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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81화 (81/180)

81화

프레이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다급하게 소리쳤다.

“자일!”

나는 일단 그의 몸을 살폈다.

치유 관련 마법을 익힌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몸 상태를 살펴보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천천히 그의 몸 내부를 살펴보던 나는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워낙 극소량이었기에 자칫하면 나조차 눈치 채지 못하고 넘어갈 뻔 했다.

‘이건……. 마기……?’

그의 심장 쪽에 웅크리고 있는 이 기운은 분명 마기였다.

극도로 예민해진 감응력을 지니고 있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심장 부근을 틀어막은 마기가 마나의 순환을 가로 막고 있었다.

이외에도 몸 곳곳에 마기인지 뭔지 모를 것들이 퍼져있었다.

‘할튼 칼리고가 마기를……? 대체 왜……?’

그러나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몸에 깃든 생명의 불꽃은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나는 프레이에게 말했다.

“프레이! 회복술사를…!”

프레이가 엄청난 속도로 방을 빠져나가며 누군가의 이름을 연신 불러댔다.

아마 저택에 들어왔을 때 잠깐 보았던 집사장이었던거 같다.

“잭슨! 잭슨! 아버지가 위독해! 어서 회복술사를 불러! 어서!”

나는 임시방편으로 그의 몸에 있는 마기를 추출하기 시작했다.

마나와 마기가 뒤엉켜 몸의 무리가 갈 수가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심장 부근을 가로 막고 있는 마기만 어떻게든 해결한다면 지금 이 상황은 넘어갈 수 있을 거 같았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의 가슴팍에 손을 댔다. 그러자 짙은 검은색 연기가 피어올라 내 손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도 짙은 마기….’

스르륵.

방금까지 죽을 것처럼 기침을 하던 할튼 칼리고의 얼굴이 점차 평온해졌다.

창백했던 얼굴에 이제는 조금씩 핏기가 돌고 있었다. 허나 기력을 너무 많이 소모한 탓인지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

몸 곳곳에 새겨진 검은 반점.

심장 안쪽에 깃든 미세한 마기.

이제야 슬슬 감이 잡힌다.

그가 왜 죽게 된 것인지.

‘누군가 그의 죽음을 사주했다.’

할튼 칼리고는 과거 제국 최강의 소드마스터라고 불리었던 사내이다.

즉, 그의 심장에 깃든 마나는 그가 사특한 요술을 부리지 않고, 정말 무(武)에만 정진했다는 가정 하에 아주 정순한 기운일 것이다.

일반적인 기사들도 아니고 무려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이라면 당연한 얘기였다.

그럼 여기서 문제.

그토록 정순한 기운을 지닌 소드 마스터의 신체에 강제로 마기를 주입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간단하다.

죽거나 혹은 이블이 되거나.

다른 선택지는 없다.

지금까지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저 그의 강인한 정신력과 육체 덕분이지 사실상 시한부와 다름이 없던 것이다.

마나와 마기는 애초에 상반된 성질을 지니고 있다. 특히 경지에 이른 무인일수록 그것은 더욱 심해진다.

다른 이의 마나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몸의 무리가 갈 터인데, 전혀 다른 성질인 마기를 받아들인다? 그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사실을 눈치 챈 게 바로 나라는 것.

나라면 그의 몸 안에 깃든 마나를 추출해내는 것 정도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마기와 뒤섞인 마나가 어느 정도 소모되겠지만 그것은 감수해야 할 문제.

살 수 있다면 그 정도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허나 문제는 마기 만이 아니다.

몸 곳곳에 퍼진 검은 반점.

그것은 아마 독일 것이다.

‘이 저택 안에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를 죽이려 하고 있다.’

이것이 내 추측이었다.

할튼 칼리고와 같은 강직한 무인이 마신을 섬기며, 마기를 받아들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저렇게 병상에 누워있는 게 아닌 어떤 식으로든 두각을 나타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본인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로 마기를 받아들였다는 얘기가 된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대충 둘러봐도 이 집안에 사용인은 모두 오래된 듯 보였다.

프레이도 그렇고, 할튼 칼리도 그렇고 사용인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의심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흑마술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사용인들 또한 정말 칼리고 백작가의 일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한들 흑마술에 의해 세뇌를 당했다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러한 일을 벌일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려야 할까…….’

아니.

당장은 알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녀의 성격상 쉽게 믿지 못할 테고, 그만큼 충격도 엄청 날 테니까.

지금은 그저 내 추측에 불과하다. 확실한 증거를 잡고, 배후를 밝혀냈을 때 그녀에게 말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로만.”

커튼처럼 내려앉은 그늘 사이로 복면을 쓴 로만이 걸어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내 마기가 강해짐에 따라 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로만.

이제는 푸른달에 있는 살수들 전부가 덤벼도 그를 쉽게 감당하지 못할 거라 자부했다.

“이 저택에서 수상한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으면 전부 내게 보고해라. 확실한 증거를 찾아낼 수 있으면 좋고.”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로만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뒤늦게 회복술사를 데려온 프레이가 다급한 얼굴로 물었다.

“자일! 아, 아버님은! 아버님은 괜찮으신 겁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고비는 넘긴 것 같습니다. 다만 안정이 필요할 것 같으니 회복술사를 빼고는 나가는 게 좋겠군요.”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입니다.”

젊은 회복술사가 치료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잠시 그 광경을 지켜보다 방을 빠져 나왔다. 집사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가주님은… 괜찮으십니까?”

프레이가 말했다.

“당장은 괜찮다고 하십니다.”

“다행이군요.”

나는 노인을 유심히 쳐다봤다.

희끗희끗한 백발. 다부진 체격. 굳이 맨몸을 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무인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가주와 가장 밀접한 인물.’

프레이에게 들은 바로는 이 노인은 저택에서 가장 오래된 사용인이었다.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가주의 곁을 지켜온 충성스러운 집사.

집사장이 되기 전에는 할튼 칼리고와 함께 전장을 누비던 전우였다고 한다.

나는 프레이와 함께 저택을 빠져 나와 함께 정원을 걸었다.

무겁게 흐르는 정적.

방금 전 그런 일이 있었으니 둘 다 쉽게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정원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있다. 나는 그녀의 발걸음 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걸었다.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지금 그녀의 마음을 달래줄 수 없겠지.

“사실 아버님의 병세가 최근 들어 많이 악화됐습니다.”

그녀의 안색은 눈에 띄게 어두웠다.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 하고 있었지만 짙은 절망은 숨길 수가 없었다.

“회복술사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원인 불명의 병이라고 하였습니다. 내부의 마나가 독과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다 하더군요.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인지는 그들도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독에 중독됐을 가능성은 없답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버님이 드시는 음식과 영약은 저희 저택의 사용인들이 엄격하게 관리하니까요. 그들 모두가 오랜 시간 아버님의 곁을 지키신 분들입니다.”

나와 같은 흑마술사가 아닌 이상 그의 심장에 깃든 마기의 정체를 알아볼 수는 없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마나와 마기가 뒤섞여 독의 정체도 알아내지 못한 것인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 검사를 해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물론, 사용인들 중에 그런 이들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 만약에 가능성이 있으니…….”

“저도 그런 가정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버님의 병세가 날이 갈수록 악화되니 최근에는 식기도구를 전부 은으로 바꾸었습니다. 허나 그럼에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고요.”

내가 봤을 때 할튼 칼리고의 몸에는 단순한 마기만 깃든 것이 아니었다.

검은 반점.

하루가 다르게 죽어가는 육체.

전신을 뒤덮은 죽음의 그림자.

‘설마 마기를 주입한 독을 음식 혹은 약에 주입한 것인가!’

독은 종류가 다양하다.

몸에 닿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생명을 앗아가는 극독부터, 천천히 말려 죽이는 독들까지.

색과 냄새, 형태도 전부 제각각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무색무취(無色無臭)에 독도 존재한다.

만약 마기를 주입하여 그 성질을 바꾼 독이 있다면 은 식기와 같은 물건에도 반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독이 주가 아닌, 소량의 마기를 계속해서 주입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

독이 서서히 몸을 갉아먹고, 그의 몸 안에 깃든 마기가 그의 목을 옥죄이는 것.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분명 좋아지실 겁니다.”

발걸음을 멈춘 프레이가 나를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찌 확신하십니까?”

“네?”

“어찌 확신하시냐고 물었습니다! 제국에서 명성이 자자한 회복술사들을 데려와도! 라파엘의 성직자들을 데려와도! 아무도 아버님의 병에 대해서 밝혀내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일이 확신하시냐는 말입니까!”

감정이 격해진 탓인지 울분을 토하듯 쏟아내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

잠깐에 침묵이 흐른 뒤.

그녀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자일에게 화낼 것이 아니었는데… 제가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그만…….”

자조적인 웃음을 내뱉는 그녀.

“하하.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죠. 검술로서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정작 이렇다 할 성과는 내보이지 못했고, 지금껏 대가 없이 저를 도와준 친구에게는 본인의 감정을 주체 못하고 화풀이를 하다니…. 정말 미안합니다….”

“프레이….”

“날이 안 좋았네요. 괜히 쉬는 사람 붙잡고 초대해서 추한 모습들만 보여주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모습 보일 리 없을 겁니다. 다시 한 번 사과하겠습니다. 그러니….”

뺨을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그녀는 고장 난 인형처럼 계속해서 닦아냈지만, 그녀의 눈물샘은 말을 듣지 않았다.

“어……? 갑자기 왜 이러지……?”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눈 밑을 닦아주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서서히 커졌다.

“자일……?”

“그냥 뱉은 소리가 아닙니다.”

“무엇이 말인가요…?”

“아버님의 건강이 좋아질 거라는 말. 그저 프레이를 위로하기 위해 내뱉은 말이 아닙니다. 제가 허투로 말을 내뱉는 것 보셨습니까?”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인지 그녀의 눈에서는 전보다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니요.”

“그렇습니다. 저는 허투루 말을 내뱉지 않습니다. 근거가 없는, 확신이 없는 말을 내뱉는 인간이 아닙니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

“프레이.”

“네.”

“제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 넘긴 뒤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니 저를 믿어주시겠습니까?”

“…네.”

달빛에 비친 백금발의 머리칼은 오늘따라 유독 눈이 부셨다.

그녀가 방금 내게 보여준 눈물로 얼룩진 미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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