들…’

그저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허울 좋은 가문 하나가 필요했을 뿐인데. 오히려 거나하게 이목을 끌어버렸다.

나에게 향하는 수많은 시선들 중에서도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유독 강렬한 눈빛이 있었다.

바로 길에서 부딪쳤던 그 곱상한 외모의 소년이었다.

‘역시 여기 있었군.’

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원래라면 결코 들을 수 없는 거리였지만 신체 강화를 한 덕분에 청력 또한 강화되어 목소리를 듣는 것이 가능했다.

“저자가 그 유명한 지그하르트 가문의 후계자인가. 딱히 특별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데…. 설마! 내 기감으로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본인의 기운을 잘 갈무리 하고 있는 것인가! 역시 영웅의 핏줄은 속일 수가 없군. 허나 그럼에도 나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하이고? 아주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지랄 났네. 지랄 났어.

“이번 입학시험에서 반드시 수석을 차지하여 아버지의 검술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설령 그 앞을 가로막는 것이 영웅의 핏줄이라 하여도.”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따지자면 끝도 없었다.

이미 꼬일 때로 꼬인 매듭은 도무지 풀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니까 나는 영웅도 뭣도 아니라니까…. 왜 그 승부욕을 불태우는 대상이 하필 나냐고….’

나는 감독관에게 조용히 말했다.

“더 이상 이목을 끌고 싶지 않으니 최대한 빨리 처리해주시면 안 됩니까?”

“아, 네!”

그제야 감독관은 정신을 차렸는지 황급히 접수를 하기 시작했다.

처리를 끝낸 그가 공손한 얼굴로 말했다.

“자일 지그하르트님. 접수 완료되었습니다. 시험장은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초행이시면 가는 길이 꽤 복잡하실 텐데 괜찮으시다면 제가 직접 안내해드릴까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는 아쉬운 얼굴로 내게 수험표를 건넸다.

“영웅의 후예를 직접 뵙게 되어 큰 영광이었습니다. 꼭 저희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제국을 수호하는 거목으로 자라나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떨떠름한 얼굴로 수험표를 건네받은 나는 최대한 빠르게 시험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수험표를 확인해보니 하필 수험번호도 444번이었다.

어쩐지 순탄치 않은 입학시험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런 예감은 꼭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단 말이지….’

시험장에 도착하니 수많은 응시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교관으로 보이는 인물이 소리쳤다.

“수험번호 400~500번은 이쪽으로 오도록.”

나는 교관의 지시에 따라 순번에 맞게 줄을 선 뒤 다가올 차례를 기다렸다.

지금부터 치르게 될 테스트는 일종의 적성검사라고 할 수 있었다.

마나석이라 불리는 특수한 광물로 만든 수정구를 통해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마나의 총량과 속성을 측정한다.

살로몬 아카데미가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실력 있는 모든 이들의 입학을 환영한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재능 있는 이들 한정이었다.

최소한의 자질조차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는 시험에 응시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즉, 이 시험은 재능 없는 이들을 걸러내기 위해 고안된 거름망인 셈.

철저한 실력주의를 표방하며 누구에게는 기회의 땅이, 누구에게는 열등감의 늪이 될 수 있는 장소.

그곳이 바로, 이곳 살로몬 아카데미였다.

‘이 몸이야 마나 총량도 별 볼일 없고, 원소 계열 친화력은 아예 없으니 아마 턱걸이 정도로 간신히 합격하겠지.’

흑마술을 사용한다면야 수정구를 부숴버리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 즉시 내 머리통도 부서질 예정이었다.

‘이 이상의 주목은 사양이다. 조용히, 죽은 듯이 가는 거다.’

갑자기 주변이 어수선해졌다. 나는 고개를 내밀어 앞쪽을 바라봤다.

“샬럿 메이지. 마나량 A+, 원천 속성은 총 4가지, 쿼드러플(Quadruple)이다.”

그곳에는 석양처럼 붉은 머리칼을 질끈 묶은 소녀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서 있었다. 분명 처음 보는 것이 확실한데 어째서인지 낯이 익었다.

“…장녀는 제국 최연소 마도사, 차녀는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쿼드러플이라니. 역시 메이지 공작가의 핏줄은 다르구나. 우리 같은 범재들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타고난 혈통은 이길 수 없는 거겠지….”

“당연하지! 무려 메이지 공작가라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제국 최강의 마도가문! 마법계의 살아있는 신화! 가주인 아크 공작님께서 단신으로 흑마술사들의 본거지를 파괴했다는 얘기 못 들어봤어? 존재 자체가 전략병기! 일인군단이라고! 장녀인 린 메이지님은 최연소 마도사의 직위에 올라 세계 평화를 위해 용사 파티에 일원이 되어…….”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해.”

“아직 더 있어! 속성 마법을 다루는 능력이….”

어쩐지 낯이 익다했더니, 그 성질머리 더러운 마법사 년의 여동생이었다.

‘샬럿 메이지인가…. 그녀라면 당연한 결과이긴 하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례를 기다리다 보니 어느덧 내 순서가 다가왔다.

“다음. 수험번호 444번 앞으로.”

별 생각 없이 앞으로 나선 나는 시야에 들어온 광경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교관이 내게 물었다.

“왜 그러지, 444번?”

분명 마나 측정을 위한 수정구 하나만 있어야 할 터인데, 그 뒤편에 또 다른 수정구가 존재했다.

발광하듯 신성력을 뿜어대는 투명한 수정구가.

―이건 내가 알고 있던 정보와 완전히 달랐다.

“저 뒤에 구슬은 무엇입니까…?”

교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아, 저거 말인가? 그렇게 당황할 필요 없다. 저건 시험 성적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거든. 그저 자네가 불순한 목적을 지닌 이교도(異敎徒)인지 확인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분명 이런 설정은 없었는데…?’

얼마나 뒤틀린건지 이제는 감도 안온다. 이거 내가 쓴 글 맞냐?

“최근 무슨 영문인지 제국 내에 마신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의 활동이 활발해졌다고 하더군. 그로 인해 설치한 것이니 그리 겁먹을 필요 없다. 그대가 흑마술이라도 배운 것이 아닌 이상 아무런 이상도 없을 터이니. 하하하!”

이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곳은 단순히 내가 쓴 소설 속 세계가 아니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으며, 흐름이 존재한다.

‘…인과(因果)인가.’

‘나’라는 ‘변수’가 이 세계에 개입했기에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새로운 이야기들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그저 이 세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톱니바퀴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이곳은 그 자체로서 오롯이 존재하는 별개의 세계였다―

나는 그저 남들보다 정보를 좀 더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절대자가 된 것 마냥 착각하고 있었던 것 뿐 이었다.

오만했다.

“444번? 계속 거기 서 있을 텐가?”

이 사실을 깨닫자,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나에게는 목표가 있다.

“갑니다.”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반드시.

“자, 이 수정구 위에 손을 올리면 되네.”

나는 마나석 위에 손을 올렸다. 수정구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점점 밝아졌다.

“…마나 총량은 C+, 원천 속성은 무(無)…. 잠깐, 강화 계열이군. 정정하지, 원천 속성은 강화이다.”

“좋은 건가요?”

“뭐, 나쁘지 않다.”

여기까지는 예상 범위 내였다.

“자, 금방 끝날 터이니 긴장하지 말도록.”

교관이 또 다른 수정구를 내밀었다.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수정구에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담겨 있다는 것을. 최소 주교급 이상의 축복이 분명했다.

허나 이럴 때일수록 더욱 자연스럽게 행동해야만 했다.

안 그래도 방금 전 머뭇거리는 모습으로 인해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을지 몰랐다. 미심쩍은 행동은 명분을 쥐어줄 뿐이다.

만약 이 자리에서 내가 흑마술사라는 사실을 들키게 된다면….

죽음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어쩌면 단순히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정신이 붕괴될 정도로 끔찍한 고문을 받으며, 하루하루 죽기만을 바라는 삶을 연명해 나갈 가능성 또한 존재했다.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 짜내야 했다.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지만, 얼굴은 평온함을 유지했다.

‘역시 이 방법 밖에는….’

나는 수정구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수정구에 손이 닿는 순간, 살이 익는 듯한 통증이 전신에 엄습했다.

‘버텨야 된다.’

여기서 의심쩍은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면 정말 끝이었다.

끔직한 고통에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지만 안간힘을 다해 버텼다.

얼굴 근육의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았다.

‘거의 다 왔다. 이제 조금만….’

―그때였다.

수정 구슬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탁한 빛을 띠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뒤늦게 내 마기에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행히 아직까지 이 사실을 눈치 챈 것은 나 뿐 인듯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나는 수정구 내부로 마기를 불어넣었다.

쾅!

고막이 찢어질 듯한 굉음과 함께 구슬이 폭발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교관들이 순식간에 내 주위를 둘러쌌다.

나를 담당하던 교관이 검을 겨누며 차갑게 말했다.

“잡았다. 이교도(異敎徒) 놈.”

예리한 검날이 목덜미를 파고들며, 선홍빛 핏줄기가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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