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그러니까 천재란 족속들은 저걸 밥 먹듯이 한단 말이었다. 술식을 압축하고, 응용하다 못해, 재구축하고, 나아가 창조를 한다.
그 순간. 샬럿의 손아귀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화르륵!
“이제 대충 감이 잡히네.”
…천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훌륭합니다, 샬럿.”
어느덧 요한의 얼굴을 지배한 나태가 사라지고, 흥미로운 기색이 감돌았다.
평소에는 게으르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지만 마법에 대해서 얘기할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순수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샬럿 양. 이쪽으로 나와 보시겠습니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교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한 채 이어질 요한의 말을 기다렸다.
“자. 샬럿 양. 지금 이 상태에서 자일 군이 공격을 하면 받아칠 수 있겠습니까?”
샬럿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물론이죠.”
“좋습니다. 자신감 또한 마법사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죠. 자일 군. 제가 신호를 하면 샬럿 양을 공격해보시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호가 떨어짐과 동시에 튕기듯 발을 뻗으며 샬럿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후웅!
이 모든 동작이 행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초.
“거기까지.”
내 주먹은 샬럿의 복부에 닿기 직전에 멈추었고, 그녀의 손아귀에서는 피어나지 못한 마나의 잔재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분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으신 분 있나요?”
의외로 실프가 손을 들며 답했다.
“익숙하지 않은 형태로 마법을 사용하려다 발동조차 하지 못했군.”
요한이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정답입니다. 이제 두 분 다 자리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나와 샬럿은 자리로 돌아갔다.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니 어지간히 분한 모양이었다.
허나 예전처럼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에 잠긴 채 방금 있었던 상황을 분석하는 듯 했다.
좋은 현상이다. 요한의 수업은 그녀에게 향상심을 일으키고 있었다.
교탁에 선 요한이 양손을 펼치며 설명을 이어갔다.
“방금 보셨다시피 샬럿 양은 마법을 발동하지 못했습니다. 자일 군의 공격이 그녀가 마법을 발동하는 시간을 압도적으로 상회 했기 때문이죠.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걸까요? 술식을 압축하는 과정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그의 왼손에서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저는 원소 계열 마법은 웬만하면 쉽게 다루는 편입니다. 허나….”
약 2초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반대편 손에서 생명의 빛이 피어올랐다.
“잃어버린 생기를 불어넣어라, 재생(再生).”
양손에 각기 다른 마법을 펼친 요한이 옅은 미소를 띠었다.
“치유 계열 마법을 사용하는데 있어서는 영창을 사용하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영창(無詠唱), 압축술식(壓縮術式), 전부 다 좋습니다. 특히 마법을 시전 하는 데 있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마법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지요. 그러나 실전에서 사용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무용지물입니다. 마법을 발동하는데 있어 마나의 흐름이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이처럼 제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
“여러분의 생명을 위협할만한 적들은 결코 여러분이 마법을 완성하기 까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하나에 얽매이면 안 됩니다. 마법사는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탐구해야 합니다. 영창, 무영창, 압축, 간소화, 그 모든 것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다룰 줄 알아야 됩니다. 장점은 극대화시키고, 단점은 보완하십시오.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찾는 겁니다. 그것을 찾아냈다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고민하고, 연구하여 가장 익숙한 형태로 만드십시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뭇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어가는 그의 눈에서 지금껏 그가 겪어왔던 삶이 조금은 엿보이는 듯했다.
대체 그는 어떤 수라장을 해쳐온 것일까.
프레이가 손을 들며 물었다.
“교수님. 마투사로서 기사를 상대하실 때 어떤 점이 가장 까다로우신지 묻고 싶습니다.”
나는 놀란 얼굴로 요한과 프레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요한이 마투사였어…?’
이든 또한 흥미롭다는 얼굴로 말했다.
“오! 그건 저도 궁금합니다. 애초에 아카데미 내에서 이 질문의 대답해주실 수 있는 분은 오로지 교수님 뿐 이지 않습니까?”
요한이 난색을 표했다.
“대체 마투사라는 말을 누가 만들어낸 건지……. 저는 딱히 근접전투를 선호하는 편은 아닙니다. 마법사는 마법사답게 그 이점을 살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저 필요에 따라 전술을 바꾸는 것 뿐 인데 어쩌다 이런 별명이 붙었는지 모르겠네요…. 어찌됐건 프레이 군의 질문에 대답해드리자면 아무래도 신체적 격차를 뽑을 수 있겠네요.”
“신체적 격차 말씀이십니까?”
“네……. 여러분들이 흔히 마투사라 부르는 이들도 결국에는 마법사입니다. 각자의 방식대로 근접전에서의 단점을 보완한다고는 하나 경지에 오른 기사들과 비할 바는 아니지요. 쉽게 말해 태생이 다르다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마법사는 뇌에 서클을 만들어내지만, 기사들은 심장에 서클을 만들어내지 않습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집니다. 경지에 오른 기사들은 신체 자체가 하나의 병기와 다름이 없습니다. 검을 쥐고 있지 않아도, 언제든지 상대의 목을 부러뜨릴 수 있지요. 상성이 좋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이번에는 이든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마검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검사라….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애매하다고 봅니다. 양쪽 모두의 특출난 재능을 지니지 않고서는 대성하기가 힘들지요. 심장과 뇌, 양쪽에 서클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두 배로 노력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어낸다면 아마 양쪽 모두를 압도할 수 있을 테지요.”
이든은 만족스러운 답변을 들었다는 듯 감사 인사를 한 뒤 자리에 앉았다.
“마법사에게 있어 가장 유리한 전장은 대규모 교전입니다. 다수 대 다수로 싸울 때 비로소 마법사는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지요. 반대로 말하면 굳이 상대가 원하는 전장에서 싸워줄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굳이 불리한 환경에서 싸워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대인전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샬럿이 손을 들었다.
“마법의 발현(發現). 술식의 응용과 압축에 관련하여 교수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시전자가 머릿속에서 술식을 완성시키고, 마나를 이용하여 그것을 출력함으로서 물질계의 현상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발현이라 칭하지요. 마법이 생각했던 대로 발현이 되지 않는다면 대부분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술식이 완벽하지 않다거나 혹은 구상해놓은 술식 그대로 출력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설계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다고 보면 됩니다.”
완전히 푹 빠져든 샬럿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응용에 대해서 예를 들어볼까요. 강화 마법의 근간은「강화(强化)」라는 단어 두 글자에 있습니다. 내구성을 강화하든, 신체를 강화하든, 전부 근간이 되는「강화(强化)」라는 술식의 살을 붙여 재구축하는 것입니다.”
그가 마법을 시전하자, 오른손에 푸른빛이 감돌며 원 형태의 고리가 생겨났다.
“신체 일부분을 강화하는 기초적인 마법입니다. 오로지「강화(强化)」두 글자로만 이루어진 술식이지요. 특수한 눈동자를 지닌 이들이라면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떠신가요, 자일 군?”
“아…. 예. 아주 기초적인 강화마법입니다.”
요한이 피식 웃었다.
분명 내 눈동자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알고서 물은 게 틀림없다.
“여기에 살을 붙여 보겠습니다.”
피어오른 마나가 지렁이처럼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기하적인 문자의 형태로 변환됐다. 뒤이어 그의 팔을 감싸고 있던 고리에 스며들었다.
팔찌는 전보다 더욱 크고, 강렬한 빛을 뽐내고 있었다.
“이것은 전신강화마법입니다.「강화(强化)」라는 술식에 살을 붙여 응용한 것이지요. 샬럿. 어떤 변화가 느껴지십니까?”
샬럿의 눈동자의 이채가 깃들었다.
“「강화(强化)」라는 뿌리에「전신(全身)」이라는 술식을 덧씌우셨군요.”
“훌륭합니다. 저희처럼 평범한 이들은 육안으로 상대의 술식을 확인하는 기행을 부릴 수는 없지만 이처럼 마나의 흐름을 통해 유추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죠. 이것을 응용한다면 상대의 마법을 파훼하거나 나아가 무효화 시키는 것 또한 가능합니다. 이것이 무효화의 원리죠.”
스르륵.
그의 팔목에 있던 마나의 고리가 사라졌다. 집중하고 있던 샬럿을 바라본 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원소마법의 응용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3서클 화염마법인 불기둥은 「불」과 「기둥」. 5서클 복합마법인 한기폭풍은 「물」과 「얼음」, 그리고 「바람」으로 이루어져 있죠. 불기둥 같은 경우에 근간이 되는 술식은 「불」, 한기폭풍 같은 경우에는「물」과 「바람」입니다. 물의 하위 계열 속성인 「얼음」은 기본적으로 다룰 줄 알아야 사용할 수 있겠죠.”
그저 강의를 듣는 것 뿐 인데도 머릿속에서 다양한 원소들이 합쳐진 마법들의 형상이 저절로 그려졌다.
어차피 나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론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재미있었다.
마법의 개념 자체를 처음부터 짚어주었기에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사용하는 마법은 대부분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애초에 정말 기초적인 마법을 제외하고는 다룰 수조차 없었고, 강화마법은 처음 사용했을 때부터 이미 손에 익은 것처럼 자유로웠으니 이처럼 이론적인 깨달음을 얻은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사사삭.
정체불명의 소리의 옆을 돌아보니 샬럿이 엄청난 속도로 필기를 하고 있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3초에 한 번씩 들릴 정도였다. 때때로 필기를 멈추고 마법을 시전한 뒤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필기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주변의 잡음 따위는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실로 놀라운 집중력이었다.
아벨 크로이의 지식을 제외하면 사실상 문외한인 나조차도 깨달음을 얻었을 정도니, 그녀는 감히 나 따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기연을 얻었을지 모른다.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한 채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그녀.
요한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 또한 심상치 않았다.
“…….”
슬슬 수업을 마무리하려는 조짐이 보였다. 그때, 의외에 인물이 손을 들었다.
“흑마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리아 발렌타인.
지금껏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던 그녀가 입을 연 것이다. 상당히 예민한 주제였다.
갑작스런 질문에 요한의 미간이 움찔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나오는 특유의 표정이 그의 얼굴을 뒤덮었다.
“흑마술이라…….”
아리아는 미동도 없이 요한을 응시했다. 대체 무엇을 듣고 싶어서 이런 질문을 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법사들에게 흑마술에 대해 질문해봤자 결코 좋은 대답이 돌아올 리 없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요한이 아리아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매력적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