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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50화 (50/180)

50화

상정하지 못한 변수였다.

인질로 삼으려 했던 가주가 죽었다.

시체의 상태로 보았을 때 죽은지는 꽤 된 것 같았다.

대체 왜…?

계획이 엉망이 됐다. 내 머릿속에 온갖 의문들이 소용돌이쳤다.

비릿한 미소가 새어나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몰이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였지만 사실은 몰이를 당하고 있던 것이었다.

‘처음부터 사냥감은 우리였다는 건가….’

로만이 자세를 잡으며 소리쳤다.

“포위된 것 같습니다.”

벽에 붙은 라다무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거 완전 독 안에 든 쥐로구만. 이 또한 계획의 일부분인가?”

“…아닙니다.”

“허허. 그런 표정 지을 거 없네. 인생이란 게 원래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아닌가. 그래도 크게 걱정은 안 되는 군. 지그하르트는 늘 위기에 강했으니 말이야. 이번에도 보여줄 거라 믿겠네.”

“물론입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끼어들기는 했으나 목표는 변함없다.

하르만 저택을 점거하는 것.

나머지는 문 너머에 있는 저 놈들을 처치한 뒤에 차차 생각하기로 했다.

문 너머로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 지금껏 상대해왔던 살수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최소 조장급.

‘푸른달의 정예들이 전부 몰려온 것인가.’

더 이상 기척을 숨길 마음도 없는 것 같았다. 아마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처리하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정적이 흘렀다.

“…….”

출구이자 입구인 문 하나를 두고 대치한 상태.

어차피 빠져나갈 공간은 없다. 그럴 생각도 없었고.

그저 숨죽인 채 그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쾅!

문이 열림과 동시에 수십 명의 살수들이 들이닥쳤다.

“―!”

대기하고 있던 나는 곧장 흑마술을 발동시켰다.

부패의 사슬. 과거, 로만을 상대할 때 사용했던 흑마술이었다.

촤르르륵!

지면에서 마기를 머금은 사슬이 올라왔다. 허나 선두에 선 살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흔들림 없이 검을 휘둘렀다.

“흑마술사라….”

역수로 쥔 기이한 형태의 반월검.

양손에 쥔 검의 붉은빛 오러가 일렁였다. 붉은 궤적이 허공을 수놓을 때마다 쇠사슬은 힘없이 잘려나갔다.

좌측에서 튀어나온 라다무스가 살수를 향해 거칠게 주먹을 뻗었다. 뒷발을 지지대 삼아 내지른 일격은 흡사 포탄이 터지는 것 같은 파공음(破空音)을 뿜어냈다.

펑!

그러나 살수는 기묘한 몸놀림으로 그의 공격을 흘려내며 거리를 벌렸다. 발에 스프링이라도 달린 것인지 용수철처럼 튕겨져 나가 덤블링을 하는 모습은 신기에 가까웠다.

실로 놀라운 탄력.

“제법 날쌔구만.”

심지어 그 짧은 순간에 반격을 가한 것인지 라다무스의 오른손에서는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위로 보았을 때 아마 그가 대장격인 듯 했다.

“……투귀(鬪鬼) 라다무스. 저들이 풀어준 것인가.”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오랜만이구먼.”

첫 기습이 실패한 까닭에 사방을 포위당했다. 역시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꼈다.

지금껏 만났던 살수들과 다르게 이들은 섣불리 들어오지 않았다. 숫자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으니 아마 이대로 서서히 말려 죽일 셈인 것 같았다.

“다중신체강화(多衆身體强化).”

양팔에 마나로 이루어진 자색 팔찌가 겹겹이 채워졌다.

“삼중첩(三重疊).”

그리고.

“가속(加速).”

대량의 마나가 급격히 빠져나가며 전신에서 폭발적인 힘이 샘솟았다. 호흡을 할 때마다 내 몸을 둘러싸고 있는 자색 기운이 화답하듯 일렁였다. 숨이 멎은 듯 고요하던 대기(大氣)가 급격히 요동치자, 살수들이 움찔했다.

“오러 마스터……!”

비록 오러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착각할 만큼 강대한 기운인 것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었다. 마법을 시전한 나조차 놀라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살수를 향해 손끝을 뻗었다.

격투술이라 부르기에는 형식도 갖추어져 있지 않는 지극히 투박한 동작이었지만 위력은 그와 반비례 했다.

콰직!

내 손끝이 살수의 검을 부순 채 그대로 가슴팍을 꿰뚫었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곧장 후속타를 갈기려 했으나….

사방에서 검이 날아왔다.

하나하나가 모두 오러를 머금고 있었다.

자잘한 상처 따위는 무시한 채 급소를 노리는 공격들만 모조리 쳐냈다. 그리고는 다시 주먹을 뻗었다. 가슴을 박살 낼 생각으로 뻗은 것이었는데 주변에 있던 살수들이 동시에 검을 뻗어 충격을 완화했다. 서로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 괜히 최고의 살수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 했다.

‘까다롭기 그지없군.’

흐름이 끊겼다.

기세를 잡았을 때 몰아붙여 끝을 냈어야 했는데 그들의 조직력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전보다 살수들의 숫자는 줄었지만 그만큼 체력 소모도 상당했다. 로만과 라다무스 또한 살수들의 협공에 꽤나 애를 먹고 있는 듯 했다.

독이 스며든 까닭인지 전보다 몸이 둔해졌다.

마기를 끓어 올려 체내에 독들을 집어삼키고 있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최대한 힘을 비축하려 했으나 이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은 오히려 손해라 판단했다.

그때.

목덜미에서 소름이 돋으며 머릿속 경종이 위기를 경고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살기에 급하게 몸을 틀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사방을 둘러싼 살수들이 뿜어내는 살기로 인해 미처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붉은 오러를 머금은 반월검이 맹렬한 기세로 쇄도했다. 유려한 궤적을 그리며 나아간 검은 이미 내 범위 안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목표는 심장.

이 짧은 거리에서 저 정도 수준의 오러 블레이드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 뿐 이었다.

팔 하나를 내주고 심장을 보호할 수 있다면 최악은 면할 수 있었다.

―서걱!

팔이 잘려나갔다.

“……주인. 괜찮으십니까.”

바닥에 떨어진 로만의 팔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찰나의 순간, 로만이 몸을 던져 보호한 것이다.

살수 대장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거리를 벌렸다.

“쯧. 사역마인가….”

로만은 이미 한 번 죽은 몸이었기에 마기만 충분하다면 언제든 재생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가 다쳤기 때문이 아닌 내 방심으로 인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까닭이었다. 처음부터 힘을 아끼려 한 내 오판 때문이다.

처음 세웠던 계획은 무너졌고, 새로운 변수는 끊임없이 등장했다.

“…….”

거슬린다. 상당히 거슬린다.

이 기분을 무어라 표현해야 좋을까.

오만하고, 방자했다. 마나가 조금 늘었다고, 신체가 조금 강해졌다고 너무 자신을 과신하고 있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살의가 들끓는다.

심장이 곤두박질치며 피가 역류한다. 머리가 새하얘지며 주변의 소음이 잦아든다.

이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난다. 짜?이 난다.

“주인…?”

나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진득한 마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며 이내 사방으로 뻗어져 나갔다.

“……자만. 오만. 방심. 과신. 교만. 건방.”

고작 이깟 놈들한테 고전하면서 천악천을 상대하겠다고?

웃기지도 않는다.

“…등신이 따로 없군.”

후우웅!

내 등 뒤로 수 십 개의 검은 창이 피어올랐다.

흉흉한 마기가 응축된 창들은 활시위에 걸린 활처럼 당장이라도 쏘아질 기세였다.

불길한 예감을 감지한 살수 대장이 다급히 소리쳤다.

“푸른달 전원. 수호진 구축.”

그의 말 한 마디에 흩어져 있던 살수들이 일사분란하게 모여들었다. 흡사 피라미드의 형태로 대형을 맞춘 그들을 뒤덮는 거대한 마나의 장막.

선두에 위치한 살수대장의 전신에서 붉은 오러가 피어오르며 장막의 색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

“무투기(武鬪技). 호신강기(護身罡氣).”

그들이 선택한 것은 공격이 아닌 방어였다. 지금 이 한 번을 버텨낸다면 승기는 자신들의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살수대장은 그만큼 자신이 펼친 무투기에 자신이 있었다. 무려 7서클 무인들의 마나를 한데모아 구축한 것이었다. 제 아무리 강력한 마법을 때려 붓는다 해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거라 자부했다.

하르만 가문의 역사 이례 이 수호진이 무너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허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펑!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기세로 창이 쏘아졌다. 창과 장막이 격돌하며 충격의 여파로 방 전체가 흔들렸다. 잠시 장막 표면에 균열이 생겼지만 그 뿐이었다. 창은 소멸되었고, 장막은 금세 본래의 형태로 복구되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살수대장은 확신에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3개.

균열이 생겼고, 다시 복구가 되었다.

5개.

전보다 더 심한 균열로 인해 장막이 노출되었지만 다시 복구 되었다.

10개.

금이 간 장막사이로 침투한 창에 의해 살수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 남은 창마저 간발의 차이로 장막을 뚫지 못했다.

끝났다.

비록 희생을 치렀지만 결국 승리는 자신들의 것이었다.

“드디어….”

허나 그의 눈에 비친 것은…….

허공을 가득 채운 수 십 개의 흑창이었다.

콰과광!

무차별적인 폭격.

힘겹게 피해를 복구하던 장막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지면에서 쇠사슬이 솟아올랐고, 살수들은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대장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내던졌다. 팔이 찢기고, 머리통이 꿰뚫리는 와중에도 그들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들의 수장을 지키기 위해 맹목적으로 몸을 던질 뿐이었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본래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시체들. 고기조각이 되어버린 살수들 사이를 비집고 기어 나온 것은 반월검을 사용하던 살수였다.

옆구리가 꿰뚫린 것인지 상처부위를 부여잡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차갑게 식은 부하들을 바라보던 그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본래 살수의 삶이란 것이 한낱 소모품 따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지만 몸을 받쳐가면서까지 자신을 지키던 부하들의 죽음을 모른 척 할 만큼 냉혈한은 아니었다.

“…….”

비록 눈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그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치밀어 오르던 분노가 가라앉으며, 서서히 머리가 맑아졌다.

나는 살수대장에게 다가갔다.

그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주위를 살펴보더니 이내 짓이기듯 내뱉었다.

“괴물자식.”

나는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내 주제를 알았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죽여라.”

바닥을 짚고 있는 그의 손을 짓밟았다. 그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로만. 이 자가 맞나?”

“그렇습니다.”

로만이 복면을 벗자, 살수대장의 눈이 점점 커졌다.

“……9호. 그렇군. 그렇게 된 거였나.”

“오랜만입니다. 대장.”

“그렇다면 네놈이 자일 지그하르트겠군. 전설 속 영웅 가문의 후예가 흑마술사라니! 이것 참 웃긴 일이 아닌가!”

“웃기지? 내가 생각해도 웃겨.”

“……결국 복수 때문이었나? 죽여라. 삶의 미련 따위는 없다.”

허리를 굽힌 나는 그의 머리채를 붙잡고서 지긋이 바라봤다.

“그건 곤란하지. 내가 뭐 때문에 이 개고생을 했는데. 륀달 하르만. 지금부터 네게 선택할 기회를 주마. 하나는 지금 여기서 내 손에 죽은 뒤 사역마가 되는 거야.”

자조적인 미소를 지은 그가 중얼거렸다.

“죽어서까지 꼭두각시의 삶이라니……. 딱 내게 어울리는 최후로군.”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말했다.

“두 번째는 네 형을 짓밟고, 네가 하르만 백작가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일순,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가 나를 가주로 만들어주겠다고? 그 또한 결국 평생 너의 꼭두각시로 살아야 된다는 말이 아닌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말은 똑바로 해야지. 꼭두각시가 아니라 협력이다.”

“…….”

“선택해라. 뢴달 하르만.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 자아도 없는 마물로 살아갈지, 아니면 그토록 꿈꿔왔던 하르만 백작가의 가주가 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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