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어째서인지 나도 모르게 변명을 하게 되는 상황.
“프, 프레이? 그, 그게 아니라.”
그건 샬럿 또한 마찬가지였다.
“프레이? 뭔가 오해하는 거 같은데 그런 게 아니라 우리는 그저…….”
프레이가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만면에 장착한 채 우리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 광경을 보는데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순간적으로 그녀가 쥐고 있는 솜사탕이 날카로운 검으로 보였다.
아니. 생각해보면 내가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움츠러들고 있는 걸까.
“두 분이서 같이 축제를 즐기고 계셨나 봐요~?”
그녀의 말투는 상냥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끝부분의 어조가 높게 올라가는 것이 묘하게 소름이 끼쳤다.
“프레이! 그게 아니야! 내가 왜 이런 재수 없는 놈이랑 축제를 즐겨! 안 그래?”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뭣하러 이런 싸가지 없는 꼬맹이랑 축제를 즐긴다고 생각하는 거지? 오히려 내 쪽에서 기분이 나쁜데.”
“뭐? 싸가지 없는 꼬맹이? 너 진짜 죽을래?”
“얼마든지 덤벼라. 오늘부로 나를 보면 두려움의 침을 질질 흘리게 만들어주지. 파블로프의 개가 되는 것이다. 샬럿.”
“파블로프의 개? 그게 뭔데 이 새끼야! 너 나한테 욕한 거지?”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네 눈에는 전부 욕으로 들리지?”
이 싸가지 없는 년이 자꾸 성질을 긁어대서 나도 모르게 어린 애처럼 굴고 말았다.
우리 둘의 말다툼을 말없이 보고 있던 프레이의 이마에 진한 핏줄이 선명하게 곤두섰다.
“두 분 다 그만하시고 대체 어떻게 된 건지나 설명하시죠? 왜 두 분이 같이 축제를 보고 있는 건가요?”
샬럿이 취임식에 갔던 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들은 프레이의 얼굴이 다시 평소처럼 돌아왔다.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더 기뻐 보이는 듯 했다.
“…그렇게 된 거군요. 테레사 경이 오셨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갈 걸 그랬어요.”
“프레이. 테레사를 좋아합니까?”
“자일! 테레사라뇨. 아무리 자일이라도 제국을 구하신 영웅께 존칭을 쓰지 않는 건 안 됩니다.”
아, 나도 모르게 평소처럼 그녀를 불러버렸다.
“아 미안. 테레사님.”
그제야 프레이가 미소를 지었다.
“잘하셨습니다. 네. 개인적으로 상당히 존경하시는 분입니다. 젊은 나이에 황실 기사단장에 올라, 마왕을 토벌하는 험한 여정에도 자발적으로 참석하시고, 결국 인류를 악으로부터 구해낸 영웅이시니까요!”
상당히 팬인 듯 했으나 내 입장에서는 기분이 미묘했다.
방금 전까지 내가 그녀와 했던 얘기들을 알게 된다면 그녀가 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그래. 영웅이지.”
프레이가 물었다.
“지금부터 다들 어디에 가실 생각이신가요?”
샬럿이 대답했다.
“나는 이제 기숙사로 돌아가서 좀 쉬려고. 오늘 공사가 있거든.”
“공사요?”
“응. 내 기숙사 방 있잖아. 새롭게 단장하려고. 나 도저히 못 살겠어.”
프레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샬럿 답네요.”
“동감이다.”
원래는 우리가 성적을 내면 그에 맞게 기숙사를 업그레이드 해준다는 조건이었지만, 샬럿은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본인의 돈을 쏟아 부어 자신의 방만 리모델링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 자기 돈으로 하면 안 된다는 교칙도 없었고.
뭐가 됐든 본인 마음이지.
“자일은 예정이 있으신가요?”
“아니, 뭐 딱히 없는데…….”
그냥 뭐.
기숙사에 누워서 오랜만에 낮잠이나 자는 정도? 그 외에는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 저희 집에 가시지 않겠어요?”
“……프, 프레이의 저택 말입니까?”
내가 당황하자, 그녀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황급히 덧붙였다.
“그, 그 그러니까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자일에 관한 얘기를 아버님께 몇 번 들려드렸었거든요. 그런데 그 얘기를 들은 아버님께서 자일을 꼭 한 번 직접 뵙고 싶다고 하셔서 마침 축제 기간인지라 시간도 있겠다 싶어 물어보았습니다…. 최근에 저희가 많이 못 보기도 했고….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 들렸다가 같이 축제를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싶어서….”
그 말을 들은 샬럿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프, 프, 프레이! 너의 저택에 이 인간을 초대하겠다고? 칼리고 백작님이 그걸 허락하셨단 말이야?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그, 그럼 나도 갈 거야!”
프레이가 난감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샬럿……. 공사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아버님께서 초대하신 건 자일 공자 뿐 입니다. 물론, 샬럿이 와준다면 아버님도 기뻐하시겠지만 이렇게 갑자기 오신다면 아무래도 조금…….”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듯 샬럿이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다급히 소리쳤다.
“그, 그럼 축제! 끝나고 축제 갈 때 나 불러! 나도 갈 거니까! 나도 꼭 갈 거야! 무조건 가야 되겠으니까 축제는 무조건 불러야 돼! 알겠지? 약속해, 프레이!”
따발총처럼 쏟아지는 그녀의 말에 프레이가 얼빠진 얼굴로 대답했다.
“…야, 약속할 게요.”
“진짜지? 약속이다? 그럼 나 먼저 가볼 테니까. 다녀와서 불러! 꼭 불러야 돼!”
“네.”
그 말을 끝으로 샬럿은 기숙사로 떠났다.
정적이 흘렀다. 프레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잠시 고민하던 내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한 번쯤 그녀의 아버지를 볼 예정이었다.
그게 마침 오늘이었고.
“그렇게 하죠.”
프레이가 반색하며 말했다.
“정말요?”
“네.”
“그럼 바로 가시죠.”
나는 그녀를 따라 아카데미 밖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마차를 타고 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그녀는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칼리고 가문 자체가 현재 재정적으로 상당히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설마 마차를 탈 돈도 없는 건 아니겠지만 워낙 검소한 프레이기에 최대한 돈을 아끼려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조심스레 그녀에게 물어봤더니, 돈도 돈이지만 체력 단련을 위해서라고 한다. 참 한결 같은 여인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녀를 처음 마주친 것은 수도의 길바닥 한가운데였다.
그날 나와 부딪친 그녀는 어딘가로 급히 향하고 있었고, 사죄의 의미로 나에게 금화를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큰돈을 준 것이었다.
‘재능만 만개하면 그 누구보다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을 터인데….’
그 재능을 만개하려면 상당한 시련을 겪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그 시련은 대게 좋지 않은 쪽이었다.
그녀를 흑화하게 만드는 사건들.
“다 왔습니다.”
기사인 프레이와 강화 마법을 전신에 두른 내 신체능력은 그녀의 저택까지 걸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시켜버렸다.
“실례하겠습니다.”
깔끔하고 정갈한 저택.
하르만 백작 가문에 비하면 상당히 작고, 협소했지만 전체적으로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주변에 세워진 기사들의 동상. 그리고 수많은 병장기들. 관리한 흔적이 엿보이는 깔끔한 정원까지.
전부 내 취향이었다. 다만, 확실히 재정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느껴지는 게 귀족의 저택이라면 으레 보일만한 사치품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저택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깔끔해도 너무 깔끔했다. 복도에 장식되어 있는 거라고는 갑옷을 입은 기사 마네킹과 작은 꽃병들 뿐.
‘이건 검소한 걸 넘어섰잖아…? 이 정도로 열악하다고? 그래도 명색이 수많은 소드마스터를 배출해낸 최고의 무가(武家)인데?’
비록 프레이의 아버지인 할튼 칼리고가 쇠약해져 병상에 있다고는 하지만 한 때 제국을 대표하는 소드 마스터였다.
아무리 검소하게 살아왔다 한들 이 정도로 몰락해가고 있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용인들의 숫자도 너무 적다.
집사장으로 보이는 노인을 제외하고는 20명도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상황이 안 좋았다. 이런 상황이니 프레이가 본인의 훈련에 집중할 수가 있을 리 없다.
여기서 만약 프레이의 아버지인 할튼 칼리고가 죽기라도 한 다면 그녀의 흑화는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파멸은 예정된 수순과 다름이 없다.
함께 복도를 걷던 프레이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택이 조금 초라하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깔끔하고 좋은데요.”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낡고, 초라한 저택이지만 제게는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랍니다. 대대로 제국을 수호해온 선조들의 땀과 영혼이 깃들어져 있는 곳이거든요.”
“그렇네요. 아름답군요.”
프레이가 밝게 웃었다. 때마침 창틈 사이로 들어온 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나풀거렸다.
햇살로 인해 더욱 밝게 빛나던 백금발의 머리칼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그렇죠?”
“네. 정말이네요.”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뚫어지게 그녀를 바라보았고, 뒤늦게 민망함을 느낀 그녀가 헛기침을 하며 다시 복도를 걸었다.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없이 계속해서 복도를 걸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누구하나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입이 떨어지기가 않았다.
앞에 서 걷던 프레이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녀가 멈춰선 곳에 위치한 방은 이 저택에서 본 방들 중 가장 화려한 외관을 지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이 가주의 침실인 듯 했다. 프레이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똑똑.
“아버님. 저 프레이입니다. 친우(親友)인 자일 지그하르트 공자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콜록. 콜록.
기침소리가 울려 퍼진 뒤 녹슨 쇳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그래. 들어 오거라.”
문을 연 프레이와 함께 안쪽으로 들어갔다.
침대에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말라비틀어진 중년의 사내가 상체만 일으킨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외관만 보았을 때 느낀 감정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다였다.
‘저 사람이 제국 최강의 소드 마스터였다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한눈에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제국 최강의 소드마스터였다면 분명 엄청난 육체를 지니고 있었을 터인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인을 보는 것 같았다.
근육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존재하지가 않았다. 살가죽만 남은 뼈다귀. 이미 그의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었다.
‘…심각해.’
그저 하루하루 숨만 연명하는 시한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대가 자일 지그…하르트…인가…?”
나는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할튼 경. 제국 최강의 검을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그가 나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악수를 하고 싶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나 또한 두 손을 뻗어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의 두 눈이 내게로 향했다.
비록 몸은 일반인의 범주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야위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이제…는 다 옛…말이네. 지금…은 그저 다 죽어…가는 늙은이일 뿐…이야.”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분명 좋아지실 겁니다.”
그래.
분명 좋아질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당신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
“하하. 말이…라도 고…맙네. 죽기 전에 지그하르…트 가문의 후예…를 다시 볼 수 있게 될 줄…이야. 이거 참… 기쁘구…….”
그 순간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미친 듯이 기침을 하는 할튼 칼리고.
“쿨럭. 쿨럭.”
그가 뱉어낸 핏물로 인해 이불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깜짝 놀란 프레이가 다급히 소리쳤다.
“아버님!”
단순한 기침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얼굴이 급속도로 창백해지고 있었다.
‘발작이다!’
이대로라면 죽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급히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