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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23화 (23/180)

23화

주변에 있는 학생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너 S 클래스라고 들어봤어?”

“S 클래스? 아니, 처음 들어보는데? 우리 학교에 그런 클래스가 있었나?”

“보니까 이번에 신설된 거 같던데? 샬럿이랑 프레이가 그 반에 배치됐대!”

“뭐? 그 둘이? 둘 다 신입생들 중에서도 수석을 다투는 인물들이잖아. 설마 그 S 클래스가 A 클래스보다 높은 거야?”

“아니야.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거든? 근데 이번 입학시험의 수석은 룬델 가의 사딘 공자님이란 말이야. 사딘 공자님은 당연하게도 A 클래스이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S 클래스는….”

“뭐? 낙제생? 그 둘이 이번 시험에서 떨어질 뻔 했다고?”

“야! 쉿! 쉿! 조용히 좀 해. 다른 사람들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니까 확실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소문이라고, 소문! 나도 다른 애들이 하는 얘기 엿들은 거야.”

“아무리 그래도 충격적이네…. 갑자기 새로운 클래스라니….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충격이 큰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눈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몇 번이고 명단을 들여다봤다.

그래도 바뀌는 건 없었지만.

분명 내가 만든 설정 속 살로몬 아카데미에는 S 클래스라는 것이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그 말은 이번 입학시험이 끝난 뒤에 급하게 만들어졌다는 뜻이었다.

‘대체 왜?’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살로몬 아카데미의 이사장인 아슈타르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아카데미 창립 이후 단 한 번도 건들이지 않았던 반 시스템이다.

하필 이 시기에, 대체 무슨 이유로 이 시스템을 개편한단 말인가.

‘마지막 시험 때문인가…?’

화르르륵!

샬럿의 주변에서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이 또라이가 폭발할 것이라는 것을 예견했는지 이미 주변에 학생들은 그녀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뒤였다.

“용납 못해! 난 절대 용납 못한다고! 감히, 감히, 감히 이 샬럿 메이지님을! 어떻게 A 클래스도 아닌 듣도 보도 못한 반에 배정할 수가 있어! 죽여 버릴 거야! 다 부숴 버릴 거야!”

“샬럿……. 진정 하세요….”

“으아아아아아악!!!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해! 내가 왜!!”

“가문의 검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아버님을 뵐 면목이 없군요…. 죄송합니다… 아버지….”

조금 지랄 맞기는 했지만, 샬럿과 프레이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애초에 살로몬 아카데미에서 A 클래스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다른 아카데미의 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성적순으로 반을 나누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 그중에서도 A 클래스는 일종의 등용문이라 볼 수 있었다.

현 제국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관리들 중, 절반 이상이 살로몬 아카데미 그 중에서도 A 클래스 출신인 것만 봐도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즉, A 클래스를 비유해서 표현하자면 용이 되기 직전에 이무기들이 모여 승천을 준비하는 곳 쯤 되겠다.

A 클래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자신이 얼만큼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인재인지를 증명하는 최소한의 자격인 셈.

누구는 고작 반 하나에 그렇게 연연하냐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살로몬 아카데미를 다녀본 이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A 클래스가 지니고 있는 그 상징성은 억만금을 주고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물론, 아예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B 클래스나 C 클래스에서도 졸업 이후에 두각을 드러내는 유망한 인재들이 있을 터.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보다 이무기들이 모인 곳에서 승천할 준비를 하는 것이 극도로 유리한 것은 세 살 배기 꼬맹이도 알고 있다.

‘클래스가 올라갈수록 학교 측에서 지원하는 것도 달라지지.’

철저한 실력주의.

그야말로 약육강식(弱肉强食)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이든 그 놈이라면 뭐라도 알고 있을 거 같은데….’

명단에서 그놈의 이름 또한 확인했다. 허나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이든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이 음흉한 새끼. 또 어디 숨어서 딴 짓거리 하고 있는 거 아냐?’

고민해봤자 내 머리만 아팠다. 이곳에 더 있어봤자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았다.

우선은 숙소로 돌아가자.

앞으로의 계획과 생각도 정리해야 하고, 뭣보다 이번 시험에서 개고생을 하며 얻은 맨드레이크를 복용해야 한다.

목숨까지 걸어가며 구해온 건데, 최상의 컨디션으로 흡수해야 되지 않겠는가.

오죽하면 눈을 뜨자마자 품에 있는 맨드레이크부터 확인할 정도였다.

요플레 뚜껑 핥아 먹듯, 하나도 남김없이 뿌리까지 싹싹 먹어 치울 것이다.

‘제대로 흡수만 한다면 조루 탈출, 행복시작이다.’

무려 100년이 넘은 맨드레이크다. 더 이상 강화마법 몇 번 쓴 걸로 헥헥 거릴 필요가 없었다.

예전 아벨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다양한 방식의 강화 마법도 사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반 배치 명단을 보고 잡쳤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줄지어 서 있는 노점상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섰다.

인적이 드물고, 좁은 길이었지만 내가 머무는 숙소까지 가는 루트 중 가장 빠른 길이었기에 가끔씩 애용하는 길이었다.

단점은 절반 정도의 확률로 불량배들과 조우한다는 점이었다.

평소에는 직접적으로 시비를 걸지 않는 이상 대부분 무시하고 지나쳤지만, 지금 같이 통로 전체를 막아선 경우에는 불가피하게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게, 성인 남자 두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통로를 거대한 덩치의 불량배 서넛이 여자 한 명을 둘러싼 채 막고 있는데.

그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며 ‘잠시만 지나가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가씨. 우리 정도면 괜찮지 않아? 왜 이렇게 솔직하지 못해. 너도 좋으면서 왜 그리 튕기는 거야.”

“제, 제발 이, 이러지 마세요….”

“아이고, 이거 사람 하나 병신 만들기 참 쉽다니까? 내가 뭐 어려운 부탁했어? 그냥 술이나 좀 마시면서 얘기만 좀 하다 가자는데 왜 이렇게 유난을 떨어?”

“언니. 적당히 한, 두 번 튕겨야 매력 있지. 여러 번 튕기면 재미없어. 좋게 말할 때 가자, 응?”

불량배 한 놈과 눈이 마주쳤다. 반들반들한 머리가 무척 인상적인 사내였다.

머리에서 반사된 태양빛이 눈을 찔러댔다.

“어이, 거기. 뭐야? 구경났어?

치사하게 태양권을 쓰다니 상도덕이 없는 놈이었다.

“이거 놓아주세요. 저 빨리 집에 가야 돼요….”

‘어….? 저 여자는…….’

묘하게 낯이 익었다.

아카데미 제복을 입은 여학생. 살로몬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인 듯 했다.

앞머리가 눈을 가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으나 터질 듯한 교복 와이셔츠를 보니 불량배들이 왜 집착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굳이 도와줄 필요는 없겠지.’

겉으로는 연약한 여학생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녀 또한 살로몬 아카데미의 학생이다. 뒷골목에서 돈이나 뜯는 불량배들과는 급 자체가 달랐다.

뒤돌아서 골목길을 나가려는 순간,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마기(魔氣)?’

흑마술사들이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질적인 느낌이 풍겼지만, 그것은 확실히 마기였다.

‘설마!’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지면을 박차고 나아가 여학생의 손을 붙잡고 있던 불량배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커헉!”

불량배는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날아가 벽에 쳐 박혔다.

최대한 힘 조절을 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실수했더라면 아마 그대로 즉사했을 것이다.

주변에 있던 불량배들이 나를 둘러쌌다.

“호민 형님! 괘, 괜찮으십니까!”

“네, 네놈은 뭐냐!”

방금 그 광경을 보고도 진부한 대사를 내뱉는 것을 보니 학습능력이 없는 것은 불량배들의 종특인가 보다.

“자, 지금부터 셋을 세겠습니다. 셋을 셀 동안 제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분들은 저기, 벽에 쳐박혀서 침 질질 흘리시는 분 보이시죠? 저분처럼 될 겁니다. 아시겠죠?”

이제야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 불량배들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 어린놈의 새끼가 장난하나! 우리가 누군지 알아?”

“우, 우리로 말할 거 같으면 루살렘 뒷골목의 지배자로 그 유명한 뱀의 그….”

나는 대답 대신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하~나.”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는 불량배들. 그래도 의리는 있는지 기절한 자기 동료를 챙기는 성의까지 보였다.

“네, 네놈 얼굴 기억했다! 오늘은 운이 좋아 무사한 줄 알아라. 우리 조직의 형님만 계셨더라면 너희 둘 모두 이 자리에서 고깃덩어리가 됐을 것이다!”

“둘.”

“두, 두고 봐! 곧 후회하게 될 것이야. 우리들 뱀의 그림자가 반드시,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오, 오늘만 특별히 목숨을 살려주마!”

마지막 한 마디를 끝으로 불량배들은 다급히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멍청한 새끼들.

아마 영영 모를 것이다. 여기서 진짜 고깃덩어리가 될 뻔 한 게 본인들이었다는 사실을.

만약 내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목숨을 구걸할 틈도 없이 잘게 조각나 바닥을 나뒹굴었겠지.

‘내가 니들 생명의 은인이다. 이 새끼들아.’

그리고 마침 지나가던 목격자인 나조차 죽이려 들었을 게 분명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여학생을 바라봤다.

‘아무리 마신의 가호를 받았다지만 제국 한복판에서 힘을 쓰려고 하다니 제정신인가? 겁이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그녀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라고는 1도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말투였다.

하긴, 1초만 늦었어도 본인이 싹 다 죽여 버리려고 했을 텐데 내가 선수를 쳤으니 손이 근질근질 할 것이다.

안 그래도 인간에 대한 혐오로 가득 찬 인물이니 더더욱 그럴 테지.

“입고 계신 옷을 보니 저희 학교 학생이신 것 같아 차마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입학하게 된 자일 지그하르트라고 합니다. 혹시 몇 학년이신가요?”

“…1학년입니다.”

어? 방금 분명 표정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던 거 같은데? 이거 경고인가? 더 이상 말을 걸면 죽여 버릴 거니까 귀찮게 굴지 말고 갈 길 가라는 암묵적 경고?

그러고 보니 손이 미세하게 움찔 거리는 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불길한 전조들을 애써 모른 척 한 채 활짝 웃었다.

“정말요? 그쪽도 신입생이셨군요. 이런데서 동급생을 만나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클래스에 배치되셨는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어떻게 얻은 인연인데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정체는….

‘밤의 총애를 받는 자, 아리아 발렌타인.’

마왕의 하나 뿐인 딸이자, 훗날 소천마 천악천과 함께 이 세계를 멸망시킬 인물 중 한 명.

동료가 될 수 없다면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두 번째 인물.

내가 갖은 고생을 하며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유이기도 했다.

이 소설의 설정 상 이 세계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만한 인물들은 모두 아카데미에 모이게 되니까.

“…S 클래스입니다.”

나는 굉장히 기쁘다는 듯 그녀의 손을 덥석 잡으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설마, 아리아 발렌타인도 S 클래스에 배정됐을 줄은 몰랐다.

“이번에 새로 만들어졌다는 반이죠? 저도 S 클래스입니다. 우연히 마주친 동급생이 같은 반이라니 정말 기쁘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예….”

그녀의 시선이 내 손으로 향했다. 나는 황급히 손을 놓으며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여전히 경계하는 눈치였지만 같은 클래스에 동급생인 것을 알아서 그런지 살의는 없어 보였다.

그때였다.

주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까 그 불량배 놈들인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복면을 쓴 이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불량배 따위가 아니었다.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어림잡아도 열 명 이상.

지붕을 포함해 사방이 포위된 상황이었다.

이 정도의 인원이 접근하는 동안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살수들이다.’

아리아를 만나는 게 메인 이벤트인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진짜는 여기 있었다.

가장 선두에 푸른 복면을 쓴 남성이 내게 물었다.

“…네가 자일 지그하르트인가?”

아무래도 목표는 내가 확실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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