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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흑마술사로 살아남기-82화 (82/180)

82화

프레이와 나는 함께 기숙사로 돌아왔다.

원래대로라면 저택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축제를 즐기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은 탓에 내일 함께 축제에 가기로 했다.

물론.

거기에는 샬럿도 포함이었다.

방에 올라오는 길에 힐끔 샬럿의 방을 봤었는데 대체 얼마를 들인 건지 입구부터가 아주 딴판이었다.

사비를 털어 리모델링을 하는 것에 관해 학교 측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우리 기숙사의 사감 선생인 벨라 트레이는 그걸 묵인할 성격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또 뭐라고 할지 기대되는군.’

현재 시간은 새벽 3시 30분.

이 시간에 내가 잠을 자지 않고 밖에 나와 있는 이유는 로만이 가져온 정보 덕분이었다.

저택에 있는 사용인들을 감시한 결과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인물은 2명.

집사장인 잭슨과 하녀인 레일라였다.

로만의 보고에 의하면 잭슨은 꽤 전부터 백작가의 재정관리를 담당했고, 그 돈의 상당수가 외부로 유출된 듯 했다.

또한 그가 연락하는 정체불명의 집단 또한 뒷세계에서 브로커 역할을 하는 이는 이들이라 한다.

‘……의심이 되는 군,’

하녀인 레일라는 잭슨만큼 수상한 점은 없었지만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어 명단에 넣었다고 한다.

우선 이제 사용인 5년차로 저택의 근무하는 이들 중 가장 최근에 들어온 인물이었고, 직접 요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조로서 돕고 있었고, 가주에게 음식 배달을 직접 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집안일을 하는 하녀임에도 불구하고 양손 마디에 굳은살이 박혀있다는 것.

이렇다 할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었으나 로만이 강력히 추천한 만큼 그녀 또한 살펴볼 예정이었다.

“출발하자.”

“예.”

로만과 나는 프레이의 저택으로 향했다.

가장 처음 확인해 볼 것은 집사장인 잭슨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안들로말리우스의 권능을 발동시켜 얼굴을 바꾸었다.

탁탁탁.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빠르게 넘나들며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주변에 풍경이 순식간에 휙휙 지나갔다.

안 그래도 강력해진 육체와 가속 마법 덕택에 이제는 마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내 발로 직접 뛰어가는 것이 더욱 빠를 정도였다.

그렇게 몇 개의 숲과 건물들의 지붕을 지나치자 저 멀리 프레이의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경비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사병들.

그 숫자도 현저히 적었다.

한 때 제국을 대표하는 최강의 검술가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초라한 규모였다.

저택 내부에는 기사들이 몇몇 있겠지만 다른 가문과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 또한 가주인 힐튼 프레이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생긴 일일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들은 기사. 그들이 모시는 주군이 흔들리면, 필연적으로 가문도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삭!

나무 위에서 저택을 살펴보고 있던 나는 나뭇가지를 박차고 단숨에 날아올랐다.

툭.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나무에서부터 저택의 지붕까지 도달한 것이다. 어느새 뒤따라온 로만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 신체 능력 뭔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뭐가.”

“강화 마법을 그런 식을 사용하는 마법사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원래 자기가 잘 하는 것만 계속해서 파야 되는 거야.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강화 마법에 눈독이나 들였겠어? 매일 불이니, 번개니, 얼음이니 하는 원소마법에만 집중하니까 그런 거지. 잘 찾아보면 나 같은 수준의 강화술사들도 몇몇 있을 걸?”

“…있기야 하겠지만 이 정도의 무력을 지닌 이는 없겠죠.”

“시끄럽고. 집사장 방은 어디야?”

“저쪽입니다. 따라오시지요.”

로만이 앞장서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사용인들이 따로 사용하는 별채. 그곳에서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곳이 바로 집사장의 방이었다.

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대신, 창문을 열고 들어가는 걸 택했다.

드르륵.

창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에 있던 집사장 잭슨이 벌떡 일어났다.

“웬 놈들이냐…….”

아닌 밤중에 복면을 뒤집어 쓴 괴한들이 갑작스레 침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상당히 침착한 얼굴이었다.

‘늙어도 무인이라 이건가.’

처음부터 싸움을 할 생각은 없었다.

순식간에 잭슨에게 접근한 로만이 그의 뒷덜미를 향해 수도(手刀)를 날렸다.

나름 전장의 경험이 살아있는 것인지 그 짧은 사이 로만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할 뻔 했으나 이미 준비되어 있던 부패의 사슬이 그의 몸을 속박했다.

퍽.

그대로 기절해버린 잭슨.

나는 그에게 다가가 데이지에게 사용했던 정신계열의 흑마술, ‘망각의 늪’을 발동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문이 보였다. 허나 다른 점이 있다면 자물쇠가 걸려 있지 않았고, 문의 종류 또한 여러 개였다.

나는 가장 끝 쪽에서 두 번째에 위치한 문을 열었다.

덜컥.

풍경이 바뀐다.

그곳에는 젊은 시절의 할튼 칼리고와 집사장인 잭스가 있다.

둘은 피바다가 된 전장에서 서로를 등진 채 검을 휘두르고 있다. 사방은 적으로 둘러 싸여 있고, 아군이라고는 둘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검을 휘두른다.

서로를 믿고, 끝없이 나아간 그들은 마침내 승리한다.

그리고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이후에도 비슷한 광경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잭슨은 할튼 칼리고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지만 3자인 내가 보아도 그 둘은 이미 수많은 유대를 나눈 진정한 친구라는 것이 느껴졌다.

기억이 끝이 났다.

이 문은 아마 과거 자신의 주군과 함께 전장을 누비던 시절의 기억인 것 같았다.

허나 내가 원하는 것은 이 문이 아니었다. 나는 가장 끝 쪽에 위치한 문을 열었다.

이번 배경은 아까 보았던 가주의 침실이었다.

그곳에는 지금 정도는 아니지만 쇠약해진 가주와 그의 옆에 서 있는 집사장의 모습이 보였다.

-잭슨. 내게 남은 날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30년. 아니 40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저보다는 오래 사실 겁니다.

-장난치지 말게나. 나도 내 몸 상태 정도는 알고 있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반드시 가주님의 병을 치료해 낼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고, 오로지 본인의 안위만 생각하십시오.

-참 한결 같군.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네는 끔찍이 나를 챙겨주었지. 그거 아나? 우리가 비록 군주와 신하로 얽혀 있었지만 난 단 한 번도 자네를 부하로 생각해 본 적이 없네. 자네야 말로 내 진정한 친우(親友)였으니까. 그러니까 하는 말이네. 내가 죽으면, 프레이… 그 아이를 부탁하네. 올곧은 듯 보여도 여린 아이야. 쟤 오빠가 죽고 난 이후로 내가 너무 그 아이를 몰아붙였다네. 그랬으면 안 되는 거 였는데…. 쿨럭, 쿨럭.

-가주님. 더 이상 말씀 하지 마십시오. 제가 의원을 데려 오겠습니다.

-쿨럭! 쿨럭! 약속해주게나. 내가 죽어도 그 아이를 반드시 지켜주겠다고.

-약조하겠습니다. 제가 도련님, 아니 아가씨를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고맙네. 그거면 됐어. 그거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네.

-할튼! 왜 자꾸 죽음을 논하는 겐가! 내가 너를 살리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만큼 잭슨은 할튼의 건강이 악화됨에 따라 굉장히 슬퍼하고 있었다.

촤르르르륵!

수 십 가지의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이내 배경이 또 다시 바뀌었다.

인적이 드문 후미진 골목.

그곳에는 잭슨과 복면을 쓴 사내들이 있었다.

잭슨은 사내들에게 거액의 돈 자루를 건네는 듯 했고, 사내들은 잭슨에게 알 수 없는 상징이 새겨져 있는 배지 같은 것을 건넸다.

‘저 돈이 칼리고 가문의 것인가? 대체 어떤 물건을 사려고 가문의 돈을 빼돌리면서까지 저런 놈들과 접촉을 하는 것이지?’

잭슨이 향한 곳은 빈민가의 저택이었다.

복면을 쓴 사내들에게 받은 배지를 건네자 그들이 문을 열어주었고, 잭슨은 안대를 쓴 채 칠흑 같은 복도를 걸었다.

이후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경매장이었다.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을 보아 음지에서 불법으로 거래되는 불법 경매장인 듯했다.

수많은 물건들이 경매장에 나왔고.

이윽고 마지막 물건이 나왔을 때 잭슨이 손을 들었다.

그것은.

나도 익히 알고 있는 물건인 엘릭서였다.

허나 진품을 본 나로서는 그것이 가짜임을 단번에 알아봤다.

‘하아……. 이렇게 된 거였나….’

전 재산을 쏟아 부은 잭슨은 엘릭서를 낙찰 받았고, 그 길로 백작가로 돌아가 할튼 칼리고에게 영약을 먹였지만, 그의 병세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었다.

애초에 그가 산 엘릭서는 가짜였으니까.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잭슨은 절규를 하며, 자신에게 가짜 엘릭서를 팔았던 집단을 찾아갔지만 그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 이후로도 그는 포기 하지 않고, 제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효과가 좋다는 온갖 영약들을 긁어모았다.

칼리고 백작가가 아무리 검소하게 살아왔다 한들 이 정도로 재정이 어려워진 게 납득이 가지 않았는데 그의 기억을 보고 있으니 이제야 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가주를 살리기 위해 가문의 돈을 사용한 것이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단순히 칼리고 가문의 돈만 사용한 것이 아닌 그가 지니고 있는 사비조차 이미 탈탈 턴지 오래였다. 심지어는 돈놀이를 하는 사채업자 놈들에게까지 손을 빌려 돈을 끌어 모았다.

오로지 자신의 오랜 친우이자, 주군이며, 그가 모시는 가문의 가주를 살리기 위해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져 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힐튼 칼리고의 병세는 전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절망한 잭슨의 얼굴을 끝으로 그의 기억은 끝이 났다.

그의 정신세계에서 나온 나는 로만을 보고 말했다.

“잭슨이 아니었다. 조금 미련하기는 했어도 이 자는 할튼 칼리고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

“…그렇습니까.”

“그래. 아무래도 하녀 쪽이 범인인 것 같군. 바로 가지.”

“네.”

나는 기절한 잭슨을 침대에 눕혀준 뒤 로만과 함께 방을 빠져 나왔다.

사실 나는 로만에게 얘기를 듣자마자 내심 집사장인 잭슨이 할튼 칼리고를 저렇게 만든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그 내막은 전혀 딴판이었다.

잭슨은 자신에 사비까지 털어가며 가주를 살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공을 돌아다니며 온갖 종류의 영약들을 수소문할 정도로 대단한 충정을 지닌 인물이었다.

비록 그 결과가 좋지는 않았지만, 그의 노력만큼은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이래서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이다.

‘미안합니다.’

로만의 말에 의하면 레일라라고 하는 하녀는 특이하게도 프레이의 저택이 아닌 근처에 있는 오두막에서 머물고 있다고 한다.

로만도 하녀들 사이에서 얻은 정보이기 때문에 그녀의 오두막에 직접 들어간 적은 아직까지 없었다.

오두막 앞에 도착한 우리는 기척을 죽이고 천천히 접근했다.

“…….”

안쪽에서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곧장 문을 열었다. 예상과는 달리 오두막은 텅 비어있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방안에 켜진 등불을 보면 방금까지 사람이 있었던 것 같았다.

‘잠깐 이 기운은…….’

마기였다.

내가 딛고 있는 바닥 밑에서 마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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