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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55화 (55/180)

55화

콰아아앙!!

고막을 찢어버릴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충격이 어찌나 큰지 방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거칠게 흔들렸다.

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라도 이 정도의 마기를 정면에서 받았으니 최소한의 상처는 생겼을 것이다.

“……소환계열이 아니었던가.”

그런 내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욱한 먼지 속에서 걸어 나오는 외팔의 검사.

로브가 찢어진 것 외에는 별 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상처도 없다고? 대체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온 거냐. 저 괴물 같은 자식…….’

그러나 준비된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반쪽짜리 진명을 외쳤다.

“팔라딘 일리야(Paladin Ilya)!”

히이이잉!

유령마가 거친 콧김을 뿜어내며, 검을 뽑아든 일리야가 눈앞에 적을 향해 돌진했다.

순백색의 갑옷과 순백색의 대검.

그녀의 몸에서 성스러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블을 상대할 때만큼은 아니었으나 그런 것을 따질 데가 아니었다. 성마술(聖魔術)을 목격한 외팔의 검사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마물이 신성력을 사용한다고…!”

저번과 같은 반응이었다. 바로 전 회차에서 2분이라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녀가 사용하는 성마술 덕분이었다.

“라다무스! 뢴달! 절대 가까이 붙지 마십시오! 원거리에서 대응하셔야 합니다!”

첫 번째에도 두 번째에도 가장 먼저 사망한 것은 저 둘이었다.

저 괴물 같은 놈의 범위 안에 들어가는 순간 바로 즉살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싸움에 그들이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죽게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로만! 살수들과 협공해!”

로만과 살수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어차피 그들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었으니 소모 전력으로 봐야했다.

저 괴믈의 몸에 조금의 상처라도 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들은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다.

신성력을 두른 검과 푸른 오러가 깃든 검들이 사내의 전신을 파고들었다.

육중한 덩치를 지니고 있는 만큼 급소는 더욱 노출되기 쉬운 법.

“쯧. 날파리 마냥 앵앵대는군.”

그러나 그것도 격이 맞을 때의 이야기. 그들의 검은 살갗의 야주 얕은 생채기를 내는 게 고작이었다.

후웅!

사내가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외팔임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대검을 무슨 숏소드를 다루듯 휘둘러대는 광경은 모두의 사기를 떨어트리기에 충분했다.

라다무스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허허. 죽음이 눈앞에 있구만.”

“영감님 눈에는 저게 무엇으로 보이십니까?”

“백색 불꽃과 검은 불꽃이 동시에 일렁이고 있네. 허나 백색 불꽃은 당장이라도 꺼질 것처럼 위태로운 상태고, 검은 불꽃은 시간이 지날수록 덩치를 불리고 있지.”

그 얘기를 들은 나는 다시 한 번 내 생각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라다무스의 눈으로 보았으니 틀림없다. 뢴달이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그하르트여. 이 싸움 승산이 있다고 보는 건가?”

그 또한 이미 체념한 듯한 얼굴이었다. 하긴 저런 무위를 두 눈으로 보았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를 믿고, 절대 나서지 마라.”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로만을 포함한 모든 살수가 소멸했다.

남아있는 것은 일리야 뿐이었다. 유령마는 진즉에 소멸한지 오래고, 그녀 또한 한 쪽 팔이 떨어져 나간 상태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일리야가 검을 뻗었다.

그러나 그녀의 검은 사내의 몸에 닿지 못한 채 허무하게 무너졌다.

툭.

그녀가 쥐고 있던 머리통이 바닥에 떨어졌다.

가슴이 꿰뚫린 그녀는 검은 연기가 되어 소멸했다. 외팔 검사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지금 당장 죽일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 것은 강자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일 것이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는다면 나 같은 미물 따위는 가볍게 죽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성마술을 쓰는 마물을 다루는 흑마술사라……. 그대 이름이 무엇이지?”

저번과 똑같은 질문.

“자일 지그하르트다.”

“……지그하르트라. 흑마술사여. 혹시 우리 연합에 들어올 생각이 없나?”

똑같은 대답.

“X까.”

“안타깝군. 단장님이 좋아하실만한 인재였는데….”

그리고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참격. 막지도 피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일격필살의 검.

그 위력이 얼마나 괴랄한지는 직접 경험해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흘려냈음에도 팔과 다리를 희생해 머리를 보호하는 게 고작이었다.

남은 머리마저도 결국 뎅강, 하고 썰려나갔지만.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죽어라.”

그의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진득한 마기가 검을 뒤덮었다.

그 순간.

“영역선포(領域宣布).”

화아아악!

내 몸에서 뻗어 나간 마기가 순식간에 저택 전체를 뒤덮었다.

아스모데우스의 첫 번째 권능.

무의 경계(境界).

이지를 초월한 마신의 힘이 내게 깃든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과 이마의 깃든 성흔에서 피어나는 작열통으로 인해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허나 지금 이 자리에서 무너지면 다음은 없다는 사실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절삭력강화(切削力强化).”

지이이잉!

검보랏빛 기운을 머금은 창날이 예리한 기운을 발한다. 처음으로 사내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엿보인다.

“마기가 사라졌다……? 이게 무슨…”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온다.

“――!”

틈을 주지 않는다.

각력.

양발에 힘을 주자 터질 듯이 부푼 다리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펑!

마치 포탄처럼 쏘아진 나는 사내의 왼쪽 어깻죽지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사내가 황급히 대검을 들어 막았다. 손목이 저릿저릿하다.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사내가 뒤로 한 발짝 밀려났다. 충돌의 여파로 인해 왼쪽 벽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감히.”

으득, 사내가 입술을 짓이긴다. 그가 쥔 대검에 조그마한 균열이 생겼음을 확인했다.

‘반발력을 이용해 오른쪽으로.’

머릿속에 창을 든 요환의 모습을 떠올린다.

대련을 통해 그가 보여주었던 동작들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허초(虛招와) 살초(殺招)를 섞으며 쉴 새 없이 그를 압박했다. 창이 궤적을 그릴 때마다 피어나는 잔상이 그의 시야를 속인다.

오른쪽 어깨. 쇄골. 옆구리. 가슴. 팔.

시간이 지날수록 사내의 전신에 크고 작은 상처가 늘어갔다. 사내가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이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다시 한 번 창을 뻗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야. 매번 과묵한 모습만 봐서 몰랐는데 너 화도 낼 줄 알았구나? 고작 이 정도로 그렇게 열을 내면 안 되지. 네가 내 머리통을 몇 번 벴는줄 알아?”

사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나 또한 놀란 것은 매한가지였다.

분명 무의 경계가 발동되어 마기를 사용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와 큰 차이가 없이 겨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일반적인 마족은 마나를 다루지 못하지만, 반인반마(半人半魔)인 그는 가능할 터였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을 보면 마나와 관련된 수련을 아예 하지 않았거나 혹은 마족의 피를 너무 짙게 타고난 것이 분명하다.

그 말은 마나도, 오러도 사용하지 않은 순수한 육체능력만으로도 강화마법을 사용한 나와 어느 정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것.

새삼 그가 얼마나 상식 외에 괴물인지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저 놈이 만약 마나까지 다룰 수 있었더라면…….’

그때는 정말 끝없는 루프에 빠져 이블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건 가정일 뿐.

지금 승기를 잡은 것은 내 쪽이다.

후우웅!

무게를 실은 횡베기.

본래라면 무작정 피하려고 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챙!

두 무기가 격돌하며,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잠깐의 힘겨루기 끝에 그의 몸이 서서히 뒤로 밀렸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회전을 하며 뒷발로 그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쇳덩이를 걷어차는 듯한 감각.

다행히 고통스러운 것은 나 뿐 만이 아니었나 보다.

갈비뼈를 부여잡은 그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거리를 벌렸다.

나는 곧장 따라 붙었고, 그는 그것을 예상했다는 듯 빠른 속도로 검을 내려찍었다.

‘처음부터 이것을 노리고 있었나.’

하지만 지금의 내 눈에 그의 일격은 그저 영화를 느리게 재생한 것처럼 보였다.

가볍게 몸을 틀어 피한 뒤, 비어있는 반대쪽 팔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서걱!

‘살짝 얕았나.’

옆구리의 살점이 떨어지며, 벌어진 틈새 사이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한쪽 팔이 없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수비보다 공격에 과하게 집착하는 습관이 있었다.

본래라면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그 모든 단점을 상회했을 터이지만 마기가 봉인 당한 지금은 도리어 빈틈투성이였다.

“이 내가 고작 이깟 놈한테…!”

그래. 억울하겠지.

권능이 없었다면 네놈 발끝도 못 따라갔을 테니까.

그런데 어쩌냐.

그 권능이 결국 힘인 것을.

세상은 원래 불합리한 법이잖아?

“용납할 수 없다!”

사내는 괴성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근력이길래 저 거대한 검을 한손으로 저렇게 휘두르는 걸까.

마족의 핏줄 때문인가…?

잠깐. 근데 검에서 은은하게 피어나는 저건 분명….

마나였다.

하필 이 타이밍에 마나를 각성한다고…?

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검을 휘두를수록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제는 그의 검에서 미약하게나마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한 평생 검을 다룬 까닭인지 무의식적으로 마나를 운용하는 듯 했다.

서걱!

예리하게 날이 선 칼끝에 머리칼이 베어져 나갔다.

조금만 더 피하는 게 늦었다면 베어나가는 것은 머리카락이 아닌, 내 머리였을 것이다.

연달아 쏟아지는 검격.

얼핏 막무가내로 보일지 몰라도 동작 하나하나의 그간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었다.

정확히 사선을 그리며 쇄도하는 대검. 숨을 들이 마신 채 틈을 노리고 있던 나는 타이밍에 맞춰 창을 뻗었다.

‘―지금!’

예기를 머금은 창날이 사선으로 하강하는 대검의 갈라진 틈을 정확히 꿰뚫었다.

빠직.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가 쥐고 있던 대검이 가루가 되어 으스러졌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검이……?”

이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향해 있는 힘껏 창을 내려찍었다.

“……부서.”

수직으로 낙하한 창날이 그의 전신을 반으로 갈랐다.

털썩.

두 동강이 난 사내의 몸이 양 옆으로 주저앉았다.

“하아…. 하아…. 괴물 같은 자식. 어때? 썰려보니 아프지?”

그가 나를 가로로 갈랐으니, 나는 세로로 갈라주었을 뿐이다.

힘이 빠진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뒤를 돌아보니, 마치 괴물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의 뢴달이 서 있었다.

그가 나에게 붉은 물약을 건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괘, 괜찮나?”

나는 물약을 꿀꺽꿀꺽 마신 뒤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두 번 죽었다.”

그가 영문 모를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듯 했다.

“흑마술에 오러까지……. 나 따위가 감히 상대할 인간이 아니었군.”

라다무스가 내게 다가와 손을 붙잡았다.

“고맙네. 벌써 두 번이나 도움을 받는 군. 처음일세. 내가 본 미래를 바꾼 사람은.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겐가?”

그러고 보니 그가 어떤 미래를 보았을까.

뒤늦게 궁금해졌다.

“어떤 미래를 보셨습니까?”

“처음에는 팔다리가 잘린 채 눈을 감은 모습이었다네. 허나 도중에 미래가 바뀌었네. 첫 번째는 양쪽 팔이 잘린 자네가 쓰러져 있었고, 두 번째는 양쪽 다리가 잘린 자네가 쓰러져 있었지. 세 번째는 한쪽 팔, 네 번째는 한 쪽 다리…….”

무의 경계를 발동하는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죽음은 확정이었군.

“…그리고 지금. 자리에 주저앉은 자네가 보였다네.”

“다행이군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머리가 핑 돌며 온몸에 힘이 빠졌다.

라다무스가 어깨를 내주며 나를 부축했다.

“무리하지 말게나.”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당연한 것이지.”

‘……당분간 마기는 사용하지 말아야겠군.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어야겠어.’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드러눕고 싶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내가 이 개고생을 하면서까지 저택에 들어선 진짜 이유.

이 모든 사태의 원흉.

기레스 하르만.

결국에는 그를 붙잡아야만 모든 게…….

그때, 입구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외팔 형씨! 지금쯤이면 전부 끝났을…….”

입구 앞에 망부석처럼 서 있는 붉은 머리칼의 사내.

뒤늦게 방안에 풍경을 확인한 그의 눈동자가 가파르게 떨렸다.

“…테. 이, 이게 뭐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불안감에 이리저리 날뛰던 눈동자가 내게로 향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드디어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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