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7화 (7/180)

7화

그녀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상당히 당황한 듯 했다.

“자일 공. 갑자기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는 칼리고 백작가의 차기 가주, 프레이 칼리고는 17세의 청년이지요.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 눈앞에 계신 프레이 영…식께서는 남성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두 가지 가정을 할 수 있겠지요. 당신이 프레이 칼리고가 아니거나 혹은….”

그녀의 얼굴이 점점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세간에 알려진 프레이 칼리고는 사실 여자였다. 라는 것이지요.”

그녀가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백금발의 머리칼과 부드러운 외모.

첫 인상은 꼬리를 흔들고 있는 골든 리트리버가 떠오를 정도로 귀여웠다.

그러나 형형(炯炯)하게 빛나는 금빛 안광을 마주하자 마치 다른 인물이 눈앞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살기(殺氣).

어쩌면 이쪽이 그녀 본연의 모습과 가까울 것이다.

“…어째서 제가 여자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한없이 차가운 말투. 독심술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것 같았다.

「죽여야 되나」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살인멸구(殺人滅口)를 고민하는 그녀.

단순히 지금의 자신으로서 나를 상대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불분명하기에 망설이는 것 뿐 이다.

만약 나에게 지그하르트 가문이라는 배경이 없었다면, 실제로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였을지도 모른다.

공허한 동공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심연 속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뛰어난 재능만큼이나 커다란 어둠을 품고 있는 그녀였다.

아버지의 복수. 가문의 후계자. 사생아 등.

자신을 좀먹는 어둠들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지그하르트 일족이 지닌 보석안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금색 눈동자가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마치 신기한 것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중얼거리는 그녀.

“이게 그 보석안…. 마치 자수정(紫水晶) 같군요….”

“그렇습니다. 저희 지그하르트 일족은 이처럼 특별한 눈을 타고나지요.”

“그게 어쨌다는 거죠?”

손가락으로 내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용들의 술식을 해석하기 위한 눈동자입니다. 그 말은 즉, 웬만한 마법의 식이 보인다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프레이 공자께서 인식저해와 외모를 바꿀 수 있는 아티팩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눈에는 공자, 아니 공녀의 본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지요.”

생각지고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당연한 것이다.

그런 눈깔은 지니고 있지도 않았고,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얘기는 그저 되는대로 지껄이는 설정놀음에 불과했다.

“…그 눈동자로 인해 알게 된 것이군요. 허나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본래도 전 남장을 하고 다니는데 자일 공께서는 제가 어찌 여인이라는 사실을 맞추신 거지요?”

“자세히 보면 티가 나는 법입니다. 남성과 여성은 신체적으로 그 굴곡이라던가…. 선이….”

멋쩍은 듯 말을 줄이자 이제야 이해했는지 그녀의 얼굴이 금새 붉게 물들었다.

이렇게 보니 영락없는 소녀였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공자께서는 눈썰미가 매우 좋으신 편인가 보군요. 이렇게까지 증거가 확실한데 더 이상 속이는 건 불가능할 것 같군요. 맞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저는 여인입니다. 처음이군요. 제 입으로 제가 여인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은. 자일 공께서는 무엇을 목적으로 제게 이러한 얘기를 하신 겁니까? 돈? 명예? 아니면 제….”

“아무래도 큰 오해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이 아닙니다.”

그녀가 의심스러운 듯 미간을 좁혔다.

“목적이 없다고요? 굳이 제 비밀을 들쳐놓고 말입니까?”

“예. 믿기 어려워하시는 것 같으신데…. 굳이 이유를 덧붙이자면 경고입니다.”

“경고요?”

“그렇습니다.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저처럼 특별한 눈을 지닌 이들은 이처럼 공녀가 지니고 계신 아티팩트로도 정체를 완벽하게 숨길 수 없으니까요. 물론, 저와 같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드물지만, 또 혹시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공녀께서도 숨기고 계신 비밀이 이 이상 퍼지는 것은 원치 않으실 테니 강화술사를 찾아가 아티팩트를 강화하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아, 물론 걱정하지 마십쇼. 공녀의 비밀은 그 어디에도 발설하지 않을 것입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맹약을 해드리지요.”

“……어째서 처음 보는 제게 이러한 호의를 베푸시는 건가요?”

“제 개인적인 바람입니다만, 저는 공녀와 친해지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프레이가 놀란 듯 눈을 깜빡거리더니 이내 서서히 얼굴을 붉혔다.

평생을 검만 휘두르며 남아로 자라왔기에 이런 쪽에 면역은 놀랍도록 적은 듯 했다.

“저, 저, 저, 저랑요…?”

나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래전부터 부친인 할튼 경과 프레이 백작 가문의 명성은 익히 들었기에 한 번쯤 꼭 뵙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 후계자께서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일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지만 말입니다.”

빠르게 주위를 둘러본 프레이가 조그맣게 소리쳤다.

“아, 아름…. 크흠. 비밀이니까요! 지우세요! 머릿속에서! 입에도 꺼내면 안 됩니다!”

“하하. 제가 장난이 지나쳤습니다. 약속하지요.”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 발걸음과 함께 비아냥거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이거, 이거 누군가 했더니 ‘전(前) 소드마스터’ 할튼 경의 영식인 프레이 칼리고 아닌가?”

프레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딘 공자님.”

나는 고개를 들어 눈앞에 남자를 바라봤다.

쭉 찢어진 눈매와 높은 콧대.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 윤기가 흐르는 회색빛 머리칼.

보자마자 한 여인이 떠올랐다.

나와 같은 용사 파티의 일원이자 황실 기사단장, 테레사 룬델.

‘테레사 룬델의 남동생, 사딘 룬델인가….’

룬델 공작가.

명실상부 프레이 백작가와 함께 제국 최고의 기사 가문으로 불리는 전설적인 무가(武家)였으나 현재는, 독보적인 가문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룬델은 그러한 가문의 후계자, 즉 차기 가주였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프레이! 자네도 역시 살로몬 아카데미에 입학하는가보군.”

“그렇습니다.”

“할튼 경께서는 좀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아버님과의 대결에서 입은 부상이 꽤나 심각하다고 들었거든. 허나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무릇 기사간의 대련에서 얻은 상처는 훈장인 것을.”

프레이가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짓이겼다. 자세히 보니 그녀의 손이 미세하기 떨리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내게 향했다. 비열한 눈동자가 탐욕과 이기심으로 번뜩였다.

“호오, 그대가 그 유명한 영웅 가문의 후예인 자일 지그하르트인가?”

“그렇습니다.”

평가를 하기 위해 훑어보는 듯한 시선.

“정문에서부터 꽤나 소란스럽더군. 내 귀에까지 그대의 얘기가 들리는 걸 보아하니 말이야.”

“떠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호들갑을 떤 것 뿐입니다.”

“그렇기에는 아주 거나하게 벌이던 것 같은데 말이지? 과거의 망령이 제 주제도 모르고 설쳐대면 쓰나.”

“…….”

“왜, 이 몸의 말이 틀렸는가? 주변에 있는 이들이 죄다 영웅 가문이라고 떠받들어주니 좋았겠지. 허나 결국 그러한 것들은 전부 부풀릴 대로 부풀려진 헛소문 아닌가? 분명 전승되는 과정에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제멋대로 살을 추가했을 게 뻔하지. 인간이 단신으로 용을 잡을 수 있다고? 설령 그것이 진실이라 하여도 그토록 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는 가문이 어째서 몰락한단 말인가.”

대놓고 시비를 걸려고 온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天才)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지만 그래봤자 철없는 애송이에 불과하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을 텐데…….

어째서…. 어째서, 이토록 화가 나는 걸까.

“그 눈빛은 무엇이냐? 꼴에 가문에 대한 자존심은 있다 이거냐?”

대체 무엇 때문에? 속셈이 뻔히 보이는 도발 때문에? 아니다. 내 속이 이토록 끓어오르는 것은 고작 그런 이유 따위가 아니었다.

“…제국 최강의 기사 가문의 후계자라는 분이 어찌 그리 함부로 입을 놀리시는 겁니까.”

사딘의 이마에 핏줄이 곤두섰다. 누구보다 권위적인 그는 내 발언을 결코 넘길 수 없을 것이다.

“방금 무어라 했느냐?”

그것은….

“어찌 그리 함부로 입을 놀리냐고 하였습니다. 몰락한 백작가의 후계자에게 이러한 말을 들으니 수치스러우십니까? 이곳은 아카데미입니다. 평민이든, 귀족이든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오로지 실력에 따라 교육을 받는 장소란 얘기이죠.”

동족혐오였다.

나는 그에게서 ‘나’를 보고 있었다. 과거, 열등감에 찌들어 세상을 원망하고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던 자신을.

시기와 질투만 남은 끔찍한 덩어리를.

성공한 이들의 노력을 부정하며, 모든 걸 세상 탓으로 돌리며 비난만 하던 끔찍한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딘이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실력이라…. 그렇지. 네놈 말대로 이곳 살로몬 아카데미는 오로지 실력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곳이지. 그래, 어디 네가 그렇게 실력의 자신이 있다면 두 번째 시험의 상대로 나를 지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분노의 원천을 알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당시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끔찍했다.

추악함을 인간으로 형상화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역겨운 인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변할 것이다.

극복하고, 나아가며.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성장해 나가는 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나보다 더 놀란 것은 프레이였다. 그녀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불렀다.

“자일 공! 다시 생각을….”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딘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좋은 자신감이다. 설마 지목권을 얻기도 전에 떨어지는 것은 아닐 테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기다리고 있으마.”

그가 자리를 떠나자, 프레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자일 공. 그대가 아무리 지그하르트의 피를 이어 받았다고 하여도… 사딘 공자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할 거 에요.”

이미 한 번 그와의 대련에서 패배한 적이 있던 그녀는 그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사딘 룬델은 어린 시절부터 하늘이 내린 기재(奇才), 무(武)에 있어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 받는 인물이었다.

검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가히 최고의 재능을 지닌 원석.

허나 아직은 세공이 덜 된 원석이었다.

“…괜찮습니다.”

마침 타이밍 좋게 내 번호가 호명됐다.

“수험번호 444번. 521번. 앞으로.”

“네.”

두 번째 시험의 테마는 대련.

무작위로 호명된 상대와 대련을 통해 승리를 거두면 되는 간단한 규칙이다.

승리를 할 때마다 계속 싸울 것인지, 아니면 이쯤에서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단, 스스로의 의지로 연승을 멈춘 것이 아닌 상대에게 패배를 하게 되면 그동안 얻게 된 점수를 전부 잃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3연승 이상을 하게 되면 원하는 상대를 지목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지목 받은 상대는 수락할지 거절할지 본인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고, 만약 거절하게 된다면 더 이상의 지목은 받을 수 없다.

나는 대련장 위로 올라갔다. 족히 100평은 될 것 같은 크기의 직사각형 공간.

“원하는 무기를 골라라.”

대검, 중검, 세검, 도, 창, 지팡이, 봉 등 다양한 무기들이 놓아져 있었다.

물론, 대련용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살상력을 극도로 떨어트려 놨으나 그렇다고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허나 나에게 무기는 필요 없었다.

“저는 그냥 이대로 하겠습니다.”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애초에 다룰 수 있는 무기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런 내 의도와 관계없이 상대는 굉장히 수치스러운 듯 몸을 떨었다.

그녀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고 있노라니 아마도 내가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들이 들렸다.

“무기도 들지 않고 싸운다는데? 저거 상대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언뜻 보면 그럴 수 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닐 거야. 지그하르트 일족을 상징하는 것은 용살자와 보석안 뿐만이 아니야. 바로 그 초인적인 신체능력이지. 선천적으로 타고난 힘과 신체를 지닌 그의 입장에서 무기는 오히려 불편할 거야. 자신의 힘을 견디지 못할 테니까.”

“아…. 역시…. 영웅의 일족은 다르구나…. 대단하다. 근데 너는 어떻게 그런 걸 다 알고 있어?”

“아, 우리 할머니가 지그하르트 일족의 광팬이었거든.”

오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심판을 담당하는 교관이 말했다.

“장외, 기권, 행동불능으로 판단되면 패배가 인정된다. 또한, 상대를 죽이려는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시 곧바로 시험 자격 박탈이다.”

나와 여인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녀가 선택한 무기는 창이었다.

“예!”

“좋다. 시합 실시!”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주먹을 뻗었다.

쾅-!

공기가 찢어질 듯한 파공음이 울려 퍼지며 상대방이 경기장 바깥으로 날아갔다.

“――!”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생각보다 힘 조절이 어렵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교관이 다급하게 외쳤다.

“…수험번호 444번 스,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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