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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13화 (13/180)

13화

앞을 한 번, 창을 한 번, 앞을 한 번, 창을 한 번….

이와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방금까지 눈앞에 있던 듀라한이 창질 한 번에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두 눈으로 보고도, 아니 애초에 내가 그렇게 만들었음에도 도저히 믿지 못할 광경.

꿀꺽, 침을 삼키며 손에 쥐고 있던 창을 천천히 훑었다.

“마창(魔槍)……..”

뭐야, 이거…. 무서워….

-덧붙이자면 단순히 창 때문만은 아니다. 그대가 그 창과의 궁합이 좋은 탓인 것이지. 애초에 그대는 내 사도지 않나. 고작 이런 걸로 호들갑 떨지 말거라.

‘근데 좀 뜬금없을지 몰라도 궁금한 거 하나 물어봐도 돼?’

-말해라.

‘갑자기 말투가 바뀐 거 같은데 왜 그런 거야?’

불현 듯 정적이 흘렀다.

약 1분 정도가 지났을까.

-…그 권위라는 게 있지 않느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몸의 말투가 조금 가벼워 보이는 거 같더구나.

‘그런가? 우리 사이에 굳이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음….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아…설마! 너 또 내 머릿속 뒤져 봤구나?’

분명 얼굴이 보이지 않음에도 왠지 뜨끔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아스모데우스.

-크, 크흠. 그런 거 아니다.

‘하긴 태초의 마신인 네 입장에서는 내가 살던 세계의 창작물이 굉장히 흥미롭기는 하겠네.’

-맞다! 이곳은 내게 너무 따분하다…. 나라는 존재가 이 세계에 얼마나 오랜 시간 존재하였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대라는 인물이 내게 얼마나 흥미로운 존재인지, 처음 그대를 발견했을 때에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잔뜩 흥분한 듯한 말투에서 그녀의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영겁(永劫)의 시간. 단어로는 실감조차 나지 않았다.

지고(至高)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그녀는 인간인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만큼 아득한 시간을 지내왔을 것이다.

태초의 신들이나 천사 혹은 악마들은 개념(槪念)에서 태어난 존재들이 대부분이다.

어떠한 개념(槪念)이 생겨났을 때, 자연적으로 세상에 현현하게 된 것이다.

그녀 또한 색욕과 격노를 관장하고 있는 만큼, 그리고 본디 치천사였던 만큼 세계와 태동을 함께 했을 터이다.

비록 내 앞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어쩐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힘들었겠네.’

-…한낱 필멸자 주제에 이 몸을 이해하려 들려고 하지 말거라.

말은 저렇게 해도 딱히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 사도 얘기는 어떻게 된 건데? 시온 지그하르트는 인간이라며, 근데 어떻게 당신의 사도가 된 거야?’

-그는……. 잠깐. 급히 가봐야 할 때가 생겼다. 다음에 얘기해주도록 하지.

‘뭐야? 진짜 간 거야? 정말로? 정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째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는 것이고….

‘……진짜 갔네.’

그때, 정신을 차린 프레이가 다급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자일 공! 어찌 된 겁니까? 몸은 괜찮으십니까? 분명 듀라한이 이쪽을 향해 오는 것까지 보았는데 그 이후로는 기억이….”

결국, 저주를 이겨내지 못하고 의식을 잃은 것인지 내가 듀라한을 쓰러트리는 광경은 목격하지 못한 듯 했다.

“예. 괜찮습니다. 저도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잘 넘어간 듯 합니다.”

“제가 쓰러진 이후에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듀라한이 제게 다가왔는데….”

굳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내게 다가온 듀라한이 어떤 영문에서인지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는 걸로.

‘그러고 보니 듀라한은 완전히 소멸된 건가? 그렇게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고생한 보람이 없었다. 안 그래도 흑마술사라는 사실 때문에 아카데미 생활 자체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인데, 전력을 늘릴 기회가 있으면 써먹어야 정상이 아닌가.

‘생전에는 꽤 이름 있는 기사였던 것 같은데 말이지…..’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니 걱정마라. 그쪽도 너를 자신의 주군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으니 아마 조만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온 지그하르트와 관련된 의문들에 대해서는 나 또한 지금 당장 대답해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당분간은 소통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이쪽’에 일이 생겼거든. 그것을 전하기에 온 것이다.

‘이쪽이라면 지옥에?’

-그래. 전쟁이다. 뭐, 우리에게는 삶과 같은 거지만…. 이번에는 조금 색다른 것 같아 기대가 되는군. 어쨌든 그렇게 알고 있어라. 이 몸이 없는 동안 쪽팔리게 얻어맞고 다니지 말고.

‘그래. 뭐가 됐든 잘 해결하고 와.’

-오냐.

이 타이밍에 전쟁이라….

투쟁과 살육이 일상인 그들이기에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서열과 영역이라는 것이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특히 지옥만큼 힘의 논리로 이루어진 공간일수록 그러한 법칙을 철저히 따르는 편이었기에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최하위 서열에 마신들은 그렇다 쳐도, 7대 죄악이나 최상위 마신들은 웬만해서는 움직이지 않을 텐데….

뭐, 지옥에서 아스모데우스를 걱정하는 것만큼 멍청한 행동은 없으니 우선은 내 할 일이나 잘하자.

“이곳에 와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전 아직도 많이 부족하군요. 기사라는 자가, 고작 그 정도도 견디지 못하다니…. 그에 비해 자일 공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고 계시더군요. 부끄럽습니다.”

굉장히 분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프레이를 보며 양심이 찔렸다.

사실 그녀의 정신력만을 따지고 보자면 이미 아카데미 신입생들은 한참을 초월한 수준이었다.

그 악명 높은 듀라한의 저주를 오로지 순수한 정신력만으로 버텨낸 것이었으니까.

나야, 마신과 계약한 흑마술사이기에 통하지 않은 것이지. 내 정신력이 뛰어나서 버틴 것이 아니었다.

“…저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프레이. 그대의 정신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옅은 홍조가 핀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그, 그렇습니까? 자일 공자는 참 신비한 사람인….”

그 순간.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것인지 혹은 뒤늦게 정신을 차린 척 하는 건지 모를 이든이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프, 프레이님! 자일 님! 괜찮으십니까!”

프레이가 이든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 저희는 괜찮습니다. 이든, 그대는 이제 정신을 차린 것 같은데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십니까?”

이든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신이 괜찮다는 것을 어필했다.

나는 그런 이든을 유심히 살폈다. 어쩐지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부자연스러운 행동이라 느껴졌다.

“예, 다행히 몸은 멀쩡합니다!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소름끼치는 검은 말과 목이 없는 기수를 본 직후 아무런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헉. 서, 설마, 이번에도 자일님께서 해결하신 겁니까!?”

프레이가 자랑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희가 정신을 잃은 동안, 유일하게 의식을 유지하던 것이 자일 공자였습니다.”

내게 다가온 이든이 덥석 손을 붙잡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대단하십니다! 역시 전란의 위기에서 제국을 구한 영웅의 일족은 그 정신력부터 남다르군요. 자일님과 같은 조에서 시험을 치룰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제게 큰 영광입니다. 자일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아마 저희 조는 이번에 탈락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자일님께서는 남다른 관찰력과 판단력을 지니고 계신 듯 한데, 혹시 저희 조의 조장을 맡아주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무래도 남은 시험을 무사히 치루려면 조를 이끌어갈 대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동의하는 바입니다.”

조장은 둘째 치고, 이쯤 되면 너무 과할 정도로 칭찬을 남발하며 치켜 세워주는 것이 탐탁치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내가 예민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져만 갔다.

‘그래. 어디 한 번 보자고. 당신의 그 행동들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임에도 내가 그저 오해하는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겉으로는 멍청하고 순박한 인간을 연기하며 속으로 어떤 꿍꿍이를 품고 있는 것인지.’

“…좋습니다.”

“어, 그런데 샬럿님께서는 어디 계시지요?”

“살럿이라면….”

그러고 보니 듀라한에게 정신이 팔리는 바람에 그녀를 신경 쓰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 내가 있던 자리에 샬럿이 너부러져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추한 몰골로.

듀라한도 사라졌으니 이미 정신이 든 모양이지만, 그녀는 최선을 다해 기절한 척 연기하고 있었다.

눈치 없는 이든이 쓰러져 있는 그녀를 힘껏 흔들며 호들갑을 떨었다.

“샬럿님! 샬럿님! 괜찮으세요? 기절하신 건가? 얼굴이 창백한데, 무슨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요?”

그러더니, 그녀의 엉덩이 부근에 있는 투명한 액체를 발견하더니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바닥을 적신 이 액체 정체가 뭘까요?”

“…….”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액체요?”

이 상황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프레이는 그저 순수하게 질문할 뿐이었다.

“이거 큰일이 난 게 아닌지….”

이든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바닥에 있는 액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으아아아아아악!!!!”

샬럿이 엄청난 괴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샬럿!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괜찮으니까 절로 가!”

“네?”

“아, 절로 가라고! 내 말에 토 달지 말고 가라면 가란 말이야!”

갑작스레 열불을 내는 샬럿 때문에 당황한 이든이 머쓱한 얼굴로 자리를 벗어났다.

“…아. 네, 죄송합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샬럿과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풉.”

아무런 말없이 나를 노려보던 살럿이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가면 죽여 버릴 거야.”

‘어쭈? 정신 못 차렸지?

나는 입 모양으로 말했다.

[말한다.]

뚫어져라 노려보던 그녀의 눈빛이 한풀 꺾이더니 이내 울상이 되었다.

“샬럿도 깨어난 것 같으니 출발하죠. 저희 조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맨드레이크의 회수입니다.”

“네, 조장!”

“조장? 이게 무슨 소리야?”

샬럿이 되묻자, 우리의 친절하신 이든이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진짜 짜증나.”

모든 설명을 들은 샬럿은 더욱 울상이 되었다.

* * *

우리는 다시 숲 안쪽을 향해 걸었다.

꽤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것 같았지만 초입과는 다르게 딱히 마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주변 풍경이 시시각각 변할 뿐. 불쾌하고, 싸늘한 감각은 더욱 심해졌지만 이제 슬슬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크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쯤에서 잠시 쉬다 가죠.”

미각도 촉각도 후각도 느낄 수 없지만, 허기는 느껴진다.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휴식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정체 모를 잡초와 수액을 섞은 죽으로 끼니를 때웠다.

비주얼만 보면 어디 지옥에서 온 것 같았다.

정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인가 싶었지만 이든이 자기 고향에서는 원래 이렇게 먹는다며 자신만만하게 입에 털어 넣었기에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몇 가지 감각을 금한 것이 오히려 유용하게 쓰이는 것 같은 것은 순전히 내 착각에 불과한 것일까.

잠깐 눈을 붙이고, 슬슬 일어나려 할 때 저 멀리서 이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조장. 여기 또 글씨가 있는데요?”

그가 가리킨 곳에는 커다란 석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 앞 거울 있다.]

그 앞에 펼쳐진 세 갈래 길.

“어떻게 할까요?”

척 봐도 불길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 애초에 이런 형태의 글씨를 발견하고 나서 곧장 듀라한과 조우했기에 일행들도 상당히 경계하는 눈치였다.

‘거울, 그리고 세 갈래 길이라…. 혹시 그건가?’

생각을 끝마친 내가 입을 열었다.

“상황을 보니 어쩔 수 없이 찢어져야 할 거 같습니다. 제가 왼쪽으로 가겠습니다. 이든과 샬럿이 중앙, 프레이가 오른쪽으로 가는 걸로 하죠.”

이든이 활기차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프레이 또한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듀라한과 조우했던 기억으로 인해 상당히 긴장한 듯 했다.

샬럿은 뚱한 얼굴로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나는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이미 아시겠지만. 이곳에서 조우하는 모든 것들은 이사장님이 마법으로 만든 환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정신줄만 단단히 붙잡고 있으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을 겁니다. 또한 안에서 어떤 마물이나 시련을 겪게 되더라도 동요하지 마십쇼. 이 숲은 저희를 테스트하기 위해 준비된 공간입니다. 저희가 풀지 못할 문제는 없습니다. 그럼 저 먼저 가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뒤 망설임 없이 왼쪽 갈래 길로 들어섰다.

조금 더 걸어가자 길 한복판에 뜬금없이 거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 내 예상이 맞다면 이곳은….'

거울에 비친 ‘나’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거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자일 지그하르트. 아니, 아벨 크로이인가? 그것도 아니면….”

거울의 숲.

“김■■?”

바로 도플갱어를 테마로 한 시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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