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30화 (30/180)

30화

조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샬럿이 영창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나의 주인이여. 내 앞을 가로막는 적을 벌할 힘을 내려주소서.”

고속영창(高速詠唱).

마법에 무지한 이들은 이것을 보고 그저 빠르게 말하는 게 아니냐고 질문할 수 있다.

허나 고속영창이란 단순히 빠르게 말을 내뱉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머릿속에 구현된 이미지를 극대화하여 술식을 구체화하고 마나를 가속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괜히 어줍지 않게 따라 하려다가는 위력은 위력대로, 속도는 속도대로 애매한 상태가 돼버린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두 마리 토끼를 전부 놓치게 되는 것.

신입생들 중에서도 고속영창이 가능한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샬럿이 쥐고 있는 연습용 완드에서 붉게 물든 마나가 피어올랐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커다란 굉음과 함께 빛줄기가 반짝였다.

“벼락의 춤!”

쿠루룽!

하늘이 비명을 내질렀다. 구름 사이를 뚫고서 한 줄기 벼락이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비가 내리듯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벼락.

‘분명 4서클의 번개 마법인데 위력은 5서클 이상이군.’

워낙 많은 마력을 지니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저 정도 수준의 마법은 시전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마나를 소모한다. 저렇게 마구잡이로 뿌려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선천적으로 엄청난 양의 마력을 지니고 있는 샬럿이었기에 가능한 기행인 셈.

“죽어! 죽어! 죽어!”

벼락이 연무장에 내려칠 때마다, 포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바닥이 패이고 파편이 솟구쳤다.

위력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었으나….

정작 맞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귀가 아프니 꽥꽥 대지 말거라.”

흡사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연무장을 헤집는 실프.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그저 가볍게 발을 통통 튕기는 것 뿐 인데, 축지법이라도 쓴 것 마냥 시야에서 사라졌다. 목표를 잃은 벼락은 애꿎은 연무장만 하염없이 파괴할 뿐.

“이익! 쫄랑쫄랑 피해 다니기는!”

질풍(疾風)의 가호(加護).

라파엘 교의 12신 중 하나인 바람과 풍요의 신 제피엘이 내려준 축복으로서, 이 가호를 지니고 있는 자는 바람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후웅!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실프가 정령술을 발휘한 것이다. 옆에 있던 이든이 감탄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 엘프 님. 정말 대단하네요.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죠? 마치 주변의 공기가 그녀에게만 너그러운 것 같아요!”

어느덧 우리 곁에 온 조교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신의 가호를 지니고 있는 듯 하군요. 거기에 정령술도 다룰 줄 아는 것 같습니다.”

“얘기만 들어봤지 가호를 지니고 있는 사람을 실제로 본 건 처음입니다! 조교님. 저도 정령술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정령친화도가 높다면 아마 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 정령들과 친해져야겠군요!”

어느덧 샬럿에게 도달한 실프가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휘둘렀다.

촤악!

연습용 단검이었기에 날은 서있지 않았으나 타격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오른쪽 팔을 베인 샬럿이 다급히 새로운 주문을 외웠다.

“대지에 깃든 아르타몬의 아이들이여. 마나의 대행자 나 샬….”

허나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실프가 아니었다.

왼쪽 단검으로 옆구리를 벤 뒤, 회전력을 이용해 뒷발을 뻗었다.

“크헉!”

고통스런 신음을 토해낸 샬럿이 바닥을 굴렀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다.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화력을 담당하는 역할이다. 위력 자체는 뛰어나지만 마법을 시전하기까지 적지 않는 시간을 소모한다.

또한 영창을 외우는 동안에는 무방비 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대부분의 마법사가 파티에서 후위를 맡는 이유였다.

물론. 마법과 검을 동시에 사용하는 마검사나 강화술을 이용하여 근접전을 펼치는 나 같은 케이스도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특수한 경우였다.

그렇기에 대인전 경험이 현저히 적은 마법사는 절대 근접 전투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난 샬럿이 표독스런 눈빛으로 실프를 바라봤다.

“바위처럼 단단하게, 파도처럼 거세게, 태산처럼 강대한 힘을.”

그녀의 전신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양쪽 팔을 감싸고 있는 원형태의 붉은 마나 고리.

“초급육체강화(初級肉體强化).”

‘강화마법?’

의외였다. 그녀가 무려 4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는 쿼드러플(Quadruple)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아마 강화 속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강화 속성이 없다고 해서 그 계열의 마법을 못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는데도 오래 걸리고, 위력도 본인 생각만큼 나오지를 않아 대부분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비록 아주 기본적인 강화 마법이었지만 그녀가 이 마법을 익혔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마냥 놀고만 있던 건 아니었나 보군.’

실프는 여유로운 얼굴로 샬럿을 바라봤다.

“인간들 중에 최고의 재능을 지닌 이들이 모인 아카데미라더니 정녕 이게 전부인 것인가…. 실망스럽기 짝이 없군.”

그녀가 마법을 펼치기를 기다릴 정도의 여유.

샬럿과 같이 자존심이 강한 인물들에게는 대놓고 도발하는 것보다도 더욱 모욕적인 행동이었다.

아마 지금쯤 그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극도의 수치심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붉게 물든 그녀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허나 이번에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평소처럼 악을 지르기보다는 침착하게 영창을 외우는 게 아닌가.

“자애로운 어머니. 나의 대지여. 그대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하소서. 지각변동(地殼變動).”

주문이 끝나자 연무장이 거세게 진동했다. 뒤이어 거대한 돌기둥이 실프의 주변으로 솟아올랐다.

이변을 눈치 챈 실프가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전과 같은 양상이었다.

연무장 전체를 아우르는 범위마법이었지만 정작 목표물인 실프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그러나 샬럿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돌기둥이 연무장 전체를 가득 매웠다.

그제야 실프는 깨달았다.

자신이 갇혔다는 사실을.

애초부터 샬럿은 실프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 마법을 쓴 것이 아닌, 그녀를 한 곳에 몰아넣기 위해 사용한 것이었다.

사방은 오로지 돌기둥 뿐.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살렷이 마법을 영창 했다.

“흐름의 구애받지 않는 바람이여, 저 멀리 날아가라. 내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태워라, 불꽃이여. 거세게 타올라라.”

이중영창(二重詠唱).

두 가지 속성을 혼합한 마법.

지팡이에서 피어난 거대한 불꽃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실프의 주변 일대를 가득 매웠다.

폐쇄된 공간에서 피어나는 화염만큼 무서운 것이 또 존재할까.

모두가 살럿의 승리를 점쳤을 때.

요한이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흐아암. 정령술사를 상대로 바람 마법을 쓰는 건 멍청한 짓이에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마 이곳에 있던 모두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주변을 뒤덮은 거대한 화마가 홍해가 갈라지듯 좌우로 나뉘었다.

불길은 여전히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지만, 그의 주변에 마치 보이지 않는 장막이라도 처진 것처럼 넘실거리기만 할 뿐 이었다.

살포시 공중으로 뛰어오른 실프.

“사, 사람이 하늘을 날고 있어요!”

날고 있는 게 아니었다.

허공을 발판 삼아, 걷고 있었다. 바람은 그의 안내자였다. 길잡이를 따라 허공을 거니는 그의 모습은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바람.

그가 바람의 모습을 한 것이 아닌, 바람이 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바람이었다.

온몸의 전율이 흘렀다.

공중에서 내려온 실프가 샬럿의 복부를 걷어찬 뒤 그녀의 목덜미에 단검을 갖다 댔다.

“승패는?”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조교가 뒤늦게 소리쳤다.

“이번 대련의 승리자는 실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샬럿이 그대로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우리 쪽으로 다가온 실프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리를 꼰 뒤 특유의 오만한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말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대련이라 부르기도 아깝군.”

그 말을 들은 프레이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저와 한 번 겨뤄보시겠습니까?”

샬럿과는 오랜 친구 사이인 그녀이기에 이토록 무시하는 발언은 참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대 말인가? 인간들은 학습능력이 떨어지나 보군. 자신감과 오만도 구분 하지 못하니.”

프레이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진심으로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그때, 요한이 입을 열었다.

“사일 지그하르트군…?”

“자일 지그하르트입니다, 교수님.”

저 새끼 분명 일부러 이름을 틀리는 게 분명했다.

“그대가 실프 군과 대련하세요.”

“제가요?”

“예….”

뜬금없는 제안이지만 어쩌겠는가. 교수가 까라면 까야지.

나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교가 실프에게 물었다.

“실프 군은 괜찮습니까?”

“얼마든지. 하등한 인간 따위는 전혀 내게 적수가 되지 못한다.”

이쯤 되니 나도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저 레이시스트 놈을 어떻게 족쳐야 속이 시원할까.

나는 실프와 함께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가 나를 힐끔 보더니 물었다.

“어이, 인간 왜 무기를 고르지 않지?”

“필요 없거든.”

실프가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하하하! 장로께서 왜 나를 이곳에 보냈는지 알 것 같군. 인간들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가르쳐주기 위함이었어. 하하하하!”

맘껏 웃어둬라.

자리에 선 나는 천천히 몸을 풀었다. 어깨를 돌리자 우드득, 소리가 났다.

곧 저 놈의 몸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날 것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죽이지만 않으면 된댔지?’

내가 웃는 모습을 보았는지 저 멀리서 실프가 소리쳤다.

“인간. 두려우면 지금이라도 기권해라. 나는 자비로운 존재거든.”

나는 대답 대신 가운데 손가락을 높게 치켜 올렸다. 어차피 뭔 뜻인지 모를 테지만 내가 기분 좋으면 그만이었다.

“신체강화(身體强化). 삼중첩(三重疊).”

자색 마나로 이루어진 원 형태의 고리가 내 손목을 감쌌다.

‘조금 과한가?’

환골탈태(換骨奪胎)를 한 이후 제대로 몸을 쓰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도통 가늠이 가지를 않았다.

“규칙은 전과 동일합니다. 자, 바로 대련 시작하겠습니다!”

후웅!

또 다시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잠시 눈을 깜빡한 사이, 실프의 신형이 사라졌다.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자리에 서 있었다.

눈을 한 번 감고 뜰 때마다 실프의 잔상이 스쳐지나갔다.

질풍(疾風)의 가호(加護)를 지니고 있는 놈이니만큼 속도로 따라가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강화 마법을 극한으로 퍼부으면 가능하겠지만….’

굳이 그런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저놈과 나의 상성은 최악(最惡)이다.

“하하!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겁을 먹어서 꼼작도 못하는 구나! 자비를 베풀어 단번에 끝내주겠다!”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내가 미처 반응을 하기도 전에 실프의 단검이 등을 찔렀다.

가히 질풍 같은 속도였다.

“하하! 어떠냐! 이게 바로 긍지 높은 대산림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인지 실프는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바라봤다.

목재로 만들어진 연습용 단검은 원본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나있었다.

“끝이냐?”

나는 그대로 실프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아무리 빠르더라도 나한테 잡히면 꼼작도 못한다.

그대로 들어 올려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쿵!

힘 조절에 실패한 탓인지, 연무장 전체가 울리며 바닥이 움푹 패였다.

‘너무 셌나?’

연무장에 박힌 실프를 살펴보니 아직까지 의식은 남아있는 듯했다.

승리 조건은 기권 혹은 심판 판단 하에 경기를 속행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

심판은 아직 내 승리를 말하지 않았다.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 주먹을 들자 실프가 간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기권! 기권! 기권이다! 기권이라고! 그거 내려치면 이 몸은 죽는다! 틀림없이 죽는단 말이다!”

나는 아쉬운 얼굴로 주먹을 내렸다.

저 멀리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지금껏 죽은 동태 눈깔을 하고 있던 요한이 그 어느 때보다도 생기가 넘치는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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