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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31화 (31/180)

31화

‘뭐야, 저 새끼 왜 저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요한.

아까는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지껄여대더니 지금은 갖고 싶은 장난감을 얻은 어린 아이처럼 매우 신난 목소리였다. 확연히 달라진 태도에 어안이 벙벙했다.

“방금 전 대련에서 사용한 마법은 기본적인 육체 강화 마법. 여러 번 중첩해서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걸보니 숙련도가 상당히 높은 듯 하군요. 강화 마법에 대한 응용력과 이해도, 마력 운용 능력 또한 뛰어납니다. 허나 몸을 움직이는 것을 보면 따로 검술이나 무투술을 배운 것 같진 않단 생각이 드는 군요. 정립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움직임이었으나 본인만의 노하우가 잘 녹아든 형태였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요한이 말을 이어갔다.

“이 간극을 매꾸는 것은…. 경험. 그렇군요. 경험입니다. 무수히 많은 실전을 통해 얻은 경험이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전투 방식을 만든 것인가요? 그대 분명 마법사 지망이라고 했지요?”

“그, 그렇습니다.”

또 다시 내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요한.

“확실히 마법사치고는 상당히 발달된 신체입니다. 아니, 기사 지망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군요. 어떻게 이런 신체를 얻을 수 있게 된 거죠? 평소에 따로 신체를 단련이라도 하는 걸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지그하르트의 혈족에게만 특별히 발현하는 무언가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군요.”

“……저.”

“혈계전승(血界傳承)이라면 이해가 갑니다. 지그하르트의 피를 이은 이들이 선천적으로 육체적 축복을 받는다던가, 아직 알려지지 않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틀렸습니다. 그는 충분히 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인물입니다. 이래서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 괴물 같은 여자가 괜히 관심을 가질 리가 없죠.”

빠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요한이 내게 얼굴을 들이대며 눈을 빛냈다.

“자일 지그하르트. 어떻게 그런 육체를 얻게 된 거죠? 평소에 따로 신체 단련을 하나요? 그게 아니라면 지그하르트 가문 대대로 그러한 육체를 타고 나는 건가요? 가호(加護)나 저주(詛呪)같은 특수한 이능을 가지고 있나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특별한 비밀이라도 가지고 계신 겁니까?”

도저히 적응이 안 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대놓고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막말을 내뱉던 이가 지금은 엄청난 관심을 표출하고 있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저 교수님. 그 일단 얼굴 좀 떨어트려 주시면 안될까요?”

허나 내 말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이제는 아예 내 팔을 통째로 주무르며 근육이나 골격에 관련된 애기를 늘어트리기 시작했다.

“몸을 사용하기에 최적화된 근육과 형태. 뼈의 형태마저도 흠 잡을 데가 없군요. 마치 투쟁하기 위해 진화한 신종족을 보는 것 같습니다. 마법사를 지망하는 이가 어째서 이 정도로 강인한 신체를 얻게 된 것일까요. 그러고 보니 원천속성이 강화라고 했었지요…. 오히려 변변찮은 원소 속성 하나 지니지 못하고 태어났기에 더욱 노력할 수 있었던 걸까요…? 아…!”

불현 듯 과거에 일이 떠올랐다.

때는 바야흐로, 몸을 만들겠다는 일념하나로 처음 헬스장에 등록했을 때 이야기다.

돈에 여유가 없던 시절이라 동네에서 가장 싼 헬스장에 등록했었는데….

관장부터 관원까지 모두가 헬창, 아니 고인물이었다. 새로 들어온 뉴비를 노리는 고인물들의 눈빛은 흡사 굶주린 포식자들과 같았다.

몸 이곳저곳을 더듬으며, 근육이 어쩌고, 골격이 어쩌고, 원치 않는 보조와 끝이 보이지 않는 운동 루틴, 쉴 새 없이 입에 들어오는 프로틴과 쏟아지는 카톡들.

평소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온갖 고단백 음식들을 공짜로 먹었던 기억이 지금 막 떠올랐다.

요한이 나를 보는 눈빛이 그때 그 고인물 아저씨들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마투사(魔鬪士)를 지망하시는 겁니까?”

전에도 말했듯 마법사는 대부분 후방을 담당한다.

한 방, 한 방이 전황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지만, 기사나 다른 역할군에 비해 형편없는 내구성과 긴 시전시간이라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동료들의 보호가 필수적이었다.

기사의 장점과 마법사의 장점만을 고스란히 흡수한 마검사가 있었지만 애초에 본인이 원한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대부분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경우가 되는 게 다반사였다.

뇌와 심장, 양쪽 모두 서클을 만들어야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

그렇기에 마법사들 중에 쓸만한 원천속성을 지니고 태어나지 못한 이들은 전투 자체에 참여하지 않는 비전투 계열 쪽으로 진로를 틀거나 혹은 파티의 보조를 담당하는 보조 마법사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아벨 크로이가 이와 같은 경우라 볼 수 있다.

‘마투사라. 아직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간혹 앞서 말한 어느 케이스에도 속하지 않는 괴짜들이 있다.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최전방에서 목숨을 걸고 전투를 벌이는 이들.

이들을 마투사(魔鬪士)라고 불렀다.

정식명칭은 아니었다. 애초에 마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아카데미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러한 명칭 또한 처음에는 그저 괴짜들을 조롱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것 뿐 이었다.

상식적으로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이권을 가진 이가 뭣하러 근접 전투를 하겠는가.

그러나 이들은 상식을 깨고, 스스로 증명해내었다.

마법사는 꼭 누군가의 등만 보고 있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의지가, 노력이, 끈기가, 경험이 합쳐져 비로소 만들어낸 것이다.

근접 전투에 특화된 돌연변이 마법사를.

“굳이 따지자면 그런 쪽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뭐, 일단은 강화 마법 말고는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것도 없으니 틀린 얘기도 아니었다.

요한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노력하는 이는 제법 좋아하는 편입니다. 비밀이 많은 사람은 더욱 좋아하죠.”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럼 무기를 고르세요.”

“네?”

나는 물음표가 가득한 얼굴로 요한을 바라봤다.

“무기를 고르세요.”

“왜요?”

요한 또한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빤히 쳐다봤다. 서로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던 요한이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아! 대련입니다.”

“대련이요? 누구랑요?”

“누구긴요. 저랑 당신이지요.”

“교수님이랑 저랑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맑은 눈의 광인마냥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빛내는 요한. 그의 눈에 깃든 이채가 광기(狂氣)로 보이는 것은 순전히 내 착각일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교관도 아니고, 교수가 학생이랑 직접 대련을 한다니.

영광스러운 일인 건 분명하지만 첫 대면부터 노골적으로 실망한 티를 내던 그가 대체 무슨 이유로 내게 이토록 관심을 보이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고작 강화마법 때문에? 힘 조절을 잘못 했나?’

“저는 말이죠. 자일 군. 7살이 되던 해의 ‘마력의 이해 고급편’을 마스터했습니다. 아마 그때가 4서클 정도 되었던가요.”

미친.

7살의 4서클? 거기에 마력의 이해 고급편을 마스터했다고? 마력의 이해 고급편은 현대식으로 비유하자면 대학생들이 배우는 전공서적이다. 그걸 7살짜리 꼬맹이가 이해했다는 얘기였다.

제국 최고의 아케데미인 만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 대부분이 어린 시절부터 손에 꼽히던 천재라는 사실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건 해도 너무 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더니…. 대체 뭐하는 놈이지? 이 정도의 인물을 내가 모른다고?’

만약 저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요한 크루이프는 대륙 역사상에서도 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재능을 지닌 괴물이라는 얘기다.

물론,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어린 시절 두각을 나타낸 천재들이 성인이 되어 벽에 막히는 경우 또한 흔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많아도, 너무 많았어요. 흥미가 없는 것들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지만 한 번 궁금한 것이 생기면 반드시 알아내야만 직성이 풀렸죠. 지금도 그건 변함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심해졌죠.”

그의 눈빛을 바라보니 어쩐지 오한이 들었다.

“그저 가벼운 지도 대련입니다. 어떤 무기로 하시겠습니까?”

“지도대련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저는 이걸로 하죠.”

나는 구석에 놓여있던 연습용 창을 골랐다. 최근 들어 창을 많이 사용한 탓에 가장 손에 익은 무기였다.

비록, 제대로 된 창술 한 번 배워본 적이 없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창이라…. 많은 무기들 중에 굳이 창을 고른 이유가 있나요?”

“이게 가장 익숙해서요.”

뜻 모를 미소를 지은 요한이 연무장 중앙으로 향했다.

“좋군요.”

뒤쪽에서 이든과 조교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음…. 조교님. 저거 말려야 되는 거 아닌가요?”

“소용없습니다. 저 상태가 된 교수님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으실 겁니다.”

“아무리 지도대련이라지만 그래도 이제 갓 입학한 신입생이 어떻게 교수님을 상대로 대련을…. 저러다 사고라도 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걱정 마십시오. 교수님께서도 다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

중앙에 선 요한이 몸을 풀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 기대됩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고작 팔다리 좀 부러진 거 가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는 않겠죠? 그러면 진짜 실망스러운데…. 아니. 아니 아직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또 쉽게 판단하지 말죠. 그래, 요한. 이건 무척 나쁜 습관이에요. 첫 만남에도 그랬잖습니까. 비록 강화 속성 하나 뿐인 머저리가 전설 속 가문의 후예라는 사실에 실망했지만 색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지요. 직접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확인해보는 겁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인지….”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는 저 놈을 보고 있자니 조교의 말이 틀렸다는 아주 강한 확신이 들었다.

문득, 그의 손가락에 있는 두 개의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뭐지? 아티팩트인가?’

미세한 마력이 느껴지기는 했으나 그 뿐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갑자기 위화감이 들었다.

지금껏 만난 강자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떠한 위압감을 지니고 있었다.

의도한 것이든, 의도한 것이 아니든 모두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마치,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라도 하듯이.

그러나 그에게서는 어떠한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無).

여관 주인을 앞에 두었을 때와 별 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깨달았을 때쯤.

“준비됐습니까, 자일 군?”

“네. 시작하시죠.”

“그걸로 괜찮겠나요? 시간은 충분합니다. 전력으로 임하세요.”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쥐고 있던 창에 강화마법을 부여했다. 가볍기 그지없던 창이 묵직해지는 감각과 동시에 무딘 창날이 섬뜩한 예기(銳氣)를 띄고 있었다.

이어서 내가 직접 개량한 다중강화술식(多重强化術式)을 중첩해서 사용했다.

위력을 극대화 한 탓에 중첩을 하여 사용하는 것만으로 육체에 큰 부담을 주는 마법이었지만,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이룬 덕분에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양팔에 술식이 새겨진 자색빛 마나 고리가 생성되었다. 원 형태의 마나 고리로, 팔찌와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었는데 마법이 중첩될수록 고리 또한 증가했다.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자색 마나. 육안으로 보아도 뚜렷이 보일 정도로 짙은 기운이 주변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신체의 모든 감각이 활성화된다. 지금껏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뎠음을 깨닫는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은 기분. 나를 제외한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를 본 요한이 순수하게 감탄을 표했다.

“오! 설마 본인이 직접 술식을 개량한 것입니까? 육안으로만 본다면 오러 사용자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입니다. 헌데 그렇게 중첩해서 사용하면 육체의 부하가 상당할 텐데 평온해 보이시는군요. 그 몸 덕분입니까?”

“…….”

“뭐. 좋습니다. 시작하도록 하죠. 정확히 3번. 선공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이쯤 되니 자존심이 상하기보다는 순수하게 궁금했다.

흑마술을 사용하지 않은, 지금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그리고 아카데미 교수라는 작자들의 힘은 어느 정도인지.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모이는 곳. 말은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설정 또한 아주 잘 알고 있다. 허나 직접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과연 통할까?’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서 교수의 자리에 오른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피부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때나 들어오시면 됩니…….”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지면을 박차고 나아간 나는 그의 가슴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빨랐는지 내가 딛고 있던 지면이 발모양으로 움푹 패어있었다. 발을 내딛을 때에 반발력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조차도 스스로의 신체 능력에 놀랄 정도였다. 그렇기에 확신했다.

‘할만하다!’

순간, 시야갸 핑 돌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닥에 누워있었다.

요한이 나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한 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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